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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락 은산현감 해유문서 / 金龍洛 殷山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용락 은산현감 해유문서. 1840년(헌종 6)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1월 29일 행평안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도순찰사관향사평양부윤이 호조에 문서를 이관, 1841년(헌종 7) 4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 동년 4월 초9일에 이조에서

  • 김용래 부산진수군첨절제사 해유문서 / 金用來 釜山鎭水軍僉節制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용래 부산진수군첨절제사 해유문서. 1884년(고종 21) 12월 초4일 후임관이 수군절도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2월 초5일에 절도사가 호조에 첩정을 올렸으며, 1885년(고종 22) 11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김용래는 1883년(고종 20

  • 김용식 / 金容植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런던올림픽대회 국가대표팀 코치 겸 선수로 활약한 체육인. 황해도 신천 출신. 주역의 셋째아들이다. 10살 때 축구를 시작했고, 경신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학생 시절에는 한때 빙상선수로 활약하였고, 1928년 11월 경신학교 재학 시절에 개최된 제9회

  • 김우규 / 金友奎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객(歌客). 『청구가요(靑邱歌謠)』의 김우규 작품 후서에서 김수장(金壽長)은 김우규가 자기보다 한 해 뒤인 신미년(1691)에 태어났으며(聖伯年令辛未我庚午), 당시에 그가 생존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此輩已沒 只有聖伯與我矣). 김수장이 이 글을 쓴 해가

  • 김우창 / 金禹昌 [종교·철학/유학]

    1830년(순조 30)∼1906년(광무 10). 조선 말기의 학자. 아버지는 김진필,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방도의 딸이다. 외삼촌 권재정을 사사하였다. 1883년(고종 20) 도내 유생들이 정경세의 문묘배향을 주장하여 소를 올릴 때 소두가 되었다. 1895년 민비가

  • 김우태 / 金宇泰 [종교·철학/유학]

    1647년(인조 25)∼1708년(숙종 34). 조선 후기 유생. 증조는 김경신, 조부는 김계미. 부친 장사랑 김상현과 모친 선무랑 홍호약의 딸 부림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김이절의 딸 일선김씨이다. 자라서 목재 홍여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처음 학문하는 방

  • 김우항 / 金宇杭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진선 증손, 할아버지는 덕승, 아버지는 청송부사 홍경, 어머니는 김광혁의 딸이다. 1681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정언, 수찬, 교리, 경상도관찰사, 이조참판, 대사성,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 김원 / 金遠 [예술·체육/서예]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문」을 쓴 서예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에 있는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보물 제158호)를 썼다. 884년(헌강왕 10)에 건립된 이 비의 비문은 김영(金穎)이 짓고 무주곤미현령(武州昆湄縣令)

  • 김원봉 / 金元鳳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98∼?).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폭탄제조법을 습득하는 등 일제와의 무장투쟁노선을 분명히 하여 6년여에 걸쳐 의열단 단장으로 대규모암살계획 및 경찰서·동양척식주식회사 등에 대한 폭탄투척사건 등을 배후에서 지휘 조종하였고, 1

  • 김원행 / 金元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702∼1772).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때 본가의 할아버지 김창집이 노론 4대신으로 사사되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어머니 배소에 따라가《맹자》 ·《율곡집》·《우암집》등을 탐독하였다. 1725년(영조 1) 본가의

  • 김위 / 金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09∼1788). 1750년(영조 26)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이조좌랑·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갈수헌문집》이 있다.

  • 김유 / 金楺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19(숙종45).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극형, 아버지는 관찰사 징, 어머니는 이의길의 딸이다. 박세채·송시열의 문인이다. 1683년(숙종 9) 사마시에 합격, 경학으로 추천받아 창릉참봉에 등용되었으며, 정랑을 거쳐 1699년 증광문과에

  • 김유경 / 金有慶 [종교·철학/유학]

    1669(현종 10)∼1748(영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자진, 아버지는 진사 두징, 어머니는 윤필은의 딸이다. 1710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 대사간, 대사헌, 형조참판, 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 김유기 / 金裕器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김천택(金天澤)이 그를 일러 “세상에 명창으로 이름이 알려졌다.”고 말한 바와 같이 당대를 대표하는 창곡의 명인이다. 자세한 전기는 알 수 없으며 기록들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박영돈본(朴永弴本) 『해동가요』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영언선(永

  • 김유성 영흥도호부사 해유문서 / 金裕成 永興都護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유성 영흥도호부사 해유문서. 1892년(고종 29) 4월 21일 후임관이 절도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5월 초1일 절도사가 병조에 첩정을 올린 것이다. 김유성은 원직(元稙)의 아들로 유행(裕行)의 동생이다. 1891년(고종 28) 10월 14일에 본직을 제수 받았

  • 김유신설화 / [문학/구비문학]

    신라 통일기의 명장 김유신에 관한 설화. 김유신의 일생을 다룬 내용은 『삼국사기』 열전(列傳)에 실려 있고, 그 밖에 김유신의 행적에 관한 단편적인 일화들은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김유신조를 비롯하여 『파한집』·『동경잡기(東京雜記)』·『동국여지승람』 등에 실려

  • 김유연 / 金有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9∼1887). 1844년(헌종 10) 증광문과에 급제, 초계문신에 발탁되었다. 이후 한성부판윤,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866년(고종 3) 함경도관찰사 시절 변경방비 및 국경통상 등의 문제를 처리하였다.

  • 김유정 / 金裕貞 [문학]

    항일기의 소설가(1908∼1937).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였다. 1935년 단편소설《소낙비》가 조선일보,《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 김유정문학촌 / 金裕貞文學村 [문학/현대문학]

    김유정기념사업회가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문학관. 1968년김유정 31주기를 맞아 발족된 김유정기념사업회는 김유정문인비를 건립하고, 김유정 문학의 밤, 김유정추모제를 개최하였다. 기념사업회는 김유정 작가의 생가를 복원하고

  • 김유하 / 金有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문교부 체육과 장학위원, 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함경남도 함흥 출생. 덴마크 체조를 국내에 소개한 신체조 및 여성체육운동의 선구자이다. 함흥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를 거쳐 일본 체육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54년에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 김유희 / 金有喜 [종교·철학/유학]

    1787년(정조 1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한익, 조부는 김항주, 부친은 김노창이다. 1819년(순조 19) 식년시에 진사 3등 35위로 입격하였다. 1820년(순조 20) 6월에 원릉참봉, 1821년(순조 21) 9월에 금부도사에 임명, 1822년(순

  • 김육 / 金堉 [종교·철학/유학]

    1580(선조 13)∼1658(효종 9). 조선 중기의 문신·실학자. 기묘팔현의 한 사람인 식 4대손, 할아버지는 군자감판관 비, 아버지는 참봉 흥우, 어머니는 현감 조희맹의 딸이다. 정언, 안변도호부사, 형조참의, 병조참판,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저술로는 그

  • 김윤경 / 金允經 [교육]

    현대의 국어학자·교육자(1894∼1969). 1921년 조선어연구회와 1922년 수양동맹회의 창립회원이되었는데, 1937년 6월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고, 1938년 1월에 《조선문자급어학사》가 출판되었다. 1948년에는《나라말본》·《중등말본》을 펴냈

  • 김윤식 / 金允植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관료·문장가(1835∼1922). 유신환·박규수의 문인으로, 임오군란 후 호군·강화부유수에 임명되어 규장각직제학을 겸임하였고, 갑신정변 이후 병조판서를 거쳐 독판교섭통상사무가 되어 대외관계를 담당하였으나, 아관파천사건 이후 외무대신 직에서 면직되었고, 을미사

  • 김은배 / 金恩培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헬싱키올림픽대회 육상감독, 대한체육회 상무이사 등을 역임한 체육인. 서울 출생. 양정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양정고등보통학교 2학년 때부터(1928) 육상선수로 활약했으며, 5,000m와 10,000m 등 장거리가 주종목

  • 김응남 / 金應南 [종교·철학/유학]

    1546(명종 1)∼1598(선조 31). 조선 중기의 문신. 충청도병마절도사 말손의 증손, 할아버지는 증 좌찬성 안우, 아버지는 형, 어머니는 김덕유의 딸이다. 1567년 생원시에 합격, 1568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예문관·홍문관의 정자를 역임, 사가독서를

  • 김응생 / 金應生 [종교·철학/유학]

    1496(연산군 2)∼1555(명종 10).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학자 준. 13세의 어린 나이로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하자 고을사람들로부터 효성이 지극하다는 평을 들었다. 1549년(명종 4)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된 뒤 벼슬을 단념하고 향촌 교육에 뜻을

  • 김응선임명문서 / 金應善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융희 1) 11월 26일. 배종무관 김응선(金應善)을 황태자 이은(李垠)의 일본 유학시 배종으로 임명하는 문서. 1907년 11월 19일 순종황제는 조령을 내려 황태자 이은을 일본에 유학시키도록 명하였다. 순종은 당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태자태사로 삼았

  • 김응섭 / 金應燮 [예술·체육/서예]

    해방 이후 각급 공모전의 심사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초대 작가로 활약한 서예가. 경상북도 영양(英陽) 출생. 서병오(徐丙五)를 사사, 서화(書畫)·음률(音律)에 능하였다. 추사서풍(秋史書風)에 심취하여 추사체연구회(秋史體硏究會)를 조직하였고, 또 한글초서를 개발하여 묵란

  • 김응순 / 金應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8∼1774). 할아버지는 영행, 아버지는 이건, 어머니는 조태과의 딸이다. 1753년(영조 29)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지평이 되었다. 이후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70년에는 사직으로《동국문헌비고》의 편찬에 참

  • 김응정 / 金應鼎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의 문인. 아버지는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김한걸(金漢傑)이며, 어머니는 해남 윤씨(海南尹氏)이다. 그는 명종의 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죽었을 때, 또 명종·선조가 죽었을 때에 고령에도 불구하고 상복을 입고 상사(喪事)에 임하였다. 당시 그는 비록 관직은 없

  • 김응조 / 金應祖 [종교·철학/유학]

    1587(선조 20)∼1667(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장례원사의 농, 아버지는 산음현감 대현, 어머니는 수의부위 찬금의 딸이다. 17세 때 유성룡을 사사했으며, 1613년(광해군 5)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당시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보

  • 김응하 / 金應河 [종교·철학/유학]

    1580(선조 13)∼1619(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무신. 고려의 명장 방경 후손, 아버지는 증 승지 지사이다. 1604년(선조 37) 무과에 발탁, 선전관, 경원판관, 북우후 등을 역임하였다. 명나라 신종은 그가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한 죽음을 당한 데 대한 보답

  • 김응환 / 金應煥 [종교·철학/유학]

    1774년(영조 50)∼1826년(순조 26). 조선 후기 효자. 문정공 하서 김인후의 후손이다. 부친은 김백휴이다. 부모 곁을 떠날까 두려워 과거시험 공부에 전념하지 않고, 부모 곁에서도 할 수 있는 경서 공부에만 힘을 썼다. 그러나 마음이 맞는 벗들과는 산수를 찾

  • 김의정 / 金義貞 [종교·철학/유학]

    1495(연산군 1)∼1547(명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종석 증손, 할아버지는 군수 휘산, 아버지는 공조참판 양진, 어머니는 양천허씨로 서의 딸이다. 1526년(중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에 임명되고, 이어 수찬·정언·세자시강원사서에 이르렀

  • 김의정강도정축록 / 金議政江都丁丑錄 [역사/조선시대사]

    조선후기 문신 김광환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의 사적을 수록하여 1641년에 간행한 역사서. 1책. 목판본. 김상용의 순절경위와 추숭(追崇)의 전말, 그리고 치제문(致祭文) 등을 그의 아들 광환(光煥)이 수집하여 1641년(인조 19)에 편찬, 간행하였

  • 김이만 / 金履萬 [종교·철학/유학]

    1640~1691.166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63년 식년 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성균관 학유, 의정부 사록으로 관직에 들어갔다. 1666년 내간 상 후 복을 마치고, 전적 · 직강 · 병조좌랑 · 겸춘추관기주관을 역임하였다. 1672년 지평 · 정언 후 6~

  • 김이상 / 金履祥 [종교·철학/유학]

    1498(연산군 4)∼1576(선조 9).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수련. 154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내직으로는 직강·사예·정자를 거쳐, 감찰·통례원통례를 역임, 외직으로는 덕천군수·영원군수를 거쳤다. 유집으로는『심적당송암경승재유고합편』이 전한다.

  • 김이소 / 金履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5∼1798). 대사헌·한성부판윤, 예조·이조·형조·병조·호조의 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780년 대사헌 시절 홍국영의 삭탈관직을 주청하였고, 1781년《영조실록》 편찬을 담당했으며, 외교에 뛰어나 청나라에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

  • 김이안 / 金履安 [역사/조선시대사]

    1722년(경종 2)∼1791년(정조 15).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 자는 원례(元禮), 호는 삼산재(三山齋), 본관은 안동(安東[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1781년(정조 5) 충주목사를 지냈고, 1784년 지평(持平)‧보덕(輔德)‧찬선(贊善) 등을 거쳐 1

  • 김익 / 金熤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3∼1790). 우의정으로 진주 겸 주청사의 정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다시 동지사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응교·대사헌·강호유수·우의정 등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 김익두 / 金益斗 [종교·철학/개신교]

    1874년(고종 11)∼1950년. 장로교 목사. 1910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다. 1920년 6월 평양의 연합부흥집회에는 3천명을 수용하는 장대현교회당이 좁을 정도로 대중이 몰려들었고, 같은해 10월 서울의 승동교회에서 열린 일곱 교회 연합집회에

  • 김익복 / 金益福 [종교·철학/유학]

    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문신. 후손 증손, 할아버지는 석량, 아버지는 찰방 광. 158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도사·군수를 역임하였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광군수로 현감 임계영과 함께 인근의 여러 고을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아 여러 차례

  • 김익정 / 金益精 [종교·철학/유학]

    ?∼1436(세종 18). 조선 전기의 문신. 구 증손, 할아버지는 성목, 아버지는 한성부윤 휴, 어머니는 김효신의 딸이다.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문하부의 요직을 지냈고, 1409년(태종 9) 장령이 되었다. 헌납, 직제학, 우대언, 승정원지

  • 김익정 / 金益鼎 [종교·철학/유학]

    1803년(순조 3)∼1879년(고종 16). 조선 말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형조좌랑 기장, 아버지는 만선이다. 1834년에 제관인 재랑이 되었으며, 그뒤에 내외의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1872년 나이 70에 왕에게 시종하는 은혜를 받아 통정대부가 되었으며, 187

  • 김인겸 / 金仁謙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문인. 김상헌(金尙憲)의 현손,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郎) 김창복(金昌復),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장서주(張瑞周)의 딸이다. 문벌이 혁혁(赫赫)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그의 할아버지인 수능(壽能)은 서출이라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감에 그쳤다. 14세 때에

  • 김인문묘비 / 金仁問墓碑 [예술·체육/서예]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신라의 장수 김인문의 묘비. 높이 63㎝, 너비 94.5㎝, 두께 18.4㎝.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비문은 26행이며, 자경(字徑)은 약 2.3㎝이다. 1931년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서악서원

  • 김인향전 / 金仁香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한글필사본·활자본. 『한글필사본고소설자료총서』에는 ‘인향전 권지단’이란 표제를 가진 이본(異本) 3종이 있다. 활자본은 세창서관(世昌書館) 발행으로 통용되는 박승엽저 ‘인향전’을 ‘김인향전’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 소설은 191

  • 김인후 / 金麟厚 [종교·철학/유학]

    1510-1560. 조선 명종때의 성리학자. 1540년 과거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등용되었다. 그 뒤 박사, 부수찬 등을 지냈다. 학문은 정주학에 기초하여 성경을 위주로 하였으며 서경덕의 학문이 사변적이라고 비판했다. 선학, 양명학, 불교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저서로

  • 김일경 / 金一鏡 [종교·철학/유학]

    1662(현종 3)∼1724(영조 즉위년). 조선 후기의 문신. 계 증손, 할아버지는 익렴, 아버지는 하중, 어머니는 권우의 딸이다. 생원 여중에게 입양되었다. 소론의 거두이다. 1702년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정언, 동부승지,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저

  • 김일성 / 金日成 [정치·법제/정치]

    1912년 4월 15일∼1994년. 현대 정치가. 부친 김형직과 모친 강반석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5년 10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조직 책임비서로 선출, 1946년 2월에 창설된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 북조선노동당의 당명아래

  • 김일손 / 金馹孫 [종교·철학/유학]

    1464(세조 10)∼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할아버지는 극일, 아버지는 집의 맹, 어머니는 이씨이다. 1486년(성종 17) 생원에 수석으로 합격, 이 해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어 같은 해에 식년 문과 갑과 제2인으로 급제하였다.

  • 김장군유사 / 金將軍遺事 [역사/조선시대사]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시항이 김경서의 행적을 모아 1738년에 편찬한 전기. 1책. 목판본. 1738년(영조 14)에 간행되었다. 김경서 사후에 가승(家乘)도 없어지고 국사에도 그의 사적이 애매하게 됨을 염려하여 이시항이 여러 책을 모아 편찬하였다. 이 책의 요목(要

  • 김장군전 / 金將軍傳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문신 박희현이 무신 김응하의 행적을 모아 엮은 전기. 1책. 목판본·활자본이 있다. 박희현(朴希賢)이 편찬하였다. 김응하는 안동사람으로 박승종(朴承宗)의 천거에 의해 관직에 나아가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선천군수(宣川郡守)로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부원수(副

  • 김장생 / 金長生 [종교·철학/유학]

    1548-1631. 조선 선조, 광해군 때의 성리학자. 예학자.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당쟁이 격심하던 시대에 살았다. 이러한 시기에 주자학의 이념으로 재정비하려고 시도했다. 그의 저술은 현존하는 조선 예서 중에서 창시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 김장생문묘배향교지 / 金長生文廟配享敎旨 [언론·출판/출판]

    1717년 문신·학자 김장생의 문묘 배향을 교명한 교지. 1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이 교지의 내용은 일종의 교서(敎書)에 해당하는데, 머리에 ‘敎贈領議政文元公金長生從祀文廟書(교증영의정문원공김장생종사문묘서)’라 하였고, 지키고 행하여야 할 교명(敎命)을

  • 김재경 / 金在敬 [종교·철학/유학]

    1841년(헌종 7) 12월 11일∼1926년 12월 10일. 조선 말기 유학자. 증조부는 김상구, 조부는 김진호, 아버지는 김치명. 외조부는 김만중, 처부는 김필균이다. 평생 덕성을 이루는 데 힘을 기울여 문장을 꾸미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천문과 지리, 의술 등

  • 김재규 / 金載圭 [정치·법제/정치]

    1926년∼1980년. 군인·정치가·행정관료.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46년 12월 제2기생으로 졸업. 1954년 제5사단 제36연대장, 1957년 육군대학부총장, 1963년 제6사단장, 1966년 제6관구 사령관, 1968년 육군보안사령관, 1971년 제

  • 김재로 / 金在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2∼1759). 숙종 대에 관직을 지내며 여러 사건으로 파직되고 복직되기를 여러번 했다. 1731년 신임사화로 죽은 노론 김창집·이이명을 신원되게 하고, 1746년 김종서·황보인의 복관을 건의하여 신원되게 하였다. 저서로는 《천의소감언해》와 《

  • 김재로 영정 / 金在魯 影幀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재로(金在魯)를 그린 영정. 비단 바탕에 채색.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2일에 문화재에서 해제되었다. 김재로의 영정은 현재 중국본과 한국본의 두 벌이 함께 전해지고 있어 조선 후기 초상화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

  • 김재일 휘릉별검 해유문서 / 金載一 徽陵別檢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재일 휘릉별검 해유문서. 1791년(정조 15) 6월 일에 후임관이 호조로 첩정을 보내고, 동년 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이관한 문서이다. 김재일(金載一)은 1788년(정조 12) 12월 21일에 본직을 제수받고 동월 30일에 홍전문(紅箭門)에서 숙배한 뒤에 도임하였

  • 김재준 / 金在俊 [종교·철학/개신교]

    1901년∼1987년. 신학자·목사. 1923년 중동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김익두의 전도로 기독교에 입신하였다. 1928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톤신학교를 거쳐 1932년 웨스턴신학교에서 구약학으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33년부터 평양 숭인상업학교 성서교사 겸

  • 김재현 / 金在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8∼1899). 1858년(철종 9)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경기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산군에도 포군을 설치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이조판서·한성부부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문장이 매우 뛰어났다.

  • 김전전 / 金銓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한문필사본. 결미 부분에 ‘가경(嘉慶) 2년’이라는 필사연대를 기입해 놓았다. 가경 2년은 정조 21년(1797)이므로, 조선 중기(선조∼숙종)에 쓰여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전반부는 영웅소설과 비슷하면서도 계모형 가

  • 김정 / 金淨 [종교·철학/유학]

    1486(성종 17)∼1521(중종 1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호 증손, 할아버지는 처용, 아버지는 호조정랑 효정, 어머니는 윤고의 딸이다. 1507년 증광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에 보임, 수찬·병조좌랑을 거쳐 정언으로 옮겨졌다. 이어 병조정랑·부교

  • 김정견 / 金廷堅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45(인조 23).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담수이다. 정구·정경세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 연구에 힘썼다. 임진왜란의 와중에서도 경의의 연마에 힘쓰고 후진양

  • 김정국 / 金正國 [종교·철학/유학]

    1485(성종 16)∼1541(중종 36).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아버지는 예빈시참봉 연, 어머니는 허지의 딸, 안국의 동생이다. 김굉필의 문인이다. 1509년(중종 4)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경상도관찰사, 예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 김정근 / 金禎根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1895년 지방관제 개혁 때 강계부관찰사를 지냈다. 1898년 11월 경무사로 임명, 이상재·방한덕·남궁억·정교 등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체포하였다. 또한 독립협회 사무실을 수색하는 등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섰다. 이후 독립협회로부터

  • 김정묵 / 金正默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39∼1799). 김장생의 후손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쓰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성리학 예설에 밝았으며 한원진의 논술이 이이·송시열에 위배됨을 지적하였다. 저서로는《과재유고》가 있다.

  • 김정운 / 金鼎運 [종교·철학/유학]

    1677년(숙종 3)∼1735년(영조 11). 조선 중기의 문신. 조부는 문정공 김경여, 부친은 청주진병마첨절제사를 지낸 통훈대부 김창석, 생부는 청주목사 김명석이다. 호조정랑을 거쳐 합천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인좌의 난 때 반란군이 합천, 삼가 등지를 장악하자 의병을

  • 김정일 / 金正日 [정치·법제/정치]

    1942~ 2011. 북한의 정치가. 김일성과 김정숙의 장남으로 태어나 해방 후 북한에 들어와 평안남산고급중학, 만경대 혁명학원, 김일성 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수학했다. 1964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당중앙위원회에 배치, 1973년 9월 당중앙위 비서, 1974년

  • 김정집 / 金鼎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8∼1859). 할아버지는 좌의정 사목, 아버지는 선공감부정 영수, 어머니는 조헌진의 딸이다. 1827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한성판윤·에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황해도관찰사로 재직 중 김대건 신부

  • 김정호 / 金正浩 [지리/인문지리]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 당대의 실학자 최한기와 친교가 깊었고, 《대동여지도》의 재간과 《대동지지》의 간행연도가 모두 1864년(고종 1)인 것으로 보아 1800년경에서 1864년경까지 살았으며, 순조·헌종·철종대에 걸친 사람으로 추정된다.

  • 김정희 / 金正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서화가(1786∼1856). 18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저서에는《완당집》·《금석과안

  • 김정희 영정 / 金正喜影幀 [예술·체육/회화]

    이한철(李漢喆) 등이 김정희를 그린 영정. 1857년(철종 8)작. 비단바탕에 채색. 세로 131.5㎝, 가로 57.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예산김정희종가유물(보물 제547호) 중의 하나이다. 오사모(烏紗帽, 沙帽)를 쓰고 쌍학문양(雙鶴文樣)의 흉배를 착용한 정장관

  • 김정희 종가 유물 / 金正喜宗家遺物 [예술·체육/공예]

    조선 말기의 선비이며 서화가였던 김정희의 일괄 유물. 보물 제547호. 이 유물들은 원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김정희 종가인 김성기(金聲基)의 집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보존 관계상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관되어 있다. 김정희 종가 유물은 생전에 그가 지니던

  • 김정희선생고택 / 金正喜先生故宅 [예술·체육/건축]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조선후기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김정희 관련 주택.시도유형문화재. 2동(棟).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조선 후기 서예가이며 금석학자인 김정희의 고택으로, 증조부인이자 영조의 부마(駙馬) 김한신(金漢藎)에 의하여 건립되었다고 전한다.건

  • 김정희선생유물 / 金正喜先生遺物 [언론·출판/출판]

    충청남도 예산군 신안면 용궁리에 소장된 문서. 유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 혼서지(婚書紙)·생원시권(生員試券)·농상지실(農祥之室)의 3점이 지정되어 있다. 혼서지는 김정희가 67세 때인 1852년(철종 3) 11월 21일에 쓴 것으로, 아들 상무(商懋)가 3

  • 김정희선생유적 / 金正喜先生遺蹟 [예술·체육/건축]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서화가 김정희의 생가와 무덤 등의 복합유적.시도기념물. 충청남도 기념물 제24호. 전체면적 18,308㎡, 이곳에는 김정희의 고택을 비롯하여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김한신(金漢藎)부부의 합장묘, 홍문(紅門), 김흥경(金興慶)의

  • 김정희필 세한도 / 金正喜筆歲寒圖 [예술·체육/회화]

    조선 말기의 화가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문인화. 국보 제180호. 세로 23㎝, 가로 69.2㎝. 종이 바탕에 수묵.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었던 김정희가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北京)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

  • 김정희해서묵소거사자찬 / 金正喜楷書默笑居士自讚 [예술·체육/서예]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친우 김유근(金逌根, 1785∼1840)이 지은 「묵소거사자찬(默笑居士自讚)」을 해서(楷書)로 쓴 서축(書軸). 보물 제1685호. 가로로 긴 두루마리로 장황되어 있다. 붉은색 바탕의 종이에 해서로 4자씩 21줄에 걸쳐

  •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 金堤歸信寺大寂光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귀신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826호. 귀신사는 신라 때인 678년(문무왕 16) 의상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귀신사는 고려 말에 왜구 300여 명이 이곳에 주둔했을 만큼 규모가 커서 주변 일대에 전각과 암자가

  •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 / 金堤金山寺金剛戒壇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계의식 관련 계단.사리탑. 보물. 보물 제26호.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은 경내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높은 대지 위에 형성된 2중 방형기단 위의 중앙부에 석종형 사리탑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다. 계단은 기단 위에

  • 김제 금산사 노주 / 金堤金山寺露柱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바닥돌, 받침돌, 상륜부 등으로 구성된 돌기둥.노주. 보물. 윗부분에 놓여 있는 보주(寶珠)만 없으면, 불상을 받치는 네모난 대좌(臺座)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모습이다.노주는 몸돌이 없이 바닥돌, 받침돌, 상륜부(

  •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 金堤金山寺幢竿支柱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깃대기둥.당간지주. 보물. 높이 3.55m. 두 개의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당간을 받쳤던 간대(竿臺)와 지주를 놓은 받침돌 등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긴 네모난 모습의 받침은 1층으로 구성되었는

  • 김제 금산사 대장전 / 金堤金山寺大藏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조선시대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827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이 건물은 본래 미륵전 앞에 세웠던 팔각원당형 목조탑으로서 장경각(藏經閣)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임진왜란 후에 수문(守文)이 중창할

  • 김제 금산사 미륵전 / 金堤金山寺彌勒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국보. 국보 제62호.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팔작지붕건물이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봉안한 불전으로, 일명 용화전(龍華殿)·산호전(山呼殿)·

  • 김제 금산사 석등 / 金堤金山寺石燈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석등.보물. 보물 제828호. 높이 3.9m. 미륵전 건너편의 대장전(大藏殿) 앞뜰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닥돌부터 상륜부까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석등은 단면이 8각으로, 네모난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 간주

  • 김제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 / 金堤金山寺深源庵三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조 불탑.보물. 높이 4.5m.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세운 석탑으로,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따르고 있지만 일부에는 고려 석

  •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 金堤金山寺五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건립된 5층 석조 불탑.보물. 보물 제25호. 높이 7.2m.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으로, 미륵전 오른쪽의 ‘송대(松臺)’라고 불리는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이곳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 보물 제26호)으

  • 김제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 / 金堤金山寺六角多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흑백의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다층 불탑.보물. 보물 제27호. 높이 2.18m. 석탑은 원래 금산사에 속한 봉천원(奉天院)에 있었던 것을 현재의 자리인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의 왼쪽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받침돌은 6각으로

  • 김제 금산사 일원 / 金堤 金山寺 一圓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시기에 창건된 금산사의 사찰일원.사적. 사적 제496호. 김제시에 위치하고 있는 모악산(母岳山, 해발794m)의 서쪽 기슭에 건립되어 있는 사찰이다. 금산사는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도량이다.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는

  •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 金堤金山寺慧德王師塔碑 [예술·체육/서예]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혜덕왕사의 탑비.보물. 보물 제24호. 비신의 높이 277㎝, 너비 149㎝, 두께 17㎝, 글자 크기 약 2㎝. 1111년(예종 6)에 세워졌다.현재 비수(碑首)는 유실되었고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거의

  • 김제 종덕리 왕버들 / 金堤 從德里─ [과학/식물]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에 있는 왕버들. 천연기념물 제296호. 높이 16m, 가슴높이의 둘레 8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13.4m, 남북이 16.8m인 노거수로서 나무의 나이는 약 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줄기는 땅에서 2m 정도 올라가 크게 두개로 갈라

  • 김제 행촌리 느티나무 / 金堤 幸村里─ [과학/식물]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행촌리에 있는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제280호. 높이 15m, 가슴높이의 둘레 8m인 노거수로서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뿌리 근처의 둘레는 17m, 가지 밑의 높이는 5m에 달하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 6m, 서쪽 7.4m, 남쪽

  • 김제갑 / 金悌甲 [종교·철학/유학]

    1525(중종 20)∼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고려의 명장 방경의 후손, 할아버지는 언묵, 아버지는 진사 석, 어머니는 기형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의 정자, 병조좌랑, 정언을 거쳐 1581년(

  • 김제겸 / 金濟謙 [종교·철학/유학]

    1680(숙종 6)∼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동지중추부사 광찬 증손, 할아버지는 영의정 수항, 아버지는 영의정 창집, 어머니는 박세남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창흡에게 수학하였다.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이 되었다. 그 뒤 헌납, 응교, 사

  • 김제군 관아와 향교 / 金堤郡 官衙와 鄕校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시대 김제군의 동헌과 내아 등의 관청.향교. 사적. 사적 제482호. 김제향교는 김제시 성산공원 남쪽에 있으며 향교의 동쪽 130m 지점에는 김제관아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김제관아에는 수령이 업무를 보는 동헌(東軒)과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

  • 김제군지 / 金堤郡誌 [지리/인문지리]

    1918년 조찬성이 전라북도 김제군(현 김제시)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 1책. 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이밖에도 조선 정조 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김제군읍지(金堤郡邑誌)』가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갑신구지서(甲申

  • 김제남 / 金悌男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13(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안도, 아버지는 증 영의정 오, 어머니는 권상의 딸이다. 선조의 장인이다. 1594년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거쳐, 1596년 연천현감을 지냈다. 159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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