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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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마조 / 紅亇條 [생활/식생활]
궁중 혼례 때 동뢰연상에 올렸던 것으로 붉은색을 띠는 막대 모양의 과자. 밀가루에 꿀과 지초를 우려낸 기름을 식혀서 넣고 반죽한 다음, 네모지고 긴 막대 모양으로 썰어 지초를 우려낸 참기름에 지진다. 지져 낸 것을 꿀에 담갔다가 꺼내어 완전히 식으면 사분백미 고물에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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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선 / 洪萬選 [종교·철학/유학]
1643(인조 21)∼1715(숙종 41).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 아버지는 주국이다.1682년(숙종 8) 30세에 음보로 벼슬길에 올라 사옹원주부, 공조좌랑, 정랑, 익위, 사옹원부평부사, 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연로할 때 지은『산림경제』4권은 대표적인 향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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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조 / 洪萬朝 [종교·철학/유학]
1645(인조 23)∼1725(영조 1). 조선 후기의 문신. 이상 증손, 할아버지는 탁, 아버지는 주천, 어머니는 김광찬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경상도관찰사, 대사간,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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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말 / 紅襪 [생활/의생활]
홍색의 버선. 세종 오례의 흉례 천전의에 보면 홍말은 홍초로 만든다고 되어 있다. 홍말은 홍색의 비단으로 만든 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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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기 / 紅梅記 [문학/고전산문]
명나라의 소설 「고항홍매기(古杭紅梅記)」의 번역본. 한글필사본. 낙선재본 『태평광기』 권4에 실려 있다. 명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항홍매기」를 번역한 책이다. 『홍매기』는 남자주인공 왕악과 홍매 선녀 장소도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명대 문언소설이다. 줄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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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선 / 洪明善 [역사/근대사]
1900-1974. 독립운동가. 일명 명선(明先).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홍면(洪) 등과 주도하였다. 3월 26일 면사무소에서 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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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원 / 洪命元 [종교·철학/유학]
1573(선조 6)∼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춘경 증손, 할아버지는 일민, 아버지는 영필, 어머니는 조수의 딸이다. 1597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수찬, 필선, 장령, 정주목사, 의주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해봉집』 3권 3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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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하 / 洪命夏 [종교·철학/유학]
1608(선조 41)∼1668(현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춘경 증손, 할아버지는 성민, 아버지는 서익, 어머니는 심종민의 딸이다. 164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조좌랑, 대사헌, 형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기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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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 / 洪命熹 [문학/현대문학]
1888-?. 항일기의 소설가·언론인·사회운동가·정치가. 일본에 유학하여 다이세이중학을 졸업하고, 경술국치 직후에 귀국하여 오산학교·휘문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7년 시대일보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신간회 창립에 관여하여 그 부회장으로 선임되었고,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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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무정운역훈 권3~16 / 洪武正韻譯訓卷三~十六 [언어/언어/문자]
한자음을 정확히 나타내기 위하여 편찬한 한글주음운서. 보물 제417호. 편찬목적은, 첫째 정확한 중국발음을 쉽게 습득하고, 둘째 속음의 현실성을 불가부지한 것으로 보고 이를 표시하였으며, 셋째 『홍무정운』을 중국표준음으로 정하고자 한 것이며, 넷째 세종의 어문정책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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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 / 弘文館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사적관리와 문한 처리,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 1463년(세조 9) 양성지의 건의에 따라 장서각을 홍문관이라 했는데, 이 때의 홍문관은 장서기관이었다. 학술·언론기관으로서의 홍문관은 1478년(성종 9)에 비로소 성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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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대기 / 紅門大旗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시대 의장기의 하나. 적색 바탕에 청룡과 청ㆍ적ㆍ황ㆍ백색의 네 가지 채색으로 구름무늬를 그렸고 화염각과 기각을 달았으며, 대가 노부ㆍ법가노부 때 맨 앞에 섰다. 기바탕과 화염각 및 영자는 홍주로, 깃은 흑주, 자루는 중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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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백화전 / 紅白花傳 [언론·출판]
저자 미상. 필사본. 책의 구성은 2권 1책으로 상하가 합본되어 있다. <홍백화전>은 비평본으로 본문 가운데 평점을 표기하고 123개가 비평이 본문 중간 중간에 협비 형태로 가해져 있다. 다만, 12면과 103면, 152면에 주쌍행으로 쓰인 것은 비평이 아니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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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 洪範圖 [역사/근대사]
1868-194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항일전에서 수차례 적군을 격파, 경술국치 후 간도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 됐다. 봉오동전투와 제1연대장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전했다. 대한독립군단 부총재로 활약,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세웠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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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 洪秉箕 [역사/근대사]
1869-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인암(仁菴). 천도교인으로 동학농민운동에 가담 후 교세확장과 구국운동에 힘썼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 서명, 옥고를 치른 후 만주로 망명해 고려혁명당의 고문으로 활약하다 재복역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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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수 / 洪秉壽 [종교·철학/유학]
1807년(순조 7)~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홍응운, 조부는 홍경안, 부친은 홍학연이다. 외조부는 이의강, 처부는 신순이다. 1847년(헌종 13) 정시에 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도청부사과‧양주목사‧이조참의‧예방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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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찬 / 洪秉纘 [종교·철학/유학]
생물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홍종하, 어머니는 백주진의 딸이다. 1777년(정조 1) 대사간에 올랐고, 1780년 홍충도관찰사에 파견되었다. 이어 황해도관찰사, 대사간,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 1788년(정조 12) 비변사제조를 거쳐 개성부유수로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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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진 / 洪鳳珍 [역사/근대사]
1884-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여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성산청년회가 주관한 제주 성산면 체육대회에서 씨름 대회가 열렸는데, 한국인 선원과 일본 선원,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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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한 / 洪鳳漢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3∼1778). 사도세자의 장인이다. 백골징포, 환곡작폐엄금 등으로 국고를 늘렸다. 노론의 영수로 죽어가는 사도세자를 방관해 비난 받았으나 영조가 사도세자의 시호를 내리자 돌연 세자를 죽게 한 김구주일파와 벽파의 탄압기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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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부일월본풀이 / [문학/구비문학]
제주도 무속의 조상본풀이 중 하나. 벼슬을 하였던 집안의 조상이 출세한 내력담이다. 벼슬을 하여 출세한 조상이 있는 집안에서는 홍부일월이 있다 하여, 그 집안에서 굿을 할 때 벼슬한 조상의 내력담을 심방(무당)이 노래하고 집안의 수호를 빌게 된다. 현재 굿에서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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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용 / 洪思容 [문학/현대문학]
1900-1947년. 시인.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 부위를 지낸 철유, 어머니는 이한식이다. 문단 활동으로는 박종화·정백 등 휘문 교우와 함께 유인물 <피는 꽃>과 서광사에서 ≪문우≫를 창간한 것을 비롯하여, 재종형 사중을 설득하여 문화사를 설립, 문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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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자 / 紅散子 [생활/식생활]
연회와 제례에 사용된 찬물로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튀긴 후 꿀과 홍반가루를 묻혀 붉은색을 띄는 산자. 산자는 반죽한 찹쌀가루를 사각형으로 잘라기름에 튀긴 후 꿀을 발라 밥이나 깨를 묻혀 만든 유밀과이다. 백반가루를 묻히면 흰색의 백산자이고 팥물로 지은 밥인 홍반가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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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향교 / 鴻山鄕校 [교육/교육]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교원리에 있는 향교. 처음 세워진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문헌 기록상으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홍산현 학교조에 “향교가 현의 북쪽 3리에 있다.”라는 기사가 확인된다. 1591년 관찰사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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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 紅─門 [사회/가족]
능·원·묘·궁전 또는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 태극 문양은 네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삼태극({{#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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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생원유기 / 洪生遠遊記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산문. 홍생이 죽어 저승에서 놀다가 살아서 돌아온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작자인 안정복의 문집인 『순암잡서(順菴雜書)』 제41책에 전한다. 「홍생원유기」는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단순하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의 체험담을 서술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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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봉 / 洪瑞鳳 [종교·철학/유학]
1572(선조 5)∼1645(인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 계정 증손, 할아버지는 춘경, 아버지는 천민, 어머니는 유당의 딸이다. 15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다.일찍이 시명을 떨쳐 ≪청구영언≫에 시조 1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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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 / 洪錫 [종교·철학/유학]
1604(선조 37)∼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경소, 어머니는 한완의 딸이다. 김상헌의 문인이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이 굴욕적인 화의로 끝을 맺자 태백산 춘양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았다. 김수항·송시열의 추천으로 참봉이 되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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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 洪錫箕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해 증손, 할아버지는 순각, 아버지는 이중, 어머니는 남충원의 딸이다. 구서봉의 문인이다. 1641년 호조좌랑으로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합격했고, 병조좌랑을 거쳐 정언이 되었다. 해주목사, 서천군수, 남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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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운 / 洪錫雲 [역사/근대사]
1876-192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중화(中和)이다. 1920년 평양에 위치한 기홀병원(紀笏病院)에서 임시 정부에서 파견한 김석황(金錫璜)과 접선한 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지령에 따라 결사의용단(決死義勇團)을 조직하였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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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정 / 洪錫禎 [역사/근대사]
미상-19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홍석정(洪錫貞)이다. 1919년 3월 1일 이경섭(李景燮)으로부터 안봉하(安鳳河)에게 전달된 독립선언서를 김영만(金永萬)·나찬홍(羅燦洪)·이영철(李永喆)·안봉하·최용식(崔鎔植)·한청일(韓淸一) 등과 함께 각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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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주 / 洪奭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2). 1795년(정조 19) 춘당대문과에갑과로 급제하여 사옹원직장을 제수받았다. 1797년 승정원주서, 1802년(순조 2) 정언, 1808년 가선대부에 올라 병조참판, 1834년 이조판서,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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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호 / 洪碩浩 [역사/근대사]
미상-192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홍석호(洪錫浩)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삭주(朔州)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만주(滿洲) 집안(輯安)이다. 1919년 3월 평안북도 삭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직후 부친을 따라 중국 남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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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관시초 / 紅仙館詩鈔 [언론·출판]
저자 교중희(?-?). 필사본. 이 책은 교중희의 시집을 초록한 <몽홍선관시초>, 장보의 <범사도>와 <속범사도>에 실린 장보의 시와 당대 여러 명사들의 제영을 초록한 <범사도제영>과 <범사도제영속>, 오숭량이 자신의 시집에 붙인 제시를 필사하여 1책으로 합철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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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 洪晟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2∼1778). 1723년(경종 3)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에 보직되었다가 1762년(영조 38) 지평에 올랐다. 1772년에 가자되어 지중추부사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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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용대기놀이 / 洪城龍大旗─ [생활/민속]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형산리에 전승되는 놀이.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의 호서속편에 용대기와 농악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수백 년 전부터 이 놀이가 행해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형산리에는 1824년(순조 24)에 만든 용대기가 보관되어 있으며, 이 놀이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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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익 / 洪成益 [역사/근대사]
1883-1920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1902년에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1907년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신민회(新民會)에 가입,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하였다. 1910년 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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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태 / 洪世泰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유하집』을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무관이었던 익하(翊夏)이며 어머니는 강릉유씨(江陵劉氏)이다. 홍세태는 5세에 책을 읽을 줄 알고 7, 8세에는 글을 지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신분이 중인층이라 제약이 많았다. 시로 이름이 나서 김창협(金昌協)·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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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라선 / 紅素羅扇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붉은 비단으로 만든 부채.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2방 의궤 도설에는 홍라소원선으로 칭하였다. 붉은 민무늬 비단으로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로, 부채 및 자루의 길이는 1장 1자 2촌이고 지름은 3자 3치 5푼이다. 전면의 뒤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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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원산 / 紅素圓傘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우산. 제도는 일산과 같은데, 홍화화주로 3개의 처마를 만든다. 덮개의 길이는 일산에 비해서 짧은 편이며, 유소는 드리우지 않는다. 산의 총 길이는 4자 2치 5푼이다. 자루 및 호로를 합한 길이는 1장 1자 2촌 9푼이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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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보 / 洪秀輔 [종교·철학/유학]
1723년(경종 3)∼1800.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홍주문, 조부는 홍만기이다. 부친은 홍중효, 생부는 홍중후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2년(영조 38) 승지로 재직 중 영조의 명을 받아 예문관 현판을 써 붙였다. 그 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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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산 / 紅繡傘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기물. 제도는 일산과 같은데, 운문의 홍화화주로 3개의 처마를 만든다. 맨 윗 처마에는 운봉문을, 아래 두 처마에는 서초문을 그린다. 덮개의 길이는 일산에 비해서 짧은 편이며, 유소는 드리우지 않는다. 산의 총 길이는 4자 2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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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설화 / 洪水說話 [문학/구비문학]
홍수를 소재로 한 설화. 한국의 홍수설화도 위와 같은 세계적인 광포성(廣布性)과 한국적인 특수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런데 그 동안 한국의 홍수설화는 세계에 소개된 바가 없다. 한국의 홍수에 관한 지명전설은 다른 전설보다 월등히 많아 한반도에 700곳이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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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주 / 洪受疇 [종교·철학/유학]
1642(인조 20)∼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 처윤 아들이다. 1682년(숙종 8) 문과에 급제, 벼슬은 승지·충청도관찰사·대사간 등을 거쳐 예조참의에 이르렀다. 1695년 동지사행의 부사로 중국에 다녀왔다. 유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묵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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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치방선 / 紅繡雉方扇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기물. 붉은 민무늬 비단 위에 꿩 문양을 수놓아 만든 위가 둥근 장방형의 부채. 부채 및 자루의 길이는 1장 1자 2촌이다. 전면에는 중앙에 난봉화문 그리고, 뒤쪽에는 청화화주에 금으로 꽃 문양을 그린다. 전면의 풍의는 백화화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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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갑 / 洪淳甲 [역사/근대사]
1896-1929.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愚堂). 전라북도 익산 출신. 1919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이상재(李商在) 지도 아래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1921년에 붙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출옥 후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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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녕 / 洪淳寧 [교육/교육]
1887-1949년. 일제강점기 교육자. 호는 남농(南農)이다. 1910년(융희 4) 4월 공립(公立) 수원농림학교(水原農林學校)를 졸업한 뒤 제주(濟州)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등교사(中等敎師)가 되어, 1912년 5월 공립 제주농업학교(濟州農業學校)에 교사로 발령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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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목 / 洪淳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6∼1884). 갑신정변을 일으킨 영식의 아버지이다. 1844년(헌종 10)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수찬을 지내고, 1846년 초계문신에 뽑혔다. 1863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1872년 영의정을 거쳐 영돈령부사가 되었다. 18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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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범 / 洪順範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만주(滿洲)로 이주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27결사대(決死隊)에 가담하여 이탁(李鐸)의 주도로 김병수(金炳洙)·김용우(金容友)·나경호(羅景鎬)·노윤선(盧胤善)·박기제(朴基濟)·박기한(朴基寒)·박진태(朴鎭台)·송동호(宋東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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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병 / 洪淳柄 [종교·철학/유학]
1871-1941년.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윤칠(允七)이고, 호는 몽와(蒙窩)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문정공(文正公) 홍언박(洪彦博: 1309∼1363)의 후예이며, 문경현감(聞慶縣監) 홍함(洪涵: 1549∼?)의 후손으로, 홍병한(洪秉翰)의 현손이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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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주 / 洪淳柱 [종교·철학/유학]
1897-1971. 현대 유학자. 자는 겸오(兼五)이고, 호는 회당(晦堂)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청웅면(靑雄面) 가전(柯田)에서 태어났고 후에 임실군 지사면(只沙面) 선원(仙源)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홍종혁(洪鍾爀)이다. 어려서부터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