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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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 金起林 [문학/현대문학]
1908-미상. 시인·문학평론가·영문학자. 호는 편석촌(片石村). 함경북도 성진 출생. 니혼대학(日本大學) 문학예술과를 거쳐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경성중학교(鏡城中學校)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으며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내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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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 金箕範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기독교인(1868-1920). 1890년에 기독교에 입교, 1893년부터 전도사가 되어 제물포지역에서 8년간 전도사업에 종사하였다. 1901년 서울 상동교회에서 김창식과 함께 북감리교회의 감독 무어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뒤 황해도 연안지방에서 순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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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보 / 金基報 [종교·철학/유학]
1531년(중종 26)∼1588년(선조 21).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증조는 김영수, 조부는 승지 김영, 처부는 이문량이다. 금계 황준량은 동서이다. 죽우당 성수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향시에 합격하여 언양‧거창‧회인 등지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문집으로 18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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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서강학당 / 金麒瑞講學堂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있는 조선전기 기묘사화에 연루된 김기서 관련 서당.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원래 이 자리에는 전불사(典佛寺)의 불당이 있었다. 1548년(명종 3) 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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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 金基聲 [역사/근대사]
190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성(金啓成)·김선경(金先敬)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시(安城市)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시의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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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金綺秀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32∼?). 187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에조참의·홍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신사로서 일본에 건너가 본 군사·교육시설 등을 조정에 보고하여 근대문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1876년 일본 수신사로 파견되었다. 저서로는《일동기유》와《수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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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金基洙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한국사상 처음으로 복싱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체육인. 함경북도 북청 출생. 6·25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12세였던 나이로 전라남도 여수로 피난하여 여항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여수권투체육관 방호남(方虎男) 사범 밑에서 운동을 시작하였다. 선천적으로 권투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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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 金基容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고향에 거주하면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독립군(獨立軍)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1922년 1월 독립군을 위한 첩보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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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 金基用 [역사/근대사]
1883(고종 20)-1938. 독립운동가. 일명 명숙(明淑)·사보(士寶). 경상북도 영천 출신. 1928년 1월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진 주동자 장진홍(張鎭弘)과 만나 영천경찰서 및 영천의 부호 이인석(李仁錫)에게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투척연습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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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주 / 金基周 [역사/근대사]
1923-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40년대에 일본 군대에 강제로 징집된 후 중국 하남성 형문현(荊門縣)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치되었으나, 조국을 위해 탈출을 감행하였다. 탈출 후 중국 중앙군으로 들어가 중앙군 유격대에 배속되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