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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성 / 金永聲 [역사/근대사]

    1867-1959. 한말의 의병장. 전라남도 흥양 출신. 1909년 3월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집, 휘하에 3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3월부터 5월 사이에 흥양군 대강면·남양면·남면·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에는 사창호곡(社倉毫谷)에서, 8월에는 과역(過

  • 김영숙 / 金永肅 [역사/근대사]

    1886-1952.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호는 백주(白舟). 충청남도 결성군(지금의 홍성군) 출신. 191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잠시 서울 승동소학교(勝洞小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같은해 8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대종교의 윤세복(尹世

  • 김영순 / 金英順 [교육/교육]

    189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 본적은 서울이다. 정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오현주(吳玄洲)의 권유로 비밀결사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1919년 3월과 4월 사이에

  • 김영식 / 金永植 [역사/근대사]

    189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장성(長城)이다. 1919년 5월 김순호(金順皓)로부터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을 중심으로 임시 정부 지원 등을 위해 결성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설립취지를 듣고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였다.

  • 김영작 / 金永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2∼1868). 김홍집의 아버지로 주요 내외직에 임명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 선정으로 칭송을 받았는데, 정주·청주목사로 재임 시 대동미, 조운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경사에도 밝았으며 시문에 더욱 능하였다. 저술로는《소정고》 6권과 《청묘의례

  • 김영재 / 金英哉 [역사/근대사]

    1911-1965. 독립운동가. 별명은 왕영재(王英哉).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31년 상해로 망명, 1932년 상해에서 한인청년당(韓人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특무공작활동을 하였다. 같은해 4월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투탄의거(虹口公園投彈義擧)때, 윤봉길이 사용

  • 김영조 / 金榮祖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48(인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사의 농, 아버지는 산음현감 대현,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김성일의 사위이다. 9형제 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를 거쳐 대사성,

  • 김영철전 / 金英哲傳 [문학/고전산문]

    조선 후기에 홍세태(洪世泰)가 지은 전(傳). 작자가 「김영철유사(金英哲遺事)」를 읽고 지은 전계(傳系) 소설로, 『유하집(柳下集)』에 실려 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17세기 명·청 교체기의 전란(戰亂)이 가져온 조

  • 김영태 / 金榮泰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초개수첩』·『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저술한 시인.화가·연극평론가·무용평론가.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 김영한 / 金榮漢 [정치·법제/정치]

    1857년(철종 8) 6월 14일∼1927년 8월 19일. 일제 강점기 관료. 조선 말기 의금부도사와 탁지부주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대한제국기에 법부참서관·중추원의관·탁지부 인쇄국장 등을 지냈다.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중추원참의를 지냈다.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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