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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문인·학자
이규영 / 李奎榮 [언어/언어/문자]
국어학자. 호는 검돌. 경기도 수원 출생. 저자의 유고 『온갖것』에서 자신을 ‘끗없는꼿속땅젊은손’, 유고 『말듬』에서는 ‘끗없는꼿속나라젊은손’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1910년대 주시경파(周時經派) 문법가로서 사전편찬과 국어연구에 공헌한 학자이다. 보성중학교(普成中學校
이극로 / 李克魯 [언어/언어/문자]
경상남도 의령 출신. 호는 고루. 국어학자·정치인. 1920년 중국 상해 동제대학(同濟大學) 예과를 마치고 1927년 독일 베를린대학 철학부를 졸업하였다. 1929년 『조선어사전』(뒷날 조선어학회의 조선말큰사전)편찬 집행위원, 1930년 한글맞춤법 제정위원, 1935년
이기영 / 李箕永 [문학/현대문학]
1895년(고종 32)∼1984년. 일제강점기 소설가. 호는 민촌(民村), 충청남도 아산 출신이다. 1924년 『개벽』 창간 4주년기념 현상작품모집에 단편소설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카프(KAPF)에 가맹하였고, 월북 전의 작품으로는 1933년
이능화 / 李能和 [종교·철학]
항일기의 학자(1869-1943). 1910년 후 《조선사》 편찬에 참여했고, 불교잡지를 발간하여 불교포교와 민족문화수호운동을 수행했으며, 청구학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불교에 관한 일체 사료를 망라하여 《조선불교통사》를 출판했고,《조선도교사》·《조선기독
이달 / 李達 [문학/한문학]
조선시대 『손곡집』을 저술한 시인. 이수함(李秀咸)의 서자이다. 이달의 제자 허균(許筠)이 이달의 전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으면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이첨(李詹)의 후손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이것을 근거로 이달을 이첨의 후손으로 보아
이달충 / 李達衷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제정집』을 저술한 유학자.문신. 증조는 문하평리(門下評理)이핵(李翮), 할아버지는 밀직부사 이세기(李世基), 아버지는 첨의참리(僉議參理) 이천(李蒨), 어머니는 연창군부인박씨(延昌郡夫人朴氏)이다. 1326년(충숙왕 13)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좨주
이담지 / 李湛之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죽림고회(竹林高會) 7인중 한 사람인 문인. 좌사(左思) 이중약(李仲若)의 내손(內孫)이다. 가계 및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무인란 이후 임춘(林椿)과 마찬가지로 개경을 벗어나 유락객(流落客)이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중앙에 기반을 둔 귀
이동림 / 李東林 [언어/언어/문자]
본관은 원주(原州). 호는 허당(虛堂). 강원도 영월 출신. 국어학자. 1950년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3월 동 대학원에서 <월인석보소고 月印釋譜小考>로 문학석사 학위, 1970년 9월 동 대학원에서<동국정운연구 東國正韻硏究> 로 문
이동직 / 李東稷 [역사/조선시대사]
1749년(영조 25)∼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775년(영조 51)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정자‧저작‧박사‧감찰 등을 역임하였고, 초계문신(抄啓文臣)에도 뽑혔으며, 홍문록에 오른 뒤 수찬이 되었다. 1792년 부교리로
이만각 / 李晩慤 [종교·철학/유학]
1815년(순조 15)∼1874년(고종 11). 조선 말기의 학자. 자는 근휴(謹休), 호는 신암(愼庵)‧암후(巖后),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일찍이 영리(榮利)의 뜻을 버리고 경전과 『주서절요(朱書節要)』를 깊이 연구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 성리학에도 조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