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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석 / 崔命錫 [역사/근대사]
1913-196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삼천포면(三千浦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상남도 부산(釜山) 범일동(凡一洞)이다. 1933년 1월 2일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동료 교사 김두영(金斗榮) 등과 함께 남산동(南
최명식 / 崔明植 [역사/근대사]
1880-196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긍허(兢虛). 청년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면학회를 조직하고 산업 증진과 교육의 장려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였다. 신민회에 가입하였으며 상하이 임시정부, 한국독립당에서 꾸준히 정치활동을 펼쳤다.
최명현 / 崔明鉉 [역사/근대사]
1892-1944. 독립운동가. 황해도 해주 출신. 1919년 2월 해주군 해주읍 남본정(南本町) 예배당 목사 오현경(吳玄卿)이,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박희도(朴熙道)가 김명신(金明信)을 통하여 보낸 독립선언문 300매를 인수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할 때 참여하였다
최방언 / 崔邦彦 [종교·철학/유학]
1634(인조 12)∼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세영, 송시열의 문인이다. 학행으로 민정중·김수흥 등의 천거를 받아 현릉참봉이 되었다. 서인이 집권하면서 1701년 광릉참봉으로 다시 기용되고, 세자익위사의 시직·부수, 상의원첨정 등을 역임하고,
최범술 / 崔凡述 [종교·철학/불교]
1904년(광무 8)∼1979년. 승려‧독립운동가‧교육자‧다도인(茶道人)‧정치가. 초명은 영환(英煥), 당호는 금봉(錦峰), 법호는 효당(曉堂)이고, 경상남도 사천 출신이다. 1916년 사천 다솔사(多率寺)로 출가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배포
최벽 / 崔璧 [종교·철학/유학]
1762년(영조 38)∼1813년(순조 13). 조선 후기 문신. 증조부는 최하기, 조부는 최경담, 아버지는 최종섭이다. 외조부는 신도하, 처부는 이도지이다. 1783년(정조 7) 계묘 식년시 갑과 장원으로 급제한 그는 바로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이후 예조좌랑,
최병규 / 崔丙圭 [역사/근대사]
1881-1931. 독립운동가. 대구 출신.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의 대표적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약한 애국지사이다. 1915년에 결성된 대한광복회의 회원으로 군자금 수합에 힘을 쏟던 중, 1916년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의 계획하에 김진만(金鎭萬)의
최병무 / 崔秉武 [역사/근대사]
1918-194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대동(大同)이다. 평안남도 평양(平壤) 숭실상업학교(崇實商業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재학 도중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차별 정책을 체험하고, 6월 13일 동지들과 함께 항일비밀결사단체인 일맥회(一麥會
최병선 / 崔秉善 [역사/근대사]
1886-1943년. 독립운동가. 일명 동선(東善)·병선(炳善). 평안북도 정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고향 정주에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월 출옥과 동시에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공동조계에 거주하면서 영
최병수 / 崔炳秀 [역사/근대사]
1876-1919.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아산 출신.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고, 선장면·신창면·도고면 등 3개 면민의 연합만세운동 총책임자로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4일 200여명의 만세시위군중이 모인 선장 장
최병인 / 崔炳寅 [종교·철학/유학]
1869년(고종 6)∼1917년. 조선 말기 유학자. 증조부는 최승우, 조부는 최운황, 아버지 최면식과 어머니 진성이씨 사이에서 네 명의 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불행히도 어려서부터 병약해서 벼슬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고향에서 학문에 열중하였다. 효행이 뛰어났으
최병일 / 崔秉一 [역사/근대사]
1883-193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치순(崔治順)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
최병헌 / 崔炳憲 [종교·철학/개신교]
1858-1927년. 감리교목사. 한국적 신학 형성의 선구자. 호는 탁사(濯斯). 충청북도 제천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과거를 준비하던 중 《영환지략 瀛環志略》 등의 서적을 읽고 서양문화의 발달상과 그 정신적 지주가 기독교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부패상에
최병호 / 崔炳鎬 [역사/근대사]
미상-1924. 독립운동가. 강원도 출신. 부모를 따라 어렸을 때 만주로 건너가 통화(通化)에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항일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헌병
최보운전 / 崔保雲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2책. 국문필사본. 이 작품은 남녀 주인공들의 결연담과 무용담으로 엮어진 것으로, 고소설 가운데 많이 볼 수 있는 영웅소설이다. 결연과 무용담으로 흥미를 돋우며 입신양명으로 철저하게 공리주의를 추구하였다. 구성면에서 볼 때, 태자가 8년간이
최봉설 / 崔鳳卨 [역사/근대사]
1897-1973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이붕(以鵬)이고, 다른 이름은 최계립(崔溪立)이다. 출생지는 중국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현 연길시 소관향 민흥촌)이다. 부인은 김하규(金河奎)의 딸 김신희(金信姬)이다. 1920년 일제의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수송중
최봉원 / 崔鳳元 [역사/근대사]
1913-200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동광(崔東光)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신의주(新義州)이다. 형은 최봉록(崔鳳錄)이다. 돈을 벌 목적으로 형과 함께 중국의 화북(華北)으로 가서 행상을 하던 중에 제남(濟南) 근처에서 1938년 4
최봉직 / 崔奉稷 [역사/근대사]
1896-1961. 독립운동가. 황해도 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해주에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1920년 1월 유하현 삼원보에 있는 군사학교를 이수하고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하였다.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국내에 잠입, 1920년
최봉환 / 崔鳳煥 [역사/근대사]
1868-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순천 출신. 1910년 1월 19일 평안남도 순천교회 장로로 활동하던 중, ‘시장세반대투쟁(市場稅反對鬪爭, 일명 百一稅事件)’을 주도하여 3,000여명의 농민·상인들을 동원하여 시위 항쟁하고, 순천 세무주사 노자와(野澤辰三郞) 등
최부 / 崔溥 [종교·철학/유학]
1454(단종 2)∼1504(연산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택, 김종직의 문인이다. 1478년(성종 9) 성균관에 들어가 신종호와 더불어 문명을 떨쳤고, 김굉필 등 동학들과 정분을 두터이 하였다. 1482년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저작,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