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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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수 / 朴師洙 [종교·철학/유학]
1686(숙종 12)∼1739(영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세기 증손, 할아버지는 태정, 아버지는 필영, 어머니는 안진의 딸이다. 대사헌 필명에게 입양되었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727년(영조 3) 승지가 되었으며, 그 이듬해 대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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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익 / 朴師益 [종교·철학/유학]
1675(숙종 1)∼1736(영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 동량 후손, 할아버지는 태두, 아버지는 참봉 필하, 어머니는 윤반의 딸이다. 1712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형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벼슬하던 시기는 격변기여서 평탄한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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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해 / 朴師海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1∼1778). 결성의 안핵어사가 되어 홍양해의 산송사건을 해결하여 이름을 떨쳤다.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과단성이 없고 무사안일하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복직되었다. 정치적 수단도 뛰어나서 내외의 요직을 두루 지냈고, 외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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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 / 朴祥 [종교·철학/유학]
1474(성종 5)∼1530(중종 25). 조선 중기의 문신. 광리의 증손, 할아버지는 소, 아버지는 지흥, 어머니는 서종하의 딸이다. 1501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교서관정자, 승문원교검, 전라도사, 사간원헌납, 담양부사, 순천부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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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검 / 朴尙儉 [역사/조선시대사]
1702(숙종 28)∼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환관. 심익창에게 수학하였다. 김일경과 원휘가 차례로 영변부사로 부임해 심익창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이들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김일경으로부터 윤취상·원휘·심익창 등을 통해 받은 은화 수천 냥을 이용해 환관과 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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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시장 / 朴尙恩諡狀 [정치·법제]
조선 초기의 문신 박상은(朴尙恩)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910년(융희 4) 8월 민종묵(閔種默)이 지어서 봉상사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사후 약 490년이 지난 1910년에 후손 박영배(朴英培)가 병조판서 홍문관대제학을 역임한 민종묵에게 부탁하여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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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증시문서 / 朴尙恩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고예조판서 박상은(朴尙恩)에게 '무숙(武肅)'이란 시호를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절충어모왈무 집심결단왈숙'이라 적어 무숙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6일《순종실록》의 기사에 의하면 순종은 57명에게 시호를 주고 3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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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 朴尙玄 [종교·철학/유학]
1629(인조 7)∼1693(숙종 19). 조선 중기의 학자. 수림의 아들, 어머니는 이부민의 딸이다. 경전에 널리 통하였으며 특히 『대학』에 밝았다. 그 뒤『태극도설』·『통서』·『황극경세』·『역학계몽』등의 성리서를 깊이 연구하여『음양소장도』를 저술하였다. 저서로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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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 / 朴瑞 [종교·철학/유학]
1707년(숙종 33)∼1765년(영조 41). 조선 중기의 학자. 1746년(영조 22)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는 경전이나 성리서 및 예학은 물론, 선가·불가·복서·의약·천문·지리·재정·군사 등에까지도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주요저술로는〈대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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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고개 / 박석고개 [지리/자연지리]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과 불광동·구파동 사이에 있는 고개. 동쪽에 북한산이 높이 솟아 있는 데 비해 서쪽은 낮은 구릉성 산지가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다. 박석고개를 분수령으로 남쪽은 연신내(일명 延曙川)와 불광천이 낮은 저지를 만들고, 북쪽으로는 창릉천(昌陵川)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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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기 / 朴錫基 [예술·체육/국악]
1899년∼1952년. 거문고산조의 명인. 전라남도 옥과 출신. 일본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예술에 뜻을 두고 거문고산조의 창시자인 백낙준(白樂俊)에게서 거문고풍류와 거문고산조를 배워 명인(名人)이 되었다. 향리에 초당을 짓고 명인·명창들을 초빙하여 사범으로 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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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 / 朴璿 [종교·철학/유학]
1668(현종 9)∼1707(숙종 33).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순, 아버지는 성동, 어머니는 권주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지역의 현감과 병조정랑·사헌부장령 등을 지냈다. 관직은 동몽교관을 지냈다. 저서로는『도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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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장 / 朴善長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616(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전, 어머니는 웅천주씨이다. 1605년(선조 38) 51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별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이 되었고 성리학에 힘썼다. 1608년 예안현감, 1614년(광해군 6) 경상도사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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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석 / 朴星錫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09(숙종 35).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동주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 1680년에 비변사의 낭관에 보직되고, 1682년 창성방어사를 거쳐, 뒤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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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양 / 朴性陽 [종교·철학/유학]
1809년(순조 9)∼1890년(고종 27). 조선 말기의 문신. 제일 아들, 어머니는 이운원의 딸이다. 이지수의 문인이다. 송근수의 천거로 1880년(고종 17)에 선공감감역에 임명되고, 이어 사헌부지평·호조참의·동부승지·호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저편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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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양증시문서 / 朴性陽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증규장각제학 박성양(朴性陽)에게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도덕박문왈문 숙야경계왈경'이라 적어 문경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5일 정2품 규장각제학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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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양특증문서 / 朴性陽特贈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5일. 대사헌을 지낸 고 박성양(朴性陽)을 정2품 자헌대부, 규장각제학에 특증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4일 전의 문서이다.《순종실록》1910년 8월 25일 기사에는 기사에는 박성양을 정2품 시호를 내린다는 순종의 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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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옥 / 朴成玉 [종교·철학/유학]
1690(숙종 16)∼1743(영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세환, 아버지는 희민, 어머니는 권태행의 딸이다. 1719년(숙종 45) 사마시에 합격,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 무신란 때는 향인의 의병장이 되어 정부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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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형 / 朴成珩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71∼?). 1727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사변가주서·부사정·전적·직강·고부군수·예조정랑·창령현감 등의 관직에 올랐다. 치적을 쌓기도 했지만, 사리(私利)를 축적한 이유로 의금부의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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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 / 朴世堂 [종교·철학/유학]
1629-1703. 조선 숙종때의 실학자. 1703년 <사변록>을 엮었다. 그 내용이 전통적인 정주의 해석과 다르다고 간주되어 사문난적으로 몰려 유배되던 도중에 죽었다. 그는 실리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방법을 중시했다. 당시 금기시되던 <노자>와 <장자>에 대해 주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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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모 / 朴世模 [종교·철학/유학]
1610(광해군 2)∼1667(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응복 증손, 할아버지는 동열, 아버지는 호, 어머니는 신흠의 딸이다. 1654년(효종 5) 춘당대정시에 갑과로 급제하여 전적·병조좌랑·정언·직강·지평·사예·부평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서인계열로 홍명하·박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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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무 / 朴世茂 [종교·철학/유학]
1487(성종 18)∼1564(명종 19).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신동, 아버지는 중검, 어머니는 이관식의 딸이다. 153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내자시정, 내섬시정, 군자감정을 역임하였다.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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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성 / 朴世城 [종교·철학/유학]
1621(광해군 13)∼1671(현종 12). 조선 후기의 문신. 응천 증손, 할아버지는 동민, 아버지는 환, 어머니는 임선의 딸이다. 1651년(효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을 거쳐 홍문관정자·예문관검열·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남양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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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채 / 朴世采 [종교·철학/유학]
1631-1695.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 김상헌의 문하에서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서인으로 있다가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예학에 밝았으며 붕당의 폐해를 지적하여 황극탕평설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범학전편> <남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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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통설화 / [문학/구비문학]
고려 중기의 문신 박세통에 관한 설화. 동물을 구해주고 보은을 받았다는 동물담이 박세통과 결부된 인물전설이다. 문헌설화는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 『영해군읍지』와 『교남지(嶠南誌)』에 실려 있다. 구전설화는 박세통의 출생지인 경상북도 영해에서 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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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화 / 朴世和 [종교·철학/유학]
1834년(순조 34)∼1910년. 한말의 의병. 경상 8세손, 어머니는 우씨이다. 정통의 위정척사계열 학자로서 서학(西學)의 전파에 대하여 우려하였다. 1895년 영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는 등 개혁정치에 반대하였다. 또한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 일본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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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환 / 朴世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리·독립협회원(?∼?). 인천부관찰사를 역임했으며 1896년에 창립된 독립협회에 참가, 중견관료로서 가담했다. 1897년 독립협회가 조직의 활성화를 위하여 토론회를 구성할 때 3인위원회의 한 사람으로 지명돼 활동했다.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중심으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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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후 / 朴世煦 [종교·철학/유학]
1493(성종 24)∼1550(명종 5). 조선 중기의 문신. 안의 증손, 할아버지는 미창, 아버지는 사화, 어머니는 신복담의 딸이다. 조광조의 문인이다. 151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광양현감, 밀양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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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희 / 朴世熹 [종교·철학/유학]
1491(성종 22)∼?. 조선 중기의 문신. 안의 증손, 할아버지는 미창, 아버지는 사화, 어머니는 신복담의 딸이다. 1514년(중종 9)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이조좌랑·충청도도사·장령·홍문관응교를 역임하고, 1519년에 사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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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손경 / 朴孫慶 [종교·철학/유학]
1713년(숙종 39)∼1782년(정조 6). 부는 사헌부 지평을 지낸 만헌(晩軒) 박성옥(朴成玉)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겨 사서를 강독해서 성리학을 달통하여 당대에 사표가 되었다. 효성이 극진해서 부모 공양을 정성껏 하였고 아우 박민경도 효행이 있어 영조가 세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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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검 / 朴守儉 [종교·철학/유학]
1629(인조 7)∼1698(숙종 24). 조선 중기의 학자. 경심의 아들, 어머니는 문화유씨이다. 조석윤·송시열의 문인으로 조석윤에게서 배운 바가 커 문명을 떨쳤다. 1662년(현종 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71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학·학록·학정·전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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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서 / 朴守緖 [종교·철학/유학]
1567(명종 22)∼1627(인조 5).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눌 증손, 할아버지는 종린, 아버지는 지, 어머니는 박언상 딸이다. 숙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했고, 1597년 정유재란 때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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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춘 / 朴壽春 [종교·철학/유학]
1572(선조 5)∼1652(효종 3). 조선 중기의 학자. 동몽교관 신의 아들이다. 가학을 이어받았으며『소학』을 항상 애독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곽재우와 함께 싸웠다. 정구·장현광 등과 이기설을 토론하는 등 성리학의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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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우 / 朴淳愚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문인. 전남 영암(靈巖) 출생. 아버지는 박세갑(朴世甲)이다.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문필로 영암지방에서 이웃에 명성이 높았으나. 대과에 실패하고, 산수를 탑승하며 생애를 보냈다. 저술로는 한문 문집 『명촌유고(明村遺稿)』가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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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숭원 / 朴崇元 [종교·철학/유학]
1532(중종 27)∼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광영, 아버지는 난, 어머니는 나성령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였고 자라서는 독서를 즐겼다.1564년(명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 병조좌랑, 평안도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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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건 / 朴承健 [종교·철학/유학]
1609(광해군 1)∼1667(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충원 증손, 할아버지는 호현, 아버지는 안행, 어머니는 한양조씨이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병조좌랑, 서장관, 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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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빈 / 朴勝彬 [역사/근대사]
1880∼1943. 법률가·교육자·국어연구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중앙대학 법학과를 졸업, 돌아와서 법관으로 활약하다가 191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며, 1925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국어표기법의 통일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 데에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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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임 / 朴承任 [종교·철학/유학]
1517(중종 12)∼1586(선조 19).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형, 어머니는 김만일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40년(중종 35)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예문관·승정원·홍문관 등에서 여러 청환직을 역임하고, 정자로 사가독서하였다.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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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종 / 朴承宗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충원 증손, 할아버지는 계현, 아버지는 안세, 어머니는 황림의 딸이다. 1585년(선조 18)에 진사가 되고, 다음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89년 봉교, 이어 지제교·병조정랑을 역임하고, 부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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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 朴勝燦 [경제·산업/경제]
1926년∼1979년. 경영인. 금성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1944년 3월 청주공립중학교 졸업 1945년 4월 일본 게이오의숙 의학부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광복으로 귀국하였다. 1950년 6·25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과를 3년 수료하였다. 1967년 호남정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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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환 / 朴昇煥 [정치·법제/정치]
1869년(고종 6)∼1907년(융희 1). 순국지사. 서울 출신. 1895년 10월 일제의 명성황후시해사건의 만행이 자행되자, 통분하여 일본인에 보복하고자 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1907년 7월 일제가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양위시킬 때, 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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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몬 / 박시몬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해삼위학생음악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무용가. 러시아 해삼위(海參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했다. 러시아 원동대학(遠東大學)을 졸업했다.그는 1921년 4월 해삼위학생음악단의 일원으로 고국을 찾았다. 해삼위학생음악단은 1921년 4월 24일 원산을 통해 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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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싸움 / [생활/민속]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음력 정월 보름날 전후로 3일간 밤에 동서 양편이 겨루는 남성집단놀이이다. ‘박시놀이’ 또는 ‘박시’ 등으로도 불린다. 기원이나 발생연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년 연중행사로 거행되어 왔다. 이 놀이의 대장 격인 완력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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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원 / 朴時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4∼1842). 1798년(정조 2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간에 이르렀다. 안동김씨 세도정치 때 낙향하여, 영천에 있는 이산서원에서 강학하였다. 저서로는《일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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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경 / 朴申慶 [종교·철학/유학]
1713년(숙종 39)∼1790년(정조 14).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성집, 어머니는 김만유의 딸이다. 성리학에 전심하였다. 원법의 산출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특히 족형인 손경과 함께 저술한《주서강록간보차의》는 주서의 난해한 부분을 이해하기 쉽도록 사전적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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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문 / 朴審問 [종교·철학/유학]
1408(태종 8)∼1456(세조 2).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침, 아버지는 강생, 어머니는 윤승경의 딸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사온서직장이 되었고, 1436년(세종 18)에 친시문과에 급제하였다. 기주관으로 있다가 함길도절도사 김종서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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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 朴氏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필사본.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역사소설·군담소설·전쟁소설의 범주에 넣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박씨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걸소설(女傑小說)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이 소설은 ‘변신(變身)’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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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신 / 朴安臣 [종교·철학/유학]
1369(공민왕 18)∼1447(세종 29).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원정 증손, 할아버지는 천, 아버지는 문로, 어머니는 박사덕의 딸이다. 1399년(정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라도관찰사, 충청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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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룡 / 朴汝龍 [종교·철학/유학]
1541(중종 36)∼1611(광해군 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문희, 아버지는 수의, 어머니는 이윤화의 딸이다. 후릉참봉, 사옹원직장, 호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스승과 문하의 문답을 적은『석담어록』이 대표적이나 대부분 병화로 없어져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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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폭포 / 朴淵瀑布 [지리/자연지리]
개성시 북부 박연리에 있는 폭포. 폭포의 높이 37m, 너비 1.5m로,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이름난 금강산의 구룡폭포(九龍瀑布), 설악산의 대승폭포(大勝瀑布)와 더불어 3대 명폭의 하나이며, 천연기념물 제3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찍이 명유 서경덕(徐敬德)과 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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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 朴永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8∼?). 종림 아들로 종악에게 입양되었고, 어머니는 오지수의 딸이다. 1844년(헌종 10) 직장으로서 증광문과에 급제하였다. 형조판서·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남길 글로 신미양요 당시 정기원과 함께 올린〈역진미국병선자요정형자문략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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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 朴永錫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 서울 순화방(順化坊) 누각동(樓閣洞 : 지금의 종로구 누상동·누하동 부근)에 살면서 학동들을 가르치고, 저보(邸報)를 필사해주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다고 한다. 가난에 개의하지 않고 단정한 풍모를 잃지 않아서 군자라 불리었다. 여항시인들의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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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원 / 朴永元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1∼1854). 할아버지는 경규, 아버지는 종순, 어머니는 조영소의 딸이다. 1813년(순조 13) 사마시를 거쳐, 1816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조판서·실록청총재관 등을 지냈다. 1846년에는 진하 겸 사은사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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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 朴泳孝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정치가(1861∼1939). 갑신정변 주도 개화파.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 역임.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망명했고, 1894년 일본 정부의 주선으로 귀국하여 김홍집 내각에 내무대신으로 입각했다.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역모 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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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 朴英熙 [문학]
1901년∼미상. 시인·소설가·평론가. 1921년에 귀국하여 종합교양지《신청년》, 시 전문지《장미촌》의 동인으로 활약, 1922년에는《백조》 동인이 되기도 하였다. 1924년에는 개벽사에 입사하였고, 그해 10월 신경향파 문학단체인 파스큘라를 결성하였으며 1925년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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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옹시초 / 泊翁詩抄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문인 이명오(李明五)의 시집. 9권 4책. 목활자본. 이 책은 1859년(철종 10) 아들 만용(晩用)이 편집, 간행하였고, 시 525수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홍취영(洪就榮)·김좌근(金左根)·정원용(鄭元容)·조두순(趙斗淳)·윤정현(尹定鉉)·김병학(金炳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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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옹집 / 泊翁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인 이명오의 시집. 9권 4책. 목활자본. 이 책은 1859년(철종 10) 아들 만용이 편집, 간행하였고, 시 525수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홍취영·김좌근·정원용·조두순·윤정현·김병학·남병철 등 고관·명사들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아들 만용의 발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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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외선 / 朴外仙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를 역임한 교육자.안무가. 일제 강점기 일본에 유학하여 정식 클래식 발레교육을 받은 최초의 조선인으로 한국인 최초로 일본 체육학교 무용교수이자 무용영화 안무가를 역임했다. 1960년대 미국의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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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상 / 朴龍相 [종교·철학/유학]
1680년(숙종 6)∼1739년(영조 15). 조선 후기 학자.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에 정진하는 한편,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힘썼다. 김성탁·권만·권상일·이광정 등과 교유하였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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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 朴遇賢 [종교·철학/유학]
1829(순조 29)∼1907. 조선 말기의 문신. 아버지는 박수룡이다. 1869년(고종 6)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승정원부정자가 되었고, 1871년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이듬해 통훈대부에 올라 전적이 되었고, 이어서 좌정언이 되었다. 1873 년 최익현이 상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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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 / 朴雲 [종교·철학/유학]
1493년(성종 24)∼1562년(명종 17). 조선 전기의 유학자. 부친은 박종원, 모친은 허량의 딸이다. 송당 박영을 찾아가 수학하였다. 퇴계 이황과 서신을 왕래하는 등 친분이 있었고 정주학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격몽편』,『자양심학지론』,『경행록』,『삼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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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수 / 朴雲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97∼1841). 1820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22년(순조22) 수빈박씨의 장례 때 종척집사를 하고 순흥부사에 이르렀다. 후에 돈령부판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덕은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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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종 / 朴元宗 [종교·철학/유학]
1467(세조 13)∼1510(중종 5). 조선 중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거소, 아버지는 중선, 어머니는 허곤의 딸이다. 선전관, 병조참지, 강원도관찰사,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 성희안, 유순정 등과 함께 반정을 모의해 연산군을 폐하고 중종을 옹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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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원 / 朴胤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1734∼1799). 김원행과 김지행의 문인이다. 1792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선공감역·서연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벼슬하지 않고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저서로《근재집》과 《근재예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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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융 / 朴融 [종교·철학/유학]
?∼1424(세종 6).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영균, 아버지는 익, 어머니는 박충민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생원시를 거쳐 같은 해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집인『우당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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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 朴誾 [종교·철학/유학]
1479(성종 10)∼1504(연산군 10). 조선 중기의 학자·시인. 아버지는 담손, 어머니는 이이의 딸이다. 박은은 1495년(연산군 1) 17세로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권지, 홍문관정자, 경연관 등을 역임하였다. 박은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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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 / 朴殷植 [역사/근대사]
1859-1925. 한말·일제강점기의 학자·언론인·독립운동가. 성리학과 위정척사사상에서 개화사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898년에 독립협회에 가입해 회원이 되었다. 그 해 11월의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만민공동회에서는 문교부장급 간부로 활동하였다. 신민회의 원로회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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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장 / 朴毅長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영기, 아버지는 세렴, 어머니는 남시준의 딸이다. 김언기의 문인이며, 경사에도 밝았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해 진해현감, 경주판관, 성주목사, 인동부사, 경상수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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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장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해유문서 / 朴毅長 慶尙左道兵馬節度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박의장 해유문서. 1600년(선조 33) 11월 일에 후임관이 경상도관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1월 21일 경상도관찰사가 호조에 문서를 이관하였다. 박의장(朴毅長)은 세렴(世廉)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해 경주지역을 수호하였다. 전체적으로 문서의 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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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 / 朴翊 [종교·철학/유학]
1332(충숙왕복위 1)∼1398(태조 7). 고려 후기의 문신. 부친은 영균, 어머니는 구위의 딸이다. 고려왕조에서 예부시랑·중서령·세자이사 등의 벼슬을 지내고,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다.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의 귀은제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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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로 / 朴仁老 [종교·철학/유학]
1561(명종 16)∼1642(인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 무인. 아버지는 석, 어머니는 주순신의 딸이다. 그의 82세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전반생이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고 한다면, 후반생은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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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범 / 朴仁範 [문학/한문학]
신라 효공왕 때의 문신·학자.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였고, 특히 시문에 뛰어나 명성이 높았다. 귀국한 뒤 한림학사·수예부시랑(守禮部侍郎) 등을 역임하였다고 전한다. 898년(효공왕 2) 당시 동리산(桐裏山) 조사인 도선(道詵)이 백계산(白鷄山)옥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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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원 / 朴一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사천이다. 음서로 관직에 나아가 아산현감·낭관을 역임하였으며 《추관지》· 《탁지지》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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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원 / 朴長遠 [종교·철학/유학]
1612(광해군 4)∼1671(현종 12). 조선 후기의 문신. 쟁 증손, 할아버지는 효성, 아버지는 훤, 어머니는 심현의 딸이다. 163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대사헌,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구당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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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윤 / 朴長潤 [종교·철학/유학]
1679년(숙종 5)∼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박순례, 조부는 박정주이다. 부친 박만종과 모친 홍수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박형윤이다. 부인은 정성능의 딸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시에서 병과로 문과 급제하였다. 지평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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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현 / 朴章鉉 [종교·철학/유학]
1908년(융희 2)∼1940년. 일제 강점기 유학자·사학자. 부친 박재범과 모친 창녕성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송준필 등의 선대유학자들에게 가르침을 구한 뒤, 유교의 재건을 목표로 학문에 진력하였다. 1939년 일본 이송학사전문학교에서 유학하면서, 우찌다[內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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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 / 朴在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3∼1780). 할아버지는 필철, 아버지는 사복, 어머니는 이병철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하였으나 홍국영의 누이가 정조의 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여 홍국영의 미움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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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집 / 璞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중기의 문신 김뉴의 시문집. 5권 4책. 목활자본. 권두에 유심춘의 서문이 있다. 권1∼4에 시 396수, 권5에 서 3편, 제문 7편, 행장 2편, 묘지명 1편, 발문 4편, 잡저 3편이 실려 있고, 부록에 저자의 묘갈명 및 신천서원과 이양서원의 봉안문·상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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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접무 / 撲蝶舞 [예술·체육/무용]
조선시대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6인이 전대(前隊)·중대(中隊)·후대(後隊)로 둘씩 짝을 지어 춤을 추는데 전대는 두 사람이 앞에 나란히 서고, 중대는 전대와 후대 중간에서 좌우로 갈라 서고, 후대는 뒤에 나란히 선다. 창사(唱詞)는 순한시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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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걸 / 朴廷杰 [종교·철학/유학]
1683년(숙종 9)∼1746년(영조 22).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박하상이다. 갈암 이현일과 그 아들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며, 성리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제산 김성탁·기암 박관선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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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양 / 朴定陽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대신(1841∼1904). 외교가. 주미 조선공사. 독립협회 창설 관여. 1866년(고종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요직을 두루 거쳤다. 주미전권공사에 임명되어 미국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였고 만민공동회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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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양시장 / 朴定陽諡狀 [정치·법제]
조선후기의 대신 박정양(朴定陽)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908년(융희 2) 7~8경 이근명(李根命)이 지어서 봉상사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박정양과 친구 사이이던 원임의정부의정대훈 이근명이 지었다. 이 시장의 작성 시기는 문면에 나타나 있지 않으나 박정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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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 朴鼎元 [종교·철학/유학]
1574년(선조 7)~1626년(인조 4). 조선 중기 문신. 부친은 박문충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 광흥봉사에 올랐다. 이후 1616년(광해군 8) 증광시 병과에 22위로 합격, 승정원 주서를 역임하였다. 1617년(광해군 9)에는 모친을 봉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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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 朴正熙 [정치·법제/정치]
1917년∼1979년. 군인·정치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제5·6·7·8·9대 대통령.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 3년간 국민학교 교사 근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46년 육사 2기로 졸업하고, 육군포병학교장, 제5사단장, 제6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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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 朴齊家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실학자(1750∼1805). 1779년 3월 규장각에 검서관직을 설치해 서얼 출신들이 하급관리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이덕무·유득공·서이수과 함께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되었다. 1794년 2월 춘당대무과에 장원하여 오위장이 되었다가 영평현령으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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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근 / 朴齊近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9∼1885). 한성부주부를 거쳐 형조정랑을 지냈고 호조정랑에 기용되어 영건도감의 낭청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강화부판관을 역임하던 중 강화도조약이 체결 때 조선측 접견대관 신헌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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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설화 / [문학/구비문학]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에 관한 설화.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하고 자신은 죽음을 당한 박제상의 인물전설이다. 그의 아내가 기다리다가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아내의 죽음 설화도 포함된다. 『삼국유사』에는 김제상으로 되어 있다. 이 설화에는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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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순 / 朴齊純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58∼1916). 을사늑약 체결 당시 외부대신.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이다. 1893년 호조참판 때 청나라 군사 파병 문제를 협의, 1894년 충청도관찰사 때 동학농민 토벌에 참여하였다. 경술국치 때 내부대신으로서 ‘한일합방조약’에 서명 후 자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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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갑 / 朴宗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2∼1799). 1770년(영조 4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설서에 임명된 후 세자시강원에 들어가 세자를 보좌했다. 우부승지·형조참판을 거쳐 특리 평안감사로 재직할 때 백성들의 잘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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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남 / 朴從男 [역사/조선시대사]
1559년(명종 14)∼1620년(광해군 12). 조선 중기 무신‧의병. 증조는 박형손, 조부는 박민수, 부친은 박응희이다. 외조부는 신천강씨이다. 부인은 생원 박전의 딸이다. 지금『창의록』일부가 세상에 전한다고 한다. 난이 평정된 후에 서울에서 무반의 청직을 지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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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린 / 朴從鱗 [종교·철학/유학]
1496년(연산군 2)∼1553년(명종 8). 조선 중기 문신. 증조는 박이경, 조부는 박소종, 부친 박눌의 5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김계행, 형 박거린‧박형린‧박홍린‧박붕린이 있다. 부인은 사용교위 문억경의 딸 감천문씨이다. 1532년(중종 27) 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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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신 / 朴宗臣 [종교·철학/유학]
1754년(영조 3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박필철, 조부는 박사복이다. 부친 통훈대부 수원진관병마절제도위 박재원과 모친 조명원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박종유이다. 부인은 최수일의 딸이다. 1806년(순조 6) 이태순‧조양진‧한긍리 등과 함께 홍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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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악 / 朴宗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5∼1795). 1766년(영조 42) 사마시를 거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관직에 진출하였다. 승지·대사간을 역임하였으나 형의 죄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복직 후 관직이 우의정까지 올랐고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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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열 / 朴宗說 [종교·철학/유학]
1754년(영조 30)∼1822년(순조 22).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박주승이다. 성담 송환기의 문인으로 학행과 효도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의 저작은 격조가 높고 다양하였으며 문집으로《창백문집》목활자본 6권 2책이 있는데, 부·시·서를 비롯하여〈대학경의〉·〈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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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유 / 朴宗儒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675∼1755). 1728년(영조 4) 문과별시에 급제한 뒤 관직에 진출하여 요직을 두루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서·화에 능했으며 저서로는《사변》1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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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 朴鍾和 [문학]
1901년∼1981년. 시인·소설가·비평가. 1920년 휘문의숙 졸업, 1921년 <장미촌>에 시 <우유빛 거리>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22년 <백조> 동인이 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시를 썼으나,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 1932년 <금삼의 피>, 1937년 <대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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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후 / 朴宗垕 [종교·철학/유학]
1792년(정조 16) 4월 24일∼1864년(고종 1).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박시원이고, 모친은 안동권씨이다. 형제로는 박종교·박종서가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김영우의 딸 선성김씨이며, 둘째 부인은 장윤석의 딸 인동장씨이다. 정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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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 朴宗薰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3∼1841). 1834년 순조가 죽자 그 행장을 지었고, 1837년 실록청총재관으로서《순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좌의정에 올랐으나 풍양조씨 세도의 압력으로 사직,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사례찬요》· 편서로는《반남박씨세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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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대 / 朴周大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은사(1836∼1912). 1895년 을미사변 때 창의통유문을 지어 유문에 보내고 안동 의병장 권세연을 비롯하여 이강년·서상렬 등 의병장을 지원하였다. 또 아버지 박득녕이 써오던《역서일기》를 평생 이어서 썼다. 저서로는《나암유고》·《나암수록》·《문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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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운 / 朴周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0∼?). 1864년(고종 1)에 직강으로서 일강구목을 상소하였으며 이듬해 부수찬이 되었다. 이듬해 헌납을 역임한 뒤 비어책을 상소하였다. 1876년에는 화재를 당한 궁전의 수습책을 건의 하였다. 저서로《역학연고》2권이 있다.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