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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서문 / 平敍文 [언어/언어/문자]
화자가 사건의 내용을 평범하게 진술하는 문장. 평서문은 평서형 어미가 결합하여 성립된다. 진술은 청자에 대한 화자의 일방적 진술과 청자의 질문에 대한 화자의 응답 진술로 구분할 수 있다. 평서문은 하자와 청자가 얼굴을 마주 대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관적 장면과 매체를
평서법 / 平敍法 [언어/언어/문자]
문체법의 하나.문체법을 문장서법으로 사용하는 학자들이 흔히 쓰는 용어이다. 평서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해라체의 직설평서법어미 ‘―다’이다. ‘―다’는 대화 등의 상관적 장면뿐만 아니라 지문 등의 단독적 장면에서도 쓰인다. “지금 학교 간다.”라는 말을 누가 하였다고
평석 / 平石 [과학기술/과학기술]
고려·조선시대에 쓰던 양의 계량 단위. 고려 문종 때부터 통용해온 괵 단위명을 계속 사용하게 함으로써 혼란을 막기 위하여 이 15두량을 소괵이라고도 하였다. 이때부터는 양기척도의 길이가 31.220㎝인 영조척으로 바뀌었으며, 그 용적도 2,940입방촌인 8만9463.
평시서 / 平市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시전과 도량형, 그리고 물가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1392년(태조 1)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경시서(京市署)를 설치하였다가 1466년(세조 12)에 이르러 평시서로 명칭을 바꾸었다. 조선 전기에는 대체로 물가를 통제, 조절하고 상도의를 바로잡는 일
평시조 / 平詩調 [문학/고전시가]
초장·중장·종장의 3장 형식으로 구성된 평탄한 가락의 시조. 문학에서도 그 명칭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평시조는 시조의 기본형으로서 그 형태가 가장 먼저 정립되었을 뿐 아니라 시조사 전체를 통하여 주류를 이루고 있어 시조를 대표한다. 평시조의 음계는 황종(黃鐘, Eb
평식원 / 平式院 [역사/근대사]
1902년 도량형을 통일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 산하 관청. 1902년 도량형규칙을 제정하였으나 실제로 실시된 것은 1905년이었다. 초대총재는 궁내부대신 이재완이 맡았다. 관원으로는 칙임관의 총재와 부총재 각 1인, 주임관의 과장 2인과 기사 1인, 주사 4인,
평신 / 平信 [문학]
조선시대 한글편지 투식어. 편지를 쓸때 '보통 때의 소식은', '무사한 소식은'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평안남도청투탄의거 / 平安南道廳投彈義擧 [역사/근대사]
1920년 8월에 독립군이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탄한 사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을 받은 오동진 총영장은 안경신, 장덕진, 박태열, 문일민 등에게 미국국회의원단이 평안남도청을 통과할 때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에 폭탄을 투척하도록 하였다. 이에 평남도청 제3부(경찰부) 건물에
평안도 / 平安道 [지리/자연지리]
조선 팔도의 하나. 고려 때에 패서도(浿西道) 또는 북계(北界)라고 하던 것을 1102년(숙종 7) 이래 ‘서북면(西北面)’이라 일컬어서 조선왕조에 이어졌으나, 태종 13년 10월에 서북면이 평안도로 개칭되고 평양·안주를 계수관으로 삼게 되었다. 평안도는 문종 즉위년
평안도방언 / 平安道方言 [언어/언어/문자]
평안남북도에서 쓰이는 방언. 평안도는 낭림산맥을 경계로 함경도와 접해 있어 평안도방언과 함경도방언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낭림산맥이 시작되는 압록강 유역의 평안북도 후창과 산맥의 남쪽에 위치한 평안남도 양덕 등은 함경도방언의 특징을 일부 가지고 있다. 반면, 평안남도
평암산화전가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규방가사.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면 감천1동의 딸과 며느리들이 지은 가사. 변형 화전가류의 하나로, 평암산에서 화전놀이한 것을 윤작 형식으로 읊은 작품이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두에서는 화전놀이를 하여 보자는 권유와 동의, 그에
평암집 / 平巖集 [종교·철학/유학]
정영진의 시문집. 5권 2책. <규 12039> 권1은 사 1편과 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2에는 서 12편, 권3에는 기 7편, 잠명 5편, 제문 3편 유사 2편, 묘표 1편, 잡저 18편, 권4에는 연보가 수록, 권5에는 만사 17수, 제문 6편, 행장, 묘갈명,
평양가 / 平壤歌 [문학/고전시가]
십이잡가의 하나. 4내지 5연으로 분절할 수 있는 사랑의 노래이다. 제1연은 임을 따라 부모·동생 다 버리고 둘이 갈까를 노래한 것이며, 제2연은 평양성내에 불이 붙었는데 월선이 집에 불이 붙을까 하는 염려를 노래하였다. 제3연은 월선이 집에 놀러 갔더니 월선이가 소매
평양낙랑리팔십오호분 / 平壤樂浪里85號墳 [역사/선사시대사]
북한 평양특별시 낙랑구역 토성동에 있는 낙랑(樂浪)시기의 덧널무덤[木槨墳]. 대동강 남안의 낙랑구역 토성동 일대에는 낙랑군의 치소터[治址]로 추정되는 토성(土城)과 관련된 2,000여 기 이상의 덧널무덤과 벽돌무덤[塼築墳]등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낙랑리 제85호분도
평양만경대고분 / 平壤萬景臺古墳 [역사/선사시대사]
북한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움무덤[土壙墓]. 1959년 봄 만경대에서 학생들이 학교 주변 정리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어 그 해 6월 16일부터 19일까지의 기간에 걸쳐 북한의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고고학연구실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무덤은
평양서선키네마 / 평양서선키네마 [예술·체육/영화]
1931년 이창근이 설립한 영화제작사. 작품으로 <괴령>, <죄지은 여자>, <도회의 비가>, <돌아오는 영혼> 등을 만들고, 1939년에 동양토키영화로 개명하고 <처의 모습>, <신라의 고적> 등을 제작했다.
평양용산리고분 / 平壤龍山里古墳 [역사/선사시대사]
평양시 만경대구역 용산리에 있던 토광묘(土壙墓). 용악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상의 평탄지에서 1961년 8월에 조사되었는데 발굴, 조사 전에 이미 대부분이 파괴되어 원형은 알 수 없다. 목재와 흙이 유착, 부식되어 생긴 부식토층의 상태로 보아 남북길이 약 2.3m,
평양잡절송이무관 / 平壤雜絶送李懋官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박제가(朴齊家)가 지은 한시. 칠언절구. 6수. 작자가 평양으로 떠나는 벗 이덕무(李德懋)를 전송하면서, 평양의 유적에 얹어 감회를 적은 시이다. 연작형식의 작품이다. 『정유집(貞蕤集)』과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에 실려 있다.「평양잡절송이무관」은 박제가
평양종 / 平壤鐘 [예술·체육/공예]
평양특별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범종. 높이 254㎝, 입지름 163㎝.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23호. 개성의 연복사종, 강원도 평창의 상원사동종, 경주의 성덕대왕신종, 천안의 성거산천흥사동종과 함께 우리나라 5대 명종의 하나이다.
평양죽지사 / 平壤竹枝詞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장지완(張之琬)이 지은 악부시(樂府詩). 「평양죽지사」의 내용은 4,000년 전의 단군시절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변천을 노래하였다. 기자궁(箕子宮)과 기자묘(箕子墓), 정전(井田)과 동명왕(東明王)의 유적,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사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