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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별첨 1―이용익이 황귀비를 양귀비에 빗대 말한 데 대한 논란과 관련하여, 의정부가 황제폐하께 올린 집단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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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사업]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사업
한불외교자료의 탈초,번역 및 DB화
서지사항
· 표제어62-1. 별첨 1―이용익이 황귀비를 양귀비에 빗대 말한 데 대한 논란과 관련하여, 의정부가 황제폐하께 올린 집단 보고
· 설명문이용익이 황귀비를 양귀비에 빗대 말한 데 대한 논란과 관련하여, 의정부가 황제폐하께 올린 집단 보고를 올림
· 키워드한성부판윤, 내장원경, 양귀비, 안녹산, 소인, 신
· 집필자F. 베르토, 대한제국 주재 프랑스 부영사
· 작성연도1906년
· 작성월일12월 03일
· 발신자V. 콜랭 드 플랑시, 대한제국 주재 프랑스 공사
· 수신자델카세, 프랑스 외무부 장관
· 주요사건황궁 내 이용익 축출 시도
· 자료문의성균관대학교팀(연구책임자:이지순 교수)

번역문

(번역)
외부대신 조병식이 방금 우리에게 전 한성부판윤 엄주익과 김영진의 말을 전해왔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내장원경 이용익이 그 어떤 신하도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하여 왕좌에 흠집을 냈다고 합니다.¹ 게다가 그가 행한 가증스러운 비교는 불한당이나 할 짓입니다.²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은 왕권에 맞서는 중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는 최대한 신속하게 처벌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은 우리의 심장을 얼어붙게 하고 울분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여서 엄주익과 김영진을 다시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은 조병식의 주장이 맞음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용익의 고약한 말과 악행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동요를 불러왔습니다.
그가 모반을 획책했다는 증거가 있으니 그를 한시도 살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법부는 그를 파면하고 사형에 처해 황제의 법률을 존중하고 백성의 울분을 달래야 할 것입니다.

부영사 F. 베르토
주석

¹ 황제가 계속해서 엄씨 부인을 왕권에 가까운 신분으로 격상시키긴 했어도 그녀는 아직 황후는 아니었다. 이용익은 이 엄씨 부인에게 말할 때, 백성이 권력자 앞에서, 하인이 주인들 앞에서 쓰는 명칭인 ‘소인(小人) 대신, ‘신(臣)’, ‘폐하의 신하’(통치권자 앞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말)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엄씨의 적들은 그녀를 황후가 되려고 끝없이 술수를 부리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용익의 언사가 그러한 비난을 구체화시킨 것이라고 본 것이다.

² 고소인들의 말을 믿는다면 이용익은 황제가 엄씨 부인에게 부여한 새 칭호 ‘황귀비’ 대신 ‘양귀비’라고 불러, 청국 당조 황제 현종(713-762)의 첩을 암시하는 불상사를 저질렀다.
역사 속에 양씨 공주(대한제국에서 양귀비로 불림)로 알려진 이 여인은 뛰어난 재주를 지닌 절세미인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황제의 18번째 왕자 수왕 이모의 비가 되었다. 그녀는 황제의 애첩이 죽자 그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다. 황제는 자신의 아들에게서 그녀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그녀를 자신의 첩이 되게 하려고, 그녀에게 궁의 모든 곳에서 유일한 황후로서 대접을 받게 해 주겠다고 사적으로 약속한다.
도교 교리의 향락적인 생활에 빠진 그는 도교 신화에 나오는 여신 서왕모의 딸들 중 하나로 알려진 소녀의 이름을 따 태진(지고의 정수란 의미)이란 이름을 그녀에게 부여한 후, 745년 그녀에게 황후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귀비의 신분을 준다.
그녀는 국무의 핵심을 담당하는 내각관료들과 황실고문들의 부패 덕분에 자신의 전 가족이 황제의 특혜를 받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그의 아버지는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고, 그의 오빠는 무식한 호색한임에도 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점점 더 양귀비에게 깊이 빠져든 현종은 양귀비의 세 자매도 후궁에 봉해 공주의 신분을 부여하고 엄청난 재산을 주었다. 황제는 이 궁녀 일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무 것도 아끼지 않았으며 속국들도 그들의 무절제한 터무니없는 요구에 부응해야 했다. 투르케스탄에서 온 안녹산은 황제와 첩들의 연회에의 출입이 허락되었다. 추문이 터지고 소문이 돌았지만 황제는 절제할 힘이 없었다. 왕의 총애를 받던 안녹산은 방탕에 빠진 군주의 나약함을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황실이 반란자들을 피해 궁에서 도망간 동안, 매 맞고 굶주린 병사들이 들고 일어나 그 동안 자신들에게 수많은 모욕으로 고통을 주었던 군주의 총애자들에게 피로써 복수했다. 심각한 불안 속에서, 여전히 비를 사랑했던 현종은 자신의 충신인 환관 고력사에게 양귀비를 살해하란 명령을 내렸고, 반란자들의 손에 들어간 그녀의 오라비와 여동생들은 사람들 앞에서 처형당했다.
대한제국 대신이 그처럼 방탕하기로 유명했던 양귀비에 빗대 말한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빗대 말하려면 중국 역사에 정통해야 하는데, 이용익 같은 무식쟁이이자 행동형 인간에게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F. 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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