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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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향교 / 金山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에 있는 향교. 1392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634년에 진사 강설(姜渫)이 지역 유림들과 함께 대성전과 명륜당만을 중건하였고, 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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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현 / 金三賢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시조 작가 주의식(朱義植)의 사위이다.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의 벼슬을 지냈다. 시조 6수가 『청구영언』·『해동가요』·『가곡원류』 등에 전한다. 『청구영언』 홍씨본(洪氏本)에는 ‘한산인(閑散人)’으로, 『대동풍아(大東風雅)』에는 ‘숙종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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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설화 / ─說話 [문학/구비문학]
조선 후기의 시인 김병연(金炳淵)에 관한 설화.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김병연이 전국을 방랑하며 기이한 행동을 하였다는 설화로, 불우한 시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글재주 시합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 인물전설의 대표적인 예이다. 당대의 기사, 후대에 편찬된 『김립시집(金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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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 / 金商奎 [종교·철학/유학]
1682(숙종 8)∼1736(영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판서 시환, 어머니는 유정기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하였다. 1712년에 정언에 임명된 이래 홍문관·사헌부의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뒤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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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로 / 金尙魯 [종교·철학/유학]
1702(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공조정랑 김극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김징이고, 아버지는 대제학 김유이며, 어머니는 송박의 딸이다. 좌의정을 지낸 김약로의 아우이다. 1744년 승지로서 무과에 폐단이 많음을 지적하고 엄격하게 시행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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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묵 / 金尙默 [종교·철학/유학]
1726년(영조2)∼?. 조선 후기의 문신. 김석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도흡이고, 아버지는 현감 김성채이며, 어머니는 윤식의 딸이다. 음사로 벼슬에 나가 순천군수에 이르렀다. 일찍이 안동부사로 재임할 때 민정을 잘 살피고 사무를 공정히 처리한다 하여 명성을 얻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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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묵 / 金相默 [역사/근대사]
1884-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고창(高敞)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국권 피탈에 대해 비분강개하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이대국(李大局) 의진(義陣)에 가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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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복 / 金尙宓 [종교·철학/유학]
1573년(선조 6)∼1652년(효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신천군수 김생해, 아버지는 도정 김극효, 우의정 김상용과 좌의정 김상헌의 아우이다. 19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사옹원봉사·종부시주부·장례원사평·한성부서윤·중추부경력·군기시부정자·형조참의·돈녕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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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 金相奭 [종교·철학/유학]
1690년(숙종 16)∼1765년(영조41). 조선 후기의 문신.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지평 김홍석이고, 아버지는 김호이며, 어머니는 윤세익의 딸이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집권하자 간관이 되어 소론의 이광좌·조태억·이삼·심단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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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 金祥洙 [언론·출판/언론·방송]
1894-1945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언론인. 전라남도 신안군(新安郡) 지도(智島)에서 태어났다. 고종(高宗)의 시위무관(侍衛武官)으로 있다가, 일본이 침입하자 상해(上海)와 만주(滿洲), 북간도(北間島), 용정촌(龍井村) 등지로 망명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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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신 / 金相信 [역사/근대사]
1887년∼1948년. 의병장. 별명은 성률(成慄, 또는 成律). 전라북도 임실 출신. 1907년 9월 의병에 가담, 대장 이석용(李錫庸)휘하에서 창의동맹(倡義同盟)의 도로부장이 되어 전주·남원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6일 당시 일본헌병의 밀정이던 김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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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언 / 金商彦 [역사/근대사]
1873-1965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제주도 외도(外都)에서 태어났다. 1918년 10월 5일 서귀포 법정사(法井寺) 승려 김연일(金蓮日)·강창규(姜昌奎) 등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무오법정사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봉화(金奉和), 김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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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 金相玉 [역사/근대사]
1890-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한지(韓志). 1910년에는 경성영어학교를 다녀 국제정세와 서양문화에 안목을 넓혔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3.1독립운동 이후부터였다. 혁신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사상을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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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 金尙沃 [역사/근대사]
1901-1969년. 독립운동가. 일명 상옥(尙玉)·상옥(相沃). 평안북도 선천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향리인 선천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평양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그해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단체인 대한청년단연합회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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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 金尙容 [종교·철학/유학]
1561(명종 16)∼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김번의 증손, 할아버지는 군수 김생해, 아버지는 돈녕부도정 김극효, 어머니는 정유길의 딸이다. 좌의정 김상헌의 형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90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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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을 / 金商乙 [역사/근대사]
1918-1991.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충청남도 서천(舒川)이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중국 북경으로 이주한 후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가담하여 항일무장투쟁활동을 하였다. 1940년 11월 광복군(光復軍)에 입대한 후,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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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적 / 金尙迪 [종교·철학/유학]
1708년(숙종34) ∼1750년(영조26). 조선 후기의 문신. 김득원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홍주, 아버지는 병조판서 김시형, 어머니는 이광조의 딸이다. 1735년 사관이 되어 사초의 작성에 종사하였으며, 1744년 응교로서 궁중에서 사용할 가인례에 대해 진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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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정 / 金尙鼎 [종교·철학/유학]
1668년(현종 9)∼1728년(영조 4). 조선 후기 유학자. 항재 이숭일과 갈암 이현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두 선생의 제자 중 유독 뛰어나 성리학을 하면 대성할 것이라는 말에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만을 연구하였다. 스승 이현일의 사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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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정 / 金相定 [종교·철학/유학]
1722년(경종2) ∼1788(정조12). 조선 후기의 문신. 김장생의 6세손이며, 대사헌 김만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진항이고, 아버지는 군수 김영택이며, 어머니는 신성하의 딸이다. 1771년 의성현령으로 재직중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으며, 1777년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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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직 / 金相稷 [종교·철학/유학]
1661(현종 2)∼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김규의 증손, 할아버지는 지평 김홍석, 아버지는 우윤 김횡, 어머니는 홍처구 딸이다. 1695년(숙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후 병조좌랑, 좌부승지, 동지부사, 함경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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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 金尙鎭 [예술·체육/영화]
1905-미상. 영화감독·영화미술가. 서울 출생.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미술에 재질을 보였으며 영화와 문학에 심취하였다. 1923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영화제작의 기운이 일어나자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이구영(李龜永)이 감독한 〈쌍옥루 雙玉淚〉(1925)의 자막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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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채 / 金尙彩 [문학/한문학]
조선 영조 때의 시인. 김진무(金振武)의 7세손이라고 하나 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아들 김제량(金濟良)이 영·정조시대에 시인으로 행세하였고, 손자인 김종식(金宗軾) 또한 시인 장혼(張混)과 친구로 여항의 시인이었다. 정5품의 품계인 통덕랑(通德郎)을 제수 받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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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 金尙喆 [종교·철학/유학]
1712년(숙종38)∼1791년(정조15). 조선 후기의 문신. 김득원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홍주, 아버지는 판돈녕부사 김시혁, 어머니는 이기정의 딸이다. 1736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지평·교리·충청도관찰사·대사간·한성부판윤·병조판서 등을 거쳐 1766년 우의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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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포 / 金相忁 [역사/근대사]
1882-190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상근(相根)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영암(靈岩) 신북면(新北面)에서 태어났다.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 설파(雪波) 김백언(金伯彦)의 후손이다. 1907년(융희 1) 열락재(說樂齋)에서 박남평(朴南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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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 金尙憲 [역사/조선시대사]
1570(선조 3)∼1652(효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서울 출생. 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생해(生海)이고, 아버지는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극효(克孝)이며, 어머니는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딸이다. 우의정 상용(尙容)의 동생이다. 3세 때 큰아버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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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 金祥憲 [역사/근대사]
1893-1945. 독립운동가. 일명 배달옹(裵達翁), 또는 달(達). 경상남도 양산 출신. 1918년 중앙학교(中央學校)의 신상완(申尙玩)·김법린(金法麟)·정병헌(鄭秉憲) 등과 유심회(唯心會)를 조직, 민족사상고취와 불교연구를 하다가, 1918년 11월경 한용운(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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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 金尙鉉 [종교·철학/유학]
1811년(순조11)∼1890년(고종27). 조선 후기의 문신. 김장생의 9대손이며, 김상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기진이고, 아버지는 김재곤이며, 어머니는 유경주의 딸이다.정약용·홍석주·김매순의 문인이다. 문장에 능하여 왕실에서 필요한 전문·죽책문·옥책문·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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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후 / 金商厚 [역사/근대사]
1870-미상. 일제강점기 무신·항일운동가. 자는 용여(用汝)이고, 호는 금호(錦湖)이다.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 호군오위장(僉知中樞府事護軍五衛將)과 무주적성산참봉(茂朱赤城山參奉)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4월 1일 광양군(光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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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 金相訓 [역사/근대사]
1874-192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수신면(修身面)이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이 전파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홍일선(洪鎰善)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 갈전면(葛田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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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 / 金生 [예술·체육/서예]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여산폭포시」, 「창림사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삼국사기』권48 열전 제8 김생조에 의하면, “김생은 부모가 한미(寒微)하여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팔십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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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 金晳 [역사/근대사]
1911-1983년.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함평 출신. 전라남도 영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작은아버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金澈)을 따라 상해로 건너가서, 1928년 상해에 있는 영국계 중학교 퍼블릭스쿨을 졸업하고, 1930년 상해법정대학 정치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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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규 / 金碩奎 [종교·철학/유학]
1826년(순조 26)∼1883년(고종 20).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김휘경이다. 정재 유치명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책문을 잘 썼지만 과거에 네 차례 응시하여 모두 낙방하자 이후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다. 1881년(고종 18)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를 추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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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일 / 金錫一 [종교·철학/유학]
1694(숙종 20)∼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김흥진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준, 아버지는 승지 김두명, 어머니는 이무의 딸이다. 1715년(숙종 41) 진사가 되고, 1731년(영조 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9년 지평·정언을 역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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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 金奭準 [종교·철학/유학]
1831년(순조31)∼1915년. 조선 후기의 시인·서도가. 아버지는 역관 김계운, 어머니는 유봉길의 딸이다. 당대에 명성을 떨친 서도가 김계술이 당숙이다. 현기와 이상적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역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까지 이르렀다. 저서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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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金奭鎭 [종교·철학/유학]
1843년(헌종9)∼1910년. 조선 후기의 문신·항일우국지사. 김상헌(金尙憲)의 후손이다.1860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궁내부특진관·비서원경·장례원경·귀족원경 등의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매국역도들을 주살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며, 1910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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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창 / 金錫昌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목사(1876-1950). 1920년 미국의원단에게 진정서를 제출하고 선천경찰서를 폭발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이후 평안북도 예수교장로회 총회장·선천군 인민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유엔군 후퇴이후 공산당에 의해 총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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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필 / 金錫弼 [종교·철학/유학]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 문신. 증조부는 김당, 조부는 김회윤, 부친은 김중손이다. 연산군 8년(1502) 임술 별시에 3등 7위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예문관검열, 대교, 이조정랑 겸 수찬관을 역임하였다.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원종공신 1등으로 녹훈되었고 이어서 홍문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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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황 / 金錫璜 [역사/근대사]
1894-1950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일명 윤황(潤璜). 황해도 봉산 출생. 1919년 2월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때 2·8독립운동에 막후 주요인물로 회의참석 연락, 동지규합, 문서작성을 지원해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훈방되자 곧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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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 / 金瑄 [종교·철학/유학]
1599년(선조 32)∼1614년(광해군 6). 조선 중기의 문신. 증조는 김안도, 조는 김오, 부친은 김제남이다. 모친은 광주노씨 광산부부인으로 노계의 딸이다. 김선은 선조의 처남이다. 백헌 이경석과 과거 공부를 같이 하였는데, 김선의 문예를 따를 수 없다고 항상 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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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 / 金善琪 [언어/언어/문자]
1907∼1992. 언어학자. 930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영국 런던대학에서 음성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전임강사로 취임, 1939년 조교수, 1940년 교수가 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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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량 / 金善亮 [역사/근대사]
1899-미상. 독립운동가. 황해도 안악 출신. 3·1운동 때 선천의 신성학교(信聖學校)학생으로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를 받은 교사 홍성익(洪盛益)·김지웅(金志雄)·양준명(梁濬明) 등의 지도 아래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1일 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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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이 / 金仙伊 [역사/근대사]
1880-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榮州)이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1909년(융희 3) 5월 김상태(金相泰) 의진(義陣)에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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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필 / 金善弼 [역사/조선시대사]
1807년(순조 7)∼1883년(고종 20). 조선 말기의 무신. 아버지는 학기이다. 1829년(순조 29) 무과에 급제, 전라도·충청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강화수로의 중요한 근거지인 광성진을 방어하다 미국군의 공격을 받아 장렬하게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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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 金星 [역사/근대사]
189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원산시(元山市)이다. 만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하기 위해 계화(桂和)·서일(徐一)·양현(梁玄)·채오(蔡五) 등과 함께 정의단(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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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 / 金聲久 [종교·철학/유학]
1641(인조 19)∼1707(숙종 33). 조선 후기의 문신. 김득가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율,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 김추길, 어머니는 유화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사마시를 거쳐 166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전적·무안현감·직강·지평·수찬·정언 등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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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률 / 金聲律 [역사/근대사]
1920-1943.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황해도 연백(延白)이다. 1941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대장 나월환(羅月煥)과 함께 광복군 제5지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1942년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中央戰時幹部訓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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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배 / 金聖培 [언어/언어/문자]
1917∼1985. 국문학자. 아버지는 병우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이다. 1952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56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1961년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1973년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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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범 / 金成範 [역사/근대사]
189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성범(金聖範)이다. 출신지는 평안북도 초산(楚山)이다. 1923년 천마단(天摩團)에 가입한 후 사령부의 오장(伍長)을 지내면서 국경을 오가며 평안북도 초산·창성(昌城)·벽동(碧潼)·강계(江界)·희천(熙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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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 金性洙 [교육]
현대의 교육가·언론인·정치가(1891∼1955). 1908년 송진우와 함께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1910년에 와세다대학에 입학, 1914년에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1920년 동아일보사를 창립해《동아일보》를 통해 물산장려운동을 폈고 1929년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설립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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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 金聖壽 [역사/근대사]
1900-1969년. 독립운동가. 일명 주열(朱烈).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밀양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26년 중국 광둥(廣東)의 황푸군사정치학교 보병과에 입학하였고,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였다. 1928년 상해에서 남화한인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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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 金星淑 [역사/근대사]
1898-196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인. 호는 운암(雲巖).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고려유학생회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일하였다. 이후 혁명단체인 창일당을 조직하고, 《혁명》을 발간하였으며,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하였다. 해방이후 환국하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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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 金成植 [역사/근대사]
1908년∼1986년. 서양사학자. 호는 약전(藥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1919년 향리의 일신학교(日新學校), 1924년 평양 숭실학교, 1930년 일본 센다이시(仙台市) 도호쿠학원(東北學院)을 졸업하였다. 1935년 3월 일본 구주대학(九州大學) 법문학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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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업 / 金性業 [역사/근대사]
1886-1965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대동 출신. 1912년 평양 대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재학중 안창호(安昌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13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고원이 되었으나 1915년 사직하고, 이후 회사 사무원을 거쳐 동아일보 평양지국장으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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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엽 / 金聖燁 [역사/근대사]
1896-1966년. 독립운동가. 일명 성엽(成燁).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4년 선천(宣川)의 신성중학(信聖中學) 3학년을 중퇴하고 1917년 가족과 같이 만주 봉천성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환인현(桓仁縣) 환남지단(桓南支團)의 검찰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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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운전 / 金成運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필사본. 조선 말기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나라 신종조를 중심으로 김공필과 성운의 2대에 걸친 가문소설적인 성격을 띤 일종의 군담소설(軍談小說)이다. 청나라의 대두를 배경으로 설정한 흥미 위주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2대에 걸친 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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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 金聲遠 [종교·철학/유학]
?∼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학자. 증조부는 형조판서 김정이다. 조헌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행실이 있었고,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반드시 조헌에게 물어 그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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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 金聲遠 [과학/식물]
1906∼1998. 농학자·광복회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백농(白農). 함경남도 함흥 출신. 아버지 김용준과 어머니 이용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4년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에 입학하여 1928년에 졸업하였다.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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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 金聖恩 [종교·철학/개신교]
1881-196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기독교인. 본적은 전라북도 군산부(群山府)이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김병수(金炳洙)·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양기준(梁基俊)·양성도(楊成道)·유한종(劉漢鍾)·유희순(兪熙淳)·이두열(李斗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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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 金誠一 [종교·철학/유학]
1538-1593. 조선 선조때의 성리학자. 아버지는 김진이며, 어머니는 여흥 민씨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68년 과거급제하였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건너가 실정을 살피고 침략이 없을 것이라 보고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유성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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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종가 전적 / 金誠一宗家典籍 [사회/가족]
조선전기 문신·학자 김성일의 종손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소장된 유학서.종가유물. 이 전적들은 보물 제905호로 지정된 것들로 56종 261책이다.『경자자체(庚子字體)』·『사기(史記)』등 간본(刊本) 28종 176책, 김성일의 자필본인『경연일기(經筵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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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유서 / 金誠一諭書 [역사/조선시대사]
1592년 문신·학자 김성일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등의 관직에 제수한 교서. 종가유물. 이 유서는 1592년(선조 25)에 선조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된 김성일에게 내린 문서이다. 1987년 3월 7일에 보물 제906호로 지정된 김성일 종가 고문서 일괄 17종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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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종가고문서 / 金誠一宗家古文書 [사회/가족]
조선전기 문신·학자 김성일의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종가문서. 이 고문서들은 보물 제906호로 지정된 17종 242점이며,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의 김시인(金時寅)이 소장하고 있다. 이들 고문서는 30여 종 1만 점 중에서 선별, 지정한 것이다. 교서와 유서는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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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 金聖鐸 [종교·철학/유학]
1684(숙종 10)∼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할아버지는 생원 김방렬, 아버지는 김태중, 어머니는 김여만의 딸이다. 173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737년이현일의 신원소를 올렸다가 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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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택 / 金聖澤 [역사/근대사]
1897-1950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안주 출신. 안주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0년 6월에 대한독립단과 대한청년연합회의용대가 합류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조직되자 결사대원이 되었다. 1920년 8월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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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 金性豪 [종교·철학/유학]
1659년(효종 10)∼1720년(숙종 46). 조부는 공조정 김민교이다. 부친 승지 김재현과 모친 청송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첨정 한지원의 딸이다. 학문에 뜻을 두어 갖가지 성리학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였다. 학덕으로 인해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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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 金聖灝 [역사/근대사]
189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투옥되었다.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정의단 임시군정부에 가입, 활약하였다. 1920년 9월 1일 국내에 잠입했다가 체포되어 징역 15년 언도를 받고, 마포·신의주에서 복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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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흠 / 金聖欽 [종교·철학/유학]
1682년(숙종 8)∼1757년(영조 33).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는 김시온, 부친은 김구중, 모친은 이표의 딸이다. 이동완과 이현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외조부 이표에게 나아가 문장을 배웠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이양신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의병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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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겸 / 金世謙 [종교·철학/유학]
1593~1646. 조선 중기의 문신. 부친은 김류이다.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참봉에 제수되었다. 1545년(인종 1)에 윤원형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남해로 귀양을 갔다. 아들 김영이 경학으로 천거되어 찰방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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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균 / 金世均 [종교·철학/유학]
1812년(순조12) ∼1879년(고종16).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복근, 아버지는 김병문, 어머니는 송재덕의 딸이다. 현감인 큰아버지 김병광에게 입양되었다. 1841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제학·대사성·이조참의·경상도관찰사·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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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락 / 金世洛 [종교·철학/유학]
1804년(순조 4)∼1873년(고종 10).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김종백이다.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마고산에 서당을 지어 동생 양몽재 김재락과 함께 자연을 벗 삼고 독서로 소일하며 은거하였다. 문집으로《삼오당문고》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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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만 / 金世萬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 상인·무인. 서울의 서강에 살았는데 장사를 위해 쌀 100여 석을 사서 배에 싣고서 황해도 용매진에 이르렀을 때 배가 뒤집혀 거의 물에 빠져 죽을 뻔하였는데 구조된 일이 있었다. 때마침 흉년이 들자 자신의 쌀은 없었던 것으로 치고 진졸 구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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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 金世榮 [종교·철학/유학]
1878년(고종 15)∼1941년. 일제 강점기 한학자. 부친은 김제상이다. 동정 이병호와 면우 곽종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1년(광무 5) 측량 기술을 배워 관직에 나아가려 하였으나 삭발과 양복 입기를 강요받자, 가난하더라도 선비의 의리를 지키겠다며 임용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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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 金世用 [역사/근대사]
1907-1966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공주. 대구 출신. 1940년 4월 중국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였으며, 그뒤 광복군으로 귀속되었다. 그뒤,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총대원대 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第四團特科總大員隊韓靑班)에서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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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 金世鏞 [종교·철학/유학]
1673년(현종 14)∼1742년(영조 1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좌랑 김학배, 외조부는 개성 선무랑 고이절, 처부는 도이망이다. 적암 김태중·갈암 이현일·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제산 김성탁과 도의로써 교의를 맺었으며, 평생을 처사로 지냈다. 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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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탁 / 金世鐸 [역사/근대사]
1874-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鳳洙).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신민회(新民會)회원으로 1911년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아 복역하던 중 1913년 제2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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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평 / 金世平 [종교·철학/유학]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증조부는 김광재, 조부는 김경룡, 부친은 진주목사 노암 김종일이다. 1665년(현종 6)에 건원릉참봉을 지냈고 익위위수에 임명되었다. 외직으로 두 고을 다스려 모두 훌륭한 치적을 남겼으며 청백리로 뽑혔다. 숙종 때 훈련원 대장으로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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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필 / 金世弼 [종교·철학/유학]
1473(성종 4)∼1533(중종 2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첨정 김훈, 어머니는 송학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십청헌집』4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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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호 / 金世鎬 [종교·철학/유학]
1806(순조 6)∼1884(고종 21). 조선 후기의 문신. 황주목사 김진교의 아들이다. 경상좌도암행어사로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였다. 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침수지를 고지대로 이주·포항진 복설·해안방비 강화 등에 힘썼다. 그 후 직무 태만과 변흔으로 유배되었다 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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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 / 金世煥 [역사/근대사]
1889-1945년.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중앙지도체 48인 가운데 한 사람. 경기도 수원 출신. 보성중학교와 일본 주오대학을 졸업한 뒤 수원상업회의소에 근무하였다. 미국인 선교사 밀리의 후원을 받아, 수원의 삼일남녀학교(三一男女學校)를 설립하여 후진교육에 전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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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흠 / 金世欽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김시주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임, 아버지는 주부 김삼기, 어머니는 김광수의 딸이다.1687년(숙종 1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3년 홍문록·도당록에 올랐다. 부수찬·지평 등을 역임하고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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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동 / 金蘇東 [예술·체육/영화]
1911-1988년. 일제 강점기 영화인·작가·평론가. 본관은 함창(咸昌)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상주(尙州)이다. 1947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포영화이자 유성영화(有聲映畵) 〈목단등기(牧丹燈記)〉를 감독하였다. 1956년 영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감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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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랑 / 金小浪 [예술·체육/연극]
생몰년 미상. 신극 초창기 신파배우. 본명은 현(顯). 1911년 초겨울에 임성구(林聖九)가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했을 때, 창립단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신극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뒤, 혁신단의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1918년 2월 혁신단으로부터 독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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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 金素月 [문학/현대문학]
항일기의 시인(1902-1934). 호는 소월(素月). 본명은 정식이며 서춘·이돈화·김억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시작활동은 1920년 《창조》에 시 〈낭인의 봄〉·〈야의 우적〉·〈오과의 읍〉·〈그리워〉·〈춘강〉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됐으며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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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 金少珍 [예술·체육/연극]
생몰년 미상. 한국신극사상 최초의 여배우. 1917년 2월 신파와 창극의 혼합을 제창하고 나선 극단 개량단에 최초의 여배우로서 등장하였다. 원래 기생출신으로 창을 잘했기 때문에 여배우로 뽑혔고, 창극계통에서도 촉망받았다. 우리 신극의 특징 중의 하나는 여형배우(女形俳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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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 金秀南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김영산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익겸, 아버지는 김섭, 어머니는 양희열의 딸이다. 김장생의 문인이다. 1630년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병자호란 때 묘사를 따라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나,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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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 金壽男 [역사/근대사]
1900-1967년.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군산 출신. 1919년 3월 22일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사건을 주동하였다. 군산에서는 3월 5일 영명중학교 학생들과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 이래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만세시위운동이 계속되었다. 특히, 3월 12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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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신화 / 金首露王神話 [문학/구비문학]
금관가야의 시조 신인 김수로왕에 관한 신화. 시조신화이며 건국신화로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에 전하는데, 건국자인 수로왕의 탄생과 혼사, 그리고 즉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력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 「김수로왕신화」는 「단군신화」나 「혁거세신화」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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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문 / 金秀文 [역사/조선시대사]
?∼1568(선조 1). 조선 중기의 무신. 중종 때 무과에 급제, 야인들이 함경도 종성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납치해가자, 1535년(중종 30) 영건만호로서 전투에 참가하여 끌려갔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동래부사, 지중추부사, 한성판윤,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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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삼 / 金秀三 [종교·철학/유학]
1679년(숙종 5)∼1767년(영조 43).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승지 김우벽과 모친 참판 유세정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6세에 19사를 읽었고, 15세에 사서삼경과 외사자집을 읽었다. 향시에는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대과에서는 번번이 실패하자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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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악 / 金壽岳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12호「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읍 출생. 아버지 김종옥은 국악애호가에 한량이었고, 작은 아버지 김종기는 진주권번의 가야금 선생이었다. 9세에 진주권번에 들어가 김옥민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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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오 / 金秀五 [종교·철학/유학]
1669년(현종 10)∼1742년(영조 18). 조선 후기의 유학자. 자는 여실(汝實),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문예에 뛰어났으며, 경전을 두루 익혔다. 한수 권상하가 만동사에서 향음주례 할 때 경전과 예법에 대해 질의를 하였으며, 경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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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온부조묘 / 金守溫不祧廟 [예술·체육/건축]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김수온을 배향한 사당.시도기념물. 정면 3칸·측면 1칸 반의 목조맞배집 건물. 충청북도 기념물 제48호. 조선 초기의 문신 김수온을 제향하는 사당이다.본래는 1487년(성종 18) 왕명으로 보은읍 종곡리에 세웠는데,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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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인 / 金守訒 [종교·철학/유학]
1563(명종 18)∼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참봉 김태을, 어머니는 김휘의 딸이다. 정구의 문인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는 작은아버지 김태허가 울산군수로 화왕산을 지키고 있을 때 옆에서 계책을 세워 많은 전공을 세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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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장 / 金壽長 [문학/고전시가]
1690(숙종 16)∼? 조선 후기의 가인. 김천택과 더불어 숙종·영조 시대를 대표하는 쌍벽의 가인이다. 그가 1769년(영조 45)까지도 자신이 편찬한 가집의 보수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 80세가 넘도록 생존하였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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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증 / 金壽增 [종교·철학/유학]
1624(인조 2)∼1701(숙종 27). 조선 후기의 문신·성리학자. 할아버지는 김상헌이다. 1650년(효종 1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652년에는 세마가 되었다. 젊어서부터 산수를 좋아하여 금강산 등 여러 곳을 유람한 뒤 기행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 뒤 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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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창 / 金壽昌 [종교·철학/유학]
1599(선조 32)∼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우의정 김상용, 아버지는 김광형이다. 김장생 문하에서 학업을 쌓았다. 1624년(인조 2) 음서로 봉선전참봉, 익위사익위를 거쳐 여러 곳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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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항 / 金壽恒 [종교·철학/유학]
1629(인조 7)∼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 김극효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상관,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광찬, 어머니는 목사 김래의 딸이다. 1646년 진사시와 1651년(효종 2)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전적이 되었다. 이어 병조좌랑·사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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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흥 / 金壽興 [종교·철학/유학]
1626(인조 4)∼1690(숙종 1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생부는 동지중추부사 김광찬, 양부는 동부승지 김광혁, 양모는 김존경의 딸이다. 영의정 김수항의 형이다. 1655년(효종 6)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문과중시에 역시 병과로 급제한 뒤 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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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 金淑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경기도 도당굿 도살풀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김숙자의 조부 김석창(金碩昌)은 경제(京制) 명창이었고, 부친 김덕순(金德順)은 판소리, 경기무악, 민속악의 재인으로 화성 재인청과 안성 신청에 속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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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 / 金洵 [종교·철학/유학]
1648(인조 26)∼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공조정랑 김극형, 어머니는 동지중추부사 심대해의 딸이다. 송시열·송준길의 문인이다.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기사환국의 변란을 보고 관계에 나갈 뜻이 없다가 169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