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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화 / 韓錫化 [역사/근대사]
1898-195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자, 1919년 광복회제주도지부와 공동으로 조천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에서 3·1운동
한성부 / 漢城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왕조 수도의 행정구역 또는 조선왕조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 한성부는 1910년 경성부(京城府)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515년간 조선왕조의 수도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분의 중심지였다. 또한 한성부는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이었다.
한성부 북부장호적 / 漢城府北部帳戶籍 [사회/가족]
1663년 한성부에서 북부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관찬서.호구문서. 한성부 북부장호적의 공식적인 명칭은 『강희이년계묘식년북부장호적(康熙貳年癸卯式年北部帳戶籍)』이다. 한성부에서 1663년(현종 4)에 작성한 총 152장으로 된 필사본의 호적으로, 한
한성북부호적대장 / 漢城北部戶籍大帳 [사회/촌락]
1663년(현종 4)에 조사, 작성된 한성부 북부관 내의 호적책. 1책. 완본(完本)으로 필사본. 책의 크기는 세로 43㎝, 가로 42.5㎝이며, 분량은 150매이다. 조선시대의 호적대장 일반의 기재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계(契)별로 오가작통(五家作統)하지 않고 있
한성수 / 韓聖洙 [역사/근대사]
1920-1945. 광복군. 일명 이상일(李相一)·한성수(韓成洙).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44년 3월 학도병으로 일본군병영을 탈출하여 중국 푸양(阜陽)에 주둔한 광복군에 입대한 열혈청년으로서 제3지대의 발전을 위해서 자진 푸양에 잔류한 기간간부의 한 사람이다. 중
한성순보 / 漢城旬報 [언론·출판/언론·방송]
1883년(고종 20)에 창간되었던 순간(旬刊) 신문.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다. 1883년 10월 1일(음력) 서울 저동(苧洞)의 통리아문(統理衙門) 박문국(博文局)에서 발행한 월 3회 발간된 순보로, 매월 1일자로 간행되었다.
한성옥 / 韓成玉 [역사/근대사]
1882-미상.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제주도 표선면(表善面) 성읍리(城邑里)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성산면(城山面) 온평리(溫平里)에서 마을 일을 보고 있을 때 성산포(城山浦)에서 일본의 선박이 침탈해오자, 주민들과 마찰이 자주 발생하였다. 1927년 5월 1
한성우 / 韓聖佑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응인 증손, 할아버지는 덕급, 아버지는 수원, 어머니는 이영선의 딸이다. 대사간, 판결사, 개성유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한성재판소 / 漢城裁判所 [역사/근대사]
1895년 4월부터 1907년 12월까지 한성부를 관장하던 법원. 1895년 3월 25일 개혁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한성부에서도 종래 행정관청인 한성부 관할 내 일체의 민사, 형사 소송과 외국인과 본국 민간의 민사, 형사 사건을 재판하기 위
한성전보총국 / 漢城電報總局 [역사/근대사]
1885년 서로전선을 운영하기 위하여 서울에 설치된 전보국. 1885년 6월 조선과 청 사이 조청전선조약이 체결되어, 8월 인천부터 서울간 전선가설공사가 완료되었다. 이에 따라서 전선의 전보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한성전보총국이 설치되었고, 인천, 평양, 의주에 분국을 두
한성준 / 韓成俊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고수·민속무용가(1875∼1941). 창극의 장단으로 평타령·중모리·진양조·엇모리·휘모리 등에 특히 능했으며 명창·명무로도 이름을 떨쳤다. 무용에도 뛰어나 민속무용에 전념하여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세워 승무·학무·태평무 등의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켰다.
한성태 / 韓成泰 [예술·체육/국악]
1890-1931년.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운산리(雲山里)에서 태어났으나, 광주(光州)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덕만(韓德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웠으며, 5년
한송정 / 寒松亭 [문학/고전시가]
고려 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950년(광종 1)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고, 『고려사(高麗史)』권71 악지 속악조(俗樂條)에 오언절구의 한문으로 된 해시(解詩)와 함께 그 내력이 수록되어 있으며, 같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增補
한수 / 韓脩 [종교·철학/유학]
1333(충숙왕 복위 2)∼1384(우왕 10). 고려 후기의 문신. 악의 손자이다. 1347년(충목왕 3) 15세의 나이로 과거에 합격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전리좌랑, 성균사예, 비서소감, 병부시랑, 국자감좨주 등을 역임하였다. 이색과는 일찍부터 교분이 깊었고,
한수동 / 韓壽同 [예술·체육/국악]
1895년∼1940년. 가야금산조 및 풍류의 명인. 전라남도 해남(海南) 출생.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숙구(淑求)의 아들이다. 화순군 동복(同福)에서 살았다. 아버지에게서 가야금·풍류 및 산조를 배워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이름이 났고 역대 가야금산조 명
한수재집 / 寒水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권상하의 시문집. 35권 15책. 목판본. 1761년(영조 37)에 손자 진응에 의하여 경상감영에서 간행되었다. 윤봉구의 서문이 있다. 권1에 시 307수, 권2·3에 소 26편, 권4∼20에 서 187편, 권21에 잡저 9편, 권22에 서 3편, 기
한숙원전 / 韓淑媛傳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김려(金鑢)가 지은 전(傳). 광해군 때부터 인조 때까지 궁녀로 있던 숙원 한씨의 행적을 그녀의 절개와 지조를 중심으로 그린 내용이다. 작자의 문집 『담정집(藫庭集)』 권9의 『단량패사(丹良稗史)』에 수록되어 있다. 「한숙전」은 표면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을
한순 / 韓楯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592(선조25).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극심이다. 황정길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전관·평양판관 등을 거쳐 1590년 남평현감에 임명되었다.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제하며 군비에 충실하여 인근
한시 / 漢詩 [문학/한문학]
한자로 창작된 정형시. 한시는 자수(字數)·구수(句數)의 다소, 압운의 유무, 운자(韻字)의 위치 등을 기준으로 분류된다. 매구(每句)의 자수는 5언·7언이 가장 많고 4언·6언도 있다. 구수는 4구·8구 및 그 밖의 것으로 크게 나뉘며, 4구의 대부분은 절구(絶句),
한시대 / 韓始大 [역사/근대사]
미상∼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황해도 해주(海州)이다. 1902년(광무 6) 캘리포니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신민회에 가입하여 위원장을 역임하며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일에 힘썼다. 1937년 미주 지역 애국단 대표로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의에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