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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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 金九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0∼?). 증광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바로 홍문관교리에 임명된 후 한성부판윤에 이어서 형조판서·공조판서·궁내부특진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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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원 / 金國元 [역사/근대사]
1890-1937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덕(性德), 호는 송암(松庵)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순천(順天) 승주군(昇州郡) 별량면(別良面)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 막하에서 활약한 김대인(金大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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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동 / 金貴東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마산(馬山)이다. 1924년 10월 마산노동동우회 집행위원을 맡아서, 12월 마산기자단 결성 때 조선일보 마산지국 기자로서 참가하였다. 1925년 1월 마산독서회 창립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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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 金奎植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81∼1950). 미국에서 유학하고 고국에 돌아와 활발한 교육·종교활동을 펼쳤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남한단독정부수립안을 거절하고 김구와 연합하여 남북협상을 원칙으로 한 통일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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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 / 金圭鎭 [예술·체육/서예]
1868-1933년. 서화가.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무기옹(無己翁) 등 많은 별호를 썼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의 농가에서 태어나 외숙인 이희수(李喜秀)로부터 서화의 기초와 한문을 공부하다가, 18세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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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 金奎哲 [역사/근대사]
1881-1929.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규철(奎喆). 호는 비장(飛將). 충청북도 단양 출신. 1907년 군대해산 뒤 단양·죽령·청풍·제천·영주·예천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죽령지역에서 4백여명을 인솔하고 다섯 차례나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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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성 / 金克成 [종교·철학/유학]
1474(성종 5)∼1540(중종 35). 조선 중기의 문신. 김남호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중로, 아버지는 진사 김맹권, 어머니는 전삼달의 딸이다. 1498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병조정랑, 장악원정, 서천군수, 장례원판결사, 병조참의, 대사헌, 평안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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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수 / 金極洙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영동(永同)이다. 동생으로 사회주의운동가 김두수(金斗洙)와 항일운동 공훈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2006년에 애족장에 추서된 김태수(金台洙)가 있다. 1921년 9월 영동청년회 학예부장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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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일 / 金克一 [역사/조선시대사]
1522년(중종 17)∼1585년(선조 18). 문신·학자.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峰). 본관은 의성이다. 1546년(명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교서관정자에 임명되었다. 이후 승문원정자·저작·박사·승정원주서·형조좌랑·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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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행 / 金謹行 [종교·철학/유학]
1712(숙종 38)∼?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성균관 진사 시서, 어머니는 은진송씨로 비안현감 이석의 딸이다. 강규환의 문인이다. 세자익위사 세마, 사어, 김포군수, 인천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용재문집』15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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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 金起林 [문학/현대문학]
1908-미상. 시인·문학평론가·영문학자. 호는 편석촌(片石村). 함경북도 성진 출생. 니혼대학(日本大學) 문학예술과를 거쳐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경성중학교(鏡城中學校)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으며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내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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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 金箕範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기독교인(1868-1920). 1890년에 기독교에 입교, 1893년부터 전도사가 되어 제물포지역에서 8년간 전도사업에 종사하였다. 1901년 서울 상동교회에서 김창식과 함께 북감리교회의 감독 무어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뒤 황해도 연안지방에서 순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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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보 / 金基報 [종교·철학/유학]
1531년(중종 26)∼1588년(선조 21).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증조는 김영수, 조부는 승지 김영, 처부는 이문량이다. 금계 황준량은 동서이다. 죽우당 성수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향시에 합격하여 언양‧거창‧회인 등지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문집으로 18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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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서강학당 / 金麒瑞講學堂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있는 조선전기 기묘사화에 연루된 김기서 관련 서당.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원래 이 자리에는 전불사(典佛寺)의 불당이 있었다. 1548년(명종 3) 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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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 金基聲 [역사/근대사]
190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성(金啓成)·김선경(金先敬)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시(安城市)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시의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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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金綺秀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32∼?). 187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에조참의·홍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신사로서 일본에 건너가 본 군사·교육시설 등을 조정에 보고하여 근대문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1876년 일본 수신사로 파견되었다. 저서로는《일동기유》와《수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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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金基洙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한국사상 처음으로 복싱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체육인. 함경북도 북청 출생. 6·25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12세였던 나이로 전라남도 여수로 피난하여 여항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여수권투체육관 방호남(方虎男) 사범 밑에서 운동을 시작하였다. 선천적으로 권투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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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 金基容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고향에 거주하면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독립군(獨立軍)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1922년 1월 독립군을 위한 첩보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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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 金基用 [역사/근대사]
1883(고종 20)-1938. 독립운동가. 일명 명숙(明淑)·사보(士寶). 경상북도 영천 출신. 1928년 1월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진 주동자 장진홍(張鎭弘)과 만나 영천경찰서 및 영천의 부호 이인석(李仁錫)에게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투척연습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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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주 / 金基周 [역사/근대사]
1923-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40년대에 일본 군대에 강제로 징집된 후 중국 하남성 형문현(荊門縣)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치되었으나, 조국을 위해 탈출을 감행하였다. 탈출 후 중국 중앙군으로 들어가 중앙군 유격대에 배속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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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 / 金基鎭 [언론·출판/언론·방송]
1903-1985. 일제 강점기 문인. 1922년부터 토월회 창립 동인으로 연극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1923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등단한 뒤 문학동인지 《백조》에 가담하였다. 1924년부터 매일신보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적 문학 활동을 표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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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 金基纘 [종교·철학/유학]
1809(순조9)∼?. 조선 후기의 문신. 김도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성구이고, 아버지는 김주묵이며, 어머니는 이제현의 딸이다. 김용묵에게 입양되었다. 1835년(헌종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2년에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활동하고 돌아온 후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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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 金基昶 [예술·체육/회화]
1913년 2월 18일∼2001년 1월 23일. 일제 강점기 예술가. 호는 운포(雲圃)·운보(雲甫). 본적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출신지는 경성이다. 경성 승동보통학교를 졸업, 화가 김은호에게 미술교육을 받았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 1942년 9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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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추 / 金基秋 [종교·철학/불교]
1908-1985. 독립운동가·불교지도자. 본관은 김해. 호는 백봉(白峯). 부산 출생. 10세 때까지 제주도에서 자라다가 11세 때 부산으로 이주, 그곳에서 영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제이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조선사를 교과목에 삽입시킬 것과 일본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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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승급문서 / 金琦泰陞級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7일. 6품 승훈랑 김기태(金琦泰)를 정3품 통정대부로 가자하는 임명장. 수취인 김기태에 대한 인물정보는 상세하지 않다. 다만 순종황제가 일본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기 이전 많은 한국의 관료를 가자, 혹은 승급하였는데 이때 승급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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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하 / 金器夏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01(숙종 27). 조선 후기의 문신. 성리학자 김인후 4세손으로, 아버지는 김형우, 어머니는 허열의 딸이다. 숙종 때의 명신이었던 김수항의 여러 자제들과 깊이 사귀었는데, 벼슬길에는 뜻이 없어 과거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학행으로 추천받아 후릉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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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한 / 金起漢 [역사/근대사]
188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직재(直齋).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만주로 망명한 뒤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국내에 잠입하여 중앙본부를 결성하고 군자금을 확보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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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 / 金基憲 [역사/근대사]
189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고주(金高洲)이다. 본적은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남촌동(南村洞) 소재 남감리교회 담임목사 정춘수(鄭春洙)는 3월 1일 만세운동을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보 확인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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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형 / 金基瀅 [역사/근대사]
1887-194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해악(海岳).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육영사업을 벌이다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군자금을 모으는데 노력하였다. 병인의용대·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고 한국광복군 창립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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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휴 / 金起休 [역사/근대사]
1895-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西歸浦市) 성산읍(城山邑) 신풍리(新豐里)에서 출생하여 고성리(古城里)로 이주한 뒤 농사를 지었다. 평소 민족주의(民族主義) 노선인 성산청년회가 주관한 성산면 체육대회의 씨름경기 중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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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통좌리공신교서 / 金吉通佐理功臣敎書 [역사/조선시대사]
1472년 문신 김길통을 좌리공신 4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축. 보물 제716호. 녹권은 왕명을 받들어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하는 것이므로 이 문서와 같이 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는 교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서는 담황색의 생견(生絹: 生絲로 짠 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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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두 / 金洛斗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하여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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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서 / 金洛西 [역사/근대사]
1890-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滿洲) 일대에서도 항일투쟁을 위해 김청봉·김현규·이범윤·진학신·최우익 등을 중심으로 한 의군단(義軍團)이 조직되었다. 이때 만주에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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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선 / 金樂先 [역사/근대사]
1881(고종 18)-1925.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낙진(洛振). 전라남도 부안 출신. 1909년 의병장 이용서(李用西)의 부대에 가담하여 총기 15정 등으로 무장한 의병 30여명과 함께 고부·부안·태인 등지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같은해 3월 일본군 기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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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용 / 金洛用 [역사/근대사]
1860-191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맹암(孟巖). 천도교에 입교한 뒤 각지를 돌아다니며 교리를 전파하였다. 초산(楚山)에서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신의주감옥에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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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일 김천찰방 해유문서 / 金洛一 金泉察訪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낙일 김천찰방 해유문서. 1806년(순조 6) 3월 19일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3월 20일 경상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이관, 동년 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김낙일(金洛一)은 1804년(순조 4) 2월 13일에 본직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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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행 / 金樂行 [종교·철학/유학]
1708(숙종 34)∼1766(영조 42)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교리 김성탁. 어머니는 무안박씨로 통덕랑 진상의 딸이다. 이재의 문인이었다. 아버지가 이재를 변호하다 유배되자 아버지를 따라가서 봉양하였다. 저서로는《계몽질의》·《구사당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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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현 / 金洛鉉 [역사/근대사]
1902(광무 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우스리스크 얀치헤 크라브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니꼴라예프스크이다. 1906년(광무 10) 부모를 따라 아무르 강변의 니꼴라예프스크로 거주지를 옮겨 간 후 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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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상 / 金鸞祥 [종교·철학/유학]
1507(중종 2)∼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 좌참찬 김점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영우, 아버지는 김현, 어머니는 전윤서의 딸이다. 1528년이황과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7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지냈다.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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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섭 / 金蘭燮 [역사/근대사]
1895(고종 32)-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황해도 은률(殷栗). 1920년 중국 간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친일파와 일본 고위관리 암살단인 이명서(李明瑞) 일행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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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 金南洙 [역사/근대사]
1899(광무 3)-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호는 학산(鶴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견지동(堅志洞)이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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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 金南一 [종교·철학/유학]
1635년(인조 13)∼1696년(숙종 22). 조선 후기 관료. 김담의 7세손, 부친 김단의 3남 중 장남이다. 외조부는 권극해, 동생은 김해일·김태일이다. 부인은 김상유의 딸이다. 외조부 권극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77년(숙종 3) 현릉참봉을 시작으로 내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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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 金南重 [종교·철학/유학]
1596(선조 29)∼1663(현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김만균의 증손, 할아버지는 좌의정 김명원,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김수렴, 어머니는 성순의 딸이다. 1618년(광해군 10)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가주서가 되고 검열, 수찬, 교리, 대사성, 대사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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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 / 金南天 [문학/현대문학]
1911년∼1953년. 소설가·문학비평가. 평안남도 성천(成川) 출생. 본명은 효식(孝植). 평양고등보통학교(平壤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동경의 호세이대학(法政大學)을 중퇴하였다. 1927년 카프(KAPF) 동경지부가 발행한 동인지 《제3전선 第三戰線》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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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범 / 金迺範 [종교·철학/개신교]
1869(고종 6)-미상. 장로교 목사·독립운동가. 평안남도 평원(平原) 출생. 1907년 석암교회(石巖敎會)를 설립하는 등 강성엽(康成燁)과 더불어 평원군일대의 개척교인이었으며 1913년에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목사안수를 받은 뒤 만주 간도지역의 전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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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 金寧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옛 지명. 김수로왕이 건국한 가야의 땅으로 532년(법흥왕 19) 신라의 땅이 되면서 가야군(伽倻郡, 또는 金官郡)으로 하였다. 680년(문무왕 20) 금관소경(金官小京)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에 예속시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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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굴 / 金寧窟 [지리/자연지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용암동굴. 김녕굴과 만장굴은 하나의 화산 동굴계에 속하고 있었으나 후에 동굴 천장이 함몰되어 두 개의 동굴로 구분된 것으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해당한다. 동굴들의 총 연장은 15.798m이고, 김녕굴의 총길이는 70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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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수 / 金魯洙 [종교·철학/유학]
1878년(고종 15)∼1956년. 일제강점기 한학자·역사학자. 하서 김인후의 후손, 부친은 김갑중이다. 3살 때에 고창군 고수로 이사, 만년에는 부안으로 옮겨 살았다. 연재 송병선의 문인, 경성제국대학도서관에서 한국사를 연구하였는데 성리학이 주전공이었다. 저서로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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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응 / 金魯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7∼1824). 영의정 김흥경 증손, 할아버지는 김한정, 아버지는 문화현령 김태주, 어머니는 이명경의 딸이다. 1786년(정조 10)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관직은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07년에는 동지사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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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녹주 / 金綠珠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판소리 명창(1896-1923). 김정문(金正文)에게 판소리를 배웠으며 여류판소리명창 중 으뜸으로 꼽혔으나 요절하였다. 축음기 음반에 〈화초사거리〉를 취입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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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인 / 金陵人 [예술·체육/대중음악]
1911-미상. 대중가요 작사가. 본명은 승응순(昇應順). 천도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동시를 쓰며, 동인회 ‘희망사’를 조직하여 그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아동문학가 윤석중(尹石重)과 청소년시절을 함께 보낸 문필가로 한때 신문사 기자생활도 하였다. 1920년대 후반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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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담 / 金淡 [종교·철학/유학]
1416(태종 16)∼1464(세조 10). 조선 세종 때의 천문학자. 할아버지는 고려 때 중랑장 김로, 아버지는 현감 김소량, 어머니는 평해황씨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했으며, 1435년(세종 17) 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로 임명되었다.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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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 金大建 [종교·철학/천주교]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신부(1822∼1846). 1831년 조선교구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마카오에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1845년에 귀국했다가 상해로 건너가서 주교 페레올의 집전하에 신품성사를 받고 정식 신부가 되었다. 1846년 서양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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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비훈민전 / 金大妃訓民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교훈서. 국문필사본. 목판본이나 활자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김동욱(金東旭) 소장본(현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소장)의 필사본만 전한다. 필사자와 필사 연도는 작품 말미의 후기로 보아, 권소저(權小姐)가 12세 때인 병진년에 필사하였음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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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 / 金大有 [종교·철학/유학]
1479(성종 10)∼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문신. 김극일의 증손, 할아버지는 집의 김맹, 아버지는 직제학 김준손, 어머니는 사도시정 고태익의 딸이다. 김일손의 조카이다. 조광조·조식 등과 친교를 맺었다. 1519년 현량문과에 3등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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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 金大中 [정치·법제/정치]
1925~2009. 정치가. 전남 신안 출신. 1953년 건국대학 정치외교학과 3년 중퇴, 1969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수료, 1950년 <목포일보>사장, 1960년 민의원에 당선된 후 1971년까지 제, 6,7,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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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사건 / 金大中拉致事件 [정치·법제/정치]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 야당지도자 김대중이 납치되어 한일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된 사건. 사건 당일 김대중은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 갔다가, 대기하고 있던 한국 정보기관 요원 5명에게 납치, 수장 직전 극적으로 구출되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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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지 / 金大池 [역사/근대사]
1891(고종 28)-1942. 독립운동가. 1917년 만주의 길림·봉천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 조직하려다 발각, 1918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4개월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그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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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 金岱鎭 [종교·철학/유학]
1800년(정조 24)∼1871년(고종 8). 조선 후기 학자. 부친은 김복수, 생부 미산 김창수와 모친 권형의 딸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김진상이 있다. 김화와 김홍규의 문하에서 수학, 교유인물은 유치명·조언관·이만각·이수영 등이 있다. 18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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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임명문서 / 金德起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6월 20일. 9품 종사랑 김덕기(金德起)를 소녕원 수봉관 판임관 5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소녕원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묘소이다. 이문 서를 통해 대한제국기의 수봉관은 판임관 5등에 서임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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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설화 / [문학/구비문학]
조선 중기의 명장 김덕령에 관한 설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김덕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물전설이다. 문헌설화는 『연려실기술』·『동야휘집(東野彙輯)』·『풍암집화(楓巖輯話)』·『대동기문(大東奇聞)』 등에 전하며, 구전설화는 전국적으로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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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장군의복 / 金德領將軍衣服 [생활/의생활]
1965년 광주광역시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 1965년 7월에 광주광역시 무등산 이치(梨峙)에 있던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16세기말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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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목 / 金德穆 [역사/근대사]
1913-1977.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 평안남도 용강 출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인성소학교(仁成小學校) 및 상해 육청중학(育靑中學)을 졸업하였다. 그뒤 흥사단 단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애국비밀단체인 동방구락부 간부로 중국학생항일구국회에 참가하여 항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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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 金德永 [역사/근대사]
1887-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상주(尙州)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황해도 재령(載寧)이다. 중국 상하이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자금 후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임시군사준비단(臨時軍事準備團)에 가입하였다. 이후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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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운 / 金德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7∼1767). 송애 김경여 증손, 조부는 김방신, 부친은 통덕랑 김중석이다. 7살에 어머니 함평이씨를 여의고 중부인 도정공 김창석의 밑에서 자랐다. 신임사화 때 사형 당한 윤지술이 1725년(영조 1)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자, 모든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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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원묘 출토 의복 일괄 / 金德遠墓出土衣服一括 [생활/의생활]
1972년 서울에 소재한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金德遠)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 출토된 유물은 상복겉[常服表] 1점과 상복안[裏] 1점(단령 1점에 해당한다), 철릭 1점, 창의류 12점[창의 2점, 중치막 8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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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윤 / 金德潤 [역사/근대사]
1919-200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평양의 숭인(崇仁) 상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6월 동학생 박윤옥(朴潤玉)·연광용(延光榕) 등과 함께 결의를 하고 항일결사단체 일맥회(一麥會)를 결성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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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제 / 金德濟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한말의 의병장. 1907년 8월 군대해산 당시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정위로 8월 1일 서울 양시위대 항전의 소식을 전해 들은 진위대의 애국병사들은 봉기하려 하였으나 대대장인 참령 홍유형(洪裕馨)의 무마로 일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홍유형이 상경하자 특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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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준 / 金德俊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심판으로 국제심판 공로상을 받은 체육인. 함경남도 함흥출생. 6세 때 캐나다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축구를 시작하여 함흥 영생중학교 3학년 때 선수가 되었고 연희전문학교에서 활약하였다.축구계의 기인으로 불린 그는 남다른 집념과 열정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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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 金德鎭 [역사/근대사]
1864-1947. 항일기의 의병. 자는 경명(景明). 호는 낙계(樂溪). 민종식의 부대가 열세에 처하였을 때, 여러 의병들과 함께 재기를 도모하였다. 이때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공주경찰서에 투옥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석방되었다. 사후, 1963년에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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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함묘 및 신도비 / 金德諴墓─神道碑 [예술·체육/서예]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학자 김덕함의 무덤.신도비. 시도기념물. 경기도 기념물 제144호. 조선시대의 학자 김덕함의 묘와 신도비이다. 묘역은 200여 평으로 정부인(貞夫人)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합장된 봉분 1기, 신·구 묘비 2기, 상석(床石)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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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현 / 金德賢 [역사/근대사]
1880(고종 17)-1920.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회령 출신. 1910년 국권을 일본에 의해 빼앗기자 북만주 길림성 화룡현(吉林省和龍縣)으로 망명하여, 단군의 건국이념과 배일사상을 가르칠 목적으로 학성학교(學成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있으면서, 동포 자녀들에게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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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 / 金濤 [종교·철학/유학]
?∼1379(우왕 5). 고려 후기의 문신. 1370년(공민왕 19) 8월 박실·유백유 등과 함께 향공으로 뽑혀 정조사 권균을 따라 명나라에 갔다. 이듬해 급제해 동창부 구현의 승에 임명되었다. 1379년 그의 가노가 연경궁 옛터의 돌을 훔친 일로 이인임의 탄핵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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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곤 / 金道坤 [역사/근대사]
1890-194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가옥(金可玉)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청도(淸道)이다. 1919년 5월 7일 경상북도 에서 일본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 이종현을 보고 군중 300여 명을 모아 일본인 3명을 구타하는 등의 항일 운동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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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규 / 金道珪 [역사/근대사]
1885(고종 22)-1967.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 자는 인언(仁彦). 전라남도 보성 출신. 아버지는 형국(炯國)이다. 젊었을 때 병서를 즐겨 읽고 진을 치는 법을 익혔다. 1908년 2월 안규홍(安圭洪)이 보성 동소산(桐巢山)에서 의거하자, 그 의병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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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명 / 金道明 [종교·철학/유학]
1803년(순조3)∼1873년(고종10년).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김성로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김한운의 딸이다. 처음에 유심춘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뒤에 유태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석학 이한응·이휘녕·유치명 등과 교유하였다. 권엽의 유문을 편집,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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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산 / 金陶山 [예술·체육/연극]
1891(고종 28)-1922. 연극인·영화인. 본명은 영근(永根). 서울 충무로 초동에서 태어나 상동(尙洞) 예배당 안에 있던 상동학교를 나왔으며, 일찍이 연극에 뜻을 두어 신극운동의 선구자인 이인직(李人稙) 밑에서 신극에 참여하였다. 이인직의 원각사(圓覺社)가 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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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수 / 金道洙 [종교·철학/유학]
?∼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음보로 공조정랑·지례현감·통천군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춘주집』과『창선감의록』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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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숙 / 金道淑 [역사/근대사]
1872(고종 9)-1943. 한말의 의병. 별명은 제헌(濟憲). 전라남도 나주 출신. 1907년 11월 의병장 심남일(沈南一)이 의병을 일으키자 휘하에 들어가 도통장(都統將)이 되었다. 1908년 전라남도 강진 오치동전투, 남평 장담원전투, 해남 성내전투 등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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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 金道源 [역사/근대사]
1895-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무장독립단체인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에 들어간 후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23년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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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태 / 金道泰 [역사/근대사]
1891-1956.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졸업하고 명신중학교(明新中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여자상업학교의 교장과 조선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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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행 / 金道行 [종교·철학/유학]
1728년(영조 4)∼1812년(순조 12). 조선 후기 성리학자. 약봉 김극일의 후손, 부친은 김정탁, 모친은 이제태의 딸이다. 백부 김성탁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백부가 광양에 유배되자, 종형 김낙행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경전과 사서를 두루 익혔다. 1765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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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 金道賢 [역사/근대사]
189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장연(長淵)이다. 1919년 장규섭(長奎燮) 등이 결성한 비밀 결사단체 대한적십자사청년단(大韓赤十字社靑年團)에 가담하였다. 이때 권총을 구입하여 일본 경찰 및 친일인사들을 처단하고, 임시 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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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 金道鉉 [역사/근대사]
1852(철종 3)-1914. 조선 후기의 의병장. 일제의 침략 의도가 드러나자 의병을 모아 함창·태봉·삼척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에도 의병을 일으켰으나 결국 영해의 관어대(觀魚臺)에서 투신하였다. 저서로 <벽산선생창의전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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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화 / 金道和 [종교·철학/유학]
1825년(순조25) ∼1912. 조선 후기의 학자·의병장. 안동군내 유림대표로 거의통문을 발표하였다. 1896년 의병장에 추대되어 안동관찰부를 점령하고 무기를 빼앗았다. 태봉전투에 참전하였다. 항의문과 규탄문을 통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1983년 건국포장이 내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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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희 / 金敦熙 [예술·체육/서예]
항일기의 서예가(1871-1937). 자는 공숙(公叔). 호는 성당(惺堂). 서화협회(書畵協會)를 창립했던 일원으로 제4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안진경·황정견 풍의 해서에 뛰어났고 서예에 관련된 이론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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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 金東里 [문학/현대문학]
1913년∼1995년. 일제 강점기 소설가·시인. 자는 시종(始鐘)이고, 호는 동리(東里)인데 호를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김창봉(金昌鳳)·김창귀(金昌貴)·김태창(金泰昌)이 있다.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경주(慶州)이다. 부친 김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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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삼 / 金東三 [역사/근대사]
1878-193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송(一松). 1913년 여준·이상룡 등과 함께 부민단을 조직했으며, 1918년 지린성 왕칭현에서 서일·여준·유동열·김좌진 등 39명이 민족대표로 서명한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27년 김좌진·이청천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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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 金東洙 [역사/근대사]
1916-198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제5지대 간부로 산시성 타이항산에서 적 후방공작을 전개하였다. 충칭에서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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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 金東植 [역사/근대사]
1883-1945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중화 출신. 천도교인으로 1919년 상원(祥原) 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일 천도교 중화교구의 전도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만세운동계획을 세웠다. 3월 2일에 상원교구 앞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수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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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신 / 金東臣 [역사/근대사]
1871-1933. 의병장.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淸菴). 충청남도 회덕 출신. 고종 때 무과에 올라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秘書丞)을 제수받았다. 1905년 10월 22일 사직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906년 봄 최익현(崔益鉉)과 민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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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 金東燁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 창단감독, 서울방송 전속야구해설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황해도 봉산 출생. 아버지는 선경(善慶)이고, 어머니는 정국화(鄭國華)이며,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황해도 사리원(沙里院) 송화인민학교, 송화고등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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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 金東寓 [역사/근대사]
1896-198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일선(金一鮮)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창선면(昌善面)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여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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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 金東元 [역사/근대사]
1882-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대동 출신. 1903년에 평양일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06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1년 후 신병으로 중퇴, 귀국하였다. 1910년부터 6년 동안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대성학교(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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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은 / 金東垠 [역사/근대사]
1908-1978.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보성 출신. 1929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중 김종섭(金鍾燮)·박기원(朴基源)·장재성(張載性) 등과 무등산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회합을 갖고 광주고보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1926년 이후 학생비밀결사로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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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 金東仁 [문학]
1900-1951. 소설가. 평남 평양 사람.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 출판법 위반혐의로 4개월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했다.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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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 金東鎭 [종교·철학/유학]
1866년(고종3년)~1952. 저자는 19세기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저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소수서원 원장을 3번이나 역임하고, 후진의 양성을 위해 도강서당을 세웠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 있다. 저자는 김흥락의 말년 제자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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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 金東轍 [예술·체육/체육]
1893-미상. 체육인. 경상남도 마산 출생. 마산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기자로서 조선체육회 발기인회에 참가하였으며 조선체육회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조선체육회 창립을 위하여 활약하였고, 그해 조선체육회가 창설되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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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필 / 金東弼 [역사/근대사]
1860-1944. 항일기의 애국지사. 1905년부터 일제침략을 규탄하는 상소운동을 벌였으며, 을사조약 체결 후에는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자신회’를 조직하고,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 1930년 2월 신간회 집행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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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 金東河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제1상륙 사단장, 해병중장, 국가재건최고회의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군인. 체육인. 함경북도 무산(茂山) 출신. 일본강점기에 유년기와 청년기를 만주에서 보냈고 1941년에는 만주 신경(新京)에 위치한 4년제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여 소위로 임관하였다.광복과 함께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