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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양문록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작품의 머리에 ‘최호양문녹 권지단’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1권 분량의 작품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8면까지 작품이 계속되다가 중도에 그치고 「유씨삼대록」을 필사한 것이 연결되어 있어 작품의 전모는 확인하기 어렵다
최호준 / 崔皓俊 [역사/근대사]
1898-1945. 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 출신. 재령의 보명학교(普明學校)를 졸업하였다. 재령군일대의 궁장토(宮庄土)가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로 넘어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작료착취가 강화되자, 나석주(羅錫疇)·김덕영(
최호천 / 崔浩天 [역사/근대사]
1899-196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시흥(始興)이다.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현 배재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재학 중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되자 김인한(金仁漢)·유지호(柳志浩)·윤의병(尹宜炳)·이종원(李宗遠)·최정
최홍전 / 崔弘甸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1702(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사전 후손, 할아버지는 몽득, 아버지는 남진이다. 1679년(숙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각 조의 낭관 등을 역임하다가 1689년 기사환국 때 화를 당하여 관직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최홍준 / 崔弘俊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소민(素民)이다.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일(迎日)이다. 1940년 3월 신병으로 보성중학교를 휴학하고, 같은 해 9월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연수학관 영문과에서 수학하던 중 일본인들의 민족차별의식에 통탄하면서 경제력 향상·자
최화무 / 催花舞 [예술·체육/무용]
조선시대 순조 때 도입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죽간자(竹竿子)의 구호와 중무(中舞)의 치어(致語)로써 개장(開場)하고 수장(收場)한다. 협무창사(挾舞唱詞) 중 금도초전사(金刀初剪詞)는 「육화대 六花隊」의 이념사(二念詞)를 가져다 쓰고, 죽간자의 후구호(後口號)도
최황 / 崔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유학자(1783∼1874). 벼슬은 의금부도사·면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글씨에 능하였으며 시문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구암부묵》·《제자초략》 등이 있다고 전한다.
최효술 / 崔孝述 [종교·철학/유학]
1786년(정조 10)∼1870년(고종 7).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식, 어머니는 정종로의 딸이다. 정종로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동래부사 이휘령, 어사 박규수와 임응준 등이 번갈아 천거하여 1860년(철종 11) 장릉참봉에 임명, 돈령부도정, 부호군에 이르렀다
최효원증직교지 / 崔孝元贈職敎旨 [정치·법제/법제·행정]
교지. 1734년(영조 10) 2월 18일 숙빈최씨의 부친 최효원(崔孝元)을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겸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의 영사(領事)로 증직하는 교지이다.
최흥원 / 崔興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05∼1786).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이 된 후 세자익위사좌익찬에 이르렀다.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규약을 세우고 선공고·휼빈고 등을 두었다. 저서로는《백불암집》이 있다.
최희량 / 崔希亮 [종교·철학/유학]
1560(명종 15)∼1651(효종 3).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최영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상중에 있었기 때문에 나아가 싸우지 못하였고, 1594년 무과에 급제한 다음, 당시 충청수사로 있던 장인 이계정을 돕도록 천거되어 선전관
추 / 追 [문학]
조선시대 한글편지 투식. 추신. 편지의 끝에 더 쓰고 싶은 말을 부기하는 방법.
추강냉화 / 秋江冷話 [문학/구비문학]
조선전기 문신 남효온이 시화(詩話)·일사(逸事) 등을 모아 엮은 수필집.한문수필집. 1책. 필사본. 저자의 문집인 『추강집』 권7에 수록되어 있으며 『대동야승』 권3에 발췌, 수록되어 있다. 66편의 이야기들로 조기종(趙起宗)·안응세(安應世)·고순(高淳)·홍유손(洪裕孫
추규영 / 秋圭映 [역사/근대사]
1901-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상남도 부산(釜山)이다. 경상남도 부산 동래구(東萊區) 복천동(福泉洞)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현 동래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동학생 고영건(高永建
추길관 / 諏吉官 [과학기술/과학기술]
조선시대 양길의 선택을 맡았던 관상감의 직원. 처음에는 명과(命課)에 종사하는 사람을 모두 일관이라 해서 정원이 없었으나, 1791년(정조 24) 7인으로 정하고 추길관이라 했다. 직차법을 관장하는 수선관(修選官) 6인을 두고 크고 작은 선길을 서로 융통해서 맡아 관
추담집 / 秋潭集 [종교·철학/유학]
성만징의 문집. 8권 3책. 목활자본. 간행연대 미상. 권1은 시, 권2에서 권5까지는 100여명에 가까운 인물들에게 보냈던 간찰들이 수록, 권6은 기문과 제발, 권7은 잡저와 제문, 축문, 행장, 전, 잡기, 그리고 권8에는 부록으로 저자에 대한 묘표와 가장, 그리고
추득천 / 秋得千 [역사/근대사]
1895-195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연기(燕岐)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같은 마을에 사는 박성교(朴聖敎)·이수욱(李秀郁)·추경춘(秋敬春)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비밀리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
추보관 / 推步官 [과학기술/과학기술]
조선시대 칠정산 내편의 추보를 맡았던 관상감의 직원. 추보란 천문을 관측하여 일월성신의 도수를 추정하는 것이다. 세종 때 황명대통통궤를 취하여 내편을 만들고, 또 회회 역법을 얻어 외편을 만들었다. 효종조에는 시헌력으로 고쳐 썼다. 그래서 삼력관은 시헌법을 관장하고,
추사 김정희 서신 / 秋史金正喜書信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가 동생 김명희·김상희와 민태호 등 주변 인물에게 보낸 편지 모음. 추사 연구의 개척자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鄰, 1879~1948]가 수집하고 연구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관련 자료 중 일부를 2006년 그의 아들 후지츠
추사가언간 / 秋史家諺簡 [언어/언어/문자]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상하 5대에 걸쳐 쓰인 45건의 한글 편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가문에서 주고받은 현존(現存) 한글 편지 94건 중에서 추사가 쓴 40건을 제외한 45건의 한글 편지이다. 추사의 조모 해평 윤씨(海平尹氏, 172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