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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부전 / 金淳夫傳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이광정(李光庭)이 지은 전(傳). 조선 후기에 이광정(李光庭)이 지은 전(傳). 『눌은문집 訥隱文集』 제20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 분량은 2,300여 자에 이른다. 뛰어난 식견과 의연한 태도를 갖춘 선비 김순부의 비극적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사실보고적

  • 김순애 / 金淳愛 [역사/근대사]

    1889-1976년. 독립운동가·교육자. 황해도 장연 출신. 아버지는 성승(聖勝)이며, 어머니는 김성은(金聖恩)이다. 송천학교를 마치고 상경,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 초량소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몰래 가르쳤다.

  • 김순종 / 金順鍾 [역사/근대사]

    1899-1972.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공산주의자. 자는 익성(翼成), 호는 고봉(孤峰)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구좌면(舊左面) 하도리(下道里) 출신이다.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細花里)로 이주하여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30년 3월 세화리 문도배(文

  • 김순탁 / 金淳鐸 [역사/근대사]

    1895-193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언론인. 호는 양천(養泉)이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신명사숙(神明私塾) 교사로 지냈다. 제주 조천에서 일어난 1919년 독립만세운동은

  • 김순희 / 金淳熙 [역사/근대사]

    1908-193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현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1929년 3월 김태래(金泰來)·이학종(李學鍾)·정관진(丁寬鎭)·한경석(韓慶錫) 등과 함께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 결성에 일조한

  • 김숭겸 / 金崇謙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시인.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아버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김창협(金昌協)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로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의 딸이다. 일찍이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워서 깊이 통달하였고, 서법 또한 절묘하였다. 비록 19세로 요절했으나, 그 뜻이

  • 김숭덕 / 金崇德 [종교·철학/유학]

    1732년(영조8)∼1776(영조 52). 조선 후기의 진사. 부친은 김양현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진사 3등 64위로 합격하였다. 묘소는 선산 진륵동 병향에 있다.

  • 김승경 / 金升卿 [종교·철학/유학]

    1430(세종 12)∼1493(성종 24). 조선 전기의 문신. 계림군 김균 증손, 할아버지는 김중성,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김신민, 어머니는 홍수명의 딸이다. 1456년(세조 2) 사용으로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예조참판·대사헌에 이르렀다. 그는 벼슬길에 오

  • 김승곤 / 金勝坤 [역사/근대사]

    191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민(黃民)·호영(胡英)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본적은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담양읍(潭陽邑)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서울 성동구(城東區) 금호동(金湖洞)이다. 1933년 중국 망명 후 9월 1일 입교

  • 김승기 / 金勝基 [역사/근대사]

    1924-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이산면(伊山面)이고, 거주지도 경상북도 영주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인 행위에 분노하여 야학 교사로 활동을 하는 한편 일본

  • 김승만 / 金承萬 [역사/근대사]

    미상-1935. 독립운동가. 호는 죽림(竹林).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뒤에 신의주로 이거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 안동현에서 이륭양행(怡隆洋行) 주인인 영국사람 쇼우(Show, G.)의 집을 근거로 여순근(呂淳根)·김두만(金斗萬)·오동진(吳東振)·홍

  • 김승민 / 金升旼 [역사/근대사]

    1872-1931.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함주 출신. 1906년 비서감(祕書監)으로 재직할 때 항일의병과 내통했다는 소위 밀칙사건(密勅事件)에 관련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1909년 헤이그특사사건에 연좌되어 다시 6개월간 복역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0년 봉천(

  • 김승빈 / 金承彬 [역사/근대사]

    1895-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명은 김병주(金炳疇)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서이다. 부친 김경서(金慶瑞)와 모친 박씨(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0년(융희 4)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1915년 서울의 구황실 근위대에 입대해 근무하였다. 1

  • 김승옥 / 金升玉 [역사/근대사]

    1889-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이다. 1919년 3월 19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고창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오동균(吳東均)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국민휘보’, ‘조선독립가’ 등 문서를 등사하며 추진하다

  • 김승지댁주방문 / 金承旨宅酒方文 [생활/식생활]

    1860년에 과실주 담그는 법·생선요리법·장담그는 법 등에 관하여 저술한 조리서. 1책. 한글 필사본. 앞부분에는 계절에 따라 수확되는 곡식이나 과일을 이용하여 술을 담그는 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뒷부분에는 생선요리법 몇 종류와 장담그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 김승학 / 金承學 [역사/근대사]

    1881-196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07년 정미조약 체결 때 서울 종로에서 반대연설을 하였으며,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평북독판부 국내특파원으로 선발되어 평안도·황해도일대에 연통제를 조직하고 88개소에 달하는 독립단 지단을 설치, 운영하였다.

  • 김시구 / 金蓍耉 [종교·철학/유학]

    1724(경종 4)∼1795(정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김정모이고, 아버지는 장령 김광운이며, 어머니는 채경전의 딸이다. 김광진에게 입양되었다. 성리학에 능했다. 1754년(영조 30) 증광 문과에 급제한 후 검열이 되었다가 찰방으로 쫓겨났다. 지

  • 김시민 / 金時敏 [종교·철학/유학]

    1681(숙종 7)∼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호조정랑 김성후, 어머니는 임원기의 딸이다. 김창협·김창흡의 문인이다. 1732년(영조 8) 선공감역이 되고, 장례원사평·사옹원주부·사직서영·종묘서영·의빈부도사·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

  • 김시민선무공신교서 / 金時敏宣武功臣敎書 [언론·출판/출판]

    1604년 무신 김시민을 선무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18명에게 선무공신을 책봉하였는데,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晋州大捷)에서 큰 공을 세워 선무2등공신에 책봉된 김시민에게 내린 교서이다. 2006년 12월 29일

  • 김시백 / 金時伯 [역사/근대사]

    1887-1950. 항일기의 의병장.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영월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1908년 소모장으로서 강원도·경상북도·충청북도 일대에서 의병모집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영주에서 붙잡혀 징역 10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건국포장

  • 김시보 / 金時保 [종교·철학/유학]

    1658년(효종 9)~1734년(영조 10).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광현, 조부는 김수인, 부친은 김성우이다. 외조는 윤형성, 형으로 헌간공 김시걸이 있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 진사 1등에 3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선공부정을 지냈다. 손자로 김이곤이

  • 김시빈 / 金始鑌 [종교·철학/유학]

    1684(숙종 10)∼1729(영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통덕랑 김정휘, 어머니는 이상언의 딸이다. 1702년(숙종 28)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필선을 거쳐 1724년(영조 즉위년) 장령이 되어 영조의 탕평책을 두둔하다

  • 김시성 / 金是聲 [종교·철학/유학]

    1602(선조 35)∼1676(숙종 2). 조선 중기의 무신. 증조부는 김영, 아버지는 김사행이다. 1637년(인조 15)에 무과에 급제, 1644년 익찬이 되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시종하여 심양에 다녀왔다. 1648년 충청수사가 된 뒤 강계부사·함경남북병사·어영중군

  • 김시숙 / 金時淑 [역사/근대사]

    1880-193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여성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후, 숙부 김문주(金汶柱)의 권유로 40세의 늦은 나이에 글을 배워, 개화여성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여수원(

  • 김시습 / 金時習 [종교·철학/유학]

    1435(세종 17)∼1493(성종 24). 조선 초기의 학자·문인.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여 중이 되었다. 1463년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사업을 도왔고, 우리나라 최초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다. 유불교체기에 태어나 유교와

  • 김시습 초상 / 金時習 肖像 [예술·체육/회화]

    조선시대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의 초상. 보물 제1497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72㎝, 가로 48.5㎝.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무량사(無量寺)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金時習)을 그린 영정이다.

  • 김시습전 / 金時習傳 [문학/한문학]

    1582년이이(李珥)가 지은 전(傳). 김시습에 대하여 지은 전이다. 『율곡집(栗谷集)』 권14∼16 잡저에 실려 있는 작자의 유일한 전이다. 김시습의 선세가계(先世家系)에서 시작하여, 어린 시절 학문을 처음 익히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와 단종의 손양(遜讓)과 세조의

  • 김시양 / 金時讓 [종교·철학/유학]

    1581(선조 14)∼1643(인조 21). 조선 중기의 문신. 김언묵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석, 아버지는 비안현감 김인갑, 어머니는 남양 홍씨로 서윤 홍이곤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전라도도사, 예조정랑, 도원수, 판중추부사를

  • 김시연 / 金始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0∼?). 대사헌 김노의 아들, 궁내부특진관 김완수의 아버지이다. 전라도관찰사 때 국고 탐장의 죄로 탄핵 받아 자자형을 받고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고종의 특지로 풀려나 1875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나 강화도조약으로 혼란스런 틈을 타 조정 비방

  • 김시온 / 金是榲 [종교·철학/유학]

    1598(선조 31)∼1669(현종 10). 조선 중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찰방 김수일, 아버지는 진사 김철, 어머니는 찰방 김종무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사성 김극일에게 입양되었다.어려서부터 재행이 경상좌도에 이름났으나, 일찍부터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병자호란 이후

  • 김시용 / 金時容 [역사/근대사]

    1906-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제주도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早稻田] 대학에 입학하였다. 1928년 재학 중 항일학생단체인 재일조선청년동맹(在日朝鮮靑年同盟)에 가입하였다. 1929년 재일조선청년동맹에서 발행한 《조선청년(朝鮮靑年)》에

  • 김시은 / 金時殷 [역사/근대사]

    1887-1957.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농산(聾山)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출신이다. 1919년 제주도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14명 중 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귀향한 조카 김장환(金章煥)

  • 김시점 / 金時漸 [역사/근대사]

    1882-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곽산(郭山)이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1913년 3월 20일 무죄로 출옥한 후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1919년 만주 안동현(安東縣)에서 김승만(金承萬)·오

  • 김시진 / 金始振 [종교·철학/유학]

    1618(광해군 10)∼1667(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좌의정 명원 증손, 할아버지는 수인, 아버지는 남헌, 어머니는 사인 권흔의 딸이다. 1644년(인조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검열이 되었다. 문학, 수찬, 부교리, 전라도관찰사, 호조참판

  • 김시창 / 金始昌 [종교·철학/유학]

    1472(성종 3)∼1558(명종 13). 조선 중기의 효자. 할아버지는 사직 효신, 아버지는 의, 어머니는 조승중의 딸이다. 일찍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금산에 거주하면서『가례』에 의한 상례를 철저히 준행하는 한편, 효행이 뛰어나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

  • 김시태 / 金時泰 [종교·철학/유학]

    1682년(숙종 8)~1722년(경종 2). 조선 후기 무신. 김상준 후손, 부친 김성구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김시정‧김시승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721년(경종 1) 당시 황해병사로 재직 중, 사헌부에서는 김시태가 권

  • 김시혁 / 金始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76∼1750). 김선여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득원, 아버지는 제용감봉사 김홍주, 어머니는 주서 남궁배의 딸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 병과 급제 후, 경종 대에 수원부사로 물러났다가 영조 때 정미환국 후 복직되어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 김시형 / 金時馨 [역사/근대사]

    1894-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배천(白川)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용천(龍川)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11월 임시 정부 연통제 평안북도 독판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광복

  • 김시화 / 金始鏵 [종교·철학/유학]

    1662년(현종 3)∼1732년(영조 8). 조선 후기의 유생. 아버지는 통덕랑 김정휘, 어머니는 통훈대부 이상언의 딸이다. 종조 이요석에게서 수업하였으며, 우헌 유세명이 그를 보고 재능이 뛰어나니 상경하여 면학하도록 격려하였다. 부친의 명으로 과거에 나가 1702년

  • 김시황 / 金時晄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중량(仲亮).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20년 김동식(金東植, 일명 攸信)·한우종(韓禹鍾)·백운기(白雲起)·김도원(金道源)·조원세(趙元世)·박초식(朴楚植)·박종식(朴宗植) 등과 함께 의주군의 동암산(東巖山)에서 의용군을 모집, 훈련하여

  • 김신겸 / 金信謙 [종교·철학/유학]

    1693(숙종 19)∼1738(영조 14).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진사 창업, 어머니는 이속의 딸이다. 숙부인 김창흡을 사사하였다.큰아버지인 영의정 김창집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신임사화에 거제도로 유배될 때 연루되어 함께 유배되었다. 1725년(영조 1)

  • 김신근 / 金信根 [역사/근대사]

    1878-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홍원(洪原)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이다. 1919년 2월 중국 길림성 용정촌(龍井村) 영신학교(永新學校)에서 기독동지청년회(基督同志靑年會)를 조직하고 연

  • 김신부부사혼기 / 金申夫婦賜婚記 [문학/고전산문]

    조선 후기에 이덕무(李德懋)가 지은 전(傳). 『아정유고(雅亭遺稿)』 권12에 실려 있다. 이 글은 신해년에 혼기를 놓친 백성에 대한 칙명으로 김씨와 신씨의 혼사를 기록한 것이다. 끝에는 이덕무의 찬사가 첨가되어 있다. 한편 이것을 희곡으로 꾸며 「동상기(東廂記)」라고

  • 김신선전 / 金神仙傳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작자가 28세 때인 1764년(영조 40) 이후에 쓴 작품이다. 『연암별집 燕巖別集』 권8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실려 있다. 「김신선전」은 박지원의 끈질긴 추적으

  • 김심 / 金諶 [종교·철학/유학]

    1445(세종 27)∼1502(연산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내자시유 해, 아버지는 참의 우신, 어머니는 지청풍군사 이계충의 딸이다. 김종직의 문인이다.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79년에는 좌랑으로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 김씨괴정본중금보급방향보 / 金氏槐庭本中芩譜及方響譜 [예술·체육/국악]

    조선후기 궁중 악사들이 「여민락」·「취타가악」·「방향령보」 등을 수록한 악보. 1책. 사본. 송석하(宋錫夏)의 『현존조선악보(現存朝鮮樂譜)』(1943)에 소개된 내용은 「여민락(與民樂)」·「미후입리(尾後入里)」·「관악보허자(管樂步虛子)」·「미후리(尾後里)」·「취타가악

  • 김씨세효도 / 金氏世孝圖 [교육/교육]

    1865년 김석봉이 김윤광 일가의 효행을 기록한 언행록. 교훈서. 1책. 목판본. 구성 체재는 『삼강행실도』의 체재를 따르고 있으며, 각 항목마다 도판과 언해가 함께 실려 있다. 조성하(趙成夏)·김병국(金炳國)·홍재철(洪在喆)·김병기(金炳冀) 등의 서문과 조영하(趙寧

  • 김씨열행록 / 金氏烈行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활자본. 이 작품은 한 여인의 열행을 표현해놓은 윤리소설의 유형을 띠고 있다.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한 여인의 열행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일부 계모형 가정소설의 전형적인

  • 김안국 / 金安國 [종교·철학/유학]

    1478(성종 9)∼1543(중종 38). 조선시대 문신·학자. 참봉 연의 아들, 정국의 형이다. 1507년(중종 2)에는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지평·장령·예조참의·대사간·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모재집≫·≪모재가훈≫·≪동몽선습≫ 이 있고, 편서로는

  • 김안로 / 金安老 [종교·철학/유학]

    1481(성종 12)∼1537(중종 32).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군수 우신, 아버지는 참의 흔, 어머니는 윤지의 딸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었고, 1506년(중종 1)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전적에 처음 임명된 뒤 수찬·정언·부교리

  • 김알지설화 / [문학/구비문학]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에 관한 신화.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김알지 탈해왕대조(金閼智脫解王代條)와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조(脫解尼師今條)에 수록되어 있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

  • 김약국의 딸들 / 金藥局─ [문학/현대문학]

    박경리(朴景利)가 지은 장편소설.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하였다. 얼킨 욕망과 운명에 의하여 지방의 유족한 한 가정이 몰락해가는 과정과, 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이르는 사이에 부(富)가 신흥세대로 이동하는 사회적 변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작품에는 욕망의 엇갈림,

  • 김약로 / 金若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4∼1753). 할아버지는 김징, 아버지는 대제학 김유, 어머니는 송박의 딸이다.《숙종실록》 보충의 잘못을 논하다가 유배당하였으나 이듬해에 석방되었다. 1744년 공조·호조·병조의 판서가 되었고, 1746년 우참찬, 이듬해 판의금부사를 거쳐 1

  • 김약수 / 金若水 [정치·법제/정치]

    1892년(고종 29)∼미상. 노동운동가·정치가. 서울의 휘문의숙과 경성공업학교를 졸업, 3·1운동의 소식이 중국에 전해지자 김원봉과 헤어져 이여성과 함께 귀국하였다. 1923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내에 잠입한 정재달과 접촉하여 구금, 1924년 4월에는 김사국·

  • 김양경시집 / 金良鏡詩集 [문학/한문학]

    고려 후기 문인 김양경(金良鏡, ?~1235)의 시문집(詩文集). 『김양경시집(金良鏡詩集)』에 관한 기록은 『허백당집(虛白堂集)』 권6과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의 「제가시문집(諸家詩文集)」 등에 보인다. 성현(成俔, 1439~1504)이 「김양경시집서(金良鏡詩集

  • 김양보호성공신록 / 金良輔扈聖功臣錄 [언론·출판/출판]

    1604년 무신 김양보를 호성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7호. 1604년(선조 37) 가의대부(嘉義大夫, 종2품) 내시부상호(內侍府尙弧)인 김양보를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인 삼등공신으로 한 계

  • 김양선 / 金良善 [종교·철학/개신교]

    1907년∼1970년. 장로교 목사·고고학자·교회사학자. 1907년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관근은 장로교 목사였으며, 어머니 백관성은 홍준의 딸이다. 1921년 중원학교, 신성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그리고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42년

  • 김양정 / 金養禎 [종교·철학/유학]

    1785년(정조 9)∼1847년(헌종 13).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김해진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생 지암 김양식이 있다.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금시술·이원조·이휘녕·정상진·황반노 등과 도의로 교유하였다. 1834년(순조 34) 식년시 생원

  • 김양행 / 金亮行 [종교·철학/유학]

    1715(숙종 41)∼1779(정조 3). 조선 후기의 문신ㆍ학자.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김신겸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좌의정 이이명의 딸이다. 민우수의 문인, 이간의 인물동성론에 동조한 김창흡의 영향을 받아 낙론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오직 학문연구에 전념하

  • 김억 / 金億 [문학/현대문학]

    항일기의 시인·평론가(1896-?). 호는 안서·안서생(岸曙生)·A. S..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정에 그가 남긴 공적은 매우 컸다. 특히, 1921년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역시집 《오뇌의 무도》가 폐허 및 백조동인들의 초기시에 미친 영향은 더욱 주목된다. 그리고

  • 김억득 / 金億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일제강점기의 국악가.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쌍교동(雙橋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김사문(金士文)이다. 성품이 호협하고 생각이 진취적이며, 창의력이 뛰어나 문예활동이 왕성했다. 전국의 명창, 명기들을 모아 서울에서 협률사(協律社)를 조직하였고, 《

  • 김언건 / 金彦健 [종교·철학/유학]

    1511(중종 6)∼1571(선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공저, 아버지는 장사랑 자, 어머니는 흥양이씨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어려운 과정에서 학문을 닦았고, 장년이 되자 노수신·임훈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운정유집』이 전한다.

  • 김언신관련고문서 / 金言愼關聯古文書 [언론·출판/출판]

    조선전기 문신 김언신의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김언신(1492∼1553)은 1532년(중종 27) 생원에 오른 후 경상도 밀양·청송·동래 등 7읍의 교수를 역임했다. 관련 고문서는 교지 8점으로, 2005년 5월 23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4호로 지정

  • 김여진 / 金麗鎭 [역사/근대사]

    185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수안(遂安)이다. 천도교구장이었던 안봉하(安鳳河)를 중심으로 나용일(羅龍一)·장성도(張聖道)·김동선(金洞宣)·이달하(李達河)·안창식(安昌植)·홍길재(洪吉載)·홍두익(洪斗益)·이응호(李應浩)·이윤식(李潤植) 등과

  • 김연 / 金演 [종교·철학/유학]

    1547(명종 2)∼1640(인조 18).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부장 두문, 어머니는 김우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그의 백형 길과 재종형 면과 합하여 김씨 삼군자라 칭송되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면이 조종도·곽준·문위 등과

  • 김연광 / 金練光 [종교·철학/유학]

    1524(중종 19)∼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수련, 아버지는 영원군수 이상. 1555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리, 제용감첨정, 평양판관, 부현현감, 평창군수, 회양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송암유고』 한권이 남아 있다.

  • 김연순 / 金演淳 [역사/근대사]

    1881-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기독교인.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盈德)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이

  • 김연실전 / 金姸實傳 [문학/현대문학]

    김동인(金東仁)이 지은 단편소설. 1939년 3월 『문장』 2집에는 ‘김연실전’, 5월에는 ‘선구녀(先驅女)’, 1941년 2월에는 ‘진주름’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잡지에 3회에 걸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당시 신여성 문학인이었던 김명순(金明淳)을 모델로 하였다고 하여

  • 김영 / 金瑛 [종교·철학/유학]

    1475(성종 6)∼1528(중종 2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계권, 아버지는 장령 영수, 어머니는 김박의 딸이다. 1506년(연산군 12)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수찬, 정언, 교리, 장령, 경상도재상경차관, 김제군수,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

  • 김영국 / 金永國 [역사/근대사]

    미상-1919.03.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황해도 문화면(文化面)에서 시작되어 신천군(信川郡)까지 확산된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문창규·김명성 등의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종교인들의 주도로 시작되었

  • 김영근 / 金永根 [문학/한문학]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유학자.우국지사. 김영근(金永根)은 1865년 전라남도 강진군 신기(新基, 현 칠량면 명주리 신기)에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이 곳에 세거하였으며, 부친 김도순(金道淳)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行龍驤衛)와 금갑도(金甲島) 만호(萬戶)를

  • 김영근제유문 / 金永根提諭文 [정치·법제]

    1853년(철종 4) 9월 10일. 철종이 신임 황해감사 김영근(金永根)을 소견하고 제유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철종실록》에 의하면, 철종은 새로 황해감사에 임명된 김영근이 1853년(철종 4) 9월 10일에 사폐할 때에, 그를 소견하고 감사의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을

  • 김영길 / 金永吉 [예술·체육/대중음악]

    1909-1985년. 일제 강점기 가수·영화배우. 창씨 개명한 이름은 나가타겐지로[永田絃次郞]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이다. 1928년 평양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동경일일신문음악콩쿠르 성악부문에서 3년 연속 입상하였다. 1

  • 김영득 / 金榮得 [역사/근대사]

    1908-1940.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유영(金幽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선산(善山)이다. 1927년 9월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입하여 1930년 4월경까지 열성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수탈과 탄압으로 땅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 김영락 / 金榮洛 [종교·철학/유학]

    1831년(순조 31)∼1906년(광무 10). 조선 말기 유학자. 이병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노인직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를 받았다. 문집으로 손자 김정준이 편집 간행한《구계집》은 이충호가 서문을, 손자 김재준이 발문을 붙였다. 문집은 시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

  • 김영란 / 金永蘭 [역사/근대사]

    1896-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평양·순천 등지에서 독립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고 비밀결사 숭의단을 창립하였다. 1920년 평남 등지에서 민족독립활동을

  • 김영렬 / 金英烈 [종교·철학/유학]

    ?∼1404(태종 4). 조선 전기의 무신. 1394년에 전서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1395년에 수군절제사로 발탁되었다. 1400년(정종 2)에 지삼군부사로 있을 때에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1401년(태

  • 김영목 / 金永穆 [종교·철학/유학]

    1835(헌종 1)∼1910. 조선 말기의 문신. 주요 내직에 임명되다가, 1898년에 궁내부특진관에 칙임관 3등으로 올랐으며, 홍릉제조에 임명, 1899년에 전주 오목대비문 서사관, 인조대왕옥책문의 악장문제술관이 되었다. 1900년부터 2년 동안은 산릉도감 및 천릉도

  • 김영삼 / 金永三 [정치·법제/정치]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 정치가. 경남 거제 출신. 195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장택상 총리 인사담당 비서가 되었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된 후, 제5, 6, 7, 8, 9, 10, 13대

  • 김영서 / 金永西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일명 광오(光五).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명의 만세시위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외

  • 김영성 / 金永聲 [역사/근대사]

    1867-1959. 한말의 의병장. 전라남도 흥양 출신. 1909년 3월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집, 휘하에 3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3월부터 5월 사이에 흥양군 대강면·남양면·남면·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에는 사창호곡(社倉毫谷)에서, 8월에는 과역(過

  • 김영숙 / 金永肅 [역사/근대사]

    1886-1952.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호는 백주(白舟). 충청남도 결성군(지금의 홍성군) 출신. 191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잠시 서울 승동소학교(勝洞小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같은해 8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대종교의 윤세복(尹世

  • 김영순 / 金英順 [교육/교육]

    189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 본적은 서울이다. 정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오현주(吳玄洲)의 권유로 비밀결사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1919년 3월과 4월 사이에

  • 김영식 / 金永植 [역사/근대사]

    189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장성(長城)이다. 1919년 5월 김순호(金順皓)로부터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을 중심으로 임시 정부 지원 등을 위해 결성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설립취지를 듣고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였다.

  • 김영작 / 金永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2∼1868). 김홍집의 아버지로 주요 내외직에 임명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 선정으로 칭송을 받았는데, 정주·청주목사로 재임 시 대동미, 조운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경사에도 밝았으며 시문에 더욱 능하였다. 저술로는《소정고》 6권과 《청묘의례

  • 김영재 / 金英哉 [역사/근대사]

    1911-1965. 독립운동가. 별명은 왕영재(王英哉).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31년 상해로 망명, 1932년 상해에서 한인청년당(韓人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특무공작활동을 하였다. 같은해 4월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투탄의거(虹口公園投彈義擧)때, 윤봉길이 사용

  • 김영조 / 金榮祖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48(인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사의 농, 아버지는 산음현감 대현,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김성일의 사위이다. 9형제 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를 거쳐 대사성,

  • 김영철전 / 金英哲傳 [문학/고전산문]

    조선 후기에 홍세태(洪世泰)가 지은 전(傳). 작자가 「김영철유사(金英哲遺事)」를 읽고 지은 전계(傳系) 소설로, 『유하집(柳下集)』에 실려 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17세기 명·청 교체기의 전란(戰亂)이 가져온 조

  • 김영태 / 金榮泰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초개수첩』·『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저술한 시인.화가·연극평론가·무용평론가.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 김영한 / 金榮漢 [정치·법제/정치]

    1857년(철종 8) 6월 14일∼1927년 8월 19일. 일제 강점기 관료. 조선 말기 의금부도사와 탁지부주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대한제국기에 법부참서관·중추원의관·탁지부 인쇄국장 등을 지냈다.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중추원참의를 지냈다. 1924

  • 김영행 / 金令行 [종교·철학/유학]

    1673년(현종 14)∼1755년(영조 31).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관찰사 김시걸. 김창흡의 문인이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우사어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서 임천군수를 거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은《필운유고》가 전한다.

  • 김예직 / 金禮直 [종교·철학/유학]

    1565∼1623.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첨정 희철,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김씨의 동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평범한 선비로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다음 해 무과에 급제, 1604년평안도 용천군수를 거쳐 1610년(광해군 2) 첨지중추부사

  • 김오남시조집 / 金午男時調集 [문학/현대문학]

    김오남(金午男)의 시조집. 작자는 1930년 12월 『조선일보』에 「무제음사수(無題吟四首)」를 처음으로 발표한데 이어, 1930년대에 『조선문단』·『신가정』·『조선문학』·『중앙』·『신인문학』·『시원』·『여성』과 1945년 『여성문화』에 많은 양의 시조를 실었다. 이들

  • 김옥균 / 金玉均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정치가·개화운동가(1851∼1894).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갑신정변에 투영된 김옥균의 사상 속에는 문벌의 폐지, 인민평등 등 근대사상을 기초로 하여 낡은 왕정사 그 자체에 어떤 궁극적 해답을 주려는 혁명적 의도가 들어 있었다. 저서로는《기화근사》·《

  • 김옥균선생유허 / 金玉均先生遺墟 [역사/근대사]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김옥균의 생가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 조선 말기의 정치가. 김옥균의 생가를 비롯하여 8, 9호의 민가가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1900년대 초에 화재로 폐동(廢洞)되었다고 한다. 근년에 현대식으로 화강석대에 오석(烏石

  • 김옥균암살사건 / 金玉均暗殺事件 [역사/근대사]

    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상해에서 홍종우에 의해 저격되어 피살된 사건.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 박영효 등을 대역 죄인으로 규정. 동경에서 김옥균은 이일직의 계략에 빠져 홍종우와 함께 상해로 건너갔다가 미국 조계(租界) 안의 일본 여관 동화양행(

  • 김옥주 / 金玉珠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시 동래동에서 살았다. 소학교 졸업후 김자진(金子眞)으로부터 검무를 배워 23년간 무용계에 종사하였으며, 1967년 1월「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우선

  • 김용 호종일기 / 金涌扈從日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문신 김용이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들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보물 제484호. 3책. 필사본. 이 책은 초서로 쓰여졌으며,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하는 선조를 호종하였을 때 직접 체험하고 보고 들은 사실들을 그대로 기록한 일기로,

  • 김용겸 / 金用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702∼1789). 김시보에게서 수학하였다. 1748년에 선공감감역에 제수된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우승지·공조판서가 되었다. 정조와 경서·사기·백가로부터 국조헌장에 이르기까지 두루 토론하였다.

  • 김용규 / 金龍圭 [종교·철학/유학]

    1892년(고종 29)∼1964년. 조선 말기의 유학자. 보백당 김계행의 후손, 증조부는 김기순, 조부는 김찬근, 부는 김병희이다. 5세에 권상익 문하에서 수학, 이제상의 문하에서 성리를 탐구하였다. 유교경전에 박학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로 두문불출하고 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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