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필터

19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신상 겸 북조선청우당 부위원장 김정주 평정서

홈 > 연구성과별 자료검색
[연구사업]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사업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
서지사항
· 표제어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신상 겸 북조선청우당 부위원장 김정주 평정서
· 키워드김정주, 체신상, 북조선청우당
· 대표주제어김정주
· 설명문김정주 평정서
· 발신자레베데프
· 자료문의동국대학교팀(연구책임자:박명호 교수)

문서 해제


대표표제어: Характеристика на министра связи Корейской Народ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ой Республики и заместителя председателя ЦК партии “Молодых Дружей” - “Ченудан” Сев. Кореи - Ким Ден Дю
산출물명: ЦАМО,ф.142,оп.540936,д.1,лл.39-41.
자료구분: 타이핑
저작권자: 러시아연방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
원자료언어: Ким Ден Дю
면수: 3
발신일: 1948.12.25.


번역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신상 겸 북조선청우당 부위원장 김정주 평정서
1903년 4월 16일 출생하였다.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 황산리 출신이다. 화전민 출신이다(산지 거주자).
1909년부터 1912년까지 자기 고향에서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1912년부터 1915년까지 자연과학을 공부하였다. 1915년부터 1920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부친의 농장에서 일했으며, 1919년 3.1운동 준비를 위한 청년조직에 가담하였다. 1920년부터 1922년까지 영변군 중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이후 1924년까지 가내공업 형태의 개인방직공장을 관리하였다. 1925년까지 서울의 민족주의적 신문으로 일본정권이 공식적으로 허가하고 있었던 ‘동아일보’ 통신원으로 있었다.
1925년에 도쿄로 떠나, 그 곳에서 정치경제대학교에 입학했으며, 1930년에 그곳을 졸업하였다. 그곳에서도 개인 철공소를 경영했으며, ‘청우당’에 가입했고, ‘청우당’의 조선인 대학생조직 위원장이 되었다.
1930년부터는 ‘청우당’ 중앙위원이었는데, 당시 청우당의 지도자는 일본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친일분자 최린이었다. 당시의 청우당은 천도교청년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1930년부터 1937년까지는 평양시에서 농민협회(крестьянское общество)의 사무원으로 근무했으며, 1937년부터 조선이 해방되는 날까지 개인 상업에 종사하였다.
북조선이 해방된 이후 봉산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복무했고, 이후 영변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45년 10월부터 1946년 1월까지 새로운 강령에 기초한 ‘청우당’을 재조직하는데 적극 참여했으며, 청우당을 창립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한 활동가 중 한사람이었다. 1946년 2월에는 중앙위원 및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당 지도부에 소속되어 있다. 1946년 8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대표단원으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1947년 2월부터는 북조선인민위원회 총무부장으로 재직했으며,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이었다.
김달현의 측근으로 그의 노선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 당내 영향력의 측면에서는 김달현 다음가는 2인자이다.
북조선의 민주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정권기관의 책임적 지위에 로동당원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청우당이) 집권당이 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김정주는 김달현과 함께 당내 좌파분자를 지지하는 노선을 이끌고 있으며, 낡은 우익적 경향에 반대하고 있지만, 단호하거나 철저하지 않다. 그러나 이와 함께 조선의 민주화를 위해 적극 투쟁하는 광범위한 당 대중의 분위기로부터 이반되지 않도록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노선은 당내에서 지금까지 반민주적 경향의 우익적 경향이 존재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조선에 관한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과 소미양군이 조선으로부터 동시 철퇴하자는 소련 측 제안에 찬성하고 있다.
미국의 팽창주의적 정책을 반대 및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주의 실천 활동은 만족스러울 만큼 철저한 것은 아니며, 민주적 입장은 확고하지 않다. 요컨대 지금까지 김정주는 반동분자이자 친일분자인 최린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당내 우익진영이 강화되거나 혹은 계급투쟁의 정세가 변화될 때는 당내 우익적 경향의 편으로 동요될 수도 있다.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국장 N. 레베데프(Н. Лебедев) [서명]

1948년 12월 25일

자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