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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사 / 郎舍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에 소속된 정3품 이하의 관원에 대한 총칭. 중서문하성의 명칭 변경에 따라 성종 때에는 내사문하성낭사, 문종 때에는 중서문하성낭사, 1369년(공민왕 18) 이후에는 문하부낭사로 불렀다. 낭사는 내사문하성이 발족된 982년(성종 1)에 처음 설치되어

  • 낭산 / 朗山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알야산현(閼也山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야산(野山)으로 고쳐 금마군(金馬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낭산현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전주에 속하게 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여량

  • 낭산문집 / 朗山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이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 원집은 1937년 이후의 아들 이호대(李好大) 등이 편집·간행했고, 권말에 문인 한덕련(韓德鍊)의 발문이 있다. 속집은 원집을 간행할 때 일정(日政)의 검열에 저촉되어 삭제

  • 낭옹신보 / 浪翁新譜 [예술·체육/국악]

    조선후기 김성기의 「심방곡」·「중대엽삼」·「환입이」 등을 수록한 악보. 거문고악보. 1책. 필사본. 이 거문고보는 세로 24㎝, 가로 17㎝의 한장본(韓裝本)으로 기보법(記譜法)은 합자보(合字譜)와 육보(肉譜)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시가(時價)의 표시가 없고 「중대엽

  • 낭옹일고 / 浪翁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고세장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3년에 간행한 시문집. 3권 2책. 석인본. 1933년 후손 언찬(彦贊)·언경(彦經)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권상규(權相圭)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언경·경(氵+敬) 등의 발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

  • 낭옹집 / 浪翁集 [종교·철학/유학]

    고세장의 문집. 3권 2책. 석판본. 서문은 채산 권상규(1933)가 썼고, 발문은 방예손 고언경과 방예손 고가 지었다. 소화 9년(1934)에 경북 문경군 호서남면 흥덕리 영고사에서 간행, 표제는 낭옹집, 판심제는 낭옹선생일고이다. 이 책은 저자가 사망한 지 260여

  • 낭유사 / 浪遊詞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에 이기경(李基慶)이 지은 가사. 내용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단은 서사(緖詞)로서 인생의 고달픔을 말하고 분발하여 구도(求道)의 길을 떠날 것을 노래하였다. 제2단은 도교의 허망함과 불교의 허무함 및 천주교의 배덕(背德)이 괴이한 것임을 노래하였다.

  • 낭자회개 / 浪子悔改 [언어/언어/문자]

    1885년경 이수정이 번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기독교 전도서. 단권으로 되어 있으며 프랑스 파리 국립 동양어학교의 플랑시(Plancy) 문고 4권에 수록되어 있고 국내에는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에는 저자나 출판일, 출판사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 낭장 / 郎將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의 정6품 무관직. 중앙군조직에서 중랑장 바로 아래 직위인 다섯번째 계급이다. 정6품관으로서 이군육위에 222인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응양군을 제외한 각 영(領)에 5인씩 배속되어 200인으로 조직된 부대에서 지휘관 구실을 하였던 것 같다. 도부외(都府外) 3

  • 낭주 / 朗州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옛 지명. 백제의 월내군(月奈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영암군으로 고쳤고, 영현으로 고안현(固安縣)이 있었으며 무주(武州)에 속하였다. 995년(성종 14) 낭주안남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로 하였고, 1018년(현종 9) 영암지군사(靈巖知

  • 낭중 / 郎中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의 상서성과 상서6부·고공사·도관의 정5품 관직. 문종관제에 의하면 정원은 이부(吏部)가 1인이고 다른 5부 및 상서성·고공사·도관은 각 2인이었다.

  • 낭천 / 浪川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화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 생천현(狌川縣, 일명 也尸買 또는 也口買)인데, 신라 경덕왕이 낭천으로 고치고 군으로 하여 삭주도독부에 예속시켰다. 고려 초기 춘주(春州)에 속하였으나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어 낭천현으로 하였다. 1644년(인조 2

  • 낭천민란 / 狼川民亂 [역사/근대사]

    1889년부터 1892년 봄까지 강원도 낭천현(현재 화천군)에서 발생한 민란. 이 난은 호단위로 부과하는 요역인 호역(戶役)이 고르지 못함과, 이서(吏胥)들의 환곡의 부정에 원인이 있었다. 이 난으로 조정에서는 강원감사 윤영신에게 보고하게 하여, 전전 현감 신용과 전

  • 낭천현읍지 / 狼川縣邑誌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낭천현(현 화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 1책. 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화천군읍지』 사본 1책이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현계(縣界)·건치연혁(建置沿革)·진관(鎭管)·군명(郡名)·방리(坊里)·산천(山川)

  • 낭청 / 郎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비변사·선혜청·준천사·오군영 등의 실무담당 종6품 관직. 관서에 따라 정규직으로 직제화되기도 하고 겸직으로 충원되기도 하였다. 본래 낭관(郎官)과 같은 뜻으로 각 관서의 당하관을 지칭했으나, 1555년(명종 10) 비변사가 상설기구로 되어 12인의 낭청을

  • 낭해집 / 朗海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이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1년에 간행한 시문집. 7권 4책. 목활자본. 1911년 족제(族弟) 흠(嶔)과 족질(族姪) 제원(濟遠)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기우만(奇宇萬)의 서문과 권말에 흠과 제원의 발문이 있다.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 낭호신사 / 浪湖新詞 [문학/고전시가]

    조선 영조·정조 연간에 박이화(朴履和)가 지은 가사. 유저인 『구계집(龜溪集)』에 실려 전하는 것과 한글사본으로 전하는 것이 있다. 낭호는 낭주(朗州)와 서호(西湖)에서 딴 명칭으로, 오늘날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구림(鳩林)을 말한다. 2음보 1구로 헤아려 전체 23

  • 내 복에 산다는 딸 / [문학/구비문학]

    쫓겨난 여인이 미천한 남자를 만나지만 귀한 물건을 발견하여 잘 살게 된다는 내용의 설화. 일반담(一般譚)에 속하며, ‘쫓겨난 여인 발복설화(發福說話)’, ‘숯구이 총각의 생금장’, ‘복 많은 백정의 딸’, ‘막내딸과 숯구이 총각’ 등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전지역에 두

  • 내가지석묘 / 內可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에 있는 청동시시대의 지석묘. 출토유물 가운데 석기류는 간돌검〔磨製石劍〕, 돌화살촉〔石鏃〕, 바퀴날도끼〔環狀石斧〕,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자귀〔石手斧〕, 갈판〔耉石〕 등 비교적 다양하다. 돌화살촉은 대부분 버들잎모양〔柳葉形〕이며, 단면

  • 내각 / 內閣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최고의 행정기관. 1895년 3월에 종래의 의정부를 개편하여, 교지를 받아 행정 각부를 통일하는 책임을 맡은 내각총리대신과 왕을 보필하여 국정을 맡아 처리하는 각부 대신으로 구성되었다. 소속 관원으로는 내각총리대신의 명을 받아 기밀 문서와 내각 서무를 장악하

  • 내각고사절목 / 內閣故事節目 [역사/조선시대사]

    1781년(정조 5)에 규장각의 전례와 각신들이 지켜야 할 규례를 적은 절목을 수록하여 편찬한 책. 1책. 개주갑인자본(改鑄甲寅字本). 내용은 작성경위를 밝힌 본문과 절목 34조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서 당나라·송나라의 고사와 조선시대의 구례(舊例)를 참고하여 각중(

  • 내각방서록 / 內閣訪書錄 [언론·출판/출판]

    조선후기 규장각에서 중국문헌을 사부로 분류하고 간략한 서평을 덧붙인 목록집. 2권 1책. 필사본. 이 목록의 내용은 중국문헌을 우선 경사류와 자집류로 구분하여 서명과 권수를 나열하고, 다음에 각각 편저자의 조대(朝代) 및 이름, 책의 요점 및 간략한 서평을 기술하고

  • 내각일기 / 內閣日記 [역사/근대사]

    1908년 2월 1일부터 3년 6월 30일까지 내각총리대신이 수행한 업무 등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불분권 15책이다. 이왕직실록편찬용지(李王職實錄編纂用紙)인 원고지에 기록되어 있다. 장서각 소장본의 원본으로서 내각의 총책임자인 내각총리대신의 일과를 날마다 기록한

  • 내각일력 / 內閣日曆 [역사/조선시대사]

    1779년 1월부터 1883년 2월까지 규장각의 소관 업무나 문화 사업에 관련된 것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1,245책. 필사본. 정조가 즉위한 해인 1776년 9월 창경궁 안에 설치한 규장각은 열성어제어필(列聖御製御筆)을 봉안하는 한편, 정조의 문화정치 보좌기관

  • 내각항식 / 內閣恒式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규장각의 재정관계에 관한 식례를 기록한 역사서. 1책. 활자본. 내각은 규장각의 별칭이며, 이 책은 정조 초년에 규장각이 설립, 정비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져 1781년(정조 5)에 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로 출간되었다. 목록은 없으며 내용을 수록된 차례대로 개괄

  • 내고 / 內庫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왕궁에 직속되어 왕실재정을 담당하던 창고 관청의 하나. 내장택(內莊宅)과 함께 왕실의 재정 운영에 있어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내장택에 부속되어 있었다고 여겨지는 내창(內倉)이 주로 내장택 소유의 토지로부터 얻어지는 어용(御用)의 곡물류를 저장했음에 반

  • 내곡모감주나무군락 / 內谷─群落 [과학/식물]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에 있는 모감주나무군락.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8호. 약 1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그 중 4그루는 오래된 것으로 수령이 약 35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밖의 것은 수령이 5∼10년생으로 추정되는 비교적 어린 모감주나무이다. 모감주나무는 종자

  • 내국세출입표 / 內國稅出入表 [역사/근대사]

    대한제국기 의 지역별·관부별 수입과 지출 내역을 수록한 경제서. 건(乾)·곤(坤) 2책. 건책에는 경(京)·경성(京城)·충청·전라·경상·평안·황해·강원·함경·수원부·광주부(廣州府)·강화부·개성부별 수입내역을 기록하고, 각 도 면세복호(免稅復戶)가 부록으로 있다. 수입

  • 내군 / 內軍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의장과 병기류를 관장하던 관서. 918년(태조 1)에 내군경(內軍卿)을 두었다. 태조 때의 내군은 태조가 즉위한 직후의 인사내용에 내군의 차관직인 경으로 능혜(能惠)와 희필(羲弼)이 기재되어 있다. 이 때의 군사 및 감찰관부에 순군부(徇軍部)·병부·의형대(義刑

  • 내궁전고 / 內弓箭庫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궁중에서 소요되는 활과 화살을 제작, 보관하던 관서. 문종 때 관제를 정리하면서 관원으로 판관 2인을 두었고, 이속으로 기사(記事) 2인과 기관(記官) 2인을 배치하였다.

  • 내금강전나무림 / 內金剛─林 [과학/식물]

    북한의 행정구역상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에 있는 전나무숲. 북한 천연기념물 제458호. 전나무숲은 내금강 마을을 지나 표훈사까지 가는 길 주변에 퍼져 있다. 토양은 화강편마암지대에 생긴 산림밤색 토양이며 메흙으로서 토양수분이 많다. 130㏊를 보호구역으로 정하였다. 제일

  • 내금위 / 內禁衛 [정치·법제/국방]

    조선 1407년(태종 7)에 임금의 호위와 궁중을 지키기 위해 설치된 군대 조직. 유명 무실한 궁중 숙위를 담당했던 내상직(內上直)을 정리, 개편하여 조직한 왕의 친위군 혹은 금군이다.

  • 내금위장 / 內禁衛將 [정치·법제/국방]

    내금위에 소속된 종2품 관직. 정원은 3인이고 타관이 겸하였다. 세조 3년(1457) 내금위절제사 6인을 두어 내금위장이라 하고 그 대우를 오위장과 같이 하여, 매번마다 2장씩 궁중에 직숙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시행되지는 않은 듯 하며, 세조 5년(145

  • 내금위취재 / 內禁衛取才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무관 채용시험. 정예근위부대의 하나였던 내금위의 군관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이다. 병조에서 도총부·훈련원의 당상관 각 1인과 함께 시험을 보아 선발하였다. 내금위에 결원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행하였다. 시험과목은 목전·철전·기사와 기창의 기술이었다.

  • 내급사 / 內給事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전중성의 종6품 벼슬. 정원은 1인이었다. 전중성은 종정시(宗正寺)와 함께 종부시(宗簿寺)의 전신으로 종친의 보첩을 맡고 있던 관아였다. 문종 이후에 전중시(殿中寺)로 고쳤다가 1298년(충렬왕 24)에 충선이 선위를 받아 관제를 개혁할 때 종정시로 고쳤다.그

  • 내나로도 / 內羅老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고흥군 동일면에 속하는 섬. 외나로도와 함께 봉래면(蓬萊面)을 이루다가 1964년봉래면 내도출장소(內島出張所)가 설치되었고, 1990년 7월 1일로 면으로 승격, 동일면으로 행정구역명이 정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와의 교통편은 배를 이용해야 했으나 1

  • 내노비 / 內奴婢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내수사 및 각 궁 소속의 노비. 왕실의 노비라는 뜻에서 궁노비라고도 하였다. 원래 본궁노비라 부르던 것을 1471년(성종 2)부터 내수사 노비라고 부르게 하였다. 이로써 일반적으로 내노비라 하면 내수사 노비를 가리킨다. 이는 궁중에서 쓰는 미곡·포목·잡화와

  • 내농포 / 內農圃 [생활/식생활]

    조선시대 환관들이 궁중납품을 목적으로 채소를 재배하던 밭, 또는 그 관서. 창덕궁 돈화문 밖 동편에 있었다. 본래 서울 성내에서는 농사가 금지되어 있었으나, 내농포는 궁중납품이라는 특수성으로 하여 채소재배가 허용된 것이다. 이 밖에 채소운반을 위한 마필이 부여되었고,

  • 내당 / 內堂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 작자 미상의 속악가사. 『시용향악보』에 전한다. 원래 이 노래는 민간신앙을 기반으로 한 무가(巫歌)로서 내당 또는 내불당(內佛堂)에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르던 노래였다. 그러나 궁중에 유입되어 악장 중 속악가사의 하나로 불려짐으로써 무가적 기능과 악장의 기

  • 내도 / 內島 [지리/자연지리]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 있는 섬. 2010년 기준으로 인구는 32명(남 18명, 여 14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24세대이다. 취락은 섬의 북쪽 선착장 주변 사면에 분포한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은 없고, 밭 0.05㎢, 임야 0.19㎢이다. 주로 콩·

  • 내동리지석묘 / 內洞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대전광역시 유성구 원내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대전광역시기념물 제3호. 고인돌이 있는 곳은 높이 80∼90m 되는 완만한 구릉지대로서, 일대는 황갈색의 황토와 부식된 화강암반으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에 ‘암소바위’라고 불리는 모두 4기의 고인돌 덮개돌[上石]이 남

  • 내동지석묘 / 內洞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김해시 내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경상남도 기념물 제97호. 유적은 김해 회현동패총으로부터 서북방 약 1.7㎞의 거리에 위치한 경운산(慶雲山) 기슭에 산재해 있다. 현재는 경작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1976년 1월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3기를 발

  • 내명부 / 內命婦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궁중에서 봉직하던 빈·귀인·소의·숙의 등 여관의 총칭. 외명부에 대칭되는 명칭이다. 조선 초기부터 ‘내관’ 또는 ‘여관’ 등으로 불리던 궁녀 조직이 성종 대에 와서 ≪경국대전≫에 ‘내명부’라 명시되고, 조선 말기까지 수정 없이 그대로 일컬어졌다. 기능은 궁중

  • 내무부 / 內務府 [역사/근대사]

    1885년 궁내사무 등을 관장하던 관청. 1885년 5월 통리군국사무아문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내무부를 대궐 안에 설치하여 군국사무와 궁내사무를 겸하게 하였는데, 의정부와 기타 행정 각부와의 사무한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관원으로는 총리, 독판, 협판, 참의 등의 당상

  • 내무부 / 內務部 [역사/근대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 행정을 관장하던 중앙행정기관. 내무부의 조직은 1919년 11월 공포된 '대한민국임시관제'에 의해 비서국, 지방국, 경무국, 농상공국 등 4개국으로 구성되었다. 내무부를 총괄하는 내무총장은 헌정주비위원, 선거, 지방 자치, 경찰, 위생, 농상 공

  • 내무아문 / 內務衙門 [역사/근대사]

    1894년 갑오개혁 때 의정부에 설치된 중앙행정기관의 하나로 지방행정을 총괄하는 부서. 1894년 6월 군국기무처의 의안에 따라 궁내부와 의정부로 나누고 내무, 외무, 탁지, 법무, 학무, 공무, 군무, 농상아문 등 8개 아문을 설치하고, 그 해 7월 20일부터는 아문

  • 내물홀성 / 乃勿忽城 [지리/인문지리]

    중국 동북지역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의 옛 성곽.성곽터. 현재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없으나 뒤에 연성(鉛城)으로 고쳐졌다. 고구려 패망 후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에 예속한 고구려의 땅으로서 압록강 이북지방의 고구려 영토 중 버리고 도망간 7개 성 가운데 하나이다. 당

  • 내미홀 / 內米忽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해주 및 벽성 지역의 옛 지명. 757년(경덕왕 16) 지방관제를 개혁할 때 폭지군(瀑池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그 밑에 옹진(瓮津)ㆍ장연(長淵)ㆍ곡도(鵠島) 등 4개의 영현을 두었다. 고려 태조 때 남쪽이 큰 바다에 임하였다고 하여 지금의 이름인 해주로 고쳤

  • 내반종사 / 內班從事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내알사의 종9품 관직. 정원은 4인. 남반직의 하나이며, 1308년(충렬왕 34) 6월에 충선왕이 액정서(掖庭署)를 내알사로 고치고 그 기능을 강화하면서 전전승지(殿前承旨)를 내반종사로 고치고, 정원도 8인에서 4인으로 줄였다.

  • 내방고 / 內房庫 [경제·산업/경제]

    고려 후기의 재정기관. 왕실의 재정을 관장하던 것으로 보이는 관서이다. 관제개혁을 시도한 충선왕이 광흥창·풍저창·덕천고의 개편과 아울러 종래의 운진창(雲臻倉)과 부흥창(富興倉)을 병합, 의성창(義成倉)을 설치하였다. 그 뒤 1325년(충숙왕 12) 내방고로 고쳤다가

  • 내병조 / 內兵曹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각 궁궐내에 설치하였던 병조의 지부. 궁궐내의 시위·의장 등 군사사무를 보기 위한 병조 관리들의 출장소였다. 경복궁에는 근정문 밖에, 창덕궁에는 호위청 서쪽에, 경희궁에는 건명문(建明門) 밖 동편에 각각 설치하였다

  • 내부 / 內部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내무행정을 관장하던 관청. 1894년 내무부와 이조의 소관 업무를 통합, 계승했던 내무아문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1895년 4월에 설치되어 1910년 국권을 상실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 내부감 / 內府監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공예품들과 보물을 관장하였던 관서. 960년(광종 11)에 보천, 뒤이어 소부감(少府監)으로 고쳤다.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집정기에 내부감으로 고쳐 판사를 혁파하고 감(監)을 올려 종3품으로 하였다. 이후 1308년 선공사(繕工司)에 병합, 136

  • 내부내거안 / 內部來去案 [역사/근대사]

    1906년 2월부터 1910년 8월까지 내각에서 각부(各部)와 내부 사이에 오고간 문서. 관문서. 4책. 필사본. 특기할 만한 수록사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임시제실유급국유재산조사국(臨時帝室有級國有財産調査局)의 보고서[經理院收租官의 폐지, 驛屯土와 各宮 田畓園林

  • 내부시 / 內府寺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재화를 저장하고 공급하며, 상세를 징수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문종 때의 대부시(大府寺)가 1298년(충렬왕 24)에 외부시(外府寺)로 되고, 다시 대부시가 된 뒤, 1308년에는 내부사(內府司)로 되었으며, 뒤이어 내부시로 되었다. 1356년(공민왕

  • 내부일기 / 萊府日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후기 동래부사 김석이 1859년 1월 11일부터 7월 29일까지 7개월간의 동래부 행정 업무와 왕복 공문서의 내용을 기록한 일지. 1책 22장. 필사본. 그가 부임한 1859년 1월 11일부터 파직되어 이임한 7월 29일까지 7개월간의 동래부 행정 업무와 왕복 공

  • 내빙고 / 內氷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실 전용의 얼음을 관리하던 관청. 창덕궁의 요금문(曜金門) 안에 있었다. 본래 종5품 아문이었으나 영조 때 종5품 별좌(別坐)가 감원됨으로써 종6품의 별제(別提)를 최고책임자로 하는 종6품 아문으로 되었다.

  • 내사고 / 內史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한성에 설치되어 있던 실록보관 창고. 조선시대 내사고의 기능은 춘추관에서 겸임하였으므로 춘추관고가 곧 내사고이다. 내사고에는 실록과 <선원록>이 필수적으로 보관되는 외에 일반 시·문집류들도 상당수 보관되었다. 외사고의 경우는 조선 초기 충주·성주·전주 세 곳

  • 내사령 / 內史令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전기 왕명출납을 담당하던 내사성의 장관. 내사령은 문하성의 장관인 문하시중과 품질이 같지만 격이 높으므로, 마땅히 내사성과 문하성을 합친 내사문하성의 장관이 되어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였다. 그것은 내사령이 상설 관직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인원에 구애됨이

  • 내사문하성 / 內史門下省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최고 중앙의정관청인 중서문하성의 전신. ≪고려사≫ 백관지에 의하면 국초에 내의성(內議省)이라 칭하던 것을 982년(성종 1) 내사문하성이라 고치고, 1061년(문종 15) 6월에 중서문하성이라 고쳤다고 되어 있다. 이는 내사성과 문하성의 기능이 서로 밀접하여

  • 내사복시 / 內司僕寺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관청. 고려시대에 내구(內廄) 관리는 상승국(尙乘局)의 여러 기능 중에 하나였으나, 조선 건국 후 내사복시의 전담기능으로 독립되었다. 관원으로는 내승(內乘) 3인이 있었는데, 1인은 사복시정이 겸임하였고, 나머지 인원도 다른 관직자

  • 내사사인 / 內史舍人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내의성의 종4품 관직. 930년(태조 13) 내의성에 내의사인을 두었던 것이 982년(성종 1)에 삼성을 설치하면서 내의성은 내사성, 내의사인은 내사사인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061년(문종 15) 내사성이 중서성(中書省)으로 되면서 종4품의 중서사인으로 바

  • 내사옥 / 內司獄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내수사에 관련된 죄인을 수감하던 감옥. 모든 업무는 내시들이 관장하였다. 초기에는 내수사에 직접 관련된 죄인을 처리하기 위한 감옥이었으나 궁궐내의 옥사라는 특수성으로 궁중의 유죄자는 모두 수금하였으며, 때로는 형조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였다. 1711년(숙종

  • 내사주서 / 內史注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전기의 내사문하성의 종7품 관직. 고려초의 내의성(內議省)이 내사문하성으로 개편된 시기가 982년(성종 1)이므로 이 때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으며, 목종 때에 비로소 그 존재가 확인된다. 그 뒤 1061년(문종 15) 내사문하성이 중서문하성으

  • 내산문집 / 柰山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이운연의 시·만·서(序)·상량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인쇄본. 문집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1은 시(詩)와 만(輓) 75수이며, 권2는 서(序) 56편이며, 권3은 제문(祭文) 23편, 잡저(雜著) 7편, 고유문(告由文) 3편

  • 내상 / 內廂 [정치·법제/국방]

    고려시대에 출정군 총사령부의 참모기구. 군령을 전달하고 군사 행정을 담당하였다. 5군 또는 3군으로 편성되는 출정군에서 총사령관인 중군병마원수나 중군병마사 아래에는 군기에 참여하는 막료로서 여러 명의 병마판관 및 병마녹사, 남항업사, 도령·지유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 내상시 / 內常侍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에 설치하였던 고위 환관직. 1356년(공민왕 5) 환관직제를 개편하면서 두게 되었으나 뒤에 내시부가 설치되어 다른 관직명으로 개칭되었다. 직무는 명확하지 않으나 왕 측근의 고위 내시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 내서만음 / 耐棲謾吟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문인 이달모(李達模)의 시문집. 불분권 2책. 필사본. 서문·발문이 없어 편집·필사경위를 알 수 없다. 제1책에 시 301수, 잠 14편, 제문 17편, 행장 1편, 제2책에 시 453수가 수록되어 있다. 제2책의 시는 제1책의 시와 거의 중복되어 있다.

  • 내서사인 / 內書舍人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공민왕 때 도첨의부의 종4품 관직. 문종 때 관제에서 중서문하성의 중서사인이 1298년(충렬왕 24)에 일시 즉위한 충선왕의 관제개혁에서 도첨의사인(都僉議舍人)으로 개칭되었다. 1356년(공민왕 5)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가 중서문하성으로 환원됨에 따라 다시 중

  • 내섬시 / 內贍寺 [정치·법제]

    조선시대 각 궁과 전에 대한 공상과 2품 이상 관리에게 주는 술, 왜인과 야인에 대한 음식물 공급, 직조 등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 공주를 낳은 왕비의 권초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관원으로 제조·정(정3품)·부정(종3품)·첨정(종4품)·판관(종5품)·주부(종6품

  • 내성 / 奈城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봉화 지역의 옛 지명. 고려 충혜왕 때 이곳 사람 강금강(姜金剛)이 원조(元朝)에서 공이 있었다 하여 현으로 승격할 때 내성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안동부의 임내(속현)가 되었고, 1906년 봉화군 내성면으로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내성면(

  • 내성지 / 奈城誌 [문학/고전산문]

    조선 후기에 김수민(金壽民)이 지은 한문소설. 몽유록(夢遊錄)계 작품으로, 작자의 문집인 『명은집(明隱集)』 권18에 수록되어 있다. 주제의식면에서는 춘추대의의 명분론에 입각하여 단종의 일을 재평가하면서, 한때나마 명분에 어그러진 시세는 결국 유교적 합리성으로 되돌아갈

  • 내성천 / 乃城川 [지리/자연지리]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의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하여 남류 및 남서류하여 영주시, 예천군을 지나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 내성천의 상류는 벼의 재배가 활발하지 못하고 주로 조·옥수수·두류·감자와 유채작물(참깨·들깨·고추·인삼), 그

  • 내소사삼층석탑 / 來蘇寺三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조 불탑.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판형(板形)의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2중기단을 세웠다. 낮은 하층 기단은 저석과 중석을 하나의 돌로 하여 새겼는데 4매의 돌을 엮어 구성하였다.하층 기단

  • 내소사설선당과요사 / 來蘇寺說禪堂─寮舍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청민대사가 중건한 사찰건물.요사. 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惠丘)가 창건한 후 1633년(인조 11) 청민대사(淸旻大師)에 의해 중건되었으며, 그 후에

  • 내소사일원 / 來蘇寺 [지리/자연지리]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있는 내소사 일대의 경승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 지정면적 16,725㎡.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속하는 지역으로 부안읍에서 서남쪽으로 약 30㎞에 있다. 옛날에는 선계사(仙溪寺)·실상사(實相寺)·청림사(靑林寺)·내소사의 4대 사찰이

  • 내소주방 / 內燒廚房 [정치·법제]

    조선 시대에 왕과 왕비의 수라를 마련하는 곳. 방과 창으로 구성된 몸채가 있고, 이를 청, 방, 부엌, 곳간으로 구성된 행랑이 둘러싸고 있다. 주방 나인들이 왕과 왕비의 수라를 장만하는 곳으로 화재의 우려가 있어 왕의 침전과 떨어진 곳에 설치하였다. 일상식을 장만하는

  • 내수도문 / 內修道文 [교육/교육]

    1899년 동학의 제2대 교주 최시형이 여성교인의 생활규범을 기도문 형식으로 작성한 천도교서. 기도문. 최시형은 오랜 잠행생활을 통하여 당시 대부분의 여성에게 과해졌던 차별대우에 대하여 느낀 바 있어, 여성의 자각과 인간회복을 이루고자 하는 일상적인 실천사항을 교리(

  • 내수사 / 內需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실 재정의 관리를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이조 소속의 정5품 아문으로 왕실의 쌀·베·잡화 및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조선 개국 초에는 고려 왕실로부터 물려받은 왕실 재산과 함경도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성계(李成桂) 가문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기

  • 내수사전 / 內需司田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왕실 재정을 담당한 내수사에 소속된 토지. 내수사에서 관할하는 토지는 본래 본궁에 속한 토지 이외에도 내수사의 공해전(公廨田)이 있었다. 1449년에 가속군자전(假屬軍資田)에서 2,000결을 떼어 내수소에서 수세하도록 했던 것이나, 1472년(성종 3)에도

  • 내수소 / 內需所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1430년(세종 12) 종래 궁중의 특수물품을 조달하던 내수별좌를 정식관부로 개편하여 내수소라 하였다. 특히 함경도에는 내수소 소속의 해척(海尺)·응사(鷹師) 300호가 지정되어 있었다. 내수소는 그 사사로

  • 내승 / 內乘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궁내에서 필요로 하는 마필을 관장하던 관서. 내구(內廄)를 관장하는 봉거서(奉車署)와 관계가 있으나,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마필을 관리하는 태복시(太僕寺)와는 구별된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 이를 혁파하고 그 토전(土田)과 노비를 본처(本處)에 돌렸다고

  • 내시 / 內侍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궐내의 잡무를 맡아보던 내시부의 관직. 본래 고려시대에는 숙위 혹은 근시(近侍) 관원이었으나, 고려 말 환관들이 내시직에 많이 진출하여 환관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다. 조선시대 내시의 구실은 품계의 고하를 막론하고 궐내의 음식물 감독, 왕명 전달, 궐문 수직

  • 내시교관 / 內侍敎官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내시들을 교육하고 훈도하는 책임을 맡았던 관리. 교관은 내시를 교육하는 것이 임무였지만, 내시부(內侍府)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았으며 체아직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정원은 모두 2인이었고, 내시들의 교과목인 사서와 ≪소학≫·≪삼강행실 ≫·≪통감≫ 등을 교수하

  • 내시백 / 內侍伯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액정국의 정7품 관직. 정원은 1인이었다. 998년(목종 1)에 제정된 전시과에서 제13과에 포함되어 전지 40결과 시지(柴地) 20결을 지급받았으므로, 그 이전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1308년(충선왕 복위년) 액정국이 내알사(內謁司

  • 내시부 / 內侍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내시의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고려 초기 내시직은 남반(南班) 7품에 한정되어 있었다. 1356년(공민왕 5)에는 전문 관청인 내시부가 성립되었다. 이 때 관원은 정2품 판사 1인에서, 종9품 통사(通事) 1인에 이르기까지 101인에 달하였다.

  • 내시사 / 內侍使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충선왕 때 관제 제헌의 종5품 관직. 문종 때 관제에서 어사대(御史臺)의 시어사(侍御史)가 1275년(충렬왕 1)에 감찰사의 어사로 개칭되었고, 다시 1298년 충선왕이 일시 즉위하여 관제를 개혁할 때 감찰사가 제헌으로 개편되면서 어사 또한 개칭되어 내시사로 되

  • 내시위 / 內侍衛 [정치·법제/국방]

    조선 전기 궁궐의 경비와 왕의 신변보호를 맡아보던 시위군. 1409년(태종 9)에 새로 내시위가 구성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 120인으로 40인씩 세 번으로 나누어 숙위하였는데, 각 10인마다 총제(摠制) 1인이 절제사로서 통솔하였으며, 삼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러

  • 내알사 / 內謁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왕명의 전달 및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궁궐문의 자물쇠와 열쇠의 관수, 궁궐 안뜰의 포설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고려 초기에 액정원(掖庭院)이라 하였던 것을 995년(성종 14) 액정국으로 개칭하고 문종대에 이르러 직제의 정비를 꾀하였다.

  • 내알자 / 內謁者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액정국의 종8품 관직. 액정국은 궁중에서 왕명을 전달하거나 궁문의 자물쇠를 관리하는 등 여러 가지 잡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7품 이하의 남반(南班) 관직이 설치되어 내료(內僚)들이 속해 있었는데, 내알자는 남반 관직은 아니었다. 문종 때 품계가 정해졌으며,

  • 내알자감 / 內謁者監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액정국의 정6품 관직. 문종 때 액정국의 장관으로 정6품인 내알자감 1인을 두었으며, 그 아래 내시백(內侍伯, 정7품)·내알자(內謁者, 종8품) 등을 두었다.

  • 내암문집 / 萊庵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시대 문신·학자 정인홍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1년에 간행한 시문집. 15권 7책. 목활자본.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시 23수, 권2∼10에 소 13편, 봉사(封事) 8편, 차(箚) 59편, 계(啓) 2편, 공사(供辭) 3편, 권11에 서(書) 5편

  • 내암유고 / 耐庵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시대 학자 정사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30년에 간행한 시문집. 2권 1책. 목활자본. 1630년(인조 8) 저자의 문인인 공주목사 허수(許洙)가 편집하고, 그 뒤 외증손 조성(趙䃏)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두경(鄭斗卿)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조성의 발문이

  • 내약방 / 內藥房 [과학기술/의약학]

    조선 초기 왕이 쓰는 약재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1392년(태조 1) 7월에 반포된 관제 중에는 그 이름이 없고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려 말 궁내어약을 취급하던 봉의서(奉醫署)의 제도에 따라서 건국과 함께 왕실내의 의약을

  • 내연산 / 內延山 [지리/자연지리]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과 포항시 북구 송라면·죽장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11.3m.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에 있는 산으로, 북쪽에는 동대산(東大山, 792m)·바데산(645m)이 있고, 서쪽 4㎞ 지점에는 6·25의 격전지인 향로봉(香爐峯, 929m)이 있다.

  • 내옹유고 / 乃翁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안치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4년에 간행한 시문집. 3권 1책. 목활자본. 1934년 5대손인 상욱(商煜)과 택주(宅柱)·태중(泰中) 등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하겸진(河謙鎭)의 서문과 권말에 상욱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

  • 내외 / 內外 [사회/사회구조]

    조선시대 남녀간의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였던 관습 및 제도. 내외의 기원은 『예기(禮記)』내측편(內則篇) 에 “예는 부부가 서로 삼가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니, 궁실을 지을 때 내외를 구별하여 남자는 밖에, 여자는 안에 거처하고, 궁문을 깊고 굳게 하여 남자는 함부로 들

  • 내외잡저 / 內外雜著 [종교·철학/불교]

    조선후기 승려 최눌(最訥, 1717~1790)의 시가와 산문을 모아 엮은 시문집. 원본은 현존하지 않는다. 원래 10권이었으나 앞의 6권은 분실되었고, 뒤의 4권 가운데에서도 장문은 삭제하고 간단한 서한만 간행한 것이 전래되었으나, 1951년 7월의 송광사(松廣寺)

  • 내원서 / 內園署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원원을 관리하던 관서. 정종 때에 내원승이라는 관직을 지낸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그 이전에 직제상으로 확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직무는 원포와 원지를 관장하여 제향에 소채와 과일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관원은 문종 때에 영 2인과 승 2인을 두었으며,

  • 내원성 / 來遠城 [문학/고전시가]

    고구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원래의 노래와 한역한 노래 모두가 전하지 않으며, 작품의 제목과 그 유래만이 『고려사』 권71 속악(俗樂)에 전하며, 그 내용이 『증보문헌비고』 권108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 내원성은 고구려 정주(靜州, 지금의 平安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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