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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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 / 降水 [지리/자연지리]
대기 중에 포함된 수분이 액체 또는 고체로 변화되어 지표면에 떨어지는 기상현상. 강수는 주요 기후 요소 중 하나로, 지표에 떨어지는 수분의 총량을 강수량이라고 한다. 강수 현상에는 비·눈·우박·서리·이슬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강우(降雨)와 강설(降雪)이 가장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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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곤 / 姜秀昆 [종교·철학/유학]
1545(인종 1)∼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문신. 영선군 강지 현손, 아버지는 생원 강응운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의인왕후 박씨의 어머니인 고모집에서 성장하였다. 1582년(선조 15) 소격서의 참봉으로 입사한 뒤에 차차 관직이 올라 한성부참군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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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 / 姜舜 [역사/근대사]
1898-미상. 독립운동가·정치가. 경상남도 진주 출생.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투옥되었으며, 1921년에도 사회주의운동에 관계하여 체포되어 재류금지처분(在留禁止處分)을 받았다.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1923년에는 만주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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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룡왕지 / 康舜龍王旨 [역사/조선시대사]
1395년 무신 강순룡에게 특진보국숭록대부 재령백을 제수한 교지. 『경국대전』에는 문무관 4품 이상의 고신은 교지(敎旨)를 쓰게 되어 있는데, 조선초에는 교지를 왕지라고 하였다. 내용은 1395년에 강순룡을 특진보국숭록대부(정1품) 재령백(載寧伯)으로 임명하는 봉작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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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필 / 姜順弼 [역사/근대사]
1882-1921. 독립운동가. 경상북 상주군 이안면 출생. 경술국치 이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동지를 찾던 중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뜻을 같이하는 채기중(蔡基中)·유창순(庾昌淳)·유장렬(柳璋烈)·한훈(韓焄)·김병렬(金炳烈)·정만교(鄭萬敎)·김상옥(金相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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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중전 / 姜侍中傳 [문학/고전산문]
1913년 박건회(朴健會)가 지은 고전소설. 1책(48면). 구활자본. 1913년 조선서관(朝鮮書館)에서 발행하였다. 원제목은 ‘고려강시중젼’이며, 총 10회의 장회체소설(章回體小說)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강감찬의 역사적 전기와 비슷하다. 다만 처음의 태몽이나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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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 / 姜植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48∼?). 1669년(현종 10) 식년시 생원 3등 48위로 합격, 1689년(숙종 15) 증광시 진사 3등 68위에 합격 후 안음현감·금정찰방·은율현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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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 / 姜紳 [종교·철학/유학]
1543(중종 38)∼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강영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온, 아버지는 우의정 강사상, 어머니는 임간의 딸이다. 강사안에게 입양되었다. 1567년(명종 22) 수석으로 진사가 되고, 1577년(선조 10)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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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명 / 姜信明 [종교·철학/개신교]
1909년∼1985년. 목사·교육자. 1938년에 평양의 장로회신학교 본과를 마치고 1940년에 일본의 동경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광복 후 1953년에 미국의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 1964년에는 미국의 스털링대학으로부터 명예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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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재 / 康信哉 [문학/현대문학]
소설가. 1924년 서울 남대문로에서 의사인 강태순과 이순환 사이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32년함경남도 천마소학교에 입학했으나 1937년 부친의 사망으로 서울로 이주해 덕수소학교를 졸업했다. 1943년경기여고를 거쳐 이화여전에 진학했으나 1944년 서임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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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철 / 姜信喆 [종교·철학/유학]
1879-1949.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길원(吉元), 호는 퇴산(退山)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으로, 경상남도 밀양부(密陽府) 청운리(靑雲里)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강문영(姜文永), 조부는 도암(道巖) 강만형(姜晩馨), 아버지는 주사(主事) 강상희(姜象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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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 [문학/현대문학]
권정생(權正生)의 동화. 1969년『기독교교육』의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 당선작이며 작자의 등단작이다. 작가가 가정 형편과 신병을 비관하던 중에 쓴 작품이다. 시골의 어느 돌담 아래에 홀로 떨어진 강아지똥은 지나가는 참새나 흙조차 무시하는 하찮고 냄새나는 존재이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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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안리동물화석산지 / 江岸里動物化石産地 [과학/동물]
함경북도 온성군 강안리에 있는 동물화석 산지. 북한 천연기념물 제334호. 강안역에서 남쪽으로 약 3㎞ 떨어진 수남마을 언덕에 분포하는 제4기 지층에서 1987년에 발견된 털코끼리 화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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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암선생어록 / 剛菴先生語錄 [종교·철학/유학]
19세기 후반 어느 초학자가 기초적인 학업을 수행하면서 정리한 수양서. 『강암선생어록(剛庵先生語錄)』은 19세기 후반 낙학(洛學) 계통에 속하는 학자에게 수학(受學)하던 사람이 기록한 어록(語錄)으로, 말 한 사람과 기록한 사람 모두 미상이다. 경(經)‚ 예(禮)‚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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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암유고 / 剛菴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유학자 홍정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1년에 간행한 시문집. 8권 1책. 석인본. 그의 문인 홍종범(洪鍾凡)·김형순(金炯純) 등이 편집하여 1961년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재종질 순기(淳璣)의 서문이 있다. 단국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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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성 / 姜凉星 [역사/근대사]
1898-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 일대에도 항일투쟁을 하기 위해 김청봉·김현규·이범윤·진학신·최우익 등이 중심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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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세고 / 江陽世稿 [종교·철학/유학]
조선시대 학자 이여림·이구·이영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5년에 간행한 시문집. 8권 4책. 목판본. 1925년 후손 정추(鼎樞)가 편집하고, 정동범(鄭東範)과 정동철(鄭東轍)이 교정,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동철의 서문과 권말에 정추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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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죽지사 / 江陽竹枝詞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박규수(朴珪壽)가 지은 악부시. 서문에서는 합천의 내력을 간단히 설명하고, 본문에서는 역사·풍속·인물에 대한 주요 사항들을 칠언절구로 읊었다. 가실왕(嘉實王) 때 만든 가야금의 유래, 학사루(學士樓)와 최치원(崔致遠)의 문장, 조식(曺植)이나 이여송(李如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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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엄 / 康儼 [종교·철학/유학]
1766년(영조 42)∼1833년(순조 33). 조선 후기 성리학자. 강인석의 후손으로, 부친은 강윤조, 동생은 강검이다. 손재 남한조·입재 정종로 문하에서 수학하며, 제자백가의 서적 및 경전을 두루 익혔다. 1807년(순조 7) 식년시 생원 3등 24위로 합격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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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역 / 彊域 [지리/자연지리]
경계·변방·봉역·영역의 의미를 갖는 강토의 구역. 전자는 국경이라는 말로 대치 사용할 수 있고, 후자는 영토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즉, 강역이라는 말은 개념이 세분화되기 이전에 사용된 복합 용어라 할 수 있고, 국경이나 영토는 근대적 개념의 용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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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상 / 姜鍊翔 [역사/근대사]
1884-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이다. 부친 강신포와 모친 장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전통 한학(漢學)을 공부하였으며, 야학과 홍원사립학교를 통해 신학문을 수학하였다. 서당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에게 한문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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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설화 / 講筵說話 [역사/조선시대사]
조선후기 시강원에서 제23대 왕 순조의 경연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강론집. 22책. 필사본. 연설(筵說)내용을 기술하기 전에 경연의 날짜·장소, 강의대상서적, 입시 신하 등을 기재하였다.경연장소는 성정각(誠正閣)·희정당熙政政堂)·흥정당(興政堂)·함인정(涵仁亭) 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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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희 / 姜永熙 [종교·철학/유학]
1887-1948.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인원(仁元), 호는 잠곡(潛谷)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의 15세손이다. 천성이 순후하며 행실이 공검(恭儉)하고 처세에 근신(謹愼)하였다. 자질(子姪) 교육에는 효우(孝友)와 근엄(謹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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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예조 / 姜叡祚 [종교·철학/유학]
1894-1968.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성문(聖文)이고, 호는 만은(晩隱)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증조부는 수죽(水竹) 강문오(姜文伍)이고, 조부는 강석우(姜錫宇)이며, 아버지는 추은(樞溪) 강재선(姜在善)이다. 매서(梅西) 김극영(金克永)과 회봉(晦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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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경 / 姜玉瓊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본명은 한주(漢周). 경상남도 진주 출신. 최완자(崔完子)로부터 무용을 배워 「진주검무」공연에 참가하였다. 1967년에 「진주검무」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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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와집 / 剛窩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임필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34년에 간행한 시문집. 8권 4책. 필사본. 1834년(순조 34)에 그의 아들 이보(伊輔)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1782년(정조 2)으로 된 이광정(李光靖)의 서문이 있는데 이는 간행에 앞서 미리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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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완숙 / 姜完淑 [종교·철학/천주교]
1760년(영조 36)∼1801년(순조 1). 초기 천주교회의 순교자. 최초의 여성회장. 천주교가 충청도 지방까지 전해지자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서울에 올라온 뒤 교우들과 접촉하면서 전교에 힘쓰며, 신부 주문모를 영입하는 데 큰 소임을 하였다. 주문모가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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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금보 / 江外琴譜 [예술·체육/국악]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우조초편」·「우조제이편」·「우조제삼편」 등을 수록한 악보.거문고악보. 충청북도 청주시 강외초등학교 박물관 전시유물의 수집과정에서 한 학생이 기증한 것으로 현재 이 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지(韓紙)에 모필(毛筆)로 필사된 1책 15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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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환 / 姜龍煥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판소리 명창·창극 명인(1865-1938). 가야금산조의 명인인 강태홍의 아버지이며 판소리명창인 강남중의 작은아버지이다. 이날치로부터 판소리를 배워 명창이 되었고 서편제소리를 하였는데 계면조를 주장하였다. ‘심청가’ 및 ‘춘향가’를 창극화하였고, 최초의 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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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흘 / 姜鏞訖 [문학/현대문학]
재미동포 소설가. 함경남도 홍원 출생. 함흥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를 졸업하고, 3·1운동 후 중국·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학에서 의학을, 하버드대학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하고, 이어 『대영백과사전(大英百科事典)』의 편집위원을 지냈다. 대표작으로 일제의 한국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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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 / 姜虞 [종교·철학/대종교]
1862-1932년. 민족항일기의 대종교 지도자. 어려서부터 한학 공부, 1895년부터 9년간 함경북도 성진·길주·경원 등 세 곳의 감리를 역임하였다. 1909년 대종교가 조직되자 입교하였다. 1921년에 남도본사를 부설하고 도사교위리로서 3년간 시무하였다.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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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 姜宇奎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55-1920). 자는 찬구(燦九). 호는 일우(日愚). 1911년 북간도 망명, 1917년 길림에 인재교육을 위한 동광학교설립, 1919년 부임하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가 실패하고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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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성 / 康遇聖 [언어/언어/문자]
1581년(선조 14)∼? 조선 중기의 역관.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주교수(籌敎授)였던 유경(有慶)이다.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단편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일본의 풍속을 잘 알고 있었으며 언어에도 능통하여, 1609년(광해군 1)에는 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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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 / 姜橒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2∼1834). 중길의 증손, 할아버지는 일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색○이며, 어머니는 홍빈의 딸이다. 1807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자·전적·지평·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근사록집해》와《주서차의》수십 권을 남겼고, 칠서에 대한 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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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학 / 康雲鶴 [역사/근대사]
1882-1964.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이다. 동생은 강준학(康俊鶴)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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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 江原大學校 [교육/교육]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학길(효자동)에 위치하는 국립종합대학교. 1947년 6월에 지방의 농업교육 진흥과 농촌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강원도립춘천농업대학으로 설립되었다. 1951년 12월에 강원도립춘천농과대학으로 교명을 바꾸고, 1953년 2월에 국립으로 이관되어 국립농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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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 江原道 [지리/자연지리]
지명. 고려 때에 영동은 삭방도, 강릉도 또는 강릉삭방도라 하고 영서는 춘주도, 동주도 또는 교주도라 하던 것을 1389년(공양왕 1)에 영동·영서를 합쳐서 강릉교주도라고 합칭하였으나, 태조 3년 6월에 강릉교주도를 강원도로 개칭하여 감사 본영을 원주에 두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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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금강산 조리장수 / 江原道金剛山─ [문학/구비문학]
영남 지방의 서사민요. 주로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데, 웃음을 자아내는 희극적 내용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과부인 어머니가 방이 춥다고 불평을 하자, 아들은 효자라 방을 더 덥게 하느라고 애썼는데 소용이 없었다. 강원도금강산의 조리장수가 와서 어머니와 한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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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내열읍재실분등장계 / 江原道內列邑災實分等狀啓 [정치·법제]
강원도관찰사가 국왕에게 올린 강원도내 열읍의 재실을 분등한 장계. 분등한 내용은 ①이천 회양 안협 등 3개 고을을 우심읍에, ② 금성 정선 통천 흡곡 등 9개 고을을 지차읍에, ③원주 영월 평창 홍천 등 14개 고을을 초실읍에 두었다. 그리고 도내의 부족재 54결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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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방언 / 江原道方言 [언어/언어/문자]
강원도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 강원도방언은 중부방언의 한 하위 방언으로, 휴전선을 기준으로 이북 지역(이천·평강·김화·회양·통천)을 제외하고 이남 지역(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춘천·홍천·양양·횡성·평창·강릉·원주·영월·정선·삼척)의 방언을 주로 이르며,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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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아리랑 / 江原道─ [예술·체육/국악]
강원도 민요. 강원도 사람들의 산간생활의 정서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17절과 후렴으로 이루어진 유절형식(有節形式)의 곡이다.가사의 1절은 “아주까리 동백아/열지를 마라/누구를 꾀자고/머리에 기름/ 「후렴」아리아리 쓰리쓰리/아라리요/아리아리 얼씨구/놀다 가세”로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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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지도 / 江原道地圖 [지리/인문지리]
연대·작자 미상의 강원도 부·군·현의 지도집.채색사본. 강원도 부·군·현의 지도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희귀본이다. 26매의 군현 지도와 삼척·삼방 진영(鎭營)의 지도를 합하여 28매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한지 1매 크기가 보통이다. 규장각 도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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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평강군산천전도 / 江原道平康郡山川全圖 [지리/인문지리]
연대·작자 미상의 평강군 산천 지도. 두껍고 단단하여 질이 좋은 장지(壯紙)에 그린 채색 지도로 크기는 세로 87㎝, 가로 76.5㎝이다. 지질과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추가령지구곡의 동서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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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상 / 姜元相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조선 순종 때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1907년 나인영(羅寅永)·오기호(吳基鎬)와 함께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암살을 계획했다. 을사오적은 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이다. 3월에 권중현을 저격하려다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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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신 / 康元信 [역사/근대사]
1887-1977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平壤)이다. 남편은 후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회장을 지낸 강영승(康永昇)으로, 1904년에 결혼하였다. 1905년(광무 9)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로 이민하였다. 이곳 사탕농장에서 일하며 남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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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영 / 姜元永 [과학기술/의약학]
생몰년 미상. 대한제국시대의 의관. 1899년 7월 대한의학교에 입학하여 1902년 7월에 졸업하고, 1904년 11월에 의학교 교관으로 있으면서 유행병 예방 임시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뒤 1907년 육군 3등 군의관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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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호 / 姜元浩 [역사/근대사]
1883-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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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빙 / 姜渭聘 [종교·철학/유학]
1569(선조 2)∼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1603년 성균관에 입학했다가 학행으로 천거되어 희릉참봉·종묘서봉사·순안현령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봉림대군·인평대군 등을 배종, 호위하였다. 이듬해 강화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포로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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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 / 姜潤 [종교·철학/유학]
1711(숙종 37) - 1782(정조 6). 조선후기의 문신 1747년(영조 23) 식년 문과 을과급제 후 승문원별검·예조좌랑·지평·장령 등에 제수되었으나 병든 노모를 모시기 위해 모두 사퇴하였다. 모친 사후에도 관직이 성품에 맞지 않는다며 모든 벼슬을 사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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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국 / 康潤國 [역사/근대사]
1926-200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이다. 194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서 군수공장 강관주식회사(鋼管株式會社)에 입사하여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43년 5월 조선인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자, 조선인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농성시위를 감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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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음 / 江陰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금천 지역의 옛 지명. 당시 강음현은 동쪽과 북쪽은 평산, 서쪽은 배천, 남쪽은 개성과 접하고 있었다. 본래 고구려의 굴압현(屈押縣, 일명 江西)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강음으로 바뀌어 송악군(松嶽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개성현의 속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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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음향교 / 江陰鄕校 [교육/교육]
황해도 김천군(현재 황해남도 봉천군) 서북면 강음리에 있는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협실(東挾室)·서협실(西挾室)·동무(東廡)·서무(西廡)·동랑(東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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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응철 / 康應哲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의병장·학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모집하여 경상도 상주를 지켰다. 그뒤 정기룡이 이끄는 의병과 뜻을 같이하여, 여러 곳에서 왜적들과 싸워 이를 무찔렀다. 벼슬은 찰방에 이르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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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응환 / 姜膺煥 [문학/고전시가]
1735년(영조 11)∼1795년(정조 19).조선 후기의 무신. 강희맹(姜希孟)의 9세손으로 전라도 무송[茂松 : 지금의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경과정시(慶科庭試)에 합격하여, 부장(部長)·사헌부감찰·칠원현감(漆原縣監)·초계군수(草溪郡守)·대구영장(大丘營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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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영효행추거문서 / 姜義永孝行推擧文書 [언론·출판/출판]
조선후기 경상남도 의령군 용암면의 동임과 집강 등이 강의영의 효행을 고을 현감에게 추거한 문서.관문서. 추거문서는 교지(敎旨), 효행동임수본(孝行洞任手本), 효행집강서목(孝行執綱書目), 효행사림추거장(孝行士林推擧狀), 의백식육서장(衣帛食肉書狀)으로 이루어져 있다.교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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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수 / 姜人壽 [역사/근대사]
1900-1992. 독립운동가. 이명은 팔수(八壽)·양검(楊儉). 경상남도 밀양 출신. 김원봉(金元鳳)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10월 중국군 간부 양성학교인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4기 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뒤 중국군 장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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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수 / 姜寅秀 [역사/근대사]
1869-1932년. 독립운동가. 호는 백서(白棲). 경상북도 안동 출신. 한학자 영숙(永淑)의 아들이다. 1894년 강원도관찰부의 주사로 등용되어서 근무하다가 1899년에 사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상경하여 동지들을 규합, 동우회(同友會)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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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 / 剛日 [사회/가족]
천간(天干)이 양(陽)에 해당하는 날을 지칭하는 용어. 강일에는 집밖에서 하는 일을 하고 유일에는 집안에서 하는 일을 한다고 『예기』에 설명되어 있다. 한편 제례(祭禮)에도 강일과 유일이 적용되니, 강불재우(剛不再虞)라 하여 강일에는 재우제(再虞祭)를 지내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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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순 / 姜一淳 [종교·철학/신종교]
강일순(1871-1909)은 증산교의 교조이며 신앙의 대상이다.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이다. 동학교도였으나 무장봉기에 반대하며 유·불·선의 기본사상을 토대로 인간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종교 창시에 힘쓰며 모악산에서 수도하던 중 깨달음이 있어 증산교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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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 姜日鎔 [역사/근대사]
미상-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다.1925년 북만주 영안현(寧安縣)에서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통합 조직된 신민부(新民府)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많은 일본 관직자들을 저합자촌(樗合子村)에서 죽였다. 이 일로 인해 1930년 길림성(吉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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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유고 / 剛齋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정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51년에 간행한 시문집. 1851년(철종 2) 김정현의 재종질 김제면(金濟冕) 등이 편집하였다. 권두에 자서가 있고, 권말에 김제면 등의 발문 2편이 있다. 13권 6책. 필사본.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2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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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집 / 剛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송치규의 시문집. 15권 7책. 필사본. 1865년(고종 2) 그의 장손 송기수가 간행, 권말에 편간 경위를 적은 송기수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시 49수, 소 31편, 권2는 소 15편, 서계 20편, 헌의 12편, 권3·4는 서 138편, 권5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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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천 / 姜在天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송석(松石). 1907년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으나 전라남도 장성에서 패전한 후 산중에 은거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후에 대종교에 입교하여 참교·지교를 역임하였으며,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항일무장투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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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리오층석탑 / 江亭里五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고려시대 5층 석조 불탑.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 높이 3.77m. 제1층 옥신(屋身)은 방형1석으로 우주(隅柱)가 얕게 새겨져 있고, 제2층 옥신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 제1옥신고의 1/3.5에 불과하나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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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 姜霽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강계굉 증손, 할아버지는 강세경, 아버지는 인의 강응청, 어머니는 이사권의 딸이다. 1549년(명종 4)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561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영덕현감을 지내고,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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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하 / 康濟河 [역사/근대사]
1891-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창성(昌城)이다. 1919년 4월 1일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신용철(申容澈)·강이달(姜利達)·선우명(鮮于明)·선우황(鮮于晃)·문창수(文昌洙)·한선학(韓善學) 등과 함께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대한독립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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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희 / 姜濟羲 [역사/근대사]
1891-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힌 일이 있으며, 그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이동녕(李東寧)·안창호(安昌浩) 등과 연결되어 연통제(聯通制)의 국내책임을 맡아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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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법 / 强調法 [언어/언어/문자]
수사법(修辭法)의 하나. 비유법(比喩法)이나 변화법(變化法)에 속하지 않는 모든 표현기법으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선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과장(誇張)·영탄(詠嘆)·반복(反復)·점층(漸層)·대조(對照)·현재(現在)·미화(美化)·열거(列擧)·비교(比較)·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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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문집 / 江左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학자 권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00년에 간행한 시문집. 10권 5책. 목활자본. 1800년(정조 24) 증손인 신도(信度)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범조(丁範祖)의 서문이 있으나, 발문은 없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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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여지기 / 江左輿地記 [문학/한문학]
1884년(고종 21)김광훈(金光勳)과 신선욱(申先郁)이 지은 적정(敵情) 탐사보고서. 이 책은 『아국여지도』와 자매편으로 『아국여지도』를 편찬, 저술하기 위하여 여행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좌여지기』는 2부로 되어 있다. 1부는 「강좌여지기」이고 2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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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호 / 姜俊鎬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멕시코올림픽대회 등에서 지도자로 활약한 체육인. 황해도 해주출신. 1949년 함경남도 원산에 있는 복싱체육관에 입관, 박순원(朴順源)의 지도를 받았다. 1950년 5월 북조선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에 출전, 페더급에서 우승하였으며, 그뒤 6·25 때 월남,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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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흠 / 姜浚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서예가(1768∼1833). 서예가. 1813년에 수안군수로 있을 때 군적의 폐단을 논하고 새로운 화폐의 주조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벽파의 일원으로 1801년 윤행임의 축출에 앞장섰으며, 1813년 정약용의 석방을 반대하였다. 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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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산설화 / 姜甑山說話 [문학/구비문학]
증산교(甑山敎)의 교조 강일순(姜一淳)에 관한 설화. 강증산(姜甑山) 관련 행적을 정리한 책자에는 강일순(1871∼1909)에 관한 구전 설화적 모티프가 담겨 있다. 유형적으로도 비범한 인물의 행적을 중심으로 일대기가 구성되고 전승된 흔적을 지니고 있어서 설화적 가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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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 康晋 [역사/근대사]
1912-1976.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평안북도 창성(昌城)이다. 1920년 중국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1926년 정의부중집위(正義府中執委) 김활우(金活右)의 추천으로 흥경현립중학교(興京縣立中學校)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재학 중 양세봉(梁世奉)의 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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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 康津金谷寺三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금곡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건립된 3층 석조 불탑.보물. 보물 제829호. 높이 5.4m. 현재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남아 있지 않고, 기단부(基壇部)와 탑신부(塔身部)의 여러 군데는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건립 당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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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까막섬 상록수림 / 康津─常綠樹林 [과학/식물]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마량리 까막섬에 있는 상록수림. 천연기념물 제172호. 면적 14,479㎡. 까막섬은 남쪽에 있는 고금도(古今島)와 마량리와의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썰물 때는 걸어서도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는 후박나무의 숲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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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康津無爲寺極樂寶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에 있는 조선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국보. 국보 제13호. 무위사는 617년(진평왕 39) 원효(元曉)에 의하여 관음사(觀音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중창하였는데 875년(헌강왕 1)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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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 康津無爲寺極樂殿阿彌陀如來三尊壁畵 [예술·체육/회화]
전라남도 강진군 소재 무위사 극락보전의 후불벽 앞면에 그려져 있는 조선 초기(1476년)의 아미타삼존벽화. 국보 제313호. 화면 중앙의 높은 수미대좌 위에 아미타불이 결가부좌하였고, 왼쪽(향우)에는 관음보살, 오른쪽(향좌)에는 지장보살이 정면을 향해 서있으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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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 康津無爲寺先覺大師塔碑 [예술·체육/서예]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선각대사 형미의 탑비. 보물. 보물 제507호. 선각대사 형미(逈微)는 신라 말기의 명승으로 체징선사(體澄禪師)를 사사하고 당나라에 건너가서 14년 만에 돌아와 무위사에 8년간 머물렀다. 918년 속년(俗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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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 康津 白蓮寺 冬栢─ [과학/식물]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는 동백나무숲. 천연기념물 제151호. 면적 12,893㎡.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난온대지방 식생(植生)의 대표수종인데 이곳에 있는 동백나무는 약 1,500그루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으며 높이가 7m에 달하고, 밑에서 가지가 갈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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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사적비 / 康津白蓮寺事蹟碑 [예술·체육/건축]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조성된 사적비.보물. 보물 제1396호. 전체 높이 400㎝, 귀부 높이 110㎝, 비신 높이 233㎝, 너비 118㎝, 두께 29㎝. 귀부(龜趺)·이수(螭首)·비신(碑身)을 모두 갖춘 완형으로 비명은 ‘전라도강진만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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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원구형 부도 / 康津白蓮寺圓球形浮屠 [예술·체육/건축]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원구형 석조 불탑.부도. 시도유형문화재. 고려시대에 조성된 원구형 석조 부도 1기로, 1999년 11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백련사는 고려시대 원묘국사가 백련결사를 일으킨 역사적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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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사당리 푸조나무 / 康津 沙堂里─ [과학/식물]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 있는 푸조나무. 천연기념물 제35호. 높이 16m, 밑부분의 둘레가 8.5m인 노거수로서 나무의 나이는 300년으로 추정된다. 땅에서 87㎝ 높이에서 원줄기는 죽고 여섯의 가지가 갈라져 사방 14m 정도씩 퍼져 있다. 500여 년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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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삼인리 비자나무 / 康津 三仁里─ [과학/식물]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에 있는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제39호. 높이 10m, 가슴 높이 둘레 5.2m이다. 가지는 동서 15.m, 남북으로 14m 정도 퍼져 있다.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는 북향의 경사지에 있으며, 주위에는 대나무 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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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 康津 城東里 銀杏─ [과학/식물]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있는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85호. 나무의 나이는 800년으로 추정되고 나무의 높이는 30m이다. 가슴높이줄기둘레는 6.75m이고, 가슴높이줄기지름은 2.15m, 가지의 길이는 동쪽 16.5m, 서쪽 13m, 남쪽 10.9m,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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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 康津月南寺址三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터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조 불탑.보물. 보물 제298호. 이 탑은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된 월남사지에 남아 있으며 멀리 월출산 천왕봉을 뒤로 하고 과거 법당이 있던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민가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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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 康津月南寺址眞覺國師碑 [예술·체육/서예]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터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승려 진각국사의 탑비.보물. 보물 제313호. 전체 높이 3.58m, 비신 높이 2.6m, 너비 2.3m. 건립 연대는 고려 고종 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월남사 창건주인 진각국사(眞覺國師)를 추모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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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전라병영성 / 康津全羅兵營城 [예술·체육/건축]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조선시대 전라도 병마절도사의 병영 관련 성곽.병영성. 사적. 사적 제397호. 1417년에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광산현(光山縣)에 있던 병영을 지금의 터인 당시 도강현(道康縣)으로 옮기어, 당시의 병사 마천목(馬天牧)이 쌓았다고 하며, 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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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강재일사 / 康津剛齋日史 [역사/근대사]
1891년 7월부터 1903년 4월까지 박기현이 전라남도 강진의 향촌생활을 중심으로 작성한 일기. 전라남도 강진에 살았던 박기현이 1891년(고종 28) 7월부터 1903년 4월까지의 향촌생활을 기록한 일기이다. 박기현은 본관이 밀양으로, 강진 옴천에서 출생하여 병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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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건 / 姜鎭乾 [역사/근대사]
1885-196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이다. 1909년(융희 3) 고향에 협성학교(協成學校) 분교를 설립하였다. 1910년(융희 4) 3월 만주(滿洲)로 망명을 떠나 토지개척사업과 민족교육운동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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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고려청자요지 / 康津高麗靑瓷窯址 [예술·체육/공예]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에 있는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가마터.사적. 사적 제68호. 대구면 요지는 특히 용운천 좌우에 집중적으로 남아 있는데, 용운천 상류의 용운리 동북쪽 계곡에 위치한 정수사 밑 운곡마을로부터 용운천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해변에까지 산재한다. 현재 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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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 康津郡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 동쪽은 장흥군, 서쪽은 해남군, 남쪽은 강진만, 북쪽은 영암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39'∼126°53', 북위 34°25'∼34°47'에 위치한다. 면적은 500.94㎢이다. 인구는 3만 8758명이다(2015년 현재). 행정구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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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읍지 / 康津郡邑誌 [지리/인문지리]
1899년에 편찬된 전라남도 강진군 읍지. 1책. 채색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康津地圖邑誌(강진지도읍지)’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호남읍지』의 일부로 수록된 『강진현영읍진지(康津縣營邑鎭誌)』가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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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김해김씨가상여 / 康津金海金氏家喪輿 [사회/가족]
1920년대 제작된 상여로 광주광역시 민속자료 제4호. 강진읍 서성리에 사는 김현장 집안에서 3대째 사용하던 것을 1971년에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 기증, 1920년에 제작하여 1923년에 완성시켰다. 이 상여는 전통적인 상여와는 달리 2층 목조기와집 형태로 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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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땅뺏기놀이 / 康津땅뺏기놀이 [생활/민속]
전라남도 강진군 지역에서 행해지는 민속놀이. 전라남도 강진군의 군동면 일대에서 6월 유두(流頭)나 7월 백중(百中) 때, 머슴들이 주로 놀았으며, 용기(龍旗)나 덕석기 뺏기를 해서 이긴 편이 땅이나 황소를 차지하는 민속놀이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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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 / 康津灣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만. 강진만은 강진군의 중앙부까지 깊숙이 만입되어 군의 전체적인 모습을 ‘인(人)’ 자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만으로는 탐진강(耽津江)을 비롯하여 장계천(長溪川)·강진천·도암천 등 여러 하천들이 흘러든다. 하천의 하구에는 넓은 간석지(干潟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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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삼흥리도요지 / 康津三興里陶窯址 [예술·체육/공예]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는 고려시대 이후 청자·토기·분청사기 등을 굽던 가마터.시도기념물. 전라남도 기념물 제81호. 강진은 고려시대에 가장 우수한 청자를 제작한 생산지인데 칠량면과 인근의 대구면에는 각각 자기소(磁器所)가 있어 이를 중심으로 한 집단적인 요업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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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송정리지석묘군 / 康津松汀里支石墓群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송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군. 탐진강의 지류 일대에 자리잡은 송정리 계동마을 앞 새밭들에 25기의 지석묘가 밀집되어 있는데 남방식과 개석식이 혼재하고 있으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400×360×150㎝에 달한다. 덮개돌이 큰 남방식지석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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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영복리지석묘 / 康津永福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영복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들은 규모가 큰 것은 길이 4m, 너비 3.5m, 두께 1m 정도의 뚜껑돌을 가지고 그 아래는 둥근 굄돌 4, 5개로 괴었다. 이것은 대표적인 남방식 고인돌의 예로서 그 하부구조의 굄돌 안쪽에 상자모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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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원 / 姜振遠 [역사/근대사]
1881-1921. 의병장. 본관은 진주. 일명 진원(震遠). 자는 형원(亨遠), 호는 성산(聖山). 전라남도 승주 출신. 유년시절에 손오병서(孫吳兵書) 등을 탐독하면서 한문을 수학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봉기한 의병진에 가담하였으나 전공을 세울만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