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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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씨세효록 / 吉氏世孝錄 [교육/교육]
조선후기 영조 때의 효자 길창거의 행장·부소암기·유계 등을 수록한 언행록. 교훈서. 2권 1책. 목활자본. 후손 병주(秉周)와 계도(繼道)가 편집하여 1860년(철종 11)에 간행, 배포하였다. 책의 앞부분에는 1860년에 이용은(李容殷)이 쓴 서문이 있고, 끝에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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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 / 吉安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고려 충혜왕 때 현으로 승격되고 안동부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안동군에 포함되어 길안면이 되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어 이 시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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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천 / 吉安川 [지리/자연지리]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방각산(方覺山)에서 발원하여 반변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길이 72.5㎞, 유역면적 478㎢. 발원지에서 북류하다가, 안덕면 명당리에서 보현천을 합하고, 신성리에 이르러 다시 눌인천(訥仁川)을 합하며, 화부산(花釜山, 626m)과 연점산(鉛店山,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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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유궁 / 吉帷宮 [정치·법제]
재궁을 안장한 후 우주목에 제주하기 위해 임시로 지은 장막. 영장전이나 정자각의 서쪽에 임시로 만든다. 길유궁은 대나무를 묶어 만든 기둥에 동ㆍ서ㆍ북삼면으로 휘장을 늘어뜨리고, 남쪽으로는 유문을 내고, 그 아래에 보계를 만든다. 휘장과 유문의 둘레에 청색의 선을 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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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장 / 吉儀仗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시대의 평상적인 왕실 의장. 국왕이 참석하는 각종 조회·연회 등의 궁정 행사와 제향·능행·열병식 등의 외부 행차 때 위의를 과시하기 위하여 동원된 각종 의장 물품과 그 편성 및 운용제도를 말한다. 보통 궁정내의 행사에서는 의장이라고 하고 외부 행차시에는 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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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장 / 吉仗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 시대 길례의 의장 제도. 의장은 길의장과 흉의장으로 구분되었다. 흉례 때만 사용되는 삽(翣)·우보(羽葆)·방상씨(方相氏) 등을 제외한 모든 의장은 길장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의 길장은 대략 150여 개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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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 / 吉再 [종교·철학/유학]
1353(공민왕 2)-1419(세종 1). 여말선초의 성리학자. 이색, 정몽주와 함께 삼은이라 불렸다. 1386년 과거급제 하였다. 그의 학풍은 정주학에 바탕을 두고 충효를 위주로 하였다. 이단배척과 실천을 강조하였다. 학통은 문인 김숙자에게 전수되고 김종직, 김굉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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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제 / 吉祭 [사회/가족]
상례(喪禮)의 한 절차로, 담제(禫祭 : 대상 다음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를 지낸 다음달에 지내는 제사. 담제를 지낸 다음 상주가 담제 날짜를 정할 때와 같이 날짜를 정하는데, 한 달 뒤에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의 날을 정해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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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군 / 吉州郡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동쪽은 명천군과 동해, 서쪽은 함경남도 단천군·혜산군,남쪽은 학성군, 북쪽은 무산군·경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56′∼129°28′, 북위 40°45′∼41°17′에 위치하며, 면적 1,376㎢, 인구 10만 8317명(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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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동헌 / 吉州東軒 [예술·체육/건축]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관청. 정면 6칸, 측면 3칸의 합각지붕건물. 1655년(효종 6)에 처음 짓고 1882년(고종 19)에 중건하였다.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세웠으며 천장은 소란반자(小欄盤子)이고 연꽃무늬로 조각한 화반(花盤)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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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명천지괴 / 吉州明川地塊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중남부의 길주에서 명천을 거쳐 경성에 이르는 좁고 긴 지구대(地溝帶)로 되어 있는 지괴. 이 지괴의 북쪽에는 두만 지괴(豆滿地塊)가 위치하고, 서쪽에는 평안북도 개마지괴(平安北道蓋馬地塊)가 넓게 분포한다. 이 지괴의 동쪽 산지는 칠보산(七寶山, 906m)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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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명천지구대 / 吉州明川地溝帶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길주∼명천 간에 형성된 지구대. 길주(吉州) 남대천의 하구에서 어랑천(漁郎川) 하구에 이르는 길이 약 80㎞, 평균 너비 약 20㎞의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의 저지대이다. 이 지구대의 동남쪽에는 편상 화강암(片狀花崗岩)을 기반암으로 한 칠보산 지괴(七寶山地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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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목읍지 / 吉州牧邑誌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목(현 길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지방지. 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咸鏡北道吉州郡邑誌(함경북도길주군읍지)’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진관(鎭管)·방리(坊里)·도로·건치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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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민란 / 吉州民亂 [역사/근대사]
1888년 여름 함경도 길주에서 일어난 민란. 목민(牧民)이 관청에 원통하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다는 사실에서, 당시 민란의 일반적인 원인인 삼정 등을 통한 이서배(吏胥輩)의 농간 때문 민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민란으로 민란에 대하여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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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온천 / 吉州溫泉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군 장백면 십일동에 있는 온천. 길주에서 백두산선(白頭山線)으로 갈아타고 다음 역인 봉암역(鳳巖驛)에서 내려 서쪽으로 6㎞ 가량 지나면 온천이 있는 십일동의 온수평(溫水坪)에 닿는다. 해방전 일본인들에 의하여 개발되었으며 현재는 요양소를 개설하고 있다.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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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평야 / 吉州坪野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웅평면·덕산면·장백면에 걸쳐 있는 평야. 길주 평야(吉州坪野)는 동서 약13㎞, 남북 약 25㎞, 면적 185㎢이다. 이 평야는 만탑산(萬塔山, 2,205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리는 산릉을 따라 누에머리산[蠶頭山, 552m]·마유산(馬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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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향교 / 吉州鄕校 [교육/교육]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에 있는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인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서재·경적고(經籍庫)·극복문(克復門)·숭문루(崇門樓)·전사청(典祀廳)·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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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섭 / 吉鎭燮 [예술·체육/회화]
1907-미상. 양화가. 평양 출생.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길선주(吉善宙) 목사의 아들이다. 1932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민족사회의 서화협회전람회에 참가하였고, 1934년 이종우(李鍾禹)·장발(張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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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포집 / 吉浦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최승모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2년에 간행한 시문집. 1962년 최경근(崔庚根)·최원부(崔元溥)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저자의 사진과 목록이 있다. 2권 1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은 「길포시집(吉浦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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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과학/식물]
보라털과에 속하는 해조(海藻). 한자어로는 ‘해의(海衣)’·‘자채(紫菜)’라고 한다. 요즈음에는 ‘해태(海苔)’로 널리 쓰이고 있으나 이것은 일본식 표기로, 우리 나라에서의 ‘파래’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김에 관한 기록으로는 ≪경상도지리지≫에 토산품으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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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각 / 金覺 [종교·철학/유학]
1536(중종 31)∼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진사 김언건, 어머니는 참봉 조이의 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해 여름에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을 다수 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감사 김수가 그의 전공을 행재에 보고하여 사온서주부를 제수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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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간 / 金榦 [종교·철학/유학]
1646(인조 24)∼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문신. 참봉 김수에게 입양되었다. 박세채·송시열의 문인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1694년(숙종 20) 전설사별검·청양현감을 거쳐 지평·집의 등을 지냈고, 1720년 호조참의, 1726년(영조 2) 찬선·대사헌·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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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간 / 金侃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김필신, 어머니는 예안이씨로 통덕랑 이천표의 딸이다. 이유장의 문인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수익의 천거로 사재주부에 임명되었다가 예조좌랑·예조정랑이 되었다. 17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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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 / 金勘 [종교·철학/유학]
1466(세조 12)∼1509(중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문정공 자지의 증손,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수, 아버지는 안동대도호부사 원신, 어머니는 강석덕의 딸이다. 1489년(성종 20) 진사가 되었고, 이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임용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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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불 / 金甘佛 [과학/과학기술]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기술자. 연산군 때에 함경도 단천에서 김검동(金儉同)과 함께 납광석을 사용하여 은을 제련, 분리하는 방법을 발명하였다. 조선시대의 독특한 방법인 이 단천연은법(端川鍊銀法)은 중국이나 일본의 제련법과 다른 점이 많으나 회취법(灰吹法)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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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 / 金甲 [역사/근대사]
1888-미상. 독립운동가. 국내에서는 진원(晋源)이라고 불렀고, 중국망명 후 갑(甲)이라 하였다. 부산 출신. 부산 동명학교(東明學校: 동래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부기학교를 다니다가 3·1운동을 맞아 함양·산청 등지의 항일투쟁 연락책임을 띠고 활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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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 金甲洙 [역사/근대사]
1894-193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출신이다. 부농(富農)이었던 김영성(金永聲)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이후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에서 위원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귀국하여 1927년 전라북도 완주군(完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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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진 / 金甲辰 [역사/근대사]
미상-193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함경북도 성진(城津)이다. 신간회(新幹會)와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신간회와 성진청년동맹이 해체된 후, 두 조직을 기반으로 한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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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사와 티교수 / 金講師─敎授 [문학/현대문학]
유진오(兪鎭午)가 지은 단편소설. 1935년 『신동아(新東亞)』 1월호에 발표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나약한 지식인상을 다룬 드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자가 경성제국대학 예과 강사시절의 체험을 근거로 하여, 지식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당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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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한 / 金江漢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은사(1719∼1779). 김성탁이 호남의 광양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곳에 따라가서《대학》·《중용》·《서명》·《주자행장》 등을 공부하였다. 김성탁의 문하에 들어간 지 9년 만에 스승이 죽자, 그 아들 구사당 김낙행의 문하에서 배웠다. 평생 동안 성리를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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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국 / 金蓋國 [종교·철학/유학]
1548(명종 3)∼1603(선조 36). 조선 중기의 문신. 세형의 증손, 할아버지는 복흥, 아버지는 몽득, 어머니는 이극온의 딸이다. 1573년에 사마시에 합격, 생원이 되고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뒤에 집의가 추증되었고, 1643년(인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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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 / 金開南 [종교·철학]
1853년(철종 4)∼1895년(고종 32). 동학의 태인대접주. 1891년 두령, 즉 접주가 되었다. 이해 처음으로 이곳에 순회 온 동학의 제2세교조 최시형을 만나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1894년에 때마침 전봉준이 선봉에 나서서 고부민란을 일으키자, 손화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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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사집 / 金居士集 [문학/한문학]
고려 후기의 문인 김극기(金克己)의 문집. 135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었으나 일실(逸失)되었다. 이인로(李仁老)가 쓴 서문만이 『동문선』 권83에 전한다. 책의 이름은 『동문선』을 비롯한 『역옹패설 櫟翁稗說』·『용재총화 慵齋叢話』 등에서는 ‘김거사집’으로 지칭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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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웅 / 金巨雄 [예술·체육/서예]
고려전기 거돈사지의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문」을 쓴 서예가. 1025년(현종 16)에 건립되었고 현재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지에 있는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居頓寺圓空國師勝妙塔碑)」(보물 제78호)를 썼다. 그밖에 그의 가계나 행적을 전하는 기록이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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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 / 金健 [예술·체육/연극]
1912-미상. 극작가. 본명 창기(昌基). 서울 출생. 개성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도일, 동경(東京)에서 연극수업을 했다. 귀국 후인 1930년대 중반부터 주로 상업극단을 상대로 희곡을 쓰기 시작하여, 〈섬색시〉(1935.7.)를 시발로 〈거리의 등불〉·〈쌍동이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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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배특증문서 / 金健培特贈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5일. 학생 고 김건배(金健培)를 정3품 통훈대부 규장각직각에 특증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4일 전의 문서이다. 김건배는 벼슬을 하지 않고 죽은 사람으로 인물정보가 상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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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 / 金健壽 [종교·철학/유학]
1804년(순조 4)∼1866년(고종 3). 조선 후기 성리학자. 학봉 김성일의 후손, 부친은 김백찬이다. 부인은 전주유씨이다.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37년(헌종 3) 식년시 진사 3등 67위로 합격하였다. 1847년(헌종 13)에 스승 유치명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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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남 / 金景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거문고 삼절(三絶)의 한 사람. 한말 거문고의 대가인 김경남·함재운(咸在韻)·이병문(李炳文)을 거문고 삼절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김경남은 가곡반주, 함재운은 〈여민락 與民樂〉, 이병문은 〈영산회상 靈山會相〉에 뛰어났다. 그의 유보(遺譜)인 《금보 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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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복시장 / 金慶福諡狀 [정치·법제]
조선 중기의 무신 김경복(金慶福)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910년(융희 4) 김춘희(金春熙)가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에서는 김경복의 충절을 송나라의 충신 악비에 견주어 찬양하였다. 1910년 8월 김경복에게 '장의(壯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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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서 / 金景瑞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4(인조 2). 조선 중기의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 1588년(선조 21) 감찰이 되었으나 집안이 미천한 탓으로 파직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기용되었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정주목사,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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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 / 金慶先 [역사/근대사]
1862-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 서부(西部;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이다. 1907년(융희 1)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경기도 포천(抱川)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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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 金景壽 [종교·철학/유학]
1543(중종 38)∼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응정, 어머니는 조숙견의 딸이다. 유년 시절에 큰아버지인 응두에게『효경』·『소학』 등을 배운 뒤 족형인 김인후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기효간·정운용·변이중 등과 학문을 강론하였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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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식 / 金景軾 [역사/근대사]
1870-1940.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항일운동가.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증산교가 흩어진 이후 그 신도였던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세운 증산교 계열의 보천교(普天敎)에 입교(入敎)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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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여전 / 金慶餘傳 [문학/고전산문]
1655년(효종 6) 김진수(金震粹)가 지은 김경여(金慶餘)의 전기. 작자가 한문으로 짓고, 그의 할머니 송씨 부인이 1658년에 국역하였다. 한문본은 『가장략(家狀略)』이라 하며, 규장각·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는 『송애속집(松崖續集)』 권2에 실려 있는 목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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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유 / 金景游 [종교·철학/유학]
1698년(숙종 24)∼1773년(영조 49).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1762년(영조 38) 어영군기수보로 첫 출사한 이래 첨지중추부사 겸 순장, 1765년 용호영군기수보·동지중추부사·오위장 등을 역임하였다. 1772년 조관으로서 70세에 이르러 특별히 가선대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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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천 / 金景天 [역사/근대사]
1888-193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이다. 1913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리에 김사횡(金仕宖)이 설립한 중화학원(中和學院)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항일의식을 배양시켰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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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 金敬泰 [역사/근대사]
187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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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 金慶熙 [역사/근대사]
1896-195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장환(金章煥)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하다가 쫓기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에 제주에 도착하였다. 그는 백부 김시우(金時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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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 / 金繼 [종교·철학/유학]
1527년(중종 22)∼1565년(명종 20). 조선 전기의 문신. 부친은 대호군, 족제 우후 김숭의의 아들이었던 그를 데려다 후사로 삼았다. 나이가 많도록 학문을 모르다가 초당 허엽의 가르침을 받아 분발하였다. 을사사화에 징계된 여러 노선생들이 모여서 강의하고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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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광 / 金啓光 [종교·철학/유학]
1621(광해군 13)∼1675(숙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극의 증손, 할아버지는 좌찬성 희맹, 아버지는 학, 어머니는 전주유씨로 우잠의 딸이다. 어려서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웠고, 그 뒤 김상헌·김응조에게도 수학하였다.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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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금 / 金係錦 [종교·철학/유학]
1405∼1493.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효분이다.1445년(세종 27)에 생원이 되고, 1454년(단종 2)에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지평·의성현령을 지냈다. 저서로는『장릉사보』·『강의제현록』·『무오유현록』·『서강일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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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락 / 金啓洛 [종교·철학/유학]
1753년(영조 29)~1815년(순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병조판서 김시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상우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화진이며, 어머니는 정이검의 딸이다. 178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고 그 뒤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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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렴 / 金啓濂 [종교·철학/유학]
1749년(영조 25)~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시형, 조부는 김상우, 부친은 가선대부 경상도관찰사 김화진이다. 외조부는 정리검, 두 명의 부인 파평윤씨와 전주이씨를 두었으며, 동생 김계락이 있다. 1774년(영조 50) 식년시에 생원 3등 46위로 합격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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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선 / 金桂善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대금 명인(1891-1943). 호는 죽농(竹濃). 젓대의 명인이었던 최학봉(崔鶴鳳)을 사사하고 이왕직(李王職) 세악내취(細樂內吹)·이왕직 아악수 등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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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행 / 金係行 [종교·철학/유학]
1431(세종 13)∼1517(중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 김득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김 혁, 아버지는 비안현감 김삼근, 어머니는 김전의 딸이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김종직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익혔다. 고령현감, 홍문관부수찬,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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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환 / 金啓煥 [역사/근대사]
1909-1930. 일제 강점기 노동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환(金桂煥)이다. 출신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복귀면(福貴面)이다. 1930년 삼림정책의 방향 제시 및 삼림자원 약탈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조직된 삼림조합(森林組合)에 의해 과다한 조합비가 부과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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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휘신도비 / 金繼煇神道碑 [예술·체육/서예]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계휘의 신도비.시도유형문화재. 전체 높이 350㎝, 비신의 높이 185.5㎝, 폭 85.5㎝, 두께 22.5㎝.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김계휘 신도비가 있는 고정리에는 김계휘의 묘소 외에도 광산 김씨 가문의 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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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실 / 金貢實 [역사/근대사]
1871-1930.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의 의병. 1907년(융희 1) 9월 이석용(李錫庸)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그는 동지 20명을 규합하여 이석용 의병 대장의 진영에 입대하였다. 도로부장(道路副將)으로 임명되어 활약하면서, 전라북도 장수(長水), 진안(鎭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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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묵 / 金寬默 [역사/근대사]
1894-196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일선(一善)이고, 본적은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조면(加祚面)이다. 1919년 3월 20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場基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일본 헌병들의 무력진압에 의해 김병직(金秉直)·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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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보 / 金官寶 [역사/근대사]
1882-192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석산(石山).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입대한 뒤 김좌진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일본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꾸준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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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성 / 金觀聲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사회사업가. 일명 관성(觀星). 평안남도 평양 출신. 3·1운동 뒤 항일독립투쟁을 목적으로 장명환(張明煥)·이춘산(李春山) 등과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이때 그들은 간도 지방의 교민단체인 한족회(韓族會)의 비활동성에 불만을 품은 현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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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시선 / 金冠植詩選 [문학/현대문학]
김관식의 시집. 맨 앞에 실린 「창세기초(創世記艸)」를 비롯하여, 「산림경제(山林經濟)」·「신라소묘」·「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양생명(養生銘)」·「동양의 산맥」·「자하문 밖」의 시들은 젊은 혈기가 넘치고 원색적인 감수성을 동양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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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오 / 金冠五 [역사/근대사]
1901-1965.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愚堂). 서울 출신. 1919년 보성중학교 재학중에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전문을 비밀리에 배부하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경성지방검사국으로 이송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뒤 평강에 있는 친척집에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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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 金寬龍 [역사/근대사]
1900-197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승려. 본적은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해미면(海美面)이다.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공립보통학교(海美公立普通學校)에서 수학하였다. 학생으로 재학 중 1919년 3월 24일 이계성(李啓聖)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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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주 / 金觀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리(1743∼1806). 1772년 청명류사건을 홍봉한 일파의 사주로 보고, 홍씨의 척신정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었다. 정조가 즉위하자 이 소는 당시 왕세손인 정조를 해치려는 음모로 비판되었고, 시벽당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정순대비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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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준 / 金寬俊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서도소리의 명창. 〈배뱅이굿〉의 창시자. 한말에서 민족항일기 초기에 걸쳐 활약하였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선배인 허득선(許得善)에 이어 서도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용강군 해운면 신덕산(新德山)의 보림사(寶林寺) 주지로 있었던 적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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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호 / 金觀鎬 [예술·체육/회화]
항일기의 서양화가(1890-?). 고희동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양화가로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주로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개인전을 열고 회화연구소인 소성회(塑星會)를 개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그의 작품은 거의 전하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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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 / 金光斗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08(선조 41).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정경세·이전·이준·전식·조정 등과 같이 함창·황령 등지에서 창의하여 의병을 모집, 왜군과 맞서 싸웠다. 1606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효곡서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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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 / 金光礪三男妹和會文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전기 상산김씨 가문의 삼남매가 토지와 노비를 분배하기 위하여 작성한 문서. 화회문기. 보물 제1020호. 1장. 필사원본. 크기는 세로 70.5㎝, 가로 119㎝이다. 저지(楮紙)에 38줄에 걸쳐 분배내용을 적고, 뒤에 재산분배에 참여한 동복 삼남매의 이름이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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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서 / 金光瑞 [역사/근대사]
1883-미상. 독립군 지휘관. 본관은 시흥. 아명은 현충(顯忠), 별명은 경천(擎天). 함경북도 북청 출신. 대한제국의 포병 부령(副領)이며, 군기창장(軍器廠長)을 역임한 정우(鼎禹)의 아들이다. 191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23기졸업생으로 기병장교로 동경 제1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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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억 / 金光億 [종교·철학/유학]
1743년(영조 19)∼1799년(정조 23). 조선 후기 유학자. 공신 김회련의 후손으로 전라북도 정읍 태인면에서 출생하였다.《의례경전기의》·《계몽기의》등의 저술을 남긴 삼산재 김이안을 사사했다. 그의 문집《목촌유고》필사본 1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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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엽 / 金光曄 [종교·철학/유학]
1561(명종 16)∼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어모장군병마만호 침, 어머니는 원주원씨로 승문원판교 수장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생원시에 장원으로,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한 뒤 그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과 예문관에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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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용 / 金匡溶 [역사/근대사]
1908-197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본양면(本良面)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朴仁生)·안종익(安鍾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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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우 / 金光遇 [종교·철학/유학]
1707년(숙종 33)∼1781년(정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진사 진하이다. 1737년(영조 13)에 생원, 1749년 해주판관, 176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전적·병조좌랑·예조좌랑을 거쳐 함경아사를 지냈다. 그뒤 사헌부지평, 상주목사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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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욱 / 金光郁 [역사/근대사]
미상-19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이다. 1919년 3월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반석면(班石面) 반육리(班六里)에 소재한 반석교회(盤石敎會)의 조진탁(曺振鐸) 장로가 시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일본 경찰에 의해 사전 검거되어 실패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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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유 / 金光裕 [종교·철학/유학]
1571년(선조 4)∼1596년(선조 29). 조선 중기의 사인. 조부는 김사걸, 부친은 형조참의를 지내고 후에 도승지에 추증된 만취당 김위이다. 은진송씨 송남수의 딸과 혼인하여 문정공 송애 김경여를 낳았다. 사계 김장생의 아들 신독재 김집과 절친했으며, 우암 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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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윤 / 金光允 [역사/근대사]
1907-미상. 일제 강점기 농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안변(安邊)이다. 배화공립보통학교와 북경대학(北京大學)을 졸업하였다. 1932년 2월 배화농민조합 결성식에 참여하였으며, 《신소년》·《신계단》 등의 책을 구입하여 배화농민조합원들에게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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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익 / 金光翼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천서(天瑞), 호는 반포암(伴圃庵). 이만수(李晩秀)가 쓴 「반포유고서(伴圃遺稿序)」에 의하면 군부(軍府)의 서리였다고 한다. 아들 김재명(金載明)도 유명한 여항시인으로 그의 시집 『반포유고』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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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제 / 金光濟 [역사/근대사]
1866-미상. 민족운동가. 충청남도 보령 출신. 1907년 대구에서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부사장 서상돈(徐相敦)과 함께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 國債一千三百萬과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였다. 그 요지는 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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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 金光振 [역사/근대사]
1889(고종 26)∼1964년. 독립운동가. 가명 광해(廣海). 평안북도 의주 출신. 3·1운동 때 의주군 광평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한 뒤 조선총독부 경찰의 눈을 피하여 오동진(吳東振) 등과 남만주로 망명하여 청년단조직에 헌신하였다. 1920년 9월 18일에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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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찬 / 金光燦 [정치·법제/법제·행정]
1597(선조 30)∼1668(현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부사 상관(尙寬)이며, 작은아버지인 좌의정 상헌(尙憲)의 양자로 들어갔다. 광해군 때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가 1627년(인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음서(蔭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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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협 / 金光俠 [역사/근대사]
1915년∼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회령(會寧)이다. 누나는 김일성(金日成)의 둘째 부인 김성애(金聖愛)이다. 1940년 3월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총지휘부 경위부대 정치위원을 맡았으며, 하바로프스키회의 결정에 따라 11월부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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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필 / 金宏弼 [종교·철학/유학]
1454-1504. 조선 성종, 연산군 때의 성리학자. 1498년 무오사화때 희천에 유배, 갑자사화때 사약을 받고 죽었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소학>을 읽고 실천궁행을 강조했다. <소학>에서 제시한 생활규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그의 도학정신은 조광조의 지치주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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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락 / 金敎洛 [역사/근대사]
1882-1954.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함평 출신.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있던 중 1917년 6월 정동근(鄭東根)·양재홍(梁在鴻)·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함께 전라남도의 나주·함평·화순 등지에서 자산가를 대상으로 독립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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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선 / 金敎善 [역사/근대사]
1892-196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시(天安市) 수신면(修身面)이다. 1919년 3월에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홍일선(洪鎰善)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시 갈전면(葛田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계획하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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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 金敎臣 [종교·철학/개신교]
1901-1945. 함경남도 함흥 출신. 종교인. 교육자. 1918년 함흥농업학교를 졸업, 일본에 건너가 동경세이소쿠영어학교(東京正則英語學校)에 들어갔다. 1922년 동경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에 입학, 그뒤 지리·박물과로 전과하여 1927년에 졸업하였다. 동경유학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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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영 / 金敎永 [역사/근대사]
1858-192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현 경기도 하남시) 동부면(東部面)이다.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望月里: 현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의 구장(區長)으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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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일 / 金敎逸 [역사/근대사]
1884-1940.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자는 평중(平仲)이고, 호는 영암(永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덕치면(德峙面)에서 태어났다. 계림군(鷄林君) 김곤(金梱)의 18세손이다. 동학 접주 김학원(金學遠)의 3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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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적개공신교서 / 金嶠敵愾功臣敎書 [역사/조선시대사]
1467년 무신 김교(1428~1480)를 적개공신 1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3호. 김교의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고경(高卿)이다. 판예빈시사 시로(時露)의 아들로 무과에 급제, 벼슬길에 오른 뒤 입사한 훈련원판관을 거쳐, 부호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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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창 / 金敎昌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경기도 강화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송산면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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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필 / 金敎弼 [역사/근대사]
1867-194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만산(萬山)이고, 호는 화암(化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운암면(雲岩面) 화암리(化菴里)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학원(金學遠)이며 김덕원(金德遠)으로도 불리었다. 1894년(고종 31)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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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헌 / 金敎獻 [역사/근대사]
1868-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대종교인.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보화(普和). 1885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참의·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대중계몽운동을 벌였다. 나철(羅喆)의 뒤를 이어 대종교의 제2대 교주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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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헌승급문서 / 金敎獻陞級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5일. 규장각부제학 김교헌(金敎獻)을 종2품 가선대부에 특승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4일 전의 문서이다. 김교헌은 독립운동가이자 대종교 제2대 교주로 활동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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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훈 / 金敎勳 [역사/근대사]
1880-1934.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학로(金學老)·김훈(金勳)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강원도와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군대에게 체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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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 金絿 [종교·철학/유학]
1488(성종 19)∼1534(중종 29). 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의몽 증손, 할아버지는 사예, 아버지는 대흥현감 계문, 어머니는 이겸인의 딸이다. 이조좌랑, 정랑, 사간, 홍문관직제학, 동부승지, 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자암집≫, 유품으로는 ≪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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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 金九 [역사/근대사]
1876-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1919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고, 이듬해 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지휘하였다. 1945년 11월 환국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다. 1948년 남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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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 金構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인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극형, 아버지는 관찰사 김징, 어머니는 참봉 이의길의 딸이다. 1682년(숙종 8) 춘당대 문과에 장원해, 전적과 각 조의 낭관을 거쳤다. 형조판서, 우의정을 역임하였다.『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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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사건 / 金九暗殺事件 [정치·법제/정치]
1949년 6월 26일 한국독립당 당수 김구가 육군포병소위 안두희에게 권총으로 살해된 사건. 1949년 6월 26일 오전 11시 30분경 육군정복 차림의 안두희는 김구가 거처하던 경교장을 방문하여 면회를 요청, 김구를 만나자 권총을 쏘아 살해했다. 안두희는 현장에서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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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영 / 金龜永 [역사/근대사]
1884-193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낙서(洛瑞), 호는 정사(睛沙)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전라북도 진안(鎭安) 출신이다. 증조부는 김사성(金思聲)이고, 조부는 김석기(金奭基)이다. 부친은 김종협(金鍾協)이다. 외조부는 천안전씨(天安全氏) 전명석(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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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주 / 金龜柱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의 관리(1740∼1786).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오빠이다. 1772년 공조참판으로 있을 때 탕평정책을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정조의 외가 인물이었던 홍봉한(洪鳳漢)을 모함하였다. 정조 즉위 후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도 관련이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