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전체] “수”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3,44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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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자인화문내섬명완 / 粉靑磁印花文內贍銘盌 [예술·체육/공예]
그 주위로 무수한 선과 연판문대, 그리고 우점문(雨點文)과 무수한 선을 나타내었다.외면은 무수한 선대와 국판문(菊瓣文)을 자유롭게 조각도로 나타내고 내·외면에 흐리게 백토(白土)로 귀얄칠하여 문양과 백토의 효과가 잘 나타나고 있다. 유색은 엷은 회청유(灰靑釉)를 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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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살이전 / 不可殺爾傳 [문학/고전산문]
에 쓰고 중추에 광화문 앞에서 수정하였다는 점에서 1921년에 저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작품에 수용된 많은 전설적인 내용이 현지 조사에서 밝혀진 내용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전해 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작자 자신이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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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군읍지 / 比安郡邑誌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비안군(현 의성군 비안면)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1786년(정조 10) 무렵 편찬된 『비안현읍지』 사본 1책이 규장각 도서에 있고, 1878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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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현읍지 / 庇仁縣邑誌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비인군(현 서천군 비인면)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901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필사본.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구성은 진관(鎭管)·건치연혁(建置沿革)·성지(城池)·관원(官員)·관해(官廨)·관사(官舍)·창고(倉庫)·단묘(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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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무 / 四鼓舞 [예술·체육/무용]
을 치며 춤을 춘다. 북 치는 사위는 「승무」의 북 치는 대목에서 뽑았다고 했다. 의상은 연화관을 쓰고, 좁은 소매의 붉은 색깔로 된 전복을 입었다.[尖袖朱衣, 如戰服] 창사는 ‘중중편득제군천최〇향라착수의’(衆中偏得諸君天催〇香羅窄袖衣)’로 설명되었다. 사고무는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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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 / 思歸 [문학/한문학]
고려 후기에 이제현(李齊賢)이 지은 한시. 칠언율시. 『익재난고(益齋亂藁)』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머물 때 참소를 받고 토번에 귀양가게 되자 따라가면서 고향생각을 읊은 시이다. 1·2구에서는 『논어』에서 사해가 모두 형제라고 하여 남과 잘 지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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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 사냥 [예술·체육/체육]
창·활·총·덫·개 따위를 이용하여 야생의 새나 짐승을 잡는 생계활동. 인류는 농경이나 목축을 알기 이전의 수백만 년 동안 사냥과 채집에 의해서 생존을 유지했으며, 오늘날에도 이를 중요 생활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한편, 사냥은 일찍부터 왕후나 장상을 비롯한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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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장치 / 舍利藏置 [예술·체육/공예]
비롯한 옷[衣]·바리[鉢]·지팡이[杖]·좌구(坐具), 그리고 금·은·유리·수정·마노 등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모래·풀·대나무·나뭇가지까지도 될 수 있다.이러한 불사리(佛舍利)와 더불어 우리 나라에서와 같이 고승(高僧)들의 신골은 승사리(僧舍利)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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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가사 / 思親歌 [문학/고전시가]
왕비 책봉 주청 사행의 서장관으로 따라갔던 홍순학의 작품이다. 둘 사이에는 100년의 시차가 있을 뿐 아니라 지역 또한 현격하게 다르지만, 같은 잣대로 분석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사행록의 장르적 관습을 거부하고 국문의 가사를 선택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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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낭자전 / 索囊子傳 [문학/한문학]
으며, 밤에는 반드시 그 속에서 잠을 잤으므로, 스스로 삭낭자라 하였고, 남들도 역시 그를 삭낭자라 불렀다. 나이를 물으면 언제나 스무 살이라고 대답하였다. 바둑을 잘 두었는데 고수와 두거나 하수와 두거나간에 단지 한 집만을 이겼으므로 세상에서 한 집 승부가 난 바둑을

종교·철학(27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