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김동한 / 金東漢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사교무용학원인 조선예술학원을 설립한 무용가. 러시아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했다. 1921년 해삼위학생음악단이 고국 방문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동년(同年) 김동한은 해삼위동포연예단을 이끌고 고국을 방문해 우리나라
-
김동헌 / 金東獻 [종교·철학/유학]
1791년(정조 15)∼1869년(고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증조부는 김치후, 조부는 김종정, 부친은 김명연이다. 모친은 남홍억의 딸이다. 처부는 이희곤의 딸이다. 1832년에 세자익위사부수를 거쳐 오위사과·사복시주부·충훈부도사 등을 지냈으며, 외직으로 임실현감
-
김동협 / 金東鋏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선소면(仙沼面)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 행위에 대한 분노로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1943년 조종희(趙
-
김두만 / 金斗萬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4월 2일 수진면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동지들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하
-
김두명 / 金斗明 [종교·철학/유학]
1644(인조 22)∼1706(숙종 32). 조선 후기의 문신. 김추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흥진,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준, 어머니는 소동헌의 딸이다.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말과 행동이 신중하고 침착하여 칭찬을 받았다. 167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
김두봉 / 金枓奉 [정치·법제/정치]
1889년(고종 26)∼1961?. 독립운동가·한글학자·정치가. 연안파 공산당의 지도자. 17살에 서울로 올라와 배재학교. 보명중학에서 공부하고, 한글학자 주시경 밑에서 연구한 후 각지의 한글강습회와 보성, 중앙, 휘문고보에서 가르쳤다. 1929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
-
김두우 / 金斗牛 [역사/근대사]
1898-193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평산(平山)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비밀리에 제작하였다. 3월 31일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김예식(金禮植)·서홍균(徐洪均)·정학규(鄭學奎) 등과 함께
-
김두찬 / 金斗燦 [역사/근대사]
1919-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택달(金澤達)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동(江東)이다. 1936년 평양의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재학 중, 일본이 강압적으로 시행했던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주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1938년 김길순
-
김득명 / 金得鳴 [역사/근대사]
1923-2009.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이다.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발발시키고 군사력 보충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 징집하였다. 김득명(金得鳴)은 이때 강제 징병되어 중국 상해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속되었다. 그러
-
김득신 / 金得臣 [문학/한문학]
1604년(선조 37)∼1684년(숙종 10).조선 후기의 시인.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이며, 어머니는 사천 목씨(泗川睦氏)로 목첨(睦詹)의 딸이고, 부인은 경주 김씨이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한 편이었으나, 아버지의 가르침과 훈도를 받아 서서
-
김득연 / 金得硏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학자. 성균관 생원 김언기의 맏아들로서 어머니는 영양남씨 세용의 딸이다. 첫돌 전에 어머니를 여의고 조모 안씨에게서 자랐으며,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다. 1602년(선조 35) 생진양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하지 않
-
김득추 / 金得秋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60(현종 1).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부사과 김건, 어머니는 김수문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영양·창암·노항 등지에서 적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이때의 공으로 훈련주부에 임명되었다. 훈련
-
김려 / 金鑢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할아버지는 김희(金喜), 아버지는 김재칠(金載七)이다. 집안이 노론계의 비중 있는 명문이다. 당쟁의 화를 많이 당했다. 1780년(정조 4) 15세에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당시에 유행하던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의 문장을 익혔다. 그리고 김조순(
-
김령 / 金坽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41(인조 19). 조선 중기의 문신. 김효로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유, 아버지는 현감 김부륜, 어머니는 평산 신씨로 부호군 신수민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등용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주서 등을 역
-
김륵 / 金玏 [종교·철학/유학]
1540(중종 35)∼1616(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김만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김우, 아버지는 진사 김사명, 백부인 형조원외랑 김사문에게 입양되었다. 이황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대표적 관직으로 영
-
김리만 / 金履萬 [종교·철학/유학]
1683(숙종 9) - 1758(영조 34) 김득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김단이고, 아버지는 경주부윤 김해일, 어머니는 이은진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가 되었다. 1718년(숙종 44)에 6
-
김립시집 / 金笠詩集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시인 김병연(金炳淵)의 시집. 김립(김삿갓)은 그의 별명이다. 이응수(李應洙)에 의해 각지에 흩어진 시편들이 수집되어 나온 이래 여러 종이 전한다. ① 이응수의 『김립시집』1939년 2월 학예사에서 발행하였다. 이응수는 대학시절부터 김삿갓에 흥미를 가지고
-
김마리아 / 金瑪利亞 [역사/근대사]
1891-194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 1919년 2·8운동과 3·1운동에서 활약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상해애국부인회 간부 등을 지냈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후 1965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김막동 / 金莫同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9년(융희 3) 김동구(金東九) 의진(義陣
-
김막인 / 金漠人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조선무용예술협회 현대무용부의 임원을 역임한 무용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모던댄스를 수학 후, 해방 후 서울에서 전위무용을 시도한 신흥무용가이다. 본명은 김해성(金海星)으로 부친이 목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이시이미도리무용연구소에서 수학했고, 귀국 후 악극
-
김만균 / 金萬均 [종교·철학/유학]
1631(인조 9)∼? 조선 후기의 문신. 형조참판 김장생 증손, 할아버지는 참판 김반,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익희, 어머니는 이덕수의 딸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54년(효종 5)에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에 기용, 그 뒤 정언·수찬·검토관·부교리·교리를
-
김만기 / 金萬基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687(숙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 형조참판 김장생의 증손, 할아버지는 참판 김반, 아버지는 생원 김익겸, 어머니는 해평 윤씨로 참판 윤지의 딸이다. 인경왕후의 아버지이자 작은아버지인 김익희에게서 수학했으며, 송시열의 문인이다. 1652년(
-
김만삼 / 김만삼 [사회/사회구조]
일제강점기 카자흐공화국에서 선봉 콜호즈를 중심으로 활동한 교민.고려인, 농업지도자. 1928년 이후에 연해주의 콜호즈(kolkhoz)에서 활동하다가, 1937년에카자흐(Kazakh)공화국으로 강제이주된 뒤에는 선봉(先鋒) 콜호즈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벼의 재배
-
김만수 / 金萬秀 [역사/근대사]
1894-192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회일(會一).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이후 서로군정서에 가담했다. 1924년 최병호·유기동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와 일본경찰 10여명을 사살하고 순국했다.
-
김만식 / 金晩植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34∼1900). 유신환의 문인으로 1869년(고종 6)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동지사. 조불수호통상조약 전권대신 등 여러 벼슬을 거쳐 1882년에는 서양어 교육기관인 영어학교의 장교가 되었고, 1883년 ‘박문국’을 신설하고, 신문발간을 추진
-
김만와 / 金晩窩 [역사/근대사]
1898-1967. 독립운동가. 일명 순학(舜鶴). 함경북도 무산 출신. 1919년 만주에서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입단하였으며, 1922년에는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독립군자금 조달과 독립군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뒤 1926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정의부(正義府)의
-
김만중 / 金萬重 [문학/한문학]
1637년(인조 15)∼1692년(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소설가.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다. 김만중은 그는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훈도를 받고 14세인 1650년(효종 1)에 진사초시 합격, 16세인 1652년(효종 3)에 진
-
김만풍 / 金萬豊 [역사/근대사]
1886-1962.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제주도 서귀포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5월 성산포(城山浦)에서 면민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씨름을 구경하던 일본어선단 선원 2백여 명과 지방민과 격투가 벌어져 김명
-
김매순 / 金邁淳 [종교·철학/유학]
1776(영조 52)∼1840(헌종 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참봉 김이수, 어머니는 죽산안씨로 안종주의 딸이다. 1795년(정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사인을 거쳐 초계문신이 되었고, 그뒤 예조참판을 거쳐 1821년(순조 21) 강화부유
-
김맹 / 金孟 [종교·철학/유학]
1410(태종 10)∼1483(성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김항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서, 아버지는 김극일, 어머니는 한성부윤 이간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감찰·김천도찰방·예조좌랑이 되었다. 이후 오위도총부경력을 역임하였다.
-
김맹권 / 金孟權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학자. 아버지는 감찰 김중로. 일찍이 진사가 되고 문명이 높아 집현전학사로 뽑혔다. 세종의 신임을 받아 뒤에 단종이 된 왕세손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자,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 끝내 과거를 보지 않
-
김면 / 金沔 [종교·철학/유학]
1541년(중종 36)∼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학자·의병장. 아버지는 경원부사 김세문, 어머니는 김해 김중손의 딸이다. 조식과 이황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조종도·곽준·문위 등과 함께 거창과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
김명권 / 金明權 [역사/근대사]
1889-1923.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평안남도 덕천(德川) 출신. 이근(利根)의 아들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기독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다.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국내에 특파되
-
김명규 / 金明奎 [역사/근대사]
1893-1977년.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1운동의 일환으로 그해 4월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20년 서울의 황상규(黃尙奎, 일명 白民)의
-
김명동 / 金明東 [역사/근대사]
1902-1950. 독립운동가·제헌국회 의원. 충청남도 공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될 때 발기인 34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창립에 기여하였으며, 그뒤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민족통일총본부 사
-
김명립 / 金命立 [역사/근대사]
1893-1978.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유근(有根). 경상북도 봉화 출신. 성원(聖元)의 아들이다. 1907년부터 의병장 이강년(李康埏)의 부대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를 귀가시키고 뒤를 이어 의병진에 가담하였다. 경상북도 일대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
김명복 / 金明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체육지도서』, 『체육개론』 등을 저술한 학자. 평안북도 정주 출생. 오산중학교를 거쳐 1935년 일본체조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오산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7년부터 평양교원대학 교수, 1954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장·교육대학원장·부총장을 역임하였
-
김명석 / 金命錫 [종교·철학/유학]
1675년(숙종 1)∼1762년(영조 3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김태중과 모친 홍극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갈암 이현일의 문인으로 향시에는 여러 번 장원하였으나 대과에서 연이어 낙방한 뒤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 머물면서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
김명세 / 金明世 [역사/근대사]
미상-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였다. 세린하(細鱗河)에서 조직 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었
-
김명심 / 金明心 [역사/근대사]
1881-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청주시(淸州市)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8년(융희 2) 평소 지니고 있던 반일의식
-
김명열 평산도호부사 해유문서 / 金命說 平山都護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명열 평산도호부사 해유문서. 1669년(현종 10) 12월 26일 수황해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로 문서를 이관, 1670년(현종 11) 6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한 후에, 동년 6월 초5일에 이조에서 김명열(金命說)에게 조흘한 문서이다. 김명열은 홍원의 아
-
김명우 / 金明友 [역사/근대사]
1887-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장안면(長安面)이다. 1919년 이영쇠(李永釗)·장소진(張韶鎭)·장제덕(張濟悳)·차희식(車喜植)·차병한(車炳漢)·차병혁(車炳爀)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2월 이순모(李順模) 등과
-
김명원 / 金命元 [종교·철학/유학]
1534(중종 29)∼1602(선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 김치세의 증손, 할아버지는 직제학 김천령, 아버지는 대사헌 김만균,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현감 안준의의 딸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1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평안병사·호조참판·전라감사·
-
김명제 / 金命濟 [역사/근대사]
1863-1926.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서 1백여 명의 주민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참
-
김명진 / 金命鎭 [역사/근대사]
1908-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농민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榮州) 평은(平恩)이다. 1923년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며 영주청년동맹 평은지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10월 경상북도 영주에서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준비위원회(赤色
-
김명희 / 金明熙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한 후,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
-
김몽화 / 金夢華 [종교·철학/유학]
1723년(경종 3)∼1792년(정조 16).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상주, 조부는 김형섭이다. 부친 김유수와 모친 이석망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김몽의가 있다. 청대 권상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생원 3등 37위로 합격, 1
-
김무분깃문기 / 金務分─文記 [경제·산업/경제]
1429년 12월 김무가 자녀에게 자신 소유의 노비를 상속한 문서. 분재기. 문서의 구성은 분재에 관한 서언(序言), 분재당사자의 서명, 자녀별 분재노비의 표시로 되어 있다. 서언에는 노비의 소전래(所傳來)·분배기준·유루(遺漏), 도망노비의 처리방법, 증조 사원(士元
-
김무석 / 金武錫 [역사/근대사]
1887-1960.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제주도 좌면(左面) 월평리(月坪里) 432 출신이다. 1918년 10월 5일 제주도 남제주(南濟州) 법정사(法井寺)에서 승려 김연일(金連日), 강창규(姜昌奎), 방동화(房東華) 등이 주도한 항일 무력
-
김문기 / 金文起 [종교·철학/유학]
1399(정종 1)∼1456(세조 2). 조선 전기의 문신. 김알지 후손, 아버지는 김관. 1426년(세종 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병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91년(정조 15)에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
-
김문빈 / 金文彬 [역사/근대사]
1883-1957. 한말의 의병. 일명 익진(翼軫), 호는 석계(石溪). 평안남도 용강(龍岡) 출신. 일찍이 동학당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에는 의병장 신경칠(辛景七)의 참모장 및 중군장으로 황해도 해주·신천·평산 등지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고산전투에서
-
김문옥 / 金文玉 [종교·철학/유학]
1897년(고종 34)∼1965년. 일제강점기 공산주의자·항일운동가. 일본 고베시 공장에서 일하던 중, 1932년 일본공산당 외곽단체 전협에 가입하여, 화학노조 효고현 지부 집행부원으로 각종 항일 캠페인에 참가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32년 10월 체포되어
-
김문준 / 金文準 [역사/근대사]
1894-193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목우(木牛)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朝天)에서 태어났다. 1910년(융희 4) 3월 의신학교(義信學校) 보통과를 졸업하고 1912년 제주공립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1915년 3월 경기도 수원의 조선총
-
김문하 / 金文夏 [종교·철학/유학]
1652년(효종 3)~미상. 조선 중기 문신. 증조는 김락, 조부는 김시국, 부친은 성균진사 김수번이다. 1683년(숙종 9) 문과 증광시에서 병과 4위로 급제하였다. 지평, 암행어사, 충청좌도어사, 홍문관부교리, 사간원헌납,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
김문희 / 金文熙 [역사/근대사]
189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문희(金文凞)이다. 본관은 해산(海山)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초산(楚山)이다. 1919년 7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내무부 소관인 국내 지방행정조직이자 국내 연락기관인 연통부(聯通府)를 국내의 각 도·군·면 단
-
김민순 / 金敏淳 [문학/고전시가]
조선 순조 때의 시인.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7대손이다. 관직은 현감을 지냈다고 되어 있고, 『가곡원류』 가와이본(河合本)에는 익종 대리시(代理時) 지평현감(砥平縣監)을 지냈다고 되어 있다. 김민순의 작품은 15수가 전하고 있다. 『청구영언』 육당본에만 수록된
-
김민자 / 金敏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최승희의 제자이며, 예그린악단의 안무가로 활동한 무용가. 1914년 서울 내수동에서 아버지 김영제(金永濟)와 어머니 유운자(柳雲子) 사이의 1남 4녀 중 셋째 딸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우경(又璟), 민자는 예명이다. 14살 때 경기고녀(현 경기여고) 재학 중
-
김밥 / [생활/식생활]
밥에 여러 가지 속을 넣고 김으로 말아 싼 음식.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와『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김이 처음 등장한다. 이를 통해 김을 이용해 밥과 반찬이 될 만한 음식을 싸서 먹는 문화는 조선시대부터 존재하였음을 알
-
김방경 / 金方慶 [역사/고려시대사]
1212(강종 1)∼1300(충렬왕 26). 고려 후기의 무신. 신라경순왕 후손, 할아버지는 민성, 아버지는 병부상서·한림학사를 지낸 효인이다. 서북면병마판관, 상장군, 행영중군병마원수, 도독사, 중찬 등을 역임하였다.
-
김백능 / 金百能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명은 김충환(金忠煥)이다. 제주도 조천(朝天)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김장환(金章煥)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온 것을 계기로 제주도 조천(朝天)에서도 1919년 3월 21일 이른바 조천만세운동이 일어
-
김범우 / 金範禹 [종교·철학/천주교]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1786). 우리나라 천주교의 첫 순교자. 세례명은 토마스이다. 1784년 천주교에 입교하여 천주교의 전파자가 되어 여러 사람을 개종시켰다.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로 유배되었으며, 장형(杖刑)을 당한 상처로 1년 만에 죽었다.
-
김병덕 / 金炳德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5∼1892).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김명순, 아버지는 영의정 김흥근이다. 1847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안동김씨의 세도 아래 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공조판서·대사헌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이후 독판군국사무·총리군국사무 등을 역임하였다. 청렴결백
-
김병숙특증문서 / 金炳塾特贈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6품 승훈랑 김병숙(金炳塾)을 정3품 통정대부 규장각부제학에 특증하는 임명장. 1910년 7월 18일 순종은 83명을 특증하였다. 이때 승훈랑 김병숙은 정3품 규장각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이 문서에는 정확한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이때
-
김병연 / 金炳淵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병연이 전라도 지역을 유랑하다가 동복(同福)땅에 이르러 쓰러졌는데,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뒤 김병연은 지리산을 두루 살펴보고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돌아와 1863년(철종 14)
-
김병제 / 金炳濟 [언어/언어/문자]
1905년∼1991년. 월북 국어학자. 1930년대 후반에는 배재고보의 ‘조선어’ 교사로 근무하였는데, 이 시기에 조선어학회 회원으로서 표준어 사정위원 및 ‘표준말’ 강사로 일하였다. 광복 이후 월북할 때까지는 『조선말 큰사전』 편찬원과 국어과 지도자 및 교원 강습회
-
김병조 / 金秉祚 [역사/근대사]
1877-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재(一齋). 1919년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상임이사·임시의정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만주에서 <한족신문>을 발행하였다. 저술로 <한국독립운동사략> 등
-
김병주 / 金炳周 [역사/근대사]
미상-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밀리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여 3월 21일 의주(義州) 영산(永山)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긴급 출동한
-
김병태 / 金餠泰 [역사/근대사]
1899-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빈(金斌)·김빈(金彬)·조국동(曺國棟)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부산(釜山)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상해(上海) 불조계(佛租界)이다. 1918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에
-
김병학 / 金炳學 [종교·철학/유학]
1821년(순조21)∼1879(고종16).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이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인순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수근이며, 어머니는 조진택의 딸이다. 철종의 장인인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조카이다. 김준근에게 입양되었다. 1853년 현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
김병학 / 金炳學 [역사/근대사]
1922-1983. 항일기의 광복군. 1945년 4월 학병탈출 조직망 강화와 일본군작전 교란의 임무를 띠고 쉬저우지구 공작원으로 임명되었다. 계획이 사전에 일본헌병대에 탐지되어 몇 명만 탈출시켰고, 그뒤에도 쉬저우에 잠복하여 학병탈출공작, 적의 정보수집공작을 하였다.
-
김보남 / 金寶男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아악수, 아악수장, 아악사 등을 역임한 음악인.무용가. 1926년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 제3기생으로 입소하여 피리를 전공하였고, 후에 아악수(雅樂手)·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雅樂師)가 되었다.춤에 소질이 있어 박성재(朴聖在)·김천흥(
-
김보형 / 金寶炯 [역사/근대사]
189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군자금모금 등을 맡았다. 1922년 교전 중 두 팔에 관통상을 입고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1927년 동흥농민회에 참여하고, 1928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
김복만 / 金福萬 [역사/근대사]
1907-197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현경면(玄慶面)이다. 광주농업고등학교(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광용(金匡溶)·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
-
김복선설화 / 金福善說話 [문학/구비문학]
종 출신으로 예언가 노릇을 한 김복선(金福善)에 관한 인물 설화. 그는 출신이 종이었지만 탁월한 능력과 중요한 일을 내다보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을 지니고 있어서 예언가 노릇을 하였다. 김복선과 짝이 되어 등장하는 인물이 율곡 이이(李珥)다. 나라의 운수를 걱정하고 전란
-
김복일 / 金復一 [종교·철학/유학]
1541(중종 36)∼1591(선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 김만근의 증손, 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김예범, 아버지는 생원 김진, 어머니는 민세경의 딸이다. 병마절도사 김성일의 아우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전적을
-
김복진 / 金復鎭 [예술·체육/조각]
1901-1940. 조각가. 호는 정관(井觀). 충청북도 청원 출신. 소설가 기진(基鎭)의 형이다. 우리나라 근대조각의 개척자이다. 1920년에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조각을 전공하고 1925년에 졸업했다. 그뒤 서울의 모교인 배재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 경성여자상업학
-
김봉관 / 金鳳官 [역사/근대사]
1869-1922.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갑산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군사령부에 가담하였다. 1922년 6월 홍범도(洪範圖)의 비밀대원으로서 많은 동지들과 함께 갑산경찰서 함정주재소(含井駐在所)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부장 부부를 죽이고 건물을 불태우고, 무
-
김봉국 / 金鳳國 [역사/근대사]
1890-1932년. 한말의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선천 출신. 1919년 평안남도 선천군의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여 배포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평양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손병희(孫秉熙)가 죽자 그의 독립운동노선을 계승하기 위하여, 만주에서 이종
-
김봉규 / 金鳳奎 [역사/근대사]
1892-1968.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월성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참여하였다. 1920년 송두환(宋斗煥)·최윤동(崔胤東)·이수영(李遂榮)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대구일대를 중심으로, 일반국민으로부터 직장인·부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
-
김봉률 / 金奉律 [역사/근대사]
1897-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이다. 해인사(海印寺)에서 학림학생(學林學生)으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후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강재호(姜在鎬)·기상섭(奇尙燮)·송복만(宋福晩
-
김봉문 / 金奉文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판소리 명창(1876-1930). 명창 박기홍(朴基洪)에게 판소리를 배워 민족항일기초에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기홍의 소리제를 이어 동편제 소리의 진수를 발휘했으며, 〈흥보가〉를 잘하였고 특히 ‘박타는 대목’에서 ‘박물가(博物歌)’를 잘 불렀다.
-
김봉성 / 金鳳性 [역사/근대사]
1901-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봉성(金鳳成)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江西)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동대문구(東大門區) 신설동(新設洞)이다. 민족대표 이승훈(李昇薰)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펼
-
김봉수 / 金鳳秀 [역사/근대사]
1902-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奉秀). 아버지는 이형(利亨)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 생활이 곤란하여 1918년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4년 관전현 화수구(寬甸縣 華樹溝)에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 무장항일운동에 전력하였다. 1928년
-
김봉식 / 金鳳植 [역사/근대사]
1904-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영변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1924년 대한통의부 독립결사대에 가입하였다. 1925년 일제기관을 파괴하고 일본경찰과 그 앞잡이들을 숙청하였고, 군자금모금 명령을 받고 동지 정문빈(鄭文彬)·김경보(金敬甫)·채무식(蔡武植) 등
-
김봉원 / 金鳳源 [역사/근대사]
1896-1945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평안남도 강동(江東) 출신. 1917년 4월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 三源堡)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였다. 1919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으로부터 군자금 모금 지령을 받고 부
-
김봉조 / 金奉祖 [종교·철학/유학]
1572(선조 5)∼1630(인조 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김대현, 어머니는 이찬금의 딸이다. 유성룡의 문인이다.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도시직장에 임명되었으며,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그
-
김봉학 / 金鳳鶴 [예술·체육/국악]
1883-1943. 판소리의 명창. 원각사(圓覺社) 주석으로 있던 판소리명창 김창환(金昌煥)의 아들로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판소리를 10여년간 배웠고, 아버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풍채와 더불어 좋은 목과 재질을 타고나서 대명창이 되었다.
-
김봉한 / 金鳳漢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는데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철마별영(鐵馬別營)에 가담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하였다. 김상옥(金尙玉)·김용택(金龍澤)·김세진(金世鎭)·박영
-
김봉현 / 金鳳鉉 [역사/근대사]
1885-1924. 독립운동가. 일명 순구(舜九).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 명의 만세운동군중과 독립만세를
-
김봉호 / 金鳳昊 [역사/근대사]
1895-1982.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명 김봉빈(金鳳彬)이다. 전라북도 전주(全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 박상선(朴尙鮮)·최병태(崔炳台)·김경신(金敬)·김점쇠(金點釗) 등과 전주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4일 3시 경 일본 경찰의 삼
-
김봉화 / 金奉和 [역사/근대사]
1882-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제주도 안덕(安德)에서 태어났다. 1918년 10월 5일 서귀포 법정사(法井寺) 승려 김연일(金蓮日)·강창규(姜昌奎) 등의 주축이 되어 400여 명의 주민이 중문주재소를 습격한 무오법정사항일운동에 승
-
김부대왕설화 / 金傅大王說話 [문학/구비문학]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에 관한 설화. 경순왕(재위 927∼935)은 짐부대왕, 금부대왕 등으로 지역마다 달리 불리기도 하지만 전국적으로 김부대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기도 도당굿 부정굿 무가 치국잡기 가운데 “첫번 치국을 잡으시니는 금부대왕 치국이요.”
-
김부식문집 / 金富軾文集 [문학/한문학]
고려 전기 문인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시문집(詩文集). 『고려사』 권98 「김부식열전」과 『고려사절요』 권11의 「김부식 졸기(卒記)」(의종 5년 2월)에 “문집 20권이 있다.”고 하였다. 타 문헌에서는 김부식 문집의 정확한 명칭이 확인되지 않는다.
-
김부필혼서 / 金富弼婚書 [사회/가족]
1536년 7월 성균진사 조치당이 외손 김부필을 장가보내기 위하여 납채로 보낸 문서.혼서. 원래 혼서는 예서(禮書)·예장(禮狀)이라고도 하며, 장지(狀紙)를 간지 모양으로 접어서 썼다. 넓은 의미의 혼서에는 사주단자와 택일에 관한 서장까지도 포함되나, 김부필의 혼서는
-
김붕준 / 金朋濬 [역사/근대사]
1888년∼1950년.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기원(起元), 호는 당헌(棠軒). 평안남도 용강(龍岡) 출생. 1907년 안정근(安定根)과 함께 상경하여 신민회(新民會)에 몸담고,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 가입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 승동교
-
김사목 / 金思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0∼1829). 도총관 김주신 증손, 할아버지는 김후연, 아버지는 형조판서 김효대, 어머니는 정지익의 딸이다. 1772년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부교리·대사간·대사헌·수원부사·이조판서·한성부판윤·좌의정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원로정승으로
-
김사민 / 金思民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통의동(通義洞)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 종로구 계동(桂洞)이다. 동생으로 200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 김사국(金思國)이 있다. 어
-
김사정 / 金士貞 [종교·철학/유학]
1552(명종 7)∼1620(광해군 12). 조선 후기의 의병장·학자. 아버지는 김세우. 어머니는 김만겸의 딸이다. 이황을 사숙하였다. 1592년(선조 25) 왜적이 침략하자 의병을 일으켜 적을 무찌르고 홍의장군 곽재우의 휘하에 들어가 화왕산성에서 적과 싸워 여러 번
-
김산 / 金山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옛 지명. 신라시대에는 풍무현(風茂縣)이라 하였으며, 감문군(甘文郡)의 영현이었다.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에 이속시키고, 공양왕 때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정종이 황악산(黃嶽山)에 어태(御胎)가 봉안되었다고 하
-
김산군읍지 / 金山郡邑誌 [지리/인문지리]
경상도 김산군(현 김천시)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0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사본. 장서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 1759년(영조 35)과 1899년에 각각 편찬된 『김산군읍지』가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건치연혁·군명·관직·성씨·산천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