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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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향교 / 韓山鄕校 [교육/교육]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향교. 1518년(중종 1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69년(현종 10) 유산(由山)지방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1950년 6·25동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그뒤 복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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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경 / 韓尙敬 [종교·철학/유학]
1360(공민왕 9)∼1423(세종 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할아버지는 공의, 아버지는 수, 어머니는 권적의 딸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좌랑·우정언·전리정랑·예문응교·공부총랑·종부영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밀직사우부대언에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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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렬 / 韓相烈 [역사/근대사]
1876∼1926. 항일기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자는 문극(文極).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되자 횡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500여 차례의 전투를 치뤘다. 1920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의용부·대한독립단 등 애국단체의 참모로 지내다 1926년 암살당했다. 1963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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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호 / 韓相浩 [역사/근대사]
18990-1921.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경성 출신. 일찍이 간도에서 성장하여 명동중학교(明東中學校)를 졸업한 뒤 와룡소학교(臥龍小學校)교원으로 봉직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간도에서 윤준희(尹俊熙)·임국정(林國禎)·최이붕(崔以鵬) 등과 철혈광복단(鐵血光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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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동 / 韓石東 [역사/근대사]
1893-193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석동(韓錫東)이다. 본적은 경기도 이천(利川)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결심하고 권중효 등과 함께 사전 준비 작업을 하였다. 1919년 4월 2일 경기도 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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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영 / 韓晳瑛 [역사/근대사]
1897-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자, 광복회제주도지부와 공동으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른바 조천만세운동이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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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지 / 韓錫地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길몽가」, 『명선록』 등을 저술한 문인.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확인할 수 없고, 부인이 이씨(李氏)라는 것만 『명선록(明善錄)』(일명 『온고록(溫故錄)』이라고도 함)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일생이 병고와 빈곤·고적의 연속이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명선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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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필 / 韓碩弼 [종교·철학/유학]
1672년(현종 13)∼1732년(영조 8). 조선 후기 유학자. 아버지는 한두추, 어머니는 수원백씨이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고 행동이 성숙하여 보는 사람이 기이하게 여겼다. 매일 일기를 기록함에 그날의 날씨, 방문한 손님, 집안의 대소사를 꼼꼼히 적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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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화 / 韓錫化 [역사/근대사]
1898-195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자, 1919년 광복회제주도지부와 공동으로 조천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에서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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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 漢城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왕조 수도의 행정구역 또는 조선왕조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 한성부는 1910년 경성부(京城府)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515년간 조선왕조의 수도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분의 중심지였다. 또한 한성부는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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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북부장호적 / 漢城府北部帳戶籍 [사회/가족]
1663년 한성부에서 북부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관찬서.호구문서. 한성부 북부장호적의 공식적인 명칭은 『강희이년계묘식년북부장호적(康熙貳年癸卯式年北部帳戶籍)』이다. 한성부에서 1663년(현종 4)에 작성한 총 152장으로 된 필사본의 호적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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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북부호적대장 / 漢城北部戶籍大帳 [사회/촌락]
1663년(현종 4)에 조사, 작성된 한성부 북부관 내의 호적책. 1책. 완본(完本)으로 필사본. 책의 크기는 세로 43㎝, 가로 42.5㎝이며, 분량은 150매이다. 조선시대의 호적대장 일반의 기재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계(契)별로 오가작통(五家作統)하지 않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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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수 / 韓聖洙 [역사/근대사]
1920-1945. 광복군. 일명 이상일(李相一)·한성수(韓成洙).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44년 3월 학도병으로 일본군병영을 탈출하여 중국 푸양(阜陽)에 주둔한 광복군에 입대한 열혈청년으로서 제3지대의 발전을 위해서 자진 푸양에 잔류한 기간간부의 한 사람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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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순보 / 漢城旬報 [언론·출판/언론·방송]
1883년(고종 20)에 창간되었던 순간(旬刊) 신문.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다. 1883년 10월 1일(음력) 서울 저동(苧洞)의 통리아문(統理衙門) 박문국(博文局)에서 발행한 월 3회 발간된 순보로, 매월 1일자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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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옥 / 韓成玉 [역사/근대사]
1882-미상.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제주도 표선면(表善面) 성읍리(城邑里)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성산면(城山面) 온평리(溫平里)에서 마을 일을 보고 있을 때 성산포(城山浦)에서 일본의 선박이 침탈해오자, 주민들과 마찰이 자주 발생하였다. 1927년 5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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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 / 韓聖佑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응인 증손, 할아버지는 덕급, 아버지는 수원, 어머니는 이영선의 딸이다. 대사간, 판결사, 개성유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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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재판소 / 漢城裁判所 [역사/근대사]
1895년 4월부터 1907년 12월까지 한성부를 관장하던 법원. 1895년 3월 25일 개혁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한성부에서도 종래 행정관청인 한성부 관할 내 일체의 민사, 형사 소송과 외국인과 본국 민간의 민사, 형사 사건을 재판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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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전보총국 / 漢城電報總局 [역사/근대사]
1885년 서로전선을 운영하기 위하여 서울에 설치된 전보국. 1885년 6월 조선과 청 사이 조청전선조약이 체결되어, 8월 인천부터 서울간 전선가설공사가 완료되었다. 이에 따라서 전선의 전보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한성전보총국이 설치되었고, 인천, 평양, 의주에 분국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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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준 / 韓成俊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고수·민속무용가(1875∼1941). 창극의 장단으로 평타령·중모리·진양조·엇모리·휘모리 등에 특히 능했으며 명창·명무로도 이름을 떨쳤다. 무용에도 뛰어나 민속무용에 전념하여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세워 승무·학무·태평무 등의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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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태 / 韓成泰 [예술·체육/국악]
1890-1931년.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운산리(雲山里)에서 태어났으나, 광주(光州)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덕만(韓德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웠으며,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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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정 / 寒松亭 [문학/고전시가]
고려 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950년(광종 1)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고, 『고려사(高麗史)』권71 악지 속악조(俗樂條)에 오언절구의 한문으로 된 해시(解詩)와 함께 그 내력이 수록되어 있으며, 같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增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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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 韓脩 [종교·철학/유학]
1333(충숙왕 복위 2)∼1384(우왕 10). 고려 후기의 문신. 악의 손자이다. 1347년(충목왕 3) 15세의 나이로 과거에 합격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전리좌랑, 성균사예, 비서소감, 병부시랑, 국자감좨주 등을 역임하였다. 이색과는 일찍부터 교분이 깊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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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동 / 韓壽同 [예술·체육/국악]
1895년∼1940년. 가야금산조 및 풍류의 명인. 전라남도 해남(海南) 출생.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숙구(淑求)의 아들이다. 화순군 동복(同福)에서 살았다. 아버지에게서 가야금·풍류 및 산조를 배워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이름이 났고 역대 가야금산조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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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재집 / 寒水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권상하의 시문집. 35권 15책. 목판본. 1761년(영조 37)에 손자 진응에 의하여 경상감영에서 간행되었다. 윤봉구의 서문이 있다. 권1에 시 307수, 권2·3에 소 26편, 권4∼20에 서 187편, 권21에 잡저 9편, 권22에 서 3편,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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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숙원전 / 韓淑媛傳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김려(金鑢)가 지은 전(傳). 광해군 때부터 인조 때까지 궁녀로 있던 숙원 한씨의 행적을 그녀의 절개와 지조를 중심으로 그린 내용이다. 작자의 문집 『담정집(藫庭集)』 권9의 『단량패사(丹良稗史)』에 수록되어 있다. 「한숙전」은 표면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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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 / 韓楯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592(선조25).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극심이다. 황정길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전관·평양판관 등을 거쳐 1590년 남평현감에 임명되었다.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제하며 군비에 충실하여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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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 漢詩 [문학/한문학]
한자로 창작된 정형시. 한시는 자수(字數)·구수(句數)의 다소, 압운의 유무, 운자(韻字)의 위치 등을 기준으로 분류된다. 매구(每句)의 자수는 5언·7언이 가장 많고 4언·6언도 있다. 구수는 4구·8구 및 그 밖의 것으로 크게 나뉘며, 4구의 대부분은 절구(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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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대 / 韓始大 [역사/근대사]
미상∼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황해도 해주(海州)이다. 1902년(광무 6) 캘리포니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신민회에 가입하여 위원장을 역임하며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일에 힘썼다. 1937년 미주 지역 애국단 대표로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의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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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보응록 / 韓氏報應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활자본. 한명회(韓明澮)의 전기를 미화하여 여러 민담에 연결시켜 지은 역사소설이다. 청주한씨의 시조모인 송씨와 청주 한씨의 시조 한란과의 결연담에 나오는 지네설화는 한씨세보(韓氏世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 구성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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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가 / 漢陽歌 [문학/고전시가]
1844년(헌종 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풍물가사(風物歌辭).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704행이다. 조선 왕도인 한양성(漢陽城)의 연혁·풍속·문물·제도·도국(都局) 및 왕실에서 능(陵)에 나들이하는 광경 등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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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가 / 漢陽歌 [문학/고전시가]
김호직(金浩直)이 지은 장편가사. 지은이의 호가 우강(雨岡) 또는 현재(弦齋)이어서 ‘우강본’ 또는 ‘현재본’이라고도 한다. 조선 왕조의 역사를 노래한 가사로 작자의 아들인 기수(基秀)가 보관한 원본이 있고, 1955년에 김기수가 수정, 가필하여 간행한 석판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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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가 / 漢陽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향토 한양가계의 「한양가(漢陽歌)」로 이용기(李用基)가 편찬한 『악부(樂府)』라는 사본 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85행이다. 내용은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한양가」와 같이 한양의 풍물을 노래한 것이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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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리 / 韓良履 [역사/근대사]
1883-1946. 한말의 의병. 자는 여경(女敬), 호는 석초(石樵). 경상북도 문경 출신. 1906년부터 1908년에 걸쳐 이강년(李康埏)의 의병부대에서 종사관(從事官)으로 의병소집활동을 하였으며, 원주·단양·제천·갈평·안동·내성·재산, 경기도 관악산 등의 전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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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물장구놀이 / [생활/민속]
한양에서 물동이 담긴 그릇이나 바가지를 두드려 소리를 내는 민속놀이. 조선시대 한양에서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동이 안에 물을 떠놓고 그 안에 둥근 그릇이나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던 민속놀이이다. 놀이방법은 물동이에 담긴 그릇이나 바가지를 젓가락이나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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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순 / 韓良順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서울올림픽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학자. 서울 출생. 1946년에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이화여대학교를 졸업한 뒤 진명여자고등학교 체육교사를 시작으로 수도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등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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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영화사 / 漢陽映畵社 [예술·체육/영화]
1935년 차상은이 설립한 영화제작사. 이 회사는 이태원에 촬영소를 짓고 아리프렉스카메라 및 녹음, 현상시설도 갖추었다. 제1회작으로 <강 건너 마을>(나운규 감독)을 제작하여 그해 9월 14일 단성사에서 개봉했는데,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계속해서 <아리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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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오백년가 / 漢陽五百年歌 [문학/고전시가]
1913년사공 수(司空檖)가 지은 영사가사(詠史歌辭). 1책. “슬프다 친구님네/이 가사 들어보소/어느 가사 지었는고/한양가를 지었어라.”로 시작하여 “가련하고 가련하다/한양가를 짓고 보니/슬픈 심회 나는 것이/측량치 못할로다.”로 끝맺는 사공 수의 세창서관본 「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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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족보 / 漢陽趙氏族譜 [사회/가족]
조선전기 문신 조원기·조세정 등이 1524년에 간행한 한양조씨의 족보. 조원기의 서문과 조세정의 발문에 따르면, 1책 분량으로 민세정의 임지인 함창(咸昌)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한양조씨는 15세기 후반경에 조원기의 아버지 조충손(趙衷孫)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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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어 / 韓語 [언어/언어/문자]
1906년 안영중(安泳中)이 저술한 일본인 초학자를 위한 우리말과 글의 학습서. 권두 구마모토(隈本有尙)의 서에 의하면, 저자는 한문·시부(詩賦)·묵평에 능한 한국의 명사로서, 일본에서 10여년간 행한 한일 양국어의 비교연구와 경도(京都)·마쓰에(松江) 등지에서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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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어문전 / 韓語文典 [언어/언어/문자]
1881년에 선교사 리델(Ridel, Félix Clair)이 프랑스어로 펴낸 한국어 문법서. 리델은 파리외방전교회(Société des Missions Étrangères de Paris) 소속 선교사로, 『한불자전(Dictionnaire Coréen-Franc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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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어입문 / 韓語入門 [언어/언어/문자]
1880년에 호세코 시게가스(寶迫繁勝)가 일본인을 위해 만든 최초의 서구식 한국어 학습서. 권두에 있는 저자의 서언에 따르면, “종래에 한국어 학습에 10년이나 걸린 것은 문법서가 없었던 까닭이다. 문법은 마치 공장(工匠)의 규구(規矩)처럼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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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어초 / 漢語抄 [언어/언어/문자]
중국어 단어를 한국어 또는 한문으로, 그리고 중국어 단어를 만주어로 주석한 역학(譯學)의 유서(類書). 천부(天部)·시령부(時令部)·지부(地部)·제왕부(帝王部)·의식부(衣飾部) 등 그 의미에 따라 34개의 부로 나누고, 이를 다시 천문류(天文類)·시령류(時令類)·지여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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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억길승급문서 / 韓億吉陞級文書 [정치·법제]
1908년(융희 2) 3월 20일. 정3품 통정대부 한억길(韓億吉)을 종2품 가선대부에 가자하는 문서. 1882년(고종 19) 6월 일본식 군제 도입과 민씨정권에 대한 반항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1908년(순종 1) 황제에 등극한 순종은 조령을 내려 임오군란때 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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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유 / 韓汝愈 [종교·철학/유학]
1642년(인조 20)∼1709년(숙종 35). 조선 중기의 문인. 한예의 후손이다. 송시열에게 학문을 배워 경학에 능통했다. 저술로「선후천도설」, 「건곤변」, 「삼십육궁해」, 「왕노재조화론설」, 「중용혹문설」,「대학혈구장론」,「주례직방씨의」등이 있다. 저서로『둔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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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문법 / 韓英文法 [언어/언어/문자]
1890년 언더우드(H.G. Underwood)가 영문으로 지은 한국어 문법서.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Part Ⅰ)는 문법 설명(grammatical notes)으로서 총 12장(章)으로 되어 있고, 2부(Part Ⅱ)는 영한대조문(Engilsh 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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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임명문서 / 韓永洙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2월 8일. 한영수(韓永洙)를 유강원(裕康園) 참봉 판임관 5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유강원은 조선 순종황제의 황후인 순명효황후의 원이다. 참봉은 조선시대의 원, 능전을 비롯한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최말단직의 품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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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 / 韓英淑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40호 「학춤」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고전무용가. 충청남도 천안출생. 13세때 할아버지 성준(成俊)으로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첫 무대공연으로 1937년 10월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한성준무용발표회에서 승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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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 / 韓永愛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다른 이름은 한말다(韓末多)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平壤)이다.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광복군(光復軍)에 입대하여 제2지대(支隊) 대장 이범석 휘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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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영한자전 / 韓英英韓字典 [언어/언어/문자]
1890년 언더우드(Underwood,H.G. )가 편찬한 최초의 한영사전과 영한사전. 첫째권(Vol.Ⅰ)은 A korean-English, 둘째권(Vol.Ⅱ)은 An English-korean로 각각 독립되어 있다. 포켓판의 이름은 A Concise Dictio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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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자전 / 韓英字典 [언어/언어/문자]
1897년 게일(Gale, J.S. )이 편찬한 한영사전(韓英辭典). 초판은 2부문으로 되어 있는 바 제1부는 한영사전(Korean-English Dictionary)(pp.1∼836), 제2부는 중영사전(Chines-English)(pp.837∼1096)이다.제1부의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