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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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학 / 蒙學 [언어/언어/문자]
사역원에서 가르친 4가지 언어 가운데 몽골어. 13세기 전반 고려는 강력한 원의 침략을 받고 재침 우려 속에서 원나라의 사자를 응대하기 위해서 몽골어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 교육은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후 갑오개혁 때까지 계속되었으나, 고려와 달리 조선은 몽골과 직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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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학이천자 / 蒙學二千字 [언어/언어/문자]
이종린(李鍾麟)이 편찬한 한자교습서. 불분권(不分卷) 1책, 목판본. 1914년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간행되었다. 청소년들에게 한자를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하였다. 4구로 된 한자성어 500수가 실려 있어 한자가 모두 2,000자인데, 각 한자의 아래 한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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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학훈도 / 蒙學訓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사역원 소속의 몽학을 가르치던 관직. 조선시대에는 외교 정책으로 사대 교린을 표방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역학 교육에 힘썼다. 1393년(태조 2) 4월 육학에 역학을 두어 양가 자제를 뽑아 교육을 시킨 것으로 보인다. 몽학에 관한 기록이 처음 보이는 것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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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가 / 夢幻歌 [문학/고전시가]
작자, 연대 미상의 불교가사. 4·4조 위주 4음보 율격의 가사. 같은 제목으로 여러 이본이 전하는데, 분량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서사─본사─결사의 3단 구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몽환가」와 유사한 내용의 가사로 「몽환별곡」이 있다. 두 작품은 같은 주제를 상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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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별곡 / 夢幻別曲 [문학/고전시가]
작자, 연대 미상의 불교가사. 4음보 율격의 가사. 『악부』본 「몽환별곡」 외에 여러 이본이 전하는데, 각각 분량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서사─본사─결사의 3단 구성을 보이고 있다. 「몽환가」와 「몽환별곡」은 세상만사가 다 몽환이니 염불에 힘쓰자는 같은 주제를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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묄렌도르프 / P. G. von Möllendorff [정치·법제/외교]
1847-1901. 독일인. 조선 최초의 서양인 고문관으로 외교와 세관 업무 담당. 1869년 중국으로 건너와 청의 해관에서 5년동안 하급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1874년 5월 이후 독일영사관 통역관으로 활동, 1879년에는 천진영사관의 부영사로 임명되었다. 18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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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각사 / 妙覺寺 [종교·철학/불교]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낙산에 있는 절 1942년 5월 이홍선이 창건한 대한불교관음종의 총본산이다. 현 위치에 절을 세우면 서울이 평안하고 시민생활에 안정을 가져온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터를 잡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석굴암, 요사채가 있다.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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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갈 / 墓碣 [문학/한문학]
한문문체의 하나. 묘갈은 형태가 둥글고 묘주의 품계가 5품 이하이며 그 체제가 질실한 것이다. ‘묘갈’과 ‘묘비(墓碑)’는 본래 묘소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 본래는 구분되었으나 후대에 와서 서로 통용되었다. 묘갈은 서사(敍事)를 위주로 하는 정체(正體)와 의론(議論)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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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계 / 墓界 [사회/가족]
신분에 따른 묘지의 범위. 우리 나라에서는 묘문이나 묘도·분장 등은 설치하지 않고 단지 분묘와 그 주위를 잔디로 가꾸어 구역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범위는 보(步:옛날의 영조척으로 5자, 또는 周尺으로 6자)를 단위로 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묘계는 ≪고려사≫에서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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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도 / 猫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섬.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1,385명(남 737명, 여 648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515세대이다. 취락의 분포는 섬 중앙의 유동마을과 남쪽 해안의 장촌마을에 집중되어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0.92㎢, 밭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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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동교회 / 妙洞敎會 [종교·철학/개신교]
개신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 1910년 연동교회에서 분립했다. 담임목사 게일이 천민 출신인 고찬익, 이명현, 임공진 등을 장로로 삼은데 대하여 양반 출신의 이원금, 함우택, 오경선 등 100여명이 심하게 반발하였다. 1912년 일본조합교회의 한국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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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책판 / 妙法蓮華經冊板 [언론·출판/출판]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경전인 묘법연화경 책판. 237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5호. 이 책판은 ‘강희이십사년을축 중하일 경상남도 함양군 지리산 안왕사 신간유진(康熙二十四年乙丑 仲夏日 慶尙南道 咸陽郡 智異山 安旺寺 新刊留鎭)’이라는 간기(刊記)가 있으므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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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 廟司 [정치·법제]
종묘 제사를 위해 종묘를 청소할 때, 쓰이는 각종 도구의 설치 및 정리를 담당한 종묘서의 관원. 종묘에서 제사가 있을 때, 제사 전날 종묘를 청소하고 제삿날에는 제기와 찬구 등을 갖추어 놓았다. 제사 후에는 폐백 묻는 것을 감시하고 예찬을 거두는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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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천묘제전홀기 구묘고유제견전 신묘안묘제 / 墓所遷墓祭奠笏記 舊墓告由祭遣奠 新墓安墓祭 [정치·법제]
무덤을 이장할 때 행하는 의식에 사용되는 홀기. 제목 밑에 작은 글씨로 구묘에서 거행하는 고유제와 견전, 신묘에 올리는 안묘제 때의 홀기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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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천묘제전홀기 파구분고유제 / 墓所遷墓祭奠笏記 破舊墳告由祭 [정치·법제]
무덤을 이장할 때 행하는 의식에 사용되는 홀기. 무덤을 옮긴다고 고유하는 제사에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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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수사 / 妙壽寺 [종교·철학/불교]
1920년 4월에 창건한 한국불교법화종의 최초 사찰로서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북수동에 있는 절. 새벽 4시만 되면 목탁소리가 담 밖을 넘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구실을 하였다 하여 ‘똑딱절’이라고도 한다. 창건 이후 교세를 확장하여, 1946년 3월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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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제 / 墓祭 [사회/가족]
묘에서 지내는 제사. 주자의 『가례(家禮)』에 의하면, 4대 조상까지는 3월 상순에 날짜를 택하여 묘제를 지내고, 그 윗대의 조상은 10월 1일에 올리도록 되어 있다. 한편,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하면, 이 묘제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 주희가 한번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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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기 / 묘지기 [사회/촌락]
남의 묘를 보살펴주는 관리인. 한 집이나 문중에서 그 선조의 묘사(墓祀)와 묘소 관리를 위하여 마련한 위토답(位土畓)을 소작하면서, 묘소의 관리와 묘사의 제수 준비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용인의 처지에 있으나, 신분적 예속 관계에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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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표 / 墓表 [문학/한문학]
한문문체의 하나. 문체가 비갈(碑碣)과 비슷하다. 천표(阡表)·빈표(殯表)·영표(靈表)는 모두 뜻이 다르지만 명대(明代) 이후로는 모두 합쳐 묘표라 부른다. 천표는 무덤 앞에 세우는 표석이고, 빈표란 장사지내지 않았을 때 세우는 표석이며, 영표란 처음 사람이 죽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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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 妙香山 [지리/자연지리]
평안북도 영변군·희천군과 평안남도 덕천군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909m. 묘향산맥의 주봉을 이루며 예로부터 동금강(東金剛)·남지리(南智異)·서구월(西九月)·북묘향(北妙香)이라 하여 우리 나라 4대 명산의 하나로 꼽혔다. 또한, ‘수이장(秀而壯)’이라 하여 산이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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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기 / 妙香山記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김시화(金時和)가 지은 기행문. 이 기행문은 1853년(철종 4)손한영(孫漢永)이 시문 4권과 함께 간행한 『죽하집 竹下集』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묘향산은 해동(海東)의 명산으로 태백산이라고도 한다. 단군이 이 산의 단목(檀木) 아래 내려와서 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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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두봉화군락 / 妙香山─群落 [과학/식물]
북한의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에 있는 겹산철쭉. 북한 천연기념물 제91호. 두봉화는 겹산철쭉을 북한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산철쭉에 비하여 꽃잎이 겹으로 되어 많은 것이 다르며, 사찰에서 흔히 가꾸어 왔다. 겹산철쭉은 중국산이며 사찰을 통하여 일본으로도 전파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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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들메나무 / 妙香山─ [과학/식물]
북한의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에 있는 들메나무. 북한 천연기념물 제87호. 들메나무는 묘향산의 보현사와 좀 떨어진 길 오른족 옆에 다른 나무들과 같이 자라고 있다. 옆에는 향산천이 흐르고 있다. 들메나무가 자라고 있는 토양은 퇴적작용에 의하여 생긴 자갈이 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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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맥 / 妙香山脈 [지리/자연지리]
낭림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갈라져 나와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산맥. 대동강과 청천강 유역의 분수계를 이룬다. 이 산맥 중에는 묘향산(妙香山, 1,909m)을 비롯하여 무동산(舞童山, 1,762m)ㆍ용문산(龍門山, 1,180m)ㆍ달마봉(達摩峰, 1,38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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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산뽕나무 / 妙香山山뽕나무 [과학/식물]
북한의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에 있는 산뽕나무. 북한 천연기념물 제88호. 산뽕나무는 묘향산 보현사의 뜨락에서 자라고 있다. 북한 산뽕나무 가운데서 가장 크고 오래 자란 나무이다. 산뽕나무가 자라고 있는 토양은 화강암지대에 생긴 산림밤색 토양이고 모래메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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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소나무 / 妙香山─ [과학/식물]
북한의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에 있는 소나무. 북한 천연기념물 제89호. 묘향산의 상원암 등산로를 따라 3㎞ 정도 올라가면 상원암 마당 앞에서 자라고 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92호 상원암의 은행나무와 더불어 나란히 서 있다. 상원암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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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지 / 妙香山誌 [문학/한문학]
승려 설암(雪嵒)이 지은 연대 미상의 된 기행문. 1권. 한문필사본. 묘향산은 장백산(長白山)의 지맥으로 압록강 남쪽 언덕과 평양부(平壤府)의 북쪽에 있어서 요동(遼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이 높고 큰 것이 비길 데가 없다. 땅에는 향나무가 많아서 겨울에도 푸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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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 [문학/구비문학]
무속의식에서 무당이 구연하는 사설이나 노래. 무속의식에서 구연되는 언어는 무가와 무경(巫經)으로 나누어진다. 무경은 주로 독경에서 구송되고, 무가는 굿에서 가창된다. 그러나 독경에서도 서사무가·축원·덕담 등의 무가가 구송되고, 굿에서도 천수경(千手經)·축귀경(逐鬼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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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칠서 / 武經七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무과 이론 시험을 위한 7종의 병서. 손자(孫子),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육도(六韜),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 위료자(尉繚子),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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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리지석묘 / 茂溪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1동 무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1962년 농부에 의해 냇돌로 벽을 쌓고 3매의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석곽이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덮개돌[上石]은 없어졌으나 원래 남방식 고인돌의 하부구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곽은 동서장축이며, 크기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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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호 / 武溪湖 [지리/자연지리]
함경남도 경성군 어대진읍에 있는 호수. 어랑천(漁郞川) 하구와 가깝다. 북북동∼남남서 방향을 따라서 약 3㎞ 길이로 발달되어 있으며, 너비 0.6㎞, 둘레 5.2㎞, 넓이 0.6㎢이다. 어랑천의 지류가 어대진항(漁大津港) 서쪽 약 4㎞ 지점에서 신생대 제3기말과 제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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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 / 舞鼓 [예술·체육/무용]
고려 때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따르면 충렬왕 때 시중 이혼(李混)이 영해(寧海)에 유배되었을 때 바닷가에서 물에 뜬 뗏목을 얻어 큰 북을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크고 웅장해 북을 두드리며 춤춘 데서 기원했다고 한다.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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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 / 舞鼓 [예술·체육/무용]
궁중정재(宮中呈才)에 사용하는 북의 하나. 고면(鼓面)은 청ㆍ홍ㆍ백ㆍ흑의 빛깔을 사용하고, 원광(圓光)을 그려 사방(四方)의 방위를 상징한다. 북통에는 둥근 고리 셋을 달고 가자(架子)주 01)에는 세 기둥을 세우고 기둥 안에 구철(鉤鐵)주 02)을 설치하여 북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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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 / 武科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에 무관을 임용하기 위해 실시된 과거. 조선시대 무과에는 문과와 마찬가지로 3년에 한번씩 정규적으로 실시되는 식년무과와 그 밖에 임시로 특설되는 증광시·별시·알성시·정시·춘당대시 등 각종 비정규 무과가 있었다. 합격자에게는 합격증으로 홍패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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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학교 / 武官學校 [역사/근대사]
1896년 1월 무관학교 관제에 따라 초급 무관 양성을 위해 설치된 근대적인 군사 교육 기관. 1896년 1월 무관학교 관제 공포와 함께 무관학교가 설립되었다. 무관학교는 설립된 지 한 달 만에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무용화되었다. 1897년 2월 고종이 환궁한 뒤 대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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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 / 舞具 [예술·체육/무용]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의 무구로 구분되며 춤을 출 때 갖추어야 할 도구. 정재(呈才)에서 사용되는 용선(龍扇)·정절(旌節)·봉선(鳳扇)·미선(尾扇)·작선(雀扇)·죽간자(竹竿子)·인인장(引人仗)·개(蓋) 등은 춤을 추는 행위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장식이나 의물(儀物)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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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군사 / 撫軍司 [정치·법제/법제·행정]
1593년(선조 26) 윤11월 임진왜란 때 있었던 왕세자의 행영. 본래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 분비변사(分備邊司)로 설치되었던 기관으로, 이해 12월 공주에서 무군사로 개칭해 개설되었다. 무군사의 설치는 명군(明軍)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즉 1593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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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군선 / 無軍船 [정치·법제/국방]
조선 초기 수군을 배정하지 않고 비상시에 대비하여 예비적으로 둔 군선. 고려 말기부터 창궐한 왜구를 토벌, 진압하기 위하여 조선 초기부터 군선을 증강하여 왜구를 무찌르고 대마도를 정벌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무군선은 경기의 각 포에 47척, 충청도에 10척 등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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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 無窮花 [과학/식물]
우리 나라의 국화(國花). 아욱과의 내한성(耐寒性) 낙엽관목. 꽃은 홑·반겹 등으로 아주 여러 가지이고, 꽃색깔도 흰색·분홍·빨강·보라 등 다양하며 무늬도 여러 가지로 화려한 꽃을 피운다. 꽃이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간 계속 피므로 무궁화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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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사건 / 無窮花事件 [역사/근대사]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무궁화를 심어 민족정신을 앙양하고자 한 사건. 남궁억은 민족정신의 앙양을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무궁화심기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는 이 사업이 불온사상을 고취하고 치란을 교란시킨다 하여 모곡학교 교직원과 교회목사, 그리고 친척들까지 모두 체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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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일호 / 無窮花一號 [경제·산업/교통]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통신위성. 무궁화1호 위성의 모습은 육면체의 본체 위에 접시형 안테나가 있으며 좌우에는 직사각형의 태양전지판이 부착되어 있는 형태이다. 본체의 크기는 가로 1.42m, 세로 1.96m, 높이 1.74m이며 태양전지판을 펼쳤을 때 전체의 길이는 1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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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광산 / 無極鑛山 [경제·산업/산업]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용계리에 있었던 금광산. 지질은 화강편마암(花崗片麻岩)·규장암(硅長岩)·흑운모화강암(黑雲母花崗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상(鑛床)은 열극충전함금석영맥(裂隙充塡含金石英脈)이며, 맥수는 50개조이고, 연장 300∼600m, 심도 200m, 맥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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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근촌 / 武斤村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 때무근촌현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무읍현(武邑縣)으로 고쳐 김제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백제 때는 시산군(屎山郡)의 영현이었던 것으로 본다. 고려 태조 때부윤(富潤)으로 고쳐 임피현의 영현으로 하였다가 뒤에 만경현(萬頃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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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도 / 巫女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섬. 진봉반도(進鳳半島) 서쪽으로 20∼40㎞ 떨어져 있는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 가운데 한 섬으로, 군산시 남서쪽 31㎞, 신시도로부터 0.5㎞ 떨어져 있다. 동경 126°25′, 북위 35°48′에 위치하며, 면적 1.74㎢, 해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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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촌 / 巫女村 [사회/촌락]
무당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마을. 『세종실록』 13년조에 “무격(巫覡)은 본시 성 밖 외딴 곳에 별거하여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을 무격리(巫覡里)라 하였는데, 근래에 와서는 잡거해 사헌부의 계(啓)를 따라 주거를 금하고, 또한 양반 부녀자들이 무격집에 드나드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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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농염철사 / 務農鹽鐵使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에 설치된 전농사의 지방관직.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여 전농사를 두었는데, 이 때 전농사의 관리로서 지방에 파견된 사람들을 총칭하였다. 품질이나 정원은 알 수 없다. 다만, 전농사의 직임이 자성을 조달하는 것이었으므로, 각 지방에 파견되어 이를 거두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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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미 / 無端米 [경제·산업/경제]
고려 후기 공민왕 때 국고의 부족을 이유로 거두어들였던 잡세. 1359년(공민왕 8) 이래로 홍건적이 계속 고려를 침범하니 국고가 고갈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백성으로부터 쌀과 콩을 차등 있게 더 거두었는데, 대호는 쌀과 콩을 각각 1석, 중호는 10두, 소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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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내력 / 巫黨來歷 [종교·철학/민간신앙]
무당 내력에 관한 그림책. 서두에는 악기를 든 잽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잽이는 모두 네 사람인데 장구와 제금을 두 여자가, 해금과 피리는 두 남자가 맡고 있다. 다음으로 감응청배(感應請陪), 제석거리(帝釋巨里), 구릉, 뒷전 등의 그림이 있다. 무속의 근거를 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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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노랫가락 / 巫堂─ [문학/고전시가]
서울과 경기도에서 연행되는 굿에서 불리는, 초·중·종 3장으로 되어 있는 무당의 노래. 무당노랫가락은 사설 형태가 시조와 동일해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4음보의 3장 구조라는 점뿐 아니라 종장 둘째 음보가 5음절인 것까지 시조와 형태가 같다. 음악적 구성은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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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춤 / 무당춤 [예술·체육/무용]
무당이 굿을 할 때 추는 춤. 강신무가 추는 춤은 발작적인 광란한 춤이 나오기도 하고, 신격자로서 권위나 위엄을 보이기도 하며, 장난기가 있는 춤으로 변하기도 하는 등 유동적이고 변화가 심하다. 그러나 세습무의 춤은 축원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일반적인 가무를 하면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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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호랑이설화 / [문학/구비문학]
호랑이떼에게 잡혀먹히게 된 사람이 피리소리로 호랑이떼를 물리치고 부자가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 독립유형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유물과 3형제」 설화의 삽화로서도 구연되며, 서울을 비롯하여 충청남도 홍성·서산·아산, 평안북도 철산·정주·선천 등지로부터의 자료보고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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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덕장군 / 武德將軍 [정치·법제/법제·행정]
중국 원나라의 무산계 가운데 하나. 정5품 하계이다. 원나라의 무산계이지만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의 관직과 함께 고려인에게도 수여되었다. 이후 1280년(충렬왕 6) 다음 해에 있을 제2차 일본원정을 앞두고 원정에 참여하는 박지량(朴之亮) 등 고려군 지휘관 10명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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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 [사회/가족]
사람의 사체를 매장한 시설물. 무덤은 어원적으로 볼 때 ‘묻다[埋]’라는 동사의 어간 ‘묻’에 명사화 접미어 ‘엄’이 맞춤법의 규정에 따라 ‘무덤’으로 표기된 것으로서 ‘죽[死]+엄’이 ‘주검’으로 표기되는 것과 같은 예이다. 무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그 기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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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 / 舞跳會 [예술·체육/무용]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양의 사교춤과 민속춤으로 행해진 공연 내지는 회합. 최초의 무도회는 1905년 11월 6일에 경성의 청나라 공사관에서 행한 ‘무도연회’(蹈舞宴會)였다. 이 무렵 무도회 내지 도무회(蹈舞會) 소식이 종종 신문에 기사화되었는데, 대한제국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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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 / 舞童 [예술·체육/무용]
궁중 연향에서 춤과 노래를 담당한 사내아이. 주로 남성들의 잔치인 외연(外宴)에서 춤과 노래를 공연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외연에 무동을 쓰는 것은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위정자가 여악으로 인해 마음과 행실이 방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다. 무동은 원래 공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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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놀이 / 舞童─ [생활/민속]
나이 어린 소년을 뽑아 여장(女裝)을 시켜 남자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연행하는 놀이. 걸립패(乞粒牌)·답교(踏橋)놀이·남사당패(男寺黨牌)·농악(農樂) 등에서 연행되며. 지방에 따라서 ‘꽃받기’·‘꽃나비’·‘꽃나부풍장’ 등으로 불린다. 무동은 노랑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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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서원 / 茂洞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었던 서원. 1704년(숙종 30) 지방유림의 공의로 전좌명(田佐命)·이우(李瑀)·전윤무(田胤武)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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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연희장 / 舞童演戱場 [예술·체육/무용]
1899년 전후에 경성의 마포와 용산에 재인과 광대들이 운영한 공연장. 무동연희장(舞童演戱場)은 개화기에 재인 광대들이 상설 공연으로 흥행하기 위해 운영한 공연장으로, 1899년 4월 서강의 놀이패가 마포의 아현 근방에 설치했고, 1900년 3월에는 용산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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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 無等山 [지리/자연지리]
광주광역시 북구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및 담양군 남면에 걸쳐 있는 산. 무등산은 동경 126°06′∼127°01′, 북위 35°06′∼35°10′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1,186.8m, 총면적은 30.23㎢이다. 1972년 무등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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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 無等山 [문학/고전시가]
백제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가사는 전하지 않고, 「지리산 知異山」·「선운산 禪雲山」·「방등산 方等山」 등과 함께 『고려사』 악지에 내력만 실려 전한다. 무등산은 광주(光州)에 있는데 백제 때는 이 곳에 성(城)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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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주상절리대 / 無等山柱狀節理帶 [지리/자연지리]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 무등산에 위치한 주상절리대. 무등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주상절리대로 2005년 12월 16일에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북위 35°05´45˝∼35°08´37˝, 동경 126°58´46˝∼127°01´44˝에 해당한다. 총 면적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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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국립공원 / 無等山國立公園 [지리/자연지리]
광주광역시 동구 및 북구, 전라남도 화순군 및 담양군에 걸쳐 있는 무등산을 중심으로 지정된 국립공원. 광주광역시 주변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인 무등산 자락에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무등산은 고도가 낮은 땅 사이에 홀로 우뚝 솟은 거대한 산으로, 호남의 신전(神殿)이라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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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동종 / 無量寺銅鍾 [예술·체육/공예]
1636년(인조 14)에 승려 장인 정우(淨祐)와 신원(信元) 등이 제작한 동종.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2호.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위치한 무량사 대웅전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종이다. 무량사동종은 종신에 “숭정 9년 병자 5월 일 충청도 홍산현 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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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오층석탑출토유물 / 無量寺五層石塔出土遺物 [예술·체육/공예]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일괄유물(一括遺物). 총 9점 중 금동불상 4구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60호. 무량사지 석탑은 1971년에 해체 수리되었는데, 이 때 5층 탑신(塔身)과 3층 탑신, 그리고 초층(初層) 탑신 안에서 사리구(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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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 / 武靈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영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무시이군(武尸伊郡)이었는데, 당나라에 망한 뒤 사반주(沙泮州)의 영현(領縣)으로 모지군(牟支郡)이 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무령군으로 바꾸어 무진주(武珍州)에 예속시켰고, 장사(長沙)ㆍ무송(茂松)ㆍ고창(高敞)의 세 현을 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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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금귀걸이 / 武寧王金製耳飾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귀걸이. 국보 제156호.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묘이다. 묘지석과 함께 모두 108종 2,900여점 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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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금제 뒤꽂이 / 武寧王金製釵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뒤꽂이. 국보 제159호.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었음을 알리는 묘지석과 함께 모두 108종 2,9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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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금제관식 / 武寧王金製冠飾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관식. 국보 제154호. 무령왕릉은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무덤은 지석을 통하여 501년에서 523년에 재위하였고 525년 매장된 무령왕과 529년에 매장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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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발받침 / 武寧王足座 [예술·체육/공예]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무령왕의 발받침. 국보 제165호. 왕의 족좌는 높이 20㎝, 길이 38㎝, 왕비의 족좌는 높이 39.5㎝, 길이 21.9㎝.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에서 많은 부장품과 함께 왕과 왕비의 목제 발받침이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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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武寧王陵銅鏡一括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 거울 일괄.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세 점의 동경으로, 왕의 머리 부분에서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 왕의 족좌 부근에서 방격규구신수경(方格規矩神獸鏡),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수대경(獸帶鏡)이 각각 출토되었다. 의자손수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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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비 금귀걸이 / 武寧王妃金製耳飾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금귀걸이. 국보 제157호.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5쌍의 금귀걸이가 출토되었는데 이 중 왕의 것은 1쌍이고 나머지는 모두 왕비의 것이다. 왕비 귀걸이는 머리 쪽에서 2쌍, 발치 쪽에서 2쌍이 출토되었다. 발치 쪽에서 출토된 것은 원판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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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비 금제관식 / 武寧王妃金製冠飾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제 관식. 국보 제155호. 501년에서 523년에 재위하였고 525년 매장된 무령왕과 529년에 매장된 왕비의 부부묘인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제 관식이다. 금제 관식은 연도 쪽을 기준으로 왼쪽에 위치한 왕비의 시상대의 머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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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비 베개 / 武寧王妃頭枕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비의 머리를 받쳐 놓은 장례용 나무 베개. 국보 제164호. 백제 무령왕릉은 부부 합장묘로, 목제 두침과 족좌가 두 세트 발견되었다. 왕의 유물은 흑칠을 하고 얇은 금판으로 장식하였으며, 왕비의 경우는 붉은색으로 칠하고 금박으로 공간을 구획하여 문양을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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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비 은팔찌 / 武寧王妃銀製釧 [예술·체육/공예]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은팔찌. 국보 제160호.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었음을 알리는 묘지석과 함께 모두 108종 2,9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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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록관 / 無祿官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녹봉을 지급받지 못하던 관리 또는 그 관직. 조선시대의 관직에는 실직과 산직이 있었다. 실직은 녹관과 무록관으로 대별된다. 무록관은 경관직뿐 아니라 외관직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무록관 제도가 세조 이후에 확립된 것은 양반의 신분 유지와 국고를 해결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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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룬나무 / Euonymus japonica var. macrophylla Regel [과학/식물]
노박덩굴과 사철나무속에 속하는 상록 관목 또는 소교목. 천연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된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미조리의 상록수림에는 광나무, 돈나무, 사스레피나무, 이대, 자금우, 조릿대, 팔손이 등 40여 종의 식물과 함께 무룬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사철나무는 잎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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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 / 武陵溪谷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에 있는 계곡. 무릉계곡은 두타산(1,353m)과 청옥산(1,256m), 고적대(1,354m)에서 발원한 계류들이 흐르는 골짜기로, 호암소부터 용추폭포까지 약4㎞의 계곡으로, 산수의 풍치가 절경을 이루어 소금강이라고도 불리며, 1977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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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 / 武陵桃源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활자본. 「무릉도원」은 다른 고전소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남자주인공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고관대작이 아니다. 장사하는 부상으로 할아버지는 장사하러 갔다가 객사하고, 아버지는 가지고 있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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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 [생활/의생활]
수직기(手織機)인 재래식 베틀로 제직된 면평 직물. 면직물은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에 면포(綿布)·목(木)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색·품질·용도에 따라서 백면포·구승백면포·목홍면포·오색목·백목·극세목·백세목·관목·생상목·홍세목·황세목·초록목·남목·자목·홍목·흑목·아청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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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시조집가본 / 無名時調集가本 [문학/고전시가]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편자 미상의 시조집. 1책. 『무명시조집 가본』은 당대의 일반적인 가집들과 달리 작자나 장단곡조(長短曲調) 등을 전혀 기록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숙련된 가창자들의 편의를 위해 가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엮었음을 알 수 있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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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회 / 無名會 [언론·출판/언론·방송]
1921년에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언론단체. 문화보급의 촉진, 언론자유의 신장, 여론의 선도, 회원의 명예와 권리의 옹호 및 회원상호간의 친목도모 등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창립 직후인 1922년 1월 26일 첫 월례회에서 신문과 잡지에 대한 검열 및 허가제도의 철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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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왕정충록 / 武穆王貞忠錄 [문학/고전산문]
명나라 웅대목(熊大木)이 지은 『대송중흥통속연의(大宋中興通俗演義)』의 번역본. 한글필사본. 필사자 미상. 한글본 『무목왕정충록』은 원래 12권 12책이었으나 권3∼5, 9, 11이 유실되어 현재 7책만 장서각에 전한다. 이 책은 제12권에 ‘상장집서(上章執徐) 탕월(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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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 / 武舞 [예술·체육/무용]
종묘(宗廟)와 문묘(文廟)의 제향(祭享)에서 추는 일무(佾舞:사람을 여러 줄로 벌려 세워서 추게 하는 춤)의 하나. 무덕(武德)을 상징하는 춤으로 문덕(文德)을 상징하는 문무(文舞)와 쌍을 이룬다. 종묘와 문묘제향의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의 순서에서 춘다.현재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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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당선생문집 / 无悶堂先生文集 [생활]
별집류(別集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2책이며, 판종은 목판본이다. 규격은 19.8×29.5cm이고, 반곽은 19.7×14.7cm이다. 표제와 판심제는 무민당집(无悶堂集)이다. 박인(朴絪)이 지은 것으로, 권수는 4권 2책이다. 각재(覺齋), 권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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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복 / 舞服 [생활/의생활]
춤을 출 때 입는 옷. 춤은 사람의 감정이나 의지를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춤을 출 때 입는 의복도 춤이 내포하고 있는 감정이나 의미에 어울리게 구성해야 한다. 이와 같이, 춤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 시대나 지역에 따라 그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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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복친 / 無服親 [사회/가족]
상례(喪禮) 때 상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친족. 일명 단면친(袒免親)이라고도 하나, 엄밀히 말하여 무복친과 단면친 간에는 차이가 있다. 단면친은 5대조를 같이하는 본종친족(本宗親族)으로, 종고조부(從高祖父)·고대고(高大姑)·재종증조부(再從曾祖父)·재종증대고(再從曾大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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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전 / 無分廛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의 시전 중 국역부담의 의무가 없던 전. 무분전에는 외장목전·채소전·우전·혜정교잡전·세물전·잡철전·염전·백당전·계아전·복마제구전·내외세기전·백립전·흑립전·좌반전·침자전·내외분전·생치전·망건전·도자전·종자전 등의 91개 전과 그 밖의 소소한 각 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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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사 / 武備司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군적과 병기 등 군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 병조소속의 부서. 조선 건국 초 병조는 정3품의 전서(典書)를 장관으로 하는 하위의 관서였고, 그 임무를 분담하는 속사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1405년(태종 5) 1월 병조가 정2품 아문으로 격상되면서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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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지 / 武備志 [정치·법제/국방]
명나라 모원의가 집대성한 병법, 무예서. 명의 내우외환과 군비의 부족을 실감한 모원의가 명의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하여 중국 도대의 2천여 종의 군사관련 서적을 15년간 수집, 편집하여 1621년(광해군 13)에 편찬하였다. <무비지>는 240권, 200만여 문자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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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 巫山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과 고성군 수동면에 걸쳐 있는 산. 무산의 높이는 1,320m로, 태백산맥 중의 한 산이며 휴전선 북쪽의 북한 지역에 속한다. 인제군 해안분지와는 직선거리로 13㎞ 정도 북측에 위치한다. 무산은 휴전선을 따라 북류하여 고성 부근에서 동해로 흘러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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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계 / 武散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의 무신들에게 주던 관계. 무산계가 처음으로 실시된 것은 995년(성종 14)으로서 그 이전은 신라와 태봉(泰封)의 관계를 참작해 만든 고려의 관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문·무산계의 실시가 중요한 것은 종래에는 구분되어 있지 않던 문·무반이 구분되어 양반관료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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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고원 / 茂山高原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북서부에 있는 고원. 무산고원의 두만강과 그 지류인 서두수·연면수(延面水) 등 여러 하천 유역의 일대에는 낙엽송을 주로 하는 침엽수림이 밀림을 이루고 있으며, 이를 운반하기 위하여 백무선(白茂線)이 부설되었다. 성천수(城川水)유역에 있는 무산철산(茂山鐵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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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군 / 茂山郡 [지리/인문지리]
광복 당시 함경북도 서북단에 있었던 군. 도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군으로, 동쪽은 부령군과 경성군, 서쪽은 함경남도 혜산군, 남쪽은 길주군, 북쪽은 두만강을 접하고 있다. 동경 128°3′∼129°35′, 북위 41°13′∼42°26′에 위치하며, 면적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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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군읍지 / 茂山郡邑誌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무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사본. 표지에는 ‘咸鏡北道茂山郡邑誌(함경북도무산군읍지)’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무산부읍지』 1책이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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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령 / 茂山嶺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부령군 서상면과 회령군 창두면 사이에 있는 고개. 높이 606m. 함경산맥의 북단에 있는 신봉(新逢)과 옥성산(玉城山)과의 안부(鞍部)에 있다. 남사면은 청진만으로 흘러드는 수성천(輸城川)의 계곡으로 통하고 북사면은 두만강의 지류인 회령천(會寧川) 계곡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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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범의구석유적 / 茂山─遺蹟 [역사/선사시대사]
함경북도 무산군 호곡동에 있는 신석기에서 철기시대에 걸친 주거지 유적. 이 유적은 1959년부터 1961년까지 3년 동안 5차에 걸쳐 조사되어 약 40개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층위는 두터운 퇴적층이 여러 시기의 문화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일부는 교란되어 있었다.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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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선 / 茂山線 [경제·산업/교통]
함경북도 부령군 고무산과 무산군 무산 사이에 부설된 철도. 총연장 57.9㎞. 고무산을 기점으로 서상-무수-폐무산-차령-신참-서풍산-주초-무산철산을 거쳐 무산에 이른다. 1929년에 개통되었으며 무산지역에서 채굴된 노천 철광석을 청진 지역의 제철소까지 수송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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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향 / 舞山香 [예술·체육/무용]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춘앵전(春鶯囀)과 같이 한 사람이 추는 독무(獨舞)이다. 춘앵전은 화문석 위에서 추지만 무산향은 침상(寢床)과 같이 짠 대모반(玳瑁盤) 위에 올라서서 추는 춤이다. 춤사위와 무복(舞服)도 춘앵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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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가 / 無常歌 [문학/고전시가]
1960년대 무형문화재 조사 과정에서 채록된 불교가사. 4음보 율격의 가사. 총 134구. 『화청(和請)』(문화재관리국,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65호, 1969)에 수록되어 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작품은 작법 기능 보유자인 권수근(權守根, 1910~?)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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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기간 / 無霜期間 [지리/자연지리]
늦은 봄의 마지막 서리 때부터 초가을의 첫 서리 때까지로 1년 중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 우리나라 무상기간은 해안 지역에서 길고 내륙 지역에서 짧다. 내륙 지역의 무상일수 분포를 보면 양평, 춘천, 홍천 등 영서 내륙지역과 인제, 대관령 등 영동 산간지역이 180일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