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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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씨세효록 / 吉氏世孝錄 [교육/교육]
조선후기 영조 때의 효자 길창거의 행장·부소암기·유계 등을 수록한 언행록. 교훈서. 2권 1책. 목활자본. 후손 병주(秉周)와 계도(繼道)가 편집하여 1860년(철종 11)에 간행, 배포하였다. 책의 앞부분에는 1860년에 이용은(李容殷)이 쓴 서문이 있고, 끝에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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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 / 吉安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고려 충혜왕 때 현으로 승격되고 안동부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안동군에 포함되어 길안면이 되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어 이 시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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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천 / 吉安川 [지리/자연지리]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방각산(方覺山)에서 발원하여 반변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길이 72.5㎞, 유역면적 478㎢. 발원지에서 북류하다가, 안덕면 명당리에서 보현천을 합하고, 신성리에 이르러 다시 눌인천(訥仁川)을 합하며, 화부산(花釜山, 626m)과 연점산(鉛店山,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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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유궁 / 吉帷宮 [정치·법제]
재궁을 안장한 후 우주목에 제주하기 위해 임시로 지은 장막. 영장전이나 정자각의 서쪽에 임시로 만든다. 길유궁은 대나무를 묶어 만든 기둥에 동ㆍ서ㆍ북삼면으로 휘장을 늘어뜨리고, 남쪽으로는 유문을 내고, 그 아래에 보계를 만든다. 휘장과 유문의 둘레에 청색의 선을 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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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장 / 吉儀仗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시대의 평상적인 왕실 의장. 국왕이 참석하는 각종 조회·연회 등의 궁정 행사와 제향·능행·열병식 등의 외부 행차 때 위의를 과시하기 위하여 동원된 각종 의장 물품과 그 편성 및 운용제도를 말한다. 보통 궁정내의 행사에서는 의장이라고 하고 외부 행차시에는 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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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장 / 吉仗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 시대 길례의 의장 제도. 의장은 길의장과 흉의장으로 구분되었다. 흉례 때만 사용되는 삽(翣)·우보(羽葆)·방상씨(方相氏) 등을 제외한 모든 의장은 길장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의 길장은 대략 150여 개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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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 / 吉再 [종교·철학/유학]
1353(공민왕 2)-1419(세종 1). 여말선초의 성리학자. 이색, 정몽주와 함께 삼은이라 불렸다. 1386년 과거급제 하였다. 그의 학풍은 정주학에 바탕을 두고 충효를 위주로 하였다. 이단배척과 실천을 강조하였다. 학통은 문인 김숙자에게 전수되고 김종직, 김굉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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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제 / 吉祭 [사회/가족]
상례(喪禮)의 한 절차로, 담제(禫祭 : 대상 다음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를 지낸 다음달에 지내는 제사. 담제를 지낸 다음 상주가 담제 날짜를 정할 때와 같이 날짜를 정하는데, 한 달 뒤에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의 날을 정해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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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군 / 吉州郡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동쪽은 명천군과 동해, 서쪽은 함경남도 단천군·혜산군,남쪽은 학성군, 북쪽은 무산군·경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56′∼129°28′, 북위 40°45′∼41°17′에 위치하며, 면적 1,376㎢, 인구 10만 8317명(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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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동헌 / 吉州東軒 [예술·체육/건축]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관청. 정면 6칸, 측면 3칸의 합각지붕건물. 1655년(효종 6)에 처음 짓고 1882년(고종 19)에 중건하였다.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세웠으며 천장은 소란반자(小欄盤子)이고 연꽃무늬로 조각한 화반(花盤)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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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명천지괴 / 吉州明川地塊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중남부의 길주에서 명천을 거쳐 경성에 이르는 좁고 긴 지구대(地溝帶)로 되어 있는 지괴. 이 지괴의 북쪽에는 두만 지괴(豆滿地塊)가 위치하고, 서쪽에는 평안북도 개마지괴(平安北道蓋馬地塊)가 넓게 분포한다. 이 지괴의 동쪽 산지는 칠보산(七寶山, 906m)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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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명천지구대 / 吉州明川地溝帶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길주∼명천 간에 형성된 지구대. 길주(吉州) 남대천의 하구에서 어랑천(漁郎川) 하구에 이르는 길이 약 80㎞, 평균 너비 약 20㎞의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의 저지대이다. 이 지구대의 동남쪽에는 편상 화강암(片狀花崗岩)을 기반암으로 한 칠보산 지괴(七寶山地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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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목읍지 / 吉州牧邑誌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목(현 길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咸鏡北道吉州郡邑誌(함경북도길주군읍지)’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진관(鎭管)·방리(坊里)·도로·건치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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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민란 / 吉州民亂 [역사/근대사]
1888년 여름 함경도 길주에서 일어난 민란. 목민(牧民)이 관청에 원통하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다는 사실에서, 당시 민란의 일반적인 원인인 삼정 등을 통한 이서배(吏胥輩)의 농간 때문 민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민란으로 민란에 대하여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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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온천 / 吉州溫泉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군 장백면 십일동에 있는 온천. 길주에서 백두산선(白頭山線)으로 갈아타고 다음 역인 봉암역(鳳巖驛)에서 내려 서쪽으로 6㎞ 가량 지나면 온천이 있는 십일동의 온수평(溫水坪)에 닿는다. 해방전 일본인들에 의하여 개발되었으며 현재는 요양소를 개설하고 있다.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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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평야 / 吉州坪野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웅평면·덕산면·장백면에 걸쳐 있는 평야. 길주 평야(吉州坪野)는 동서 약13㎞, 남북 약 25㎞, 면적 185㎢이다. 이 평야는 만탑산(萬塔山, 2,205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리는 산릉을 따라 누에머리산[蠶頭山, 552m]·마유산(馬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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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향교 / 吉州鄕校 [교육/교육]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에 있는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인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서재·경적고(經籍庫)·극복문(克復門)·숭문루(崇門樓)·전사청(典祀廳)·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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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섭 / 吉鎭燮 [예술·체육/회화]
1907-미상. 양화가. 평양 출생.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길선주(吉善宙) 목사의 아들이다. 1932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민족사회의 서화협회전람회에 참가하였고, 1934년 이종우(李鍾禹)·장발(張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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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포집 / 吉浦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최승모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2년에 간행한 시문집. 1962년 최경근(崔庚根)·최원부(崔元溥)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저자의 사진과 목록이 있다. 2권 1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은 「길포시집(吉浦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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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과학/식물]
보라털과에 속하는 해조(海藻). 한자어로는 ‘해의(海衣)’·‘자채(紫菜)’라고 한다. 요즈음에는 ‘해태(海苔)’로 널리 쓰이고 있으나 이것은 일본식 표기로, 우리 나라에서의 ‘파래’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김에 관한 기록으로는 ≪경상도지리지≫에 토산품으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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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각 / 金覺 [종교·철학/유학]
1536(중종 31)∼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진사 김언건, 어머니는 참봉 조이의 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해 여름에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을 다수 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감사 김수가 그의 전공을 행재에 보고하여 사온서주부를 제수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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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간 / 金榦 [종교·철학/유학]
1646(인조 24)∼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문신. 참봉 김수에게 입양되었다. 박세채·송시열의 문인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1694년(숙종 20) 전설사별검·청양현감을 거쳐 지평·집의 등을 지냈고, 1720년 호조참의, 1726년(영조 2) 찬선·대사헌·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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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간 / 金侃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김필신, 어머니는 예안이씨로 통덕랑 이천표의 딸이다. 이유장의 문인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수익의 천거로 사재주부에 임명되었다가 예조좌랑·예조정랑이 되었다. 17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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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 / 金勘 [종교·철학/유학]
1466(세조 12)∼1509(중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문정공 자지의 증손,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수, 아버지는 안동대도호부사 원신, 어머니는 강석덕의 딸이다. 1489년(성종 20) 진사가 되었고, 이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임용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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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불 / 金甘佛 [과학/과학기술]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기술자. 연산군 때에 함경도 단천에서 김검동(金儉同)과 함께 납광석을 사용하여 은을 제련, 분리하는 방법을 발명하였다. 조선시대의 독특한 방법인 이 단천연은법(端川鍊銀法)은 중국이나 일본의 제련법과 다른 점이 많으나 회취법(灰吹法)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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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 / 金甲 [역사/근대사]
1888-미상. 독립운동가. 국내에서는 진원(晋源)이라고 불렀고, 중국망명 후 갑(甲)이라 하였다. 부산 출신. 부산 동명학교(東明學校: 동래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부기학교를 다니다가 3·1운동을 맞아 함양·산청 등지의 항일투쟁 연락책임을 띠고 활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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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 金甲洙 [역사/근대사]
1894-193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출신이다. 부농(富農)이었던 김영성(金永聲)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이후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에서 위원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귀국하여 1927년 전라북도 완주군(完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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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진 / 金甲辰 [역사/근대사]
미상-193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함경북도 성진(城津)이다. 신간회(新幹會)와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신간회와 성진청년동맹이 해체된 후, 두 조직을 기반으로 한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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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사와 티교수 / 金講師─敎授 [문학/현대문학]
유진오(兪鎭午)가 지은 단편소설. 1935년 『신동아(新東亞)』 1월호에 발표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나약한 지식인상을 다룬 드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자가 경성제국대학 예과 강사시절의 체험을 근거로 하여, 지식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당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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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한 / 金江漢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은사(1719∼1779). 김성탁이 호남의 광양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곳에 따라가서《대학》·《중용》·《서명》·《주자행장》 등을 공부하였다. 김성탁의 문하에 들어간 지 9년 만에 스승이 죽자, 그 아들 구사당 김낙행의 문하에서 배웠다. 평생 동안 성리를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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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국 / 金蓋國 [종교·철학/유학]
1548(명종 3)∼1603(선조 36). 조선 중기의 문신. 세형의 증손, 할아버지는 복흥, 아버지는 몽득, 어머니는 이극온의 딸이다. 1573년에 사마시에 합격, 생원이 되고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뒤에 집의가 추증되었고, 1643년(인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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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 / 金開南 [종교·철학]
1853년(철종 4)∼1895년(고종 32). 동학의 태인대접주. 1891년 두령, 즉 접주가 되었다. 이해 처음으로 이곳에 순회 온 동학의 제2세교조 최시형을 만나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1894년에 때마침 전봉준이 선봉에 나서서 고부민란을 일으키자, 손화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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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사집 / 金居士集 [문학/한문학]
고려 후기의 문인 김극기(金克己)의 문집. 135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었으나 일실(逸失)되었다. 이인로(李仁老)가 쓴 서문만이 『동문선』 권83에 전한다. 책의 이름은 『동문선』을 비롯한 『역옹패설 櫟翁稗說』·『용재총화 慵齋叢話』 등에서는 ‘김거사집’으로 지칭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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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웅 / 金巨雄 [예술·체육/서예]
고려전기 거돈사지의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문」을 쓴 서예가. 1025년(현종 16)에 건립되었고 현재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지에 있는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居頓寺圓空國師勝妙塔碑)」(보물 제78호)를 썼다. 그밖에 그의 가계나 행적을 전하는 기록이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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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 / 金健 [예술·체육/연극]
1912-미상. 극작가. 본명 창기(昌基). 서울 출생. 개성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도일, 동경(東京)에서 연극수업을 했다. 귀국 후인 1930년대 중반부터 주로 상업극단을 상대로 희곡을 쓰기 시작하여, 〈섬색시〉(1935.7.)를 시발로 〈거리의 등불〉·〈쌍동이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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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배특증문서 / 金健培特贈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5일. 학생 고 김건배(金健培)를 정3품 통훈대부 규장각직각에 특증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4일 전의 문서이다. 김건배는 벼슬을 하지 않고 죽은 사람으로 인물정보가 상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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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 / 金健壽 [종교·철학/유학]
1804년(순조 4)∼1866년(고종 3). 조선 후기 성리학자. 학봉 김성일의 후손, 부친은 김백찬이다. 부인은 전주유씨이다.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37년(헌종 3) 식년시 진사 3등 67위로 합격하였다. 1847년(헌종 13)에 스승 유치명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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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남 / 金景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거문고 삼절(三絶)의 한 사람. 한말 거문고의 대가인 김경남·함재운(咸在韻)·이병문(李炳文)을 거문고 삼절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김경남은 가곡반주, 함재운은 〈여민락 與民樂〉, 이병문은 〈영산회상 靈山會相〉에 뛰어났다. 그의 유보(遺譜)인 《금보 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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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복시장 / 金慶福諡狀 [정치·법제]
조선 중기의 무신 김경복(金慶福)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910년(융희 4) 김춘희(金春熙)가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에서는 김경복의 충절을 송나라의 충신 악비에 견주어 찬양하였다. 1910년 8월 김경복에게 '장의(壯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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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서 / 金景瑞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4(인조 2). 조선 중기의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 1588년(선조 21) 감찰이 되었으나 집안이 미천한 탓으로 파직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기용되었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정주목사,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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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 / 金慶先 [역사/근대사]
1862-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 서부(西部;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이다. 1907년(융희 1)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경기도 포천(抱川)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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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 金景壽 [종교·철학/유학]
1543(중종 38)∼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응정, 어머니는 조숙견의 딸이다. 유년 시절에 큰아버지인 응두에게『효경』·『소학』 등을 배운 뒤 족형인 김인후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기효간·정운용·변이중 등과 학문을 강론하였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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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식 / 金景軾 [역사/근대사]
1870-1940.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항일운동가.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증산교가 흩어진 이후 그 신도였던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세운 증산교 계열의 보천교(普天敎)에 입교(入敎)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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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여전 / 金慶餘傳 [문학/고전산문]
1655년(효종 6) 김진수(金震粹)가 지은 김경여(金慶餘)의 전기. 작자가 한문으로 짓고, 그의 할머니 송씨 부인이 1658년에 국역하였다. 한문본은 『가장략(家狀略)』이라 하며, 규장각·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는 『송애속집(松崖續集)』 권2에 실려 있는 목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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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유 / 金景游 [종교·철학/유학]
1698년(숙종 24)∼1773년(영조 49).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1762년(영조 38) 어영군기수보로 첫 출사한 이래 첨지중추부사 겸 순장, 1765년 용호영군기수보·동지중추부사·오위장 등을 역임하였다. 1772년 조관으로서 70세에 이르러 특별히 가선대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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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천 / 金景天 [역사/근대사]
1888-193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이다. 1913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리에 김사횡(金仕宖)이 설립한 중화학원(中和學院)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항일의식을 배양시켰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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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 金敬泰 [역사/근대사]
187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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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 金慶熙 [역사/근대사]
1896-195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장환(金章煥)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하다가 쫓기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에 제주에 도착하였다. 그는 백부 김시우(金時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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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 / 金繼 [종교·철학/유학]
1527년(중종 22)∼1565년(명종 20). 조선 전기의 문신. 부친은 대호군, 족제 우후 김숭의의 아들이었던 그를 데려다 후사로 삼았다. 나이가 많도록 학문을 모르다가 초당 허엽의 가르침을 받아 분발하였다. 을사사화에 징계된 여러 노선생들이 모여서 강의하고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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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광 / 金啓光 [종교·철학/유학]
1621(광해군 13)∼1675(숙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극의 증손, 할아버지는 좌찬성 희맹, 아버지는 학, 어머니는 전주유씨로 우잠의 딸이다. 어려서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웠고, 그 뒤 김상헌·김응조에게도 수학하였다.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