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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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 / 密告 [종교·철학/대종교]
대종교에서 사용하는 주문 중의 하나. 나철(羅喆)이 1916년 묵계(默契)로 받았는데, 끝에 강해신극(强解神極)이라고 되어 있었다. 따라서 대종교인들은 밀고의 뜻은 알 수 없으며, 그 뜻을 알려고 하면 신벌(神罰)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대종교인들은 밀고를 성심으로 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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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집 / 密敎集 [언어/언어/문자]
1784년(정조 8) 승려 몽은 등이 찬술하여 간행한 밀교의식집. 두 개의 서문이 「비밀교개간서(煉密敎開刊序)」·「개간비밀교서(開刊煉密敎序)」로 되어 있어서 『비밀교(煉密敎)』라는 서명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권두의 「밀교개간집(密敎開刊集)」과 권말의 「개간밀교집」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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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설화 / [문학/구비문학]
바다의 밀물·썰물과 해일이 생기게 된 이유를 설명한 설화. 중국문헌인 『태평어람(太平御覽)』 권68 지부조조(地部潮條)에 수록되어 있고, 한국 문헌으로는 17세기에 이태호(李太湖)가 편(編)한 『탐라지(耽羅志)』에도 보인다. 널리 분포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나 구전자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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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본최사설화 / [문학/구비문학]
신라의 도승(道僧) 밀본법사에 관한 설화. 기사이적형설화(奇事異跡型說話)로, 『삼국유사』 권5 신주(神呪) 제6에 수록되어 있다. 「밀본최사설화」는 밀본법사가 사악한 귀신을 물리쳤다는 것이 주내용이며, 세가지 삽화로 되어 있다. 첫번째 삽화는 밀본이 늙은 여우를 처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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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산 / 密山 [지리/인문지리]
중국 흑룡강성 계서시(鷄西市)에 위치한 항일투쟁지. 밀산현(密山縣)으로 알려진 밀산은 일제강점기에 대표적인 항일 투쟁의 본거지 역할을 하였다. 두만강을 건너 연길에서도 기차를 타고 13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거리의 밀산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독립운동가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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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성 / 密城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옛 지명. 삼한시대 변한(弁韓)의 땅으로 뒤에 가야(加耶)에 속하였으나 신라 법흥왕 때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밀성군으로 고쳐 밀진(密津)·상약(尙藥)·오구산(烏丘山)·형산(荊山)·소산(蘇山) 등을 영현(領縣)으로 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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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密陽 [지리/자연지리]
지명. 1286년(충렬왕 12)에 밀양군(密陽郡)으로 되었던 것이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密陽府)로 승격되고, 조선 태종 1년에 군으로 환원되었다가 태종 15년에는 1,000호 이상이 되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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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남명리 얼음골 / 密陽 南明里─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에 있는 골짜기. 천연기념물 제224호. 천황산(天皇山, 1,189m) 중턱 높이 600m 지점의 계곡에 있으며, 밀양시 동쪽 약 25㎞ 지점에 있다. 1970년 국유지 119,460㎡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얼음골계곡은 북ㆍ동ㆍ서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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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만어산 암괴류 / 密陽萬魚山岩塊流 [지리/자연지리]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만어산에 있는 너덜 지대. 밀양에는 ‘밀양의 신비’라고 일컬어지는 세 곳이 있다. 이는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 천년고찰의 표충사에 있는 표충비각, 그리고 만어산 암괴류가 그것이다. 자연경관은 물론 지형학적인 관점에서도 학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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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재약산 사자평 고산습지 / 密陽載藥山獅子坪高山濕地 [지리/자연지리]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 일원에 위치한 고산습지. 밀양 재약산 사자평 고산습지는 약 580,000㎡로 국내 최대 규모의 산지습지이다. 2006년 12월 28일에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습지보호지역은 해발 1,000m 이상의 산지가 연이어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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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강 / 密陽江 [지리/자연지리]
경상남도 밀양시를 흐르는 강.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고현산(高峴山 ,1,033m)에서 발원하여 S자형의 유로를 그리면서 남류하다가 동창천(東倉川)ㆍ청도천(淸道川)과 합류하여 밀양시 부근 삼랑진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한다. 유로연장 96㎞, 유역면적 1,476㎢으로, 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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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경찰서폭탄투척의거 / 密陽警察署爆彈投擲義擧 [역사/근대사]
1920년 12월 27일 최수봉이 경상남도 밀양시밀양경찰서 사무실 안에 폭탄을 던진 의거. 1920년 11월 최수봉은 밀양군 상남면 기산리에 거주하는 김상윤을 만나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권유받고 응낙하였다. 최수봉은 독립운동의 기세를 올리기 위하여 밀양경찰서를 파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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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고례리사화동유적 / 密陽古禮里─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에 있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야외 유적. 1995∼1997년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부산으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100㎞ 거리의 내륙 깊숙한 가지산(加智山) 계곡에 위치한 이 유적은 낙동강의 작은 지류인 단장천(丹場川)의 가장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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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군읍지 / 密陽郡邑誌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밀양군(현 밀양시)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慶尙南道密陽郡邑誌(경상남도밀양군읍지)’라고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정조 때 편찬된 필사본 『밀양부읍지』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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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대교 / 密陽大橋 [경제·산업/교통]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과 가곡동을 연결하는 다리. 대구부산고속도로(고속국도 제55호선)상에 건설된 다리로 밀양시 중심지의 동남부에서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교량이다. 교량 북단이 밀양시 시내 일부 및 경부선 철길과 교차하면서 가곡터널과 곧바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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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무안리향나무 / 密陽武安里香─ [과학/식물]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있는 향나무. 상남도기념물 제119호. 나무의 높이 1.5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1m이며, 수관(樹冠)은 고루 넓게 퍼져서 평평하다. 넓게 퍼진 곁가지를 지탱하기 위해서 받침대가 서 있다. 나무의 높이가 높은 것은 아니나 꼭대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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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족보 / 密梁朴氏族譜 [사회/가족]
조선후기 문신 박승건이 1662년에 간행한 밀양박씨의 족보. 분량은 1책이며, 호남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표제는 “밀양박씨족보”, 판심제는 “밀양세보(密陽世譜)”이다. 크기는 반곽 가로 19.5㎝, 세로 24㎝이며, 유계(有界), 주쌍행(註雙行), 선장(線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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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반닫이 / 密陽─ [예술·체육/공예]
경상남도 밀양지방에서 제작된 의복·옷감·제기 등을 넣어 두는 반닫이. 표준치수는 높이 50∼60㎝, 앞너비 65∼80㎝, 옆너비 35∼45㎝. 통영·진주 등의 반닫이와 더불어 경상도반닫이라고도 불린다. 일반적으로 경상도반닫이는 높이가 넓이에 비해 얕은 편이며, 거멍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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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 / 密陽百中─ [생활/민속]
경상남도 밀양 지방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머슴들이 7월 보름경 진(辰)에 해당하는 날(용날)을 택하여 지주(地主)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서 연유한 두레굿이다. 이러한 놀이는 두레먹기·호미씻기[洗鋤遊 : 세서연]·호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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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법흥상원놀이 / 密陽法興上元─ [생활/민속]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법흥리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상원행사의 역사는 유구하여 고대로 소급된다. 농경민족인 우리 나라 세시풍속은 1년 중 가장 많은 달이 음력 정월이고, 가장 많은 날이 대보름이다. 상원은 정월행사를 마무리하고 이후로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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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 密陽市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북부에 위치한 시. 동쪽은 울산광역시·양산시, 서쪽은 창녕군, 남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김해시·창원시, 북쪽은 경상북도 청도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34′∼129°01′, 북위 35°21′∼35°38′에 위치한다. 면적은 798.6㎢이고, 인구는 1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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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신법리유적 / 密陽新法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읍 신법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석관묘 유적. 밀양시에서 서쪽으로 약 10㎞ 지점에 무안중학교(武安中學校)가 있는데 1960년경 교정에서 공사를 하다가 석관묘가 발견되었다.이 무덤은 여러 개의 점판암으로 축조되었는데 그 너비는 40㎝, 전체길이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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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아리랑대축제 / 密陽─大祝祭 [생활/민속]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열리는 향토문화제. 부덕(婦德)과 정순(貞純)을 기리는 행사로 1958년부터 영남루의 중수를 기념하기 위하여 11월에 행하여오던 예술발표회를 종합문화제로 명명하고, 제1회 밀양종합문화제가 개최되었다. 종합문화제가 시작된 지 3년 째되던 해에 사라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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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오방리강동구 / 密陽五方里江東邱 [지리/자연지리]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에 있는 작은 언덕. 경상남도 기념물 제120호. 조선 선조 때 평안도사(都事)를 지낸 취원당(聚遠堂) 조광익(曺光益)의 효행과 우애를 기리는 비각이 새겨져 있다. 강동구의 ‘江東’이란 평안도 ‘江東縣’에서 비롯되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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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지 / 密陽志 [지리/인문지리]
밀양부사 신익전이 경상도 밀양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652년에 저술한 지방지. 1652년 밀양부사로 부임한 신익전의 문집인 『동강선생유집(東江先生遺集)』에 수록되어 있다. 밀양부의 건치연혁 및 자연·인문지리적 내용을 기록한 읍지이다. 『동강선생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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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향교 / 密陽鄕校 [교육/교육]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에 있는 향교. 고려말 조선초경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2년(선조 35) 부사 최기(崔沂)가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 중 1602년 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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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와집 / 密窩集 [종교·철학/유학]
권석원의 문집. 4권2책, 신연활자본, 1964. 권1에는 한시 143수, 권2에는 서 52통과 서 5편, 권3에는 기 7편, 발 10편, 상량문 1편, 설 1편, 제문 11편, 애사 2편, 유사2편, 권4는 부록으로 김형모가 지은 행장,이만도가 지은 묘갈명, 권효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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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주표충사제영 / 密州表忠詞題詠 [언론·출판/출판]
사부(史部) - 지리류(地理類) 남붕(南鵬) 편, 목판본, 불분권 1책(41장), 부록(7장). 표제와 판심제는 표충사제영(表忠詞題詠)으로 되어 있다. 임진왜란시 의병을 일으킨 사명대사 유정(惟政)을 모신 밀양 표충사의 제영을 엮어 놓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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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직사 / 密直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몽고의 간섭 하에서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의 정사를 맡아보던 관서. 991년(성종 10)에 설치된 중추원은 1095년(헌종 1) 추밀원으로 바뀌었다가, 원나라의 간섭기인 1275년(충렬왕 1) 밀직사로 바뀌게 되었다. 1298년(충렬왕 24) 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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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다가 곱다가 하는 처 / [문학/구비문학]
아내가 못생겼다고 버리려던 남편이 마음을 돌려 다시 잘 살았다는 내용의 설화. 방탕한 남편이 일만 하는 자기 아내를 단장만 하는 술집 여자들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하여 집에서 나가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아내는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서려고 하였다. 아내의 새 모습에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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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노래 / [문학/구비문학]
부녀자들이 바느질을 하면서 부르는 여성 민요. 부녀자들은 정월대보름날 저녁 달맞이할 때 바느질솜씨가 늘기를 달에게 빌었다. 또 새며느리가 들어오면 마을 노파들이 몰려와서 혼수를 보는데, 이것은 바느질솜씨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인들은 바느질솜씨를 소중하게 여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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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노래 / [문학/구비문학]
부녀자들이 바늘을 주제로 삼거나 바늘에 가탁해서 부르는 민요. 바늘은 바늘질하는 도구로, 몸이 날씬하고 곧게 만든 쇠침이다. 이 바늘에다 실을 꿰어 천을 꿰매서 옷을 지어 만드는 일은 여성의 소임이었다. 여성은 늘 바늘을 벗삼아 생활하였으므로 여성다운 다정한 정서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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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짠 이유 / [문학/구비문학]
소금을 낼 수 있는 맷돌을 훔쳤으나 멈추게 하지 못해서 바닷물이 짜졌다는 설화. 유래담 혹은 기원담에 속하며, ‘바닷물은 왜 짠가’·‘이상한 돌 절구’ ·‘이상한 매통’ 등으로도 불린다. 세계 여러 지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전지역에서 구전된다. 옛날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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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 圍碁 [생활/민속]
두 사람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여러 가지 규약에 따라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한 점씩 서로 번갈아 놓고 경기의 끝 판에 이르러 각자가 차지한 ‘집’의 수효를 계산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바둑은 각자의 성품과 도량을 표현하며, 바둑 한 판에서 발생하는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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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장 / 바디匠 [예술·체육/공예]
베틀에 딸린 기구의 하나인 바디 만드는 기술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 중요무형문화재 제88호. 바디는 대오리로 참빗살같이 만들어 틈마다 날을 꿰어서 베의 날을 고르고 북의 통로를 만들어 주고 씨를 쳐서 짜는 기구로서,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직조기구(織造機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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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춤 / 바라춤 [예술·체육/무용]
불교의식무용의 하나로 바라를 들고 추는 춤. 불법(佛法)을 수호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며, 의식도량(儀式道場)을 정화하여 성스러운 장소가 되게 하는 춤이다. 바라춤은 다라니와 진언에 맞추어 행해지므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바라춤은 8가지 주제가 있다. 춤사위는 바라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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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돌리기 / [생활/민속]
댓 조각이나 얇은 나뭇조각을 깎아 만들거나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든 날개를 손잡이자루에 꽂고 이것을 쥐고 바람을 마주하여 뛰면서 돌아가게 하는 아이들놀이. 놀이방법은 바람개비를 꽂은 막대기를 입에 물고 앞으로 달려서 돌아가게 하거나 크게 만든 바람개비를 긴 장대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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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맞이 / 바람맞이 [예술·체육/무용]
1987년 6월 9일부터 15일까지 공연된 이애주(李愛珠)의 즉흥 춤 제목. ‘연우무대 창단10주기념 즉흥 「바람맞이」 공연’으로 시작하였다. 우리 춤을 몸짓 가는대로 추는 「일의 춤」이라고 한다. 일을 집합적이고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형식이다. 「씨춤」, 「물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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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 / [문학/구비문학]
사령(死靈)굿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베풀어지는 ‘지노귀굿’·‘씨끔굿’·‘오구굿’·‘망묵이굿’ 등의 무속 의식에서 구연된다. 「바리공주」는 약 20여 편이 채록되었으며, 각 편의 내용은 전승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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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모양토기 / ─土器 [역사/선사시대사]
항아리모양 토기와 달리 목이 없이 아가리와 몸통이 바로 연결된 토기. 아가리의 지름보다 몸통의 높이가 높은 것을 깊은바리모양〔深鉢形〕토기라고 하고, 아가리 지름과 몸통 높이가 비슷한 것을 바리모양 토기라고 부르며, 높이보다 지름이 더 긴 것을 얕은바리모양〔淺鉢形〕토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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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사위설화 / [문학/구비문학]
바보인 신랑이 처가에 가서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였으나, 결국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는 내용의 설화. 소화(笑話) 중 치우담(痴愚譚)에 속하며 중국·일본 등지에도 분포되어 있다. 중국 문헌인 『태평광기(太平廣記)』 권262에 보이며, 우리 문헌인 성현(成俔)의 『용재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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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설화 / [문학/구비문학]
어리석거나 바보 같은 주인공의 우행(愚行)을 제재로 한 설화. 소화(笑話) 중 치우담(癡愚譚)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저능, 신체적 불구, 어리석은 욕심 등이 우행의 원인이 되어 그 과정에서 웃음이 유발된다.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설화가 다양하게 전승, 유포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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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그림 / [역사/선사시대사]
바위 위나 큰 절벽, 동굴 내 벽면 등에 사물이나 기호를 쪼으기·새기기·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 암각화(巖刻畵), 혹은 암각(巖刻), 암화(巖畵) 등으로도 불린다. 바위그림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전형적인 사례들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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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절마을호상놀이 / ─好喪─ [생활/민속]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바위절 마을에 전승되는 상여놀이.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0호. 바위절 마을이라는 지명은 마을 입구에 큰 바위가 있고 여기에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1963년 경기도 광주시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이전까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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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타령 / [문학/고전시가]
서울지방 잡가의 하나. 곡조로는 서울의 속가 가운데 휘모리잡가에 속한다. 그런데 이 「바위타령」은 보통 휘모리에 비하여 규격과 내용이 다르고, 곡조와 장단도 이채를 띠고 있다. 「바위타령」은 갑오경장 이후로 관기(官妓)가 없어지고 일패(一牌)·이패(二牌)·삼패(三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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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생 / 朴剛生 [종교·철학/유학]
1369(공민왕 18)∼1422(세종 4). 고려 말 조선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침, 어머니는 박린의 딸이다. 1390년(공양왕 2)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에 보직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호조전서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1408년(태종 8) 진위사의 서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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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 朴健雄 [역사/근대사]
1906-미상. 독립운동가·정치인. 별명은 건웅(建雄)·김정우(金政友).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26년 10월 중국 광둥(廣東)에 있던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의 보병과를 제4기로 졸업하고 중국군에 복무하였다. 그뒤 1928년 9월 상해(上海)의 중국본부한인청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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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규 / 朴景奎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반주 피리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1903∼1970. 경상남도 거제 출신. 34세 때부터 노덕규(盧德奎)로부터 피리를 배웠고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 승전무 반주 피리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박복률(朴福律)을 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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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후 / 朴慶後 [종교·철학/유학]
1644(인조 22)∼1706(숙종 32). 조선 후기 때의 문신. 할아버지는 종형, 아버지는 상욱, 어머니는 허계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통덕랑으로서 숙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증광문과에서 병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승정원주서·홍문관수찬·사간원정언 등 삼사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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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강 / 朴繼姜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중종 때부터 선조 때 사이에 활동하였다.『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의하면 원래 부유한 집안출신으로 40대까지 문자를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천례(賤隷)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수모를 당하자, 즉시 발분하여 학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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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조 / 朴啓祚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6인제 배구를 체계화하고 보급하는데 노력한 체육인. 인천광역시 강화 출생.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의 전신)에 진학하여 4학년 때부터 배구선수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1935년 철도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중 1938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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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보 / 朴光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4∼?). 1764년 관학장의로 입시했을 때, 영조에게 외형이 바르면 그림자도 바르다는 직간을 했다. 그래서 어필 8구와《중용》1부를 하사받았다. 이후 정조에게《역학팔조》를 진상했다. 파계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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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 朴光錫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4∼1845).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고,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이 되었다. 남포현감으로 있을 때 선세를 시정하도록 하였으며, 안변부사로 있을 때 송사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저서로는《노포문집》 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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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우 / 朴光佑 [종교·철학/유학]
1495(연산군 1)∼1545(명종 즉위년).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정지, 아버지는 인, 어머니는 장유성의 딸이다. 1525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1536년 재령군수로서 문장에 능하여 원접사를 수행하였고, 1545년 사간이 되었으나 을사사화로 하옥,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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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우묘출토유물 / 朴光佑墓出土遺物 [예술·체육/공예]
조선 중기의 문신 박광우(朴光佑)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6호. 박광우의 묘는 원래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오산리에 있었다. 묘의 위치가 해방 이후 육군 작전지역 내에 있었기 때문에 후손들의 출입이 불가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묘 관리와 성묘를 제때에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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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일 / 朴光一 [종교·철학/유학]
1655(효종 6)∼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학자. 상현의 아들, 어머니는 고부민의 딸이다. 1701년(숙종 27) 천거로 내시교관·시강원자의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 권상하·정호 등과 교유하며 학문연구에 힘썼고, 왕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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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전 / 朴光前 [종교·철학/유학]
1526(중종 21)∼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의병장. 할아버지는 간, 아버지는 이의, 어머니는 최명기의 딸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1568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경기전참봉, 헌릉참봉, 회덕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597년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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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 / 朴權 [종교·철학/유학]
1658(효종 9)∼1715(숙종 41). 조선 후기의 문신. 희남 증손, 할아버지는 우, 아버지는 시경, 어머니는 부사 김인량의 딸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경기감사, 강화유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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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 / 朴珪壽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개화사상가(1807∼1877). 신미양요 주도. 북학파 거두 박지원의 손자다. 연행사 부사를 역임하였다. 1848년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64년 고종이 즉위하자 특별히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1866년 2월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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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순 / 朴奎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0∼?). 동부승지로 같은 시파 윤영희를 구출하려다가, 오히려 벽파에게 탄핵을 받아 위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교리가 되어 수입 물품 교역을 엄금하도록 하여 사치풍조를 막았다. 이어 우부승지를 역임하고, 공조참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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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양 / 朴奎陽 [종교·철학/유학]
1840년(헌종 6)∼1903년(광무 7). 조선 말기 학자. 조부는 박재기, 부친은 박재망, 모친은 권석원의 딸이다. 조부 박재기로부터 가학을 전수받았다. 조부의 장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김세락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금남문집》4권이 전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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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진 / 朴煃鎭 [종교·철학/유학]
1855년(철종 6)∼미상. 조선 말기 학자. 부친은 박시한이다.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익혔으며, 장성하여서는 척암 김도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뛰어난 문장으로 인해 당대 이름난 문장가 김진룡‧박기진‧박시주 등과 함께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문집으로『창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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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희 철산부사 해유문서 / 朴珪熙 鐵山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74년(고종 11) 10월 14일 후임관이 평안도관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1월 초1일에 평안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관향사평양부윤이 호조에 문서를 이관, 1876년(고종 13) 12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 이관, 동년 12월 13일에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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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슬 / 朴琴瑟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춤동작』을 저술한 무용가.한국무용가. 1922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했다. 일본여자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1943년에 이시이 바쿠[石井漠] 무용연구소에서 현대무용을 배웠다. 귀국 후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수원의 법릉사에 기거하던 곽서순 스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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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령 / 朴箕寧 [종교·철학/유학]
1779(정조 3) -1858(철종 8). 저자는 1816년(순조 16 )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해서는 오직 책만 보며 족적이 인근의 관기교밖을 벗어나지 않아 아름다운이 행실이 알려졌다. 장석우, 응와 이원조, 운산 이휘재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저자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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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상 / 朴岐爽 [역사/근대사]
1888-193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박사국(朴士國)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출신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1919년 3월 19일 이정(李挺)·이병석(李秉釋)·정영모(鄭永模) 등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시(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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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수 / 朴綺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5). 할아버지는 좌원, 아버지는 종신, 어머니는 최수일 딸이다. 1806년(순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사헌,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광주부유수가 되었으나 경기암행어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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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진 / 朴吉眞 [종교·철학/원불교]
현대의 원불교인·교육자(1915∼1986).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를 졸업, 1966년 동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1972년 대만문화학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 1981년 일본 불교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2년부터 원불교에 봉직하기 시작하여 교단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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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난영 / 朴蘭英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 조선 후기의 무신. 선조 때 면천군수·중군 등을 거쳐, 1619년(광해군 11) 강홍립을 따라 후금 정벌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길잡이로 함께 들어왔다가 석방된 뒤, 회답관·선위사·선유사·추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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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나무 / Betula schmidtii REGEL. [과학/식물]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 높이가 30m에 달하고 수피는 벗겨지지 않으며 검은 회색이다. 잎은 호생하고 난형이며 길이 4∼8㎝로서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피고 과수(果穗)는 길이 2∼3㎝이고 원통형으로 위를 향한다. 높이 3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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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목 / 朴達木 [경제·산업/산업]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재질이 치밀하고 견고하며 비중이 큰 나무. 박달목은 재질이 단단하여 각종 공사에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쓰임새에 따라 그 규격도 다양하였다. 운반 기기인 윤여나 수레 등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대여의 기둥과 초엽, 현주, 횡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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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 / 朴達─ [지리/자연지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 박달재의 높이 504m로, 차령산맥의 지맥인 구학산(九鶴山, 971m)과 시랑산(侍郎山, 691m)의 안부(鞍部)에 해당한다. 박달재를 박달산·박달령·박달현(朴達峴)·박달치(朴達峙)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요즈음에는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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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관 / 朴大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의병장(1756년(영조 32)~미상). 평안도 철산에 거주하던 진사로서,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 진압에 일조하고자 하였다. 관군과 연합하여 반란군을 진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량미를 공급하여 난을 진압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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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완 / 朴大完 [종교·철학/원불교]
1885∼1959. 원불교의 교무. 전라남도 승주 출신.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인천통감부 직원·농장지배인 등으로 생활하다가 32세 때부터 만주·중국·러시아로 전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소태산을 만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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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욱 / 朴道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료(1681∼?). 박성서의 아들이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했다. 이후 1728년(영조 4)에 무신별시에서 병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군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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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길 / 朴東吉 [과학/과학기술]
1897∼1983. 지질학자. 충청남도 연기 출생. 아버지는 박용순(朴容淳)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이학부 지질광물학과를 1930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경성고등공업학교와 경성광산전문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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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명시장 / 朴東命諡狀 [정치·법제]
조선 중기의 무신 박동명(朴東命)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832년(순조 32)에 남병철(南秉哲)이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이조판서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남병철이 지었다. 작성시기는 남병철의 생존 기간을 고려할 때 1832년으로 추정된다. 시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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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사건 / 朴東宣事件 [정치·법제/정치]
<위싱턴 포스트>지가 재미실업가 박동선의 의회로비활동을 폭로한 데서 발단되어 한.미간의 외교마찰로까지 번진 사건.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 포스트>가 박동선이 한국정부의 기관요원으로 1970년대에 연간 50만 내지 1백만 달러 상당의 뇌물로 90여 명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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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승급문서 / 朴東元陞級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0일. 육군부위 박동원(朴東元)을 6품 승훈랑에 승급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9일 전의 문서이다. 이 문서의 발급 하루 전인 1910년 8월 19일《일성록》에는 박재빈(朴齊斌) 등을 대거 가자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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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세 / 朴斗世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33(영조 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할아버지는 이건, 아버지는 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직이 제수되었으며, 1686년 의금부도사로 권대운을 압송할 때 편리를 보아주었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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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 / 博覽會 [경제·산업/산업]
한 나라 또는 지역의 문화상태나 산업상태를 소개하기 위하여 그에 관련한 각종 사물이나 상품을 진열해 놓은 곳. 대개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일정한 장소에 산업·경제·학술·종교·교육·예술·보건위생 등의 국력 현황과 외국의 발전상 또는 그와의 비교 등을 나타낸 전시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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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규 / 朴萬奎 [과학기술/식물]
1906년∼1977년. 식물분류학자‧과학교육자. 전라남도 구례에서 출생하였다. 1925년 광주사범학교를 나와 순천국민학교 교사를 하다가 중학교 및 사범학교의 식물교사 검정시험에 합격하여 광복 때까지 경성중학교에서 생물교사를 하였다. 광복 후 군정청 문교부 편수관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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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국 / 博文局 [역사/근대사]
1883년 인쇄, 출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박문국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산하기관인 동문학의 신문발행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신문발행경비는 특수한 세수권을 부여받아 충당되었고, 각 지방관아에 배부되어 그 수익금으로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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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 朴文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56).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로 뽑혔다. 이듬 해 세자시강원설서·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됐다.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1730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가 기민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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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설화 / [문학/구비문학]
조선 후기의 문신이면서 암행어사로 유명하였던 박문수에 관한 설화. 문헌설화는 『기문총화(記聞叢話)』 2편, 『계서야담(溪西野談)』 1편, 『청구야담(靑邱野談)』 3편, 『선언편(選言篇)』 2편, 『동야휘집(東野彙輯)』 2편, 『대동기문(大東奇聞)』·『실사총담(實事叢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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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전 / 朴文秀傳 [문학/고전산문]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1책. ‘어ᄉᆞ박문슈’ 또는 ‘어사박문수전’이라는 제목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1915년에는 유일서관(唯一書館), 1926년에는 경성서적업조합(京城書籍業組合), 1952년에는 세창서관 등에서 출판하였다. 필사본이나 목판본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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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욱 / 朴文郁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시조작가. 서리(書吏)출신이다. 『해동가요』에 수록된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 56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수장이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에서 활동하던 사람들 중, 가장 뜻이 통하던 지기(知己)의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청구가요 靑丘歌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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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원 / 博文院 [역사/근대사]
1902년 궁내부에 소속되어 국내외의 고금도서, 신문, 잡지 등을 보관하던 관청. 대한제국 때 국내외의 온갖 서적을 보관하던 관청으로, 관원으로 장, 부장 각 1인, 찬의 2인, 감서 2인, 기사 3인이 있었다. 그 뒤 감서는 참서로, 기사는 주사로 바뀌었고, 참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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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익임명문서 / 朴文益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2월 6일. 박문익(朴文益)을 숭덕전 참봉 판임관 5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참봉직은 조선시대의 원, 능전을 비롯한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최말단직 품관으로 조선시대의 경우 참하관 7품에서 9품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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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일 / 朴文一 [종교·철학]
1822년(순조 22)∼1894년(고종 31). 조선 후기의 학자. 도정의 아들, 어머니는 김태려의 딸이다. 이항로의 문인, 1866년(고종 3) 사복시주부·평안도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으며, 1882년 사헌부지평·사헌부집의 등의 직이 내려졌으나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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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일증시문서 / 朴文一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증규장각제학 박문일(朴文一)에게 '문헌(文憲)'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박학다문왈문 행선가기왈헌'이라 적어 문헌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0일 순종은 26명에게 시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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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 博物館 [예술·체육/건축]
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 등을 수집과 보존, 진열하여 일반인에게 전시하고 학술연구 및 사회교육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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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 朴敏 [종교·철학/유학]
1566(명종 21)∼1630(인조 8). 조선 중기의 학자. 정구의 문인이다.『대학』과『심경』을 배울 때 정구는 그의 기국이 충후함을 인정하여 제자들에게 그를 스승으로 삼을 것을 말하고는 하였다. 그 뒤 장현광을 만나 역리를 의논할 때 장현광은 그의 높은 학문에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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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웅 / 朴敏雄 [역사/조선시대사]
1674(현종 15)∼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부사 원진, 청주에서 살았다. 도량과 재간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소년 때부터 이름이 났다. 뒤에 장신 장붕익과 이봉상이 각각 국사로서 조정에 천거하였다. 충청병마우후겸창의사, 상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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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효 / 朴敏孝 [종교·철학/유학]
1672년(현종 13)∼1747년(영조 23). 조선 후기 학자. 부친 박용서와 모친 홍이사 딸 남양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권신경 등의 동학들과 더불어 권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벼슬은 숭덕전참봉에 그쳤으나 후진교육과 학문에 힘써 이재·권상일 등 당대의 학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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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 / 朴炳 [종교·철학/유학]
1587(선조 20)∼1663(현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응천, 아버지는 동민, 큰아버지인 동현에게 입양되었다. 어릴 때 김장생의 문하에서 노닐었고, 또 김현성으로부터 학업을 전수받았다. 사복시첨정, 임천군수, 청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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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채 / 朴炳采 [언어/언어/문자]
1925∼1993. 국어학자. 1963년 3월부터 정년에 이르기까지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후학들을 교육하였고, 박물관장 등의 행정보직을 역임하였다. 1990년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임명되었으나 3년 후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국어의 역사적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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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천 / 朴秉千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1933년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서 박범준과 김소심의 2남 3녀 중 넷째(차남)로 태어났다. 세습무가 출신인 대금명인 박종기(朴鍾基)의 손자다. 18세 때부터 판소리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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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령 / 朴鳳齡 [종교·철학/유학]
1671(현종 12)∼1718(숙종 44). 조선 후기의 문신. 진환 증손, 할아버지는 증휘, 아버지는 성익, 어머니는 서정리의 딸이다. 현감 민종로의 딸과 혼인하였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헌납·이조좌랑·부수찬·수찬·이조정랑·부교리·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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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 博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7품 관직. 정원은 성균관에 3인, 홍문관에 1인, 승문원에 2인, 교서관에 2인이다. 연산군 때 성균관을 혁파하면서 박사직도 다른 관서로 나누어 보냈다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원상회복되었다. 1895년(고종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