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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고상안 / 高尙顔 [종교·철학/유학]
1553년(명종 8)∼1623년(인조 1). 조선 중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충순위증판결사 고극공, 아버지는 증 한성우윤 고천우. 어머니는 신천 강씨 습독 강희언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76년(선조 9)에 문과에 올라 함창현감·풍기군수 등을 지
고생호 / 高生鎬 [역사/근대사]
1915-1946. 일제 강점기 의용군·사회주의운동가. 1939년 중국 낙양(洛陽)에서 국민당군대의 포로로 잡혔다가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대원으로 넘겨졌다. 1941년 일본군 근거지인 태항산(太行山) 팔로군(八路軍)에서, 1942년 3월경에는 일본군이 점령한 북경(
고석진 / 高石鎭 [역사/근대사]
1856-1924년. 한말의 의병장. 전라북도 고창 출신. 1906년 최익현(崔益鉉)의 태인의거(泰仁義擧) 때 참모로서 최제학(崔濟學)·최학령(崔學領)·이용길(李容吉) 등의 의사들과 함께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군사를 모집하고 무기를 준비하는 데 활약하였다. 그해 6월
고성한 / 高成翰 [역사/근대사]
1888-1921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하여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
고세장 / 高世章 [종교·철학/유학]
1641(인조 19) - 1690(숙종 16). 조부는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지낸 태촌 고상안이다. 1673년(현종 14)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서 지조와 논의가 뛰어나서 명성을 드날렸고, 영빈서당을 이건하여 학업을 익히는 장소로 삼았다. 1689년(
고수선 / 高守善 [역사/근대사]
1898-198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사, 현대 여성운동가·사회사업가. 호는 우인(又忍)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출신지는 제주도 대정읍(大靜邑) 가파도(加波島)이다. 아버지는 호적에는 고석조(高錫祚)라고 하나 고영조(高永祚)로도 불리었으며 솥, 농기구 등
고순흠 / 高順欽 [역사/근대사]
1893-1977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아나키스트·서예가. 자는 자유(自由), 호는 죽암(竹巖)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출신지는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이다. 아버지는 제주도 성균관교수(成均館敎授) 고성겸(高性謙)이며, 월북한 공산주의 독립운
고승운 / 高承雲 [역사/근대사]
1872-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했다. 1927년 5월 16일 성산읍 청년회가 주관한 씨름 대회에서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선원 그리고 일본인 선원에게 고용된 타지역 사람들 200여 명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고시복 / 高時福 [역사/근대사]
1911-1953. 독립운동가. 일명 일명(一鳴). 황해도 안악 출신.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쥬쿄상업학교(中京商業學校)에 입학하고 1931년에 졸업한 뒤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金九)가 비밀리에 조직한 한
고영신 / 高令臣 [종교·철학/유학]
1045(정종 11)∼1116(예종 11). 고려 중기의 문신. 아들은 고식이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1097년(숙종 2) 우찬선대부, 1099년 이부낭중추밀원우승선을 역임하였다. 그 뒤 1101년 어사중승으로 동북면병마사가 되고 이어 형부시랑우간의대부에 올랐
고영희 / 高永喜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대신·친일파(1849∼?). 갑오개혁에 참여하고, 독립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이완용 내각의 탁지부대신을 지낼 때는 고종의 양위에 적극 반대하였다. 경술국치 후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등을 지내는 등 일제 앞잡이가 되었다.
고예진 / 高禮鎭 [역사/근대사]
1875-1952.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수문(秀文), 호는 송천(松川). 전라북도 고창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인 용진(龍鎭)·석진(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거기에 가담하였다. 1906년 4월 무성서
고용석 / 高用錫 [역사/근대사]
1866-1929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제주도 서귀포(西歸浦) 중문동(中文洞)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었다. 1918년 10월 15일 법정사(法井寺) 승려 김연일(金蓮日)과 강창규(姜昌奎)가 주도한 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 김연일은 포교 활동을 하며 신도들에게 배일사
고용석 / 高龍錫 [역사/근대사]
1895-1950.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치현(穉賢)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출신지는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 모현리(募峴里)이다. 의병장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14세손이다. 타고난 성품이 명민하였으며, 항상 나라 잃은 설움에
고용주 / 高墉柱 [역사/근대사]
1865-1930. 일제강점기 유학자·교사. 자는 현중(玄仲), 호는 봉계(鳳溪)이며, 본관은 장택(長澤) 또는 장흥(長興)으로, 출신지는 전라남도 구례(求禮)이다. 소천 왕사찬과 매천(梅泉) 황현(黃玹)에게 사사하였다. 1903년(광무 7) 고종황제에게 시책(試策)
고용진 / 高龍鎭 [역사/근대사]
1850년(철종 1)∼1922년.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운서(雲瑞), 호는 송재(松齋), 본관은 장흥(長興),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다.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강회(講會)를 가장하고 의병을 일으키자, 포수 30여명을 이끌고 의병으로 들어갔다. 1912년
고웅주 / 高雄柱 [역사/근대사]
1923-19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강원도 정선군(旌善郡)이다. 춘천중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재학 중 동학생이던 한인학생들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8년 학교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상록회(常綠會)가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회원 전
고원훈 / 高元勳 [역사/근대사]
1881-미상. 민족항일기의 정치인·체육인. 1881년 3월 경상북도 문경군 양면 신전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7월 일본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1911년 8월 조선총독부의 경부(警部)로 채용되었고, 1913년 5월 보성전문학교 교수, 1922년에
고유 / 高裕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79). 1743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창녕현감·경상도사·안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 토지·소송 문제 등을 잘 처리하였고, 1796년에 청백리에 추천되었다.
고유섭 / 高裕燮 [예술·체육/회화]
항일기의 미술사학자(1905∼1944). 호는 우현(又玄). 경성제국대학 미학연구실의 조수로 근무하면서 고대 미술품 조사와 연구에 힘썼다.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우리 미술사 연구에 주력했다. 주요 논문은 대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