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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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은집 / 晦隱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남학명의 시문집. 5권 2책. 활자본. 간행연도 미상. 서문과 발문이 없다. 권1에 시 103수, 부 1편, 권2에 기 17편, 서 2편, 제발 3편, 제문 4편, 권3에 서 17편, 잡문 3편, 권4에 행장 1편, 유사 8편, 묘문 5편, 권5에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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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인향교 / 懷仁鄕校 [교육/교육]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부수리에 있는 향교. 조선 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그 뒤 1924·1941·1952·1971년에 각각 중수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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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참곡 / 悔懺曲 [문학/고전시가]
작자, 연대 미상의 불교가사. 4·4조 위주 4음보 율격의 가사. 총 260구. 인간사가 허망하여 모두 죽음은 피할 수 없으므로 평소에 선심(善心)하여 극락에 왕생할 것을 권한 불교가사이다. 전체 내용은 「회심곡」과 유사하다. 「회심곡」은 작자를 알 수 없는 불교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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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퇴아수 / 晦退雅粹 [문학/고전시가]
총집류(總集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1책, 판종은 필사본(筆寫本)이다. 규격은 26.2×14.3cm이다. 표제는 회퇴아수(晦退雅粹)이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의 시를 모아 필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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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 / 茴香 [과학/식물]
산형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조선시대의 이두어로는 가음초(加音草)라 하였는데, 『동의보감』에는 회향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명으로는 야회향(野茴香)·소회향(小茴香)·토회향(土茴香)·향자소향(香子小香) 등이 있다. 학명은 Foeniculum vulgare GAER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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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헌집 / 悔軒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 조관빈의 시문집. 20권 10책. 금속활자본. 서문과 발문이 없다. 권1∼8에 부 4편, 시 1,278수, 권9∼13에 소차 108편, 계 1편, 의 1편, 권14에 서 48편, 권15에 서 5편, 기 6편, 제발 6편, 설 6편, 잠 2편, 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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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혼경축가 / 回婚慶祝歌 [문학/고전시가]
1927년에 지은 작자 미상의 가사. 국한문필사본. 총 376구. 3·4조, 4·4조를 바탕으로 한 정연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조선민요집성』 영남 내방가사편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예안(禮安)에서 어느 집의 딸이 지은 작품으로 정묘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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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혼례 / 回婚禮 [사회/가족]
해로한 부부의 혼인한 지 예순돌을 축하하는 기념의례.기념잔치. 유교적인 예속의 하나로, 어느 시대부터 행해졌는지는 문헌상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사족(士族)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성행하였으며 최근까지도 간혹 행하여지고 있다. 이 회혼잔치는 자손들이 주로 그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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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 Sophora japonica L. [과학/식물]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 학명은 Sophora japonica L.이다. 높이는 25m에 달하고 소지는 녹색이고 자르면 냄새가 난다. 잎은 어긋나고 15∼40개의 소엽으로 된 우상복엽이다. 소엽은 난상피침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길이는 2.3∼6㎝이다. 꽃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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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둔내철기시대주거지유적 / 橫城屯內鐵器時代住居址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출토품은 무문토기 16점, 김해식 토기 4점, 접시형 무문토기 5점, 철도자(鐵刀子) 3점, 철제낫 2점, 철촉 1점, 철창 1점, 마제석촉 2점, 마제숫돌 2점, 옥구슬(목걸이용) 17점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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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향교 / 橫城鄕校 [교육/교육]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읍상리에 있는 향교. 조선 태조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47년(인조 25)에 대성전을 상량하였고, 1727년(영조 3)에 대성전을 중수하였으며, 1769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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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회다지소리 / 橫城─ [문학/구비문학]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정금리 정금마을에 전해오는 민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4호. 의식요의 하나로, 장례 때 하관이 끝난 후 회를 넣고 다지면서 부른다. 다른 지역의 일반적인 「회다지소리」와 달리, 노랫말은 느린 가락과 자진 가락이 있고 율동은 ‘두발차기’와 ‘세발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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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감가 / [문학/고전시가]
조선 말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교훈가사.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70여행으로, 율격이 많이 흐트러진 변형가사이다. 필사자는 원골댁이라는 대구지방의 여인이다. 이 작품은 지은이가 집안의 자손들이 부탁해서 지어준 것임을 밝혀놓았다. 내용은 사람에게 삼강오륜의 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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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감호설화 / 孝感虎說話 [문학/구비문학]
호랑이가 인간의 효행에 감동하여 효자·효부를 도와준다는 내용의 설화. 「효감호설화」는 인격화담 중 큰 몫을 차지한다. 바로 호랑이를 윤리도덕도 알고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효행자(孝行者)와 대등한 관계를 가지거나 우세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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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구결 / 孝經口訣 [언어/언어/문자]
『효경』의 본문에 차자표기로 구결을 단 책. 한문으로 된 「정속편(正俗篇)」과 합철되어 있는데, 장서기에 의하여 1521년(중종 16) 경상도의 양산향교(梁山鄕校)에 수장된 책임이 확인되므로 늦어도 16세기초의 간본으로 추정된다. 이 『효경』은 18장으로 된 이른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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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대의 / 孝經大義 [종교·철학/유학]
효경류(孝經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1책, 판종은 필사본(筆寫本)이다. 규격은 27.8×17.5cm이다. 표제는 효경(孝經), 서문은 웅화(熊禾), 발문(跋文)은 류성용(柳成龍)이 지었다. 목판본 ≪효경대의(孝經大義)≫를 그대로 필사한 책으로 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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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언해 / 孝經諺解 [언어/언어/문자]
조선 선조 때 홍문관에서 『효경대의(孝經大義)』를 언해한 책. 책 끝에 1589년 6월 유성룡(柳成龍)의 ‘효경대의 발(跋)’이 있는데, 그 내용은 『효경대의』의 간행과 『효경언해』의 경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효경』의 가르침이 오랫동안 돌보아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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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곡서원 / 孝谷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용신리에 있는 서원. 1685년(숙종 1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량(宋亮)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김충(金沖)·고인계(高仁繼)·김광두(金光斗)를 추가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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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 / 孝女 [사회/가족]
극진한 공경심과 헌신적 봉사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고 어버이의 뜻을 받드는 딸. 우리의 전통적 규범 속에서 효(孝)는 백 가지 행동과 만 가지 덕(德)의 근본이라 하여 가장 높은 덕목이었다. 공자(孔子)와 증삼(曾參)의 문답에서 효도에 관한 것들을 추려놓은 『효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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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지은설화 / 孝女知恩說話 [문학/구비문학]
신라시대의 효녀 지은에 관한 설화. 효행설화의 하나로 『삼국사기』 권48과 『삼국유사』 권5 효선(孝善)편에 수록되어 있다. 지은은 연권(連權)의 딸인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나이 32세가 되도록 출가를 하지 않았으나, 결국은 살림에 쪼들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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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덕전홍릉제향시 각종거행문 / 孝德殿弘陵祭享時 各種擧行文 [정치·법제]
거행문. 고종의 혼전인 효덕전(孝德殿)과 능침인 홍릉(弘陵)에서 망제겸추석제(望祭兼秋夕祭)와 주다례를 거행할 때 제관 임명이나 축문, 제문을 지어올리는 일 등에 관한 시행 사항을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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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력부위 / 効力副尉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무신 정9품의 품계명. 조선이 건국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무산계는 정하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무산계는 1436년(세종 18) 처음으로 진무부위(振武副尉)를 설치하였다가 ≪경국대전≫에 이르러 효력부위로 개칭되었다. 정9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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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 / 孝婦 [사회/가족]
지극한 정성과 헌신적인 봉사로 시부모를 공경하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여 시부모의 뜻을 받드는 며느리. 우리의 전통적 가족에서는 부계로의 가계존속을 중히 여겨서 부자관계를 다른 가족들간의 관계보다 우위에 두며 ‘삼종지의(三從之義)’·‘부필종부(婦必從夫)’를 최고의 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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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전 / 孝婦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호랑이의 도움으로 잘 살게 된 효부에 관한 민간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나, 그 문학적 형상화는 미흡한 수준의 범작이다. 조동일(趙東一)이 소장하고 있다. 태조대왕 즉위 초년에, 충청도 옥천에 군자로 이름 있는 최만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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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불효설화 / 孝不孝說話 [문학/구비문학]
일곱 아들이 홀로 된 어머니를 위하여 다리를 놓는다는 내용의 설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효불효교는 경주부 동쪽 6리 되는 곳에 있는데, 신라 시대에 아들 일곱을 둔 홀어머니가 그 아들들이 잠든 틈에 남자를 만나러 다녔다. 그 아들들이 이 사실을 알고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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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빈가 / 效嚬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이현보(李賢輔)가 지은 시조. 작자의 문집인 『농암문집(聾巖文集)』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가 오랫동안의 관직에서 은퇴하여 그의 향리인 예안(禮安)에 돌아가 집 옆에 명농당(明農堂)을 짓고 벽상에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도’를 걸고 강호로 돌아가기를 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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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 / 曉星 [종교·철학/불교]
1910년(융희 4)∼1961년. 승려. 성은 신(申), 본명은 향심(香心)이다. 진주(晉州) 출신이다. 목사(牧使)의 딸로 유아 때 모친을 잃고 기생 윤씨(尹氏)의 양육을 받다가 윤씨가 대구에 사는 신씨(申氏)와 결혼하면서 신향심이라는 성명을 갖게 되었다.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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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안전담제친제제문초 / 孝安殿禫祭親祭祭文草 [역사/조선시대사]
제문초. 1807년(순조 7) 3월 6일에 순조가 효안전(孝安殿)에서 친히 정순왕후의 담제(禫祭)를 지낼 때 썼던 제문이다. 담제의 날짜는 ≪순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순조 7년 3월 6일의 기사를 근거하여 추정하였다. 이 제문은 순조가 직접 지었으며, "裳"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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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안전망제친제제문초 / 孝安殿望祭親祭祭文草 [역사/조선시대사]
제문초. 1807년(순조 7) 3월 15일에 순조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혼전인 효안전(孝安殿)에서 친히 망제(望祭)를 지낼 때 썼던 제문이다. 망제의 날짜는 ≪순조실록≫과 ≪승정원일기≫ 해당일의 기사에 근거하여 추정하였다. 이 제문은 순조가 직접 지었으며, 썼다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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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안전삭제 겸 고동가제친제제문초 / 孝安殿朔祭兼告動駕祭親祭祭文草 [역사/조선시대사]
제문초. 1807년(순조 7) 4월 1일에 정순왕후(貞純王后)의 혼전인 효안전(孝安殿)에서 친히 삭제(朔祭)와 고동가제(告動駕祭)를 겸하여 지낼 때 썼던 제문이다. 친제의 날짜는 ≪순조실록≫과 ≪승정원일기≫ 해당일의 기사를 근거하여 추정하였다. 이 제문은 순조가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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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암서원 / 孝岩書院 [교육/교육]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서원. 조선 중기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강응정(姜應貞)·서익(徐益)·양응춘(梁應春)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은진현 갈마동에 갈산사(葛山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713년경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효암서원으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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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가 / 孝烈歌 [문학/고전시가]
1912∼1914년에 가문의 여성 교육을 위해 ‘효(孝)’와 ‘열(烈)’을 강조하여 부자가 창작한 규방가사. 「효열가」는 여성이 지켜야 할 핵심 윤리로 ‘효’와 ‘열’을 강조하고, 가족 간의 화합을 당부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여자관감」의 내용을 “효자 열녀의 가언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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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지 / 孝烈志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한문 필사본. 이 작품은 명목상의 모자 관계까지도 모두 무시하고, 계모와 전처 자식간의 치열한 대결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 전개가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계모 조씨를 간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표현해 놓고, 끝내는 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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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용도위 / 効勇徒尉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서반 종9품 토관계의 위호. 이 관계에 해당하는 관직은 부여맹(副勵猛)으로서 영흥부의 진북위에 3인, 평양부의 진서위에 4인, 영변대도호부의 진변위에 3인, 경성도호부의 진봉위에 3인, 의주목의 진강위에 3인, 회령·경원의 회원위에 3인, 종성·온성·부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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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우가 / 孝友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이황(李滉)이 지은 도덕가사.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94행이다. 내용은 효우를 못하면 금수와 같다고 하면서 어버이께서 낳아 기르신 천신만고의 은정은 천지와 같으므로 지극한 정성으로 효양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우애를 힘써야 하니 형제는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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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정충예행록 / 孝義貞忠禮行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필사본. 57권 57책본과 29권 29책본이 있다. 이 작품은 가정소설의 유형을 띠고 있는 대하소설이다. 대부분의 가정소설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도 정실은 선한 인물로, 후실은 악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다만, 이 작품에서 주목할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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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 孝子 [사회/가족]
부모를 극진하게 잘 섬기는 아들. 자식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존경하는 태도를 배우고 몸에 익힌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우는 한 가족의 우두머리로서 자식에 대한 엄격한 훈육을 담당할 지배적인 인물로 모시고 섬길 것이 요구되지만, 어머니의 경우에는 인자하고 너그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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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가 / 孝子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영조 때 효자 정방(鄭枋)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 이 작품은 전라남도 창평(昌平)에 살던 전우창(全禹昌)의 효행을 읊은 가사로서, 전우창의 7대 증손 전중현(全仲鉉)의 집에 전해오는 국한 혼용(國漢混用)으로 된 가첩에 「권선가」와 함께 필사되어 있다.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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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비 / 孝子碑 [사회/가족]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개항기 에 건립된 고려후기 김자수의 효행 관련 정려비.시도유형문화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 1878년(고종 15)에 건립되었다. 이 비문는 김노경(金魯敬)이 짓고 김정희(金正喜)가 썼으며, 비표(碑表)에는“효자고려도관찰사김자수지리(孝子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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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와 잉어설화 / 孝子─說話 [문학/구비문학]
효자가 하늘의 도움으로 겨울에 잉어를 구하여 병든 어머니를 공양했다는 내용의 설화. 어떤 효자가 있었는데 병중의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때가 추운 겨울철이어서 얼음 밑의 잉어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는 얼음을 깨고 잉어를 낚으려고 애썼다. 며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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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할고설화 / 孝子割股說話 [문학/구비문학]
효자가 자신의 살을 베어 굶어죽게 된 부모를 살렸다는 내용의 설화. 일반담(一般譚) 중 교훈담에 속한다. 『삼국유사』 효선(孝善) 제9 향득사지할고공친 경덕왕대조(向得舍知割股供親 景德王代條)에 실려 있고, 『삼국사기』 열전 제8 향덕조(向德條)에도 나타난다. 웅천주(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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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현황후전시진하방물표수미 / 孝貞顯皇后奠諡進賀方物表首尾 [정치·법제]
1882년 고종이 청 효정현황후의 시호를 올린 것을 하례하기 위해 보낸 방물 목록. 황세저포 30필로부터 백면지(白綿紙) 2,000권에 이르기까지 총 10종의 방물 목록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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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현황후전시진하예부자 / 孝貞顯皇后奠諡進賀禮部咨 [정치·법제]
자문 1882년 고종이 청 효정현황후 존시 진하 표문을 청 황제에게 전달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청 예부에 보낸 자문이다. 자문 뒤로는 황세저포 30필로부터 백면지 2,000권에 이르기까지 총 10종의 방물 목록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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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현황후전시진하표·방물표 / 孝貞顯皇后奠諡進賀表·方物表 [정치·법제]
1882년 고종이 청 효정현황후의 시호를 올린 것을 하례하기 위해 본낸 진하표와 방물표. 지제교 이응진(李應辰)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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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현황후전시진하표수미 / 孝貞顯皇后奠諡進賀表首尾 [정치·법제]
1882년 고종이 청의 9대 황제 함풍제의 계후 효정현황후(孝貞顯皇后)의 시호 올린 것을 하례하기 위해 사절을 통해 청 광서제에게 올린 진하 표문의 수미. '표문의 수미'란 표문의 발급자, 머리말, 본문, 맺음말, 일시 순으로 작성된 표문 다섯 부분의 전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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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현황후전시진하황태후장 / 孝貞顯皇后奠諡進賀皇太后狀 [정치·법제]
후장. 1882년 고종이 청 효정현황후의 시호를 올린 것을 하례하기 위해 올린 것이다. 올린 시호는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이다, 일종의 방물장으로, 홍세저포 10필로부터 잡채화석 10장에 이르기까지 총 5종의 진헌예물 목록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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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현황후전시진하황태후장예부자 / 孝貞顯皇后奠諡進賀皇太后狀禮部咨 [정치·법제]
1882년 고종이 청 효정현황후 존시 진하 방물장을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에게 전달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청 예부에 보낸 자문. 자문 뒤로는 홍세저포 10필로부터 잡채화석 10장에 이르기까지 총 5종의 진헌예물 목록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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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 孝宗 [정치·법제/법제·행정]
1619(광해군 11)∼1659(효종 10). 조선 제17대 왕. 재위기간은 1649∼1659. 본관은 전주이다. 이름은 호(淏)이다. 자는 정연(靜淵), 호는 죽오(竹梧)이다. 인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인열왕후(仁烈王后)이다. 비는 우의정 장유의 딸 인선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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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가상시호망단 / 孝宗大王加上諡號望單 [정치·법제]
효종에게 가상 시호를 의정하기 위해 1740년(영조 16) 5월 빈청에서 올린 시호 망단. 이 망단에서 의정한 가상 시호는 '명의정덕(明義正德)' 네 글자이다. 이 네 글자를 종전의 시호에 덧붙여서 단망의 형태로 올리고 영조의 재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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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시호등망단 / 孝宗諡號等望單 [정치·법제]
조선의 제17대 국왕 효종이 승하한 뒤 시호, 묘호, 전호, 능호를 의정하기 위해 1659년(현종 즉위년) 5월 빈청에서 올린 대행대왕시호등 망단. 시호를 '의문장무신성현인(宜文章武神聖顯仁)'으로, 묘호를 '효종(孝宗)'으로, 전호를 '경모(景慕)'로, 능호를 '영릉(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