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황해도 / 黃海道 [지리/자연지리]
지명. 조선 팔도의 하나. 태조 3년 6월에 서해도(西海道)가 풍해도(豊海道)로 개칭되고, 다시 태종 17년 12월에 풍해도가 황해도(黃海道)로 개칭되었다.
황헌 / 黃瓛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후기의 문신. 황처신의 아들, 황선의 동생이다. 형으로부터 학문을 배워 1747년(영조 23) 진사가 되고 1750년 제릉참봉으로 관직생활을 시작,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돈후하고 시문에 능하였으며, 후일 대제학·판돈령부사를
황혁 / 黃赫 [종교·철학/유학]
1551(명종 6)∼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황기준 증손, 할아버지는 황열, 아버지는 황정욱, 어머니는 조전의 딸이다. 기대승의 문인이다. 1580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집의·사간을 역임한 뒤 우승지가 되어 1591년 정철이 건저문제로 위리안치
황형 / 黃衡 [종교·철학/유학]
1459(세조 5)∼1520(중종 15).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황예헌, 어머니는 남인보의 딸이다. 1480년(성종 11)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도정, 의주목사, 회령부사, 함경도병마절도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황호직 영천군수 해유문서 / 黃浩直 永川郡守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87년(고종 25) 7월 13일 후임관이 병조에 올린 첩정이다. 이 문서는 앞부분의 내용이 결락된 상태이므로 전임관에 대한 자세한 내용 파악이 어렵다. 다만, 창원황씨(昌原黃氏) 인물 가운데 1886년(고종 23) 정월에 영천군수에 임명된 고신(告身)을
황효공 / 黃孝恭 [종교·철학/유학]
1496(연산군 2)∼1553(명종 8).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황진, 어머니는 이평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문과에 병과로 급제, 1522년 승문원부정자, 1525년 성균전적, 1526년 형조좌랑을 거쳐 형조정랑·황해도사·교리·지평 등을 지내고 서장관
황효헌 / 黃孝獻 [종교·철학/유학]
1491(성종 22)∼1532(중종 27). 조선 중기의 문신. 황희의 현손, 황보신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종형, 아버지는 황관, 어머니는 강미수의 딸이다. 진사로서 1514년(중종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홍문관정자가 되어 사가독서한 뒤 홍문관직제학·동부
황희 / 黃喜 [종교·철학/유학]
1363(공민왕 12)∼1452(문종 2). 조선 전기의 문신. 황석부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균비, 아버지는 황군서, 어머니는 김우의 딸이다. 1383년 사마시, 1385년 진사시에 각각 합격하였다. 그리고 1389년에는 문과에 급제한 뒤, 1390년(공양왕 2) 성균
황희정승설화 / 黃喜政丞說話 [문학/구비문학]
조선 초기의 재상 황희에 관한 설화. 인물전설에 속한다. 그는 내외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조선 개국 초기의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힘썼다. 이렇다할 정적(政敵)도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정치활동을 한 것이 하나의 특징이며, 특히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알려져 있다. 「
횃불싸움 [생활/민속]
정월대보름날 저녁에 농촌에서 횃불을 가지고 벌이는 민속놀이. 전국적으로 행해졌는데, ≪동국세시기≫ 상원조(上元條)에는 다만 “충청도 풍속에 횃불쌈놀이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보름날이 되면 마을 청년들은 낮부터 식구 수대로 싸리[萩]나 짚으로 홰를 만든다.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