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22,135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검색결과
최동식 / 崔東植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한말의 애국지사. 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으로 늑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주장하였고, 또한 조약체결에 찬동한 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 등 5대신의 처형을 주장하는 고발장을 제출하였다가 붙잡혀 4
최동악 / 崔東岳 [종교·철학/유학]
1745년(영조 21)∼미상. 조선 후기 무신. 부친은 최진해이다. 1771년에 경상 수군절도사, 1774년(영조 50) 등준시에서 병과로 무과 급제하였다. 1776년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재직 중에 성격이 난폭하고 민정을 잘 살피지 못했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805
최동언 / 崔東彦 [종교·철학/유학]
1594년(선조 27)∼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조부는 최준문, 부친은 최계종이다.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증광사마시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여 1633년(인조 11)에 천거로 목릉창봉에 제수되었다. 구례현감을 역임하였다.
최동오 / 崔東旿 [역사/근대사]
1892-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최학원(崔學源)·지석호(池錫浩). 호는 의산(義山).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그뒤 만주로 망명, 정의부(正義府)에 참가, 김동삼(金東三)·현익철(玄益哲)·김이대(金履大)·김원식(
최동집 / 崔東㠍 [종교·철학/유학]
1586년(선조 19)∼1664년(현종 5). 부친은 최계이다.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616년(광해군 8) 병진 증광시에 진사 3등 51위로 합격하였다. 유일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어 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뒤에 팔공산 농연가에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
최동환 / 崔東煥 [역사/근대사]
1907-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영암(靈巖)이다. 1931년 6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靈巖邑)에서 일제가 도로보수공사를 시작하였는데 공사에 동원된 부역인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자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최동희 / 崔東曦 [역사/근대사]
1890-1927년.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1919년 3·1운동 때 서울에서 참여한 뒤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2년 7월 천도교의 독립운동단체인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를 조직하여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에 선임되었으며, 연해주로 건너가 계속 독립투쟁을
최두욱 / 崔杜旭 [역사/근대사]
1891-195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경산(慶山)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미국 하와이이다. 1941년 4월 20일 미국 하와이 호노룰루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가 결성되자 의사부위원(議事部委員)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최두필 / 崔斗弼 [역사/근대사]
1891-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거주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이다.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복귀면·수하면·이중면 지역 주민들은 평소 땔나무를 팔고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치하의 정부에서 산림보호를 명목으
최랑전 / 崔娘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한문필사본. 최랑과 그녀의 어머니가 처음에 보여준 태도를 통해 제도사회 속에서의 신분적인 극복, 곧 면천(免賤)에 대한 절절한 바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작자는 이 소설의 결구에서 다만 홍안박명(紅顔薄命)과 풍류남자의 불행이 예사
최륜 / 崔崙 [역사/근대사]
미상-1920년 11월 26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국민회(國民會) 소속으로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재무위원(財務委員) 등을 역임하였다. 항일활동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탈출하였으나, 1920년 11월 26일 국자가(局子街)에서
최린 / 崔潾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고조부는 용소, 세창 증손, 할아버지는 복해, 아버지는 연년, 어머니는 이계전의 딸이다. 장인은 류계손이다. 1478년(성종 9)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출사하였다. 예문관검열, 병조참의,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최린 / 崔麟 [역사/근대사]
1878-미상. 3·1독립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호는 고우(古友), 도호(道號)는 여암(如庵). 함경남도 함흥 출신.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덕언(德彦)의 아들이다. 도필두(都必斗)에게서 한학(漢學)을 배우고, 18세에 상경하여 각지를 유람하였다
최림 / 崔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9∼1841). 부친은 최종윤, 모친은 박태진의 딸이다. 추천으로 선공감역 등을 지냈다. 위기지학에 매진하였으며, 성력·기수·병학 등에도 통달하였다. 문집으로『외와집』이 남아 있다. 이 책은 그의 증손 최임수가 편찬하고 간행을 보지 못하고 죽
최립 / 崔岦 [종교·철학/유학]
1539년(중종 34)∼1612년(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 아버지는 자양이다. 1559년(명종 14)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주청사, 재령군수, 판결사, 강릉부사,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문집으로는 『간이집』이 있다. 시학서로는『십가근체시』와『한
최만리 / 崔萬理 [언어/언어/문자]
?∼1445(세종 27).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 고려시대 해동공자로 불리던 최충(崔沖)의 12대손이며 하(荷)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그 이듬해 집현전박사로 임
최만혁 / 崔萬爀 [역사/근대사]
1887-1974. 독립운동가. 일명 만혁(萬赫). 평안북도 개천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고 독립단을 조직, 군자금을 모금하여 만주에서 결성된 한족회(韓族會)에 송금하였다. 이해 5월 만주로 건너가 유하현(柳河縣)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수
최면식 / 崔勉植 [역사/근대사]
1891-1941. 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약한 애국지사이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발발로 정국이 어수선할 때 만주로 망명할 것을 계획하여 황해도 해주 오찬근(吳讚根)의 집에서 자금을 모으다가 일본경찰
최명길 / 崔鳴吉 [종교·철학/유학]
1586(선조 19)∼1647(인조 25). 조선 후기의 문신. 업 증손, 할아버지는 수준, 아버지는 기남이다. 어머니는 유영립의 딸이다. 이항복 문하에서 이시백·장유 등과 함께 수학한 바 있다.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지천집≫ 19권과 ≪지
최명상 / 崔命相 [종교·철학/유학]
1676년(숙종 2)∼1736년(영조 12).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최순, 조부는 최상익이다. 부친 최중태, 모친 심약명의 딸이다. 처부는 심정구이다. 1722년(경종 2)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 가주서·정언·사서, 1723년(경종 3) 지평, 1729년(영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