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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근 / 韓鳳根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호는 금산(錦山). 경상남도 밀양 출신. 정권이 일본에게 침탈당하고 일제의 무단정치가 극악해짐에 따라 만주의 길림성(吉林省)으로 망명하여 김원봉(金元鳳)·황상규(黃尙奎)·이종암(李鍾岩) 등을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의, 의열단(義烈
한봉석 / 韓鳳錫 [역사/근대사]
1893-1942. 독립운동가. 경기도 김포 출신. 1919년 조선총독부의 토목기사로 근무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그뒤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에 군자금모금의 사명을 띠고 귀국하여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대구복심
한봉수 / 韓鳳洙 [역사/근대사]
1872-1970. 한말의 의병장. 일명 봉서(鳳瑞)·봉용(鳳用)·봉룡(鳳龍). 충청북도 청주 출신. 1907년 8월 의병장 김규환(金奎煥)을 만나 감화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의병에 가담하게 되었다. 청주 세교장(細橋場)에서 기의하여 4년 6개월 동안 33전 1패
한봉인 / 韓鳳仁 [역사/근대사]
1898년∼1968.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생. 1919년 만주 길림성(吉林省) 길림(吉林)에서 김원봉(金元鳳)·이성우(李成宇)·서상락(徐相洛)·한봉근(韓鳳根) 등과 함께 의열단(義烈團)을 조직, 독립운동을 위하여 무력으로 투쟁할 것을 모의하고 군자금을 조달하기
한부 / 漢符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나무로 만든 궁궐 출입증. 작은 목재 표찰로서 여자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주로 하급 궁녀·관비들이 궐문을 출입할 때 패용하였다. 남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신부(信符)라 하였다. 한부는 매년 연말 병조 무비사에서 제작되어 궐내 각처에 배부되었는데, 해마다 사용
한불자전 / 韓佛辭典 [언어/언어/문자]
1880년 파리외방선교회 한국선교단에서 편찬한 한불대역사전(韓佛對譯辭典). ≪한불자전≫은 병인교난(1866) 때 우리 나라를 탈출한 리델(Felix-Clair Ridel)주교가 서울출신의 독실한 신도 최지혁(崔智爀)의 도움을 받아 만주 짜코우(岔溝)에서 편찬한 것인데
한빛원자력발전소 / ─原子力發電所 [경제·산업/산업]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서해안에 있는 가압경수로형(加壓輕水爐型) 원자력발전소. 이 발전소에는 영광원자력 1·2·3·4·5·6호기가 가동 중이다. 영광1·2호기는 설비용량이 각각 95만㎾이며, 3·4호기와 5·6호기는 각각 100만㎾급 원전으로 총 6기 590만㎾
한사직 / 韓師直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5∼1778). 1754년 급제하여 60세의 나이로 보덕이 되었고, 이어 지평·정언·헌납·장령을 지냈다. 강릉부사 재직 중 1756년 대기근이 들자 진휼에 힘썼다. 이후 대사관, 대사헌, 한성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80세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한산도가 / 閑山島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선조 때 이순신(李舜臣)이 지은 시조. 1수. 진본(珍本) 『청구영언(靑丘永言)』을 비롯한 22종의 가집에 실려 있고,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시조의 한역가는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권1 및 『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에 전한다.
한산두 / 韓山斗 [종교·철학/유학]
1556년(명종 11)∼1627년(인조 5). 조선 중기 유생‧의병. 한서봉 후손, 고조는 한태, 증조는 한영년, 조부는 한필이다. 부친 한일취와 모친 진황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윤복의 딸이다. 교유한 인물로 이개립‧전이성 등이 있다. 아들로 한원진‧한형진을
한산유찰 / 韓山遺札 [문학/고전산문]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집의 집안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한글편지를 모아 엮은 서간집.한글편지. 총 18편으로 이병기(李秉岐) 편주의 『근조내간선(近朝內簡選)』에 수록되어 있다. 그 원본의 소재는 알 수 없다. 이집은 영조 때 사람으로 그의 아들 병건(秉建), 손자 산
한산이씨족보 / 韓山李氏族譜 [사회/사회구조]
조선시대 문신 이덕수가 1643년에 편집하여 간행한 한산이씨의 족보. 분량은 상(上)·하(下) 1책이며, 원주의 강원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표제는 “한산이씨보(韓山李氏譜)”, 판심제는 “한산이씨족보”이다. 체제는 표지(表紙), 서문(序文), 범례(凡例), 보도(
한산향교 / 韓山鄕校 [교육/교육]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향교. 1518년(중종 1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69년(현종 10) 유산(由山)지방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1950년 6·25동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그뒤 복원하
한상경 / 韓尙敬 [종교·철학/유학]
1360(공민왕 9)∼1423(세종 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할아버지는 공의, 아버지는 수, 어머니는 권적의 딸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좌랑·우정언·전리정랑·예문응교·공부총랑·종부영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밀직사우부대언에 승진
한상렬 / 韓相烈 [역사/근대사]
1876∼1926. 항일기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자는 문극(文極).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되자 횡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500여 차례의 전투를 치뤘다. 1920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의용부·대한독립단 등 애국단체의 참모로 지내다 1926년 암살당했다. 1963년 건
한상호 / 韓相浩 [역사/근대사]
18990-1921.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경성 출신. 일찍이 간도에서 성장하여 명동중학교(明東中學校)를 졸업한 뒤 와룡소학교(臥龍小學校)교원으로 봉직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간도에서 윤준희(尹俊熙)·임국정(林國禎)·최이붕(崔以鵬) 등과 철혈광복단(鐵血光復
한석동 / 韓石東 [역사/근대사]
1893-193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석동(韓錫東)이다. 본적은 경기도 이천(利川)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결심하고 권중효 등과 함께 사전 준비 작업을 하였다. 1919년 4월 2일 경기도 이천
한석영 / 韓晳瑛 [역사/근대사]
1897-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자, 광복회제주도지부와 공동으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른바 조천만세운동이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에서
한석지 / 韓錫地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길몽가」, 『명선록』 등을 저술한 문인.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확인할 수 없고, 부인이 이씨(李氏)라는 것만 『명선록(明善錄)』(일명 『온고록(溫故錄)』이라고도 함)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일생이 병고와 빈곤·고적의 연속이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명선록』을
한석필 / 韓碩弼 [종교·철학/유학]
1672년(현종 13)∼1732년(영조 8). 조선 후기 유학자. 아버지는 한두추, 어머니는 수원백씨이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고 행동이 성숙하여 보는 사람이 기이하게 여겼다. 매일 일기를 기록함에 그날의 날씨, 방문한 손님, 집안의 대소사를 꼼꼼히 적었다.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