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전체] “수”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3,44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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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일 / 金錫一 [종교·철학/유학]
1694(숙종 20)∼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김흥진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준, 아버지는 승지 김두명, 어머니는 이무의 딸이다. 1715년(숙종 41) 진사가 되고, 1731년(영조 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9년 지평·정언을 역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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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탁 / 金世鐸 [역사/근대사]
1874-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鳳洙).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신민회(新民會)회원으로 1911년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아 복역하던 중 1913년 제2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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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민 / 金時敏 [종교·철학/유학]
1681(숙종 7)∼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호조정랑 김성후, 어머니는 임원기의 딸이다. 김창협·김창흡의 문인이다. 1732년(영조 8) 선공감역이 되고, 장례원사평·사옹원주부·사직서영·종묘서영·의빈부도사·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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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작 / 金永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2∼1868). 김홍집의 아버지로 주요 내외직에 임명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 선정으로 칭송을 받았는데, 정주·청주목사로 재임 시 대동미, 조운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경사에도 밝았으며 시문에 더욱 능하였다. 저술로는《소정고》 6권과 《청묘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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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태 / 金宇泰 [종교·철학/유학]
1647년(인조 25)∼1708년(숙종 34). 조선 후기 유생. 증조는 김경신, 조부는 김계미. 부친 장사랑 김상현과 모친 선무랑 홍호약의 딸 부림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김이절의 딸 일선김씨이다. 자라서 목재 홍여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처음 학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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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생 / 金應生 [종교·철학/유학]
1496(연산군 2)∼1555(명종 10).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학자 준. 13세의 어린 나이로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하자 고을사람들로부터 효성이 지극하다는 평을 들었다. 1549년(명종 4)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된 뒤 벼슬을 단념하고 향촌 교육에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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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록 / 金漢祿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현감 운경의 아들, 영조의 장인인 한구의 종제, 우의정 관주의 아버지이다. 한원진의 문인이다. 관직은 세자익위사세마에 그쳤으나, 종질인 구주와 함께 김상로·홍계희·정휘량·신만 등 벽파 대신들을 조종하여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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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노명 / 南老明 [종교·철학/유학]
1642(인조 20)∼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길, 아버지는 상주. 1675년(숙종 1)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168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내직으로는 병조·예조좌랑을 거쳐 기사관을 지냈다. 외직으로 거창현감을 지낼 때는 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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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년 / 南延年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두명이다.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1727에 청주영장이 되어 토포사를 겸하였다. 이듬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진압하던 중, 청주성이 함락되면서 절도사 이봉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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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기 / 南泰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9∼1763). 1732년(영조 8) 정시문과 을과급제 후 형조참판·한성부좌우윤·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이조좌랑으로서《속대전》을 수찬하였고 통신부사로서 일본에 다녀왔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다.

종교·철학(27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