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필터

주제어사전 [전체] “수” 에 대한 검색결과 37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강기 / 姜琪 [역사/근대사]

    3월 19일 12시 백 명의 군중이 함안읍 봉성동(鳳城洞)에 모이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눠 주고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2시 3천여 명으로 늘어난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자, 놀란 마산경찰서 경찰들과 일본 경찰들이 무력으로

  • 강인 / 姜人 [역사/근대사]

    1900-1992. 독립운동가. 이명은 팔(八)·양검(楊儉). 경상남도 밀양 출신. 김원봉(金元鳳)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10월 중국군 간부 양성학교인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4기 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뒤 중국군 장교

  • 강인 / 姜寅 [역사/근대사]

    1869-1932년. 독립운동가. 호는 백서(白棲). 경상북도 안동 출신. 한학자 영숙(永淑)의 아들이다. 1894년 강원도관찰부의 주사로 등용되어서 근무하다가 1899년에 사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상경하여 동지들을 규합, 동우회(同友會)를 결

  • 강한 / 姜漢 [역사/근대사]

    1921-1944.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담양 출신. 학생비밀결사인 무등회(無等會)를 조직,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옥사한 애국지사이다. 1938년 광주서중학교 3학년 재학중 학우 주만우(朱萬尤)·유몽룡(劉夢龍) 등과 함께 서중독서회(西中讀書會)를 조직하여 배일운동에 참가

  • 고경 / 高景 [역사/근대사]

    힘을 기울였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해서 젊은 유림 12명이 ‘집의계(集義契)’라는 의병활동 모임을 가졌다. 집의계에서는 조선의 치를 씻겠다는 뜻으로 현무암에 ‘조설대(朝雪臺)’라는 글씨를 새겼는데, 유림 12명 가운데에는 스승이었던 이흥호도

  • 고득 / 高得 [역사/근대사]

    미상-1920. 본관은 제주. 3·1 운동 후 만주(滿洲)로 망명하여 독립단(獨立團)에 가입하여 경호부장(警護部長)이 되었다. 1920년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제2영(營) 제1소대장(小隊長)이 되어 입국, 의주군 비현면 조시목(趙時穆)의 집을 근거지로 거사하다가

  • 선 / 高 [역사/근대사]

    등의 판매업에 종사하였다. 어머니는 오승은(吳承摁)의 딸 오영원(吳永元)으로 고석조의 후처이다. 대정군 김종하(金鍾河)가 1908년에 세운 한일사립학교(私立漢一學校: 1911년 대정공립보통학교로 개칭)를 졸업하였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 이듬해 신성여학교(晨

  • 서 / 具 [역사/근대사]

    卞相泰) 등이 주축이 된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한 후, 일본 경찰들의 검거망을 벗어나 피신해 있었다. 이때 그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김동(金東)·김영종(金永鍾)·변상섭(卞相攝)·변상술(卞相述)·변우범(卞又範)·황태익(黃泰益) 등의 향리 청년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계

  • 김갑 / 金甲 [역사/근대사]

    하였다. 충청도 의원에 피선되어 항일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에는 프랑스를 경유하여 독일 베를린의 뷔이즈버그 대학에서 유학 중 백림고려학우회(伯林高麗學友會)라는 학생 단체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에는 한영학교(韓英學校)에서 영어와 학을 가르쳤고, 배재학교(培

  • 김남 / 金南 [역사/근대사]

    1899(광무 3)-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호는 학산(鶴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견지동(堅志洞)이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

1 2 3 4 5 6 7 8 9 10 끝
페이지 / 84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