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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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 金九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0∼?). 증광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바로 홍문관교리에 임명된 후 한성부판윤에 이어서 형조판서·공조판서·궁내부특진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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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원 / 金國元 [역사/근대사]
1890-1937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덕(性德), 호는 송암(松庵)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순천(順天) 승주군(昇州郡) 별량면(別良面)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 막하에서 활약한 김대인(金大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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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동 / 金貴東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마산(馬山)이다. 1924년 10월 마산노동동우회 집행위원을 맡아서, 12월 마산기자단 결성 때 조선일보 마산지국 기자로서 참가하였다. 1925년 1월 마산독서회 창립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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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 金奎植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81∼1950). 미국에서 유학하고 고국에 돌아와 활발한 교육·종교활동을 펼쳤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남한단독정부수립안을 거절하고 김구와 연합하여 남북협상을 원칙으로 한 통일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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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 / 金圭鎭 [예술·체육/서예]
1868-1933년. 서화가.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무기옹(無己翁) 등 많은 별호를 썼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의 농가에서 태어나 외숙인 이희수(李喜秀)로부터 서화의 기초와 한문을 공부하다가, 18세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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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 金奎哲 [역사/근대사]
1881-1929.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규철(奎喆). 호는 비장(飛將). 충청북도 단양 출신. 1907년 군대해산 뒤 단양·죽령·청풍·제천·영주·예천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죽령지역에서 4백여명을 인솔하고 다섯 차례나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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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성 / 金克成 [종교·철학/유학]
1474(성종 5)∼1540(중종 35). 조선 중기의 문신. 김남호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중로, 아버지는 진사 김맹권, 어머니는 전삼달의 딸이다. 1498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병조정랑, 장악원정, 서천군수, 장례원판결사, 병조참의, 대사헌, 평안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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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수 / 金極洙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영동(永同)이다. 동생으로 사회주의운동가 김두수(金斗洙)와 항일운동 공훈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2006년에 애족장에 추서된 김태수(金台洙)가 있다. 1921년 9월 영동청년회 학예부장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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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일 / 金克一 [역사/조선시대사]
1522년(중종 17)∼1585년(선조 18). 문신·학자.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峰). 본관은 의성이다. 1546년(명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교서관정자에 임명되었다. 이후 승문원정자·저작·박사·승정원주서·형조좌랑·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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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행 / 金謹行 [종교·철학/유학]
1712(숙종 38)∼?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성균관 진사 시서, 어머니는 은진송씨로 비안현감 이석의 딸이다. 강규환의 문인이다. 세자익위사 세마, 사어, 김포군수, 인천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용재문집』15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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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 金起林 [문학/현대문학]
1908-미상. 시인·문학평론가·영문학자. 호는 편석촌(片石村). 함경북도 성진 출생. 니혼대학(日本大學) 문학예술과를 거쳐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경성중학교(鏡城中學校)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으며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내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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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 金箕範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기독교인(1868-1920). 1890년에 기독교에 입교, 1893년부터 전도사가 되어 제물포지역에서 8년간 전도사업에 종사하였다. 1901년 서울 상동교회에서 김창식과 함께 북감리교회의 감독 무어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뒤 황해도 연안지방에서 순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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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보 / 金基報 [종교·철학/유학]
1531년(중종 26)∼1588년(선조 21).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증조는 김영수, 조부는 승지 김영, 처부는 이문량이다. 금계 황준량은 동서이다. 죽우당 성수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향시에 합격하여 언양‧거창‧회인 등지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문집으로 18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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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서강학당 / 金麒瑞講學堂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있는 조선전기 기묘사화에 연루된 김기서 관련 서당.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원래 이 자리에는 전불사(典佛寺)의 불당이 있었다. 1548년(명종 3) 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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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 金基聲 [역사/근대사]
190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성(金啓成)·김선경(金先敬)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시(安城市)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시의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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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金綺秀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32∼?). 187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에조참의·홍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신사로서 일본에 건너가 본 군사·교육시설 등을 조정에 보고하여 근대문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1876년 일본 수신사로 파견되었다. 저서로는《일동기유》와《수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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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金基洙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한국사상 처음으로 복싱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체육인. 함경북도 북청 출생. 6·25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12세였던 나이로 전라남도 여수로 피난하여 여항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여수권투체육관 방호남(方虎男) 사범 밑에서 운동을 시작하였다. 선천적으로 권투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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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 金基容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고향에 거주하면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독립군(獨立軍)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1922년 1월 독립군을 위한 첩보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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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 金基用 [역사/근대사]
1883(고종 20)-1938. 독립운동가. 일명 명숙(明淑)·사보(士寶). 경상북도 영천 출신. 1928년 1월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진 주동자 장진홍(張鎭弘)과 만나 영천경찰서 및 영천의 부호 이인석(李仁錫)에게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투척연습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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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주 / 金基周 [역사/근대사]
1923-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40년대에 일본 군대에 강제로 징집된 후 중국 하남성 형문현(荊門縣)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치되었으나, 조국을 위해 탈출을 감행하였다. 탈출 후 중국 중앙군으로 들어가 중앙군 유격대에 배속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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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 / 金基鎭 [언론·출판/언론·방송]
1903-1985. 일제 강점기 문인. 1922년부터 토월회 창립 동인으로 연극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1923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등단한 뒤 문학동인지 《백조》에 가담하였다. 1924년부터 매일신보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적 문학 활동을 표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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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 金基纘 [종교·철학/유학]
1809(순조9)∼?. 조선 후기의 문신. 김도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성구이고, 아버지는 김주묵이며, 어머니는 이제현의 딸이다. 김용묵에게 입양되었다. 1835년(헌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2년에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활동하고 돌아온 후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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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 金基昶 [예술·체육/회화]
1913년 2월 18일∼2001년 1월 23일. 일제 강점기 예술가. 호는 운포(雲圃)·운보(雲甫). 본적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출신지는 경성이다. 경성 승동보통학교를 졸업, 화가 김은호에게 미술교육을 받았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 1942년 9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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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추 / 金基秋 [종교·철학/불교]
1908-1985. 독립운동가·불교지도자. 본관은 김해. 호는 백봉(白峯). 부산 출생. 10세 때까지 제주도에서 자라다가 11세 때 부산으로 이주, 그곳에서 영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제이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조선사를 교과목에 삽입시킬 것과 일본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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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승급문서 / 金琦泰陞級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7일. 6품 승훈랑 김기태(金琦泰)를 정3품 통정대부로 가자하는 임명장. 수취인 김기태에 대한 인물정보는 상세하지 않다. 다만 순종황제가 일본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기 이전 많은 한국의 관료를 가자, 혹은 승급하였는데 이때 승급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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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하 / 金器夏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01(숙종 27). 조선 후기의 문신. 성리학자 김인후 4세손으로, 아버지는 김형우, 어머니는 허열의 딸이다. 숙종 때의 명신이었던 김수항의 여러 자제들과 깊이 사귀었는데, 벼슬길에는 뜻이 없어 과거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학행으로 추천받아 후릉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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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한 / 金起漢 [역사/근대사]
188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직재(直齋).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만주로 망명한 뒤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국내에 잠입하여 중앙본부를 결성하고 군자금을 확보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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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 / 金基憲 [역사/근대사]
189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고주(金高洲)이다. 본적은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남촌동(南村洞) 소재 남감리교회 담임목사 정춘수(鄭春洙)는 3월 1일 만세운동을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보 확인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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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형 / 金基瀅 [역사/근대사]
1887-194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해악(海岳).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육영사업을 벌이다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군자금을 모으는데 노력하였다. 병인의용대·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고 한국광복군 창립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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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휴 / 金起休 [역사/근대사]
1895-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西歸浦市) 성산읍(城山邑) 신풍리(新豐里)에서 출생하여 고성리(古城里)로 이주한 뒤 농사를 지었다. 평소 민족주의(民族主義) 노선인 성산청년회가 주관한 성산면 체육대회의 씨름경기 중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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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통좌리공신교서 / 金吉通佐理功臣敎書 [역사/조선시대사]
1472년 문신 김길통을 좌리공신 4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축. 보물 제716호. 녹권은 왕명을 받들어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하는 것이므로 이 문서와 같이 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는 교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서는 담황색의 생견(生絹: 生絲로 짠 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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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두 / 金洛斗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하여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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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서 / 金洛西 [역사/근대사]
1890-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滿洲) 일대에서도 항일투쟁을 위해 김청봉·김현규·이범윤·진학신·최우익 등을 중심으로 한 의군단(義軍團)이 조직되었다. 이때 만주에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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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선 / 金樂先 [역사/근대사]
1881(고종 18)-1925.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낙진(洛振). 전라남도 부안 출신. 1909년 의병장 이용서(李用西)의 부대에 가담하여 총기 15정 등으로 무장한 의병 30여명과 함께 고부·부안·태인 등지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같은해 3월 일본군 기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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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용 / 金洛用 [역사/근대사]
1860-191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맹암(孟巖). 천도교에 입교한 뒤 각지를 돌아다니며 교리를 전파하였다. 초산(楚山)에서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신의주감옥에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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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일 김천찰방 해유문서 / 金洛一 金泉察訪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낙일 김천찰방 해유문서. 1806년(순조 6) 3월 19일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3월 20일 경상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이관, 동년 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김낙일(金洛一)은 1804년(순조 4) 2월 13일에 본직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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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행 / 金樂行 [종교·철학/유학]
1708(숙종 34)∼1766(영조 42)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교리 김성탁. 어머니는 무안박씨로 통덕랑 진상의 딸이다. 이재의 문인이었다. 아버지가 이재를 변호하다 유배되자 아버지를 따라가서 봉양하였다. 저서로는《계몽질의》·《구사당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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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현 / 金洛鉉 [역사/근대사]
1902(광무 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우스리스크 얀치헤 크라브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니꼴라예프스크이다. 1906년(광무 10) 부모를 따라 아무르 강변의 니꼴라예프스크로 거주지를 옮겨 간 후 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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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상 / 金鸞祥 [종교·철학/유학]
1507(중종 2)∼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 좌참찬 김점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영우, 아버지는 김현, 어머니는 전윤서의 딸이다. 1528년이황과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7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지냈다.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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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섭 / 金蘭燮 [역사/근대사]
1895(고종 32)-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황해도 은률(殷栗). 1920년 중국 간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친일파와 일본 고위관리 암살단인 이명서(李明瑞) 일행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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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 金南洙 [역사/근대사]
1899(광무 3)-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호는 학산(鶴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견지동(堅志洞)이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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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 金南一 [종교·철학/유학]
1635년(인조 13)∼1696년(숙종 22). 조선 후기 관료. 김담의 7세손, 부친 김단의 3남 중 장남이다. 외조부는 권극해, 동생은 김해일·김태일이다. 부인은 김상유의 딸이다. 외조부 권극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77년(숙종 3) 현릉참봉을 시작으로 내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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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 金南重 [종교·철학/유학]
1596(선조 29)∼1663(현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김만균의 증손, 할아버지는 좌의정 김명원,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김수렴, 어머니는 성순의 딸이다. 1618년(광해군 10)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가주서가 되고 검열, 수찬, 교리, 대사성, 대사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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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 / 金南天 [문학/현대문학]
1911년∼1953년. 소설가·문학비평가. 평안남도 성천(成川) 출생. 본명은 효식(孝植). 평양고등보통학교(平壤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동경의 호세이대학(法政大學)을 중퇴하였다. 1927년 카프(KAPF) 동경지부가 발행한 동인지 《제3전선 第三戰線》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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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범 / 金迺範 [종교·철학/개신교]
1869(고종 6)-미상. 장로교 목사·독립운동가. 평안남도 평원(平原) 출생. 1907년 석암교회(石巖敎會)를 설립하는 등 강성엽(康成燁)과 더불어 평원군일대의 개척교인이었으며 1913년에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목사안수를 받은 뒤 만주 간도지역의 전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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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 金寧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옛 지명. 김수로왕이 건국한 가야의 땅으로 532년(법흥왕 19) 신라의 땅이 되면서 가야군(伽倻郡, 또는 金官郡)으로 하였다. 680년(문무왕 20) 금관소경(金官小京)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에 예속시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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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굴 / 金寧窟 [지리/자연지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용암동굴. 김녕굴과 만장굴은 하나의 화산 동굴계에 속하고 있었으나 후에 동굴 천장이 함몰되어 두 개의 동굴로 구분된 것으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해당한다. 동굴들의 총 연장은 15.798m이고, 김녕굴의 총길이는 70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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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수 / 金魯洙 [종교·철학/유학]
1878년(고종 15)∼1956년. 일제강점기 한학자·역사학자. 하서 김인후의 후손, 부친은 김갑중이다. 3살 때에 고창군 고수로 이사, 만년에는 부안으로 옮겨 살았다. 연재 송병선의 문인, 경성제국대학도서관에서 한국사를 연구하였는데 성리학이 주전공이었다. 저서로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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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응 / 金魯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7∼1824). 영의정 김흥경 증손, 할아버지는 김한정, 아버지는 문화현령 김태주, 어머니는 이명경의 딸이다. 1786년(정조 10)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관직은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07년에는 동지사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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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녹주 / 金綠珠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판소리 명창(1896-1923). 김정문(金正文)에게 판소리를 배웠으며 여류판소리명창 중 으뜸으로 꼽혔으나 요절하였다. 축음기 음반에 〈화초사거리〉를 취입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