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최영년 / 崔永年 [문학/한문학]
일제강점기 국민신보 사장, 조선문의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 신소설 『추월색(秋月色)』의 작가인 최찬식(崔瓚植)이 아들이다. 1897년 고향인 경기도 광주에 사립 시흥학교(時興學校)를 설립해서 신교육보급에 앞장섰다. 1904년 일진회(一進會)에 가입하
-
최영록 / 崔永祿 [종교·철학/유학]
1793년(정조 17)∼1871년(고종 8). 조선 후기 성리학자. 최흥효의 후손, 고조는 최징조, 증조는 최기중, 조부는 최지해이다. 부친 최성한과 모친 손회경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홍여하의 현손녀이다. 자기 수양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이황과 정구의
-
최영의 / 崔永宜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국제가라테연맹총재를 역임한 체육인. 전라북도 김제 출생. 아버지는 최승현(崔承泫)이며 4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창설한 극진가라데(極眞空手)는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세계 각지로 발전하여 세계 130개국, 1200만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에만 5
-
최영장군설화 / 崔瑩將軍說話 [문학/구비문학]
고려 말기의 명장 최영에 관한 설화. 최영은 무장으로서 수많은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고 간신의 발호를 징치한 인물로서, 그의 행적은 『고려사』 열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최영장군의 실제 행적과는 다른 설화가 세간에 전승되는데,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강원도 영월군
-
최영하 / 崔榮夏 [정치·법제/외교]
1854-?. 대한제국 외부협판. 철도원부총재. 1887년 3월 육영공원 사첨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궁내부 시종원의 주임관 벼슬인 시종으로서 어복과 어물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다. 1899년 2월 농상공부협판으로 칙임관 3등에 서임되었고, 이후 외부협판과 한성부판윤
-
최예분 / 崔禮分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무용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기예능 보유자. 진주검무 장단과 무용을 특기로 하였다. 1926년 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5세에 진주에서 최완자로부터 진주검무의 장단과 무용을 전
-
최용건 / 崔庸健 [정치·법제/정치]
1925년∼1976년. 군인·정치인. 평안북도 태천 출신. 1925년 중국 윈난군관학교 졸업, 황푸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재직. 1936년 동북항일연합군 제7군단장, 제2로군참모장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참가. 광복 후 평안남도 자치준비위원회 중앙위원으로 출발, 북한군 총사령
-
최원정화풍남태설 / 崔猿亭畵諷南台說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한문 필사본. 구 김동욱(金東旭) 소장의 『고소설(古小說)』 속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이 책에는 네 편의 단편들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첫머리에 실려 있다. 최원정의 이름은 수성(壽城)이고, 원정은 그의 별호다. 작품의 말미에 원정이 놀던
-
최유선 / 崔惟善 [종교·철학/유학]
984 ∼1075(문종 29). 고려 중기의 문신. 충의 아들이다. 1030년(현종 21) 과거에 급제하여 7품으로 한림원에 들어갔다. 그 뒤 1047년(문종 1) 어사잡단을 거쳐 1052년 형부상서를 역임했다. 판상서예부사를 거쳐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문하시중이
-
최윤덕 / 崔潤德 [종교·철학/유학]
1376(우왕 2)∼1445(세종 27). 조선 전기의 무신. 아버지는 운해이다.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국경의 수비에 나가 있어 한마을에 사는 양수척에 의하여 양육되었다. 체찰사 이종무와 함께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평안도도절제사,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
-
최익대 낙안군수 해유문서 / 崔益大 樂安郡守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784년(정조 8) 9월 30일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0월 초8일 수전라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 이관, 1785년(정조 9) 12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최익대(崔益大)는 1780년(정조 4) 12월 21일에
-
최익성전 / 崔翼星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 1책. 필사본. 편말(篇末)에 ‘계축정월이십구일필서’라 적혀 있으며, 뒷 부분에 「삼옥삼주기(三玉三奏記)」라는 소설도 함께 들어 있다. 「최익성전」은 전면 97면으로서, 결말부의 마무리가 되어 있지 않은 채,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절정
-
최익현 / 崔益鉉 [정치·법제/정치]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1833∼1906).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하여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이후 일본과의 통상조약과 단발령에 반대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항일의병운동 전개를 촉구하며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았으나, 순창에서 패하여 쓰시마
-
최인 / 崔麟 [정치·법제/정치]
1878~?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함흥 사람. 1904년 황실 유학생으로 도쿄부립제일중학에 입학, 일본유학생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다. 1909년 메이지대학 법과 졸업, 천도교에 입교했다. 1919년 3.1운동때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
최인범 / 崔仁範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검정 중등체육』·『체육원리』·『체육강화자료선』 등을 저술한 학자.체육학자. 1919∼1979. 평안북도 용천 출생. 한평생을 교직에 근무하면서 학교 체육 및 사회 체육 발전에 힘썼다. 길림사도대학(吉林師道大學) 체육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교직에 투신, 목단강
-
최인호 / 崔仁浩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조선체육회 경기부장, 조선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한 체육인. 1907∼? 경상북도 구미 출생. 대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체육전문대학을 졸업하였다. 1931년 조선체육협회가 경성운동장의 준공을 맞아 개최하게 된 제7회 조선신궁경기대회의 육상 100m 종목에서
-
최인희 / 崔寅熙 [문학/현대문학]
1926년∼1958년. 시인. 강원도 삼척 출생. 삼척보통학교, 대구 대륜중학교(大倫中學校), 1949년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다. 1950년『문예(文藝)』에 「낙조(落照)」‧「비 개인 저녁」등을 발표하여 문단에서 활동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
최일명 / 崔日明 [역사/근대사]
1888-1976.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1920년에는 평양의 서성리교회에서 청년단을 조직하고 상해(上海)로부터 몰래 들어온 선우 혁(鮮于爀)과 함께 평안남도내에서 군자금을 거두어 상해로 전달하였다
-
최일엽 / 崔日燁 [역사/근대사]
미상-1921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일엽(崔日曄)이다. 출신지는 평안북도 선천이다. 1919년 만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의 집동총관(輯東總管)을 지냈다. 1919년 중국인으로부터 개척지
-
최자 / 崔滋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명유(名儒)인 문헌공 최충(崔冲)의 6대손이다. 우복야 최민(崔敏)의 아들이다. 1212년(강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상주사록(尙州司錄)이 되었다. 치적이 우수하여 국자감 학유(國子監學諭)에 이르렀
-
최자남 / 崔子南 [역사/근대사]
1876-1933. 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 출신. 노령(露領) 시베리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장사를 하였다. 1915년경부터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사이토(齋藤實)총독 저격사건을 일으킨 강우규(姜宇奎)와는 약 4개월간 같이 집에서 기거하기도 하였다.
-
최재서 / 崔載瑞 [문학]
1908-1964 영문학자. 문학평론가. 황해도 사람. 경성대학 영문과 졸업 후 영국 런던대학에 유학. 귀국하여 경성대학 강사, 보성전문, 법학전문 교수 등을 지냈다. 1934년부터 문학평론을 시작했고, 1940년대에는 이른바 <국민문학론>을 제창, 친일문학운동에 선
-
최재석 / 崔在錫 [역사/근대사]
1897-195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재식(崔在植)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
-
최재형 / 崔在亨 [역사/근대사]
1858-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재형(在衡)·도헌(都憲). 러시아 이름은 뻬돌쏘오, 최뻬찌카. 함경북도 경원 출신.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노우키에프스크(煙秋)에 이주하여 러시아에 귀화하였다. 러시아 군대의 어용상인(御用商人)으로 치부하여 관리가 되고
-
최정기 / 崔貞基 [역사/근대사]
1913-200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광주(光州)이다. 광주농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재학 중 동학생 김남철(金南哲)·김순복(金順福)·정욱(鄭昱)·조길룡(曺吉龍) 등 20여 명과 함께 결의를 하여 항일비밀결사단체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
최정민 / 崔貞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축구협회 이사를 역임한 체육인. 1930∼1983. 평안남도 대동 출신. 어려서부터 축구에 재질을 보였으며, 평양 종로국민학교와 평양 체신전문학교를 다니면서 배구·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1·4후퇴로 남하하여 육군특무부대인 CIC팀에 입적하였으며, 김
-
최정호 / 崔挺豪 [종교·철학/유학]
1563년(명종 18)∼미상. 증조부는 최홍, 조부는 최대관, 부친은 최수도, 처부는 김복일이다. 1603년(선조 36) 계묘 식년시 병과 19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23년(광해 1)에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는데, 사관은 어리석고 용렬하다고 평하였다. 이후 정인홍에
-
최제우 / 崔濟愚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후기의 동학인·교조(1824∼1864). 동학을 창시하고 1861년 포교를 시작하였다. 경주에 정착한 뒤 전국 각지로 교세가 퍼지기 시작하였으나 조정에서 파견된 정운구에 의해 체포된 후 처형되었다.
-
최제학 / 崔濟學 [역사/근대사]
1882-1959. 일제강점기 유학자·독립운동가. 자는 중열(仲悅)이고, 호는 습재(習齋)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이고, 전라북도 진안(鎭安) 성수(聖壽) 목동 출신이다. 독립운동 당시에는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에서 지냈다. 고려 인종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
최종기 / 崔宗箕 [종교·철학/천도교]
1883-1953년. 일제강점기 천도교인·독립운동가. 호는 표암(杓菴)이다.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운암면(雲岩面) 지천리(芝川里) 출신이다. 조부는 지포(芝圃) 최봉성(崔鳳成)이며, 부친은 복암(復庵) 최승우(崔承雨)이다. 평생을 종교운동과 구국운동에 종사하였다.
-
최종준 / 崔宗駿 [종교·철학/천도교]
1870-1937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천도교인. 본적은 함경남도 이원(利原)이다. 천도교 신자로 함경남도 이원교구장(利原敎區長)을 지냈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공시우(孔時祐)·박승룡(朴承龍)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
최종협 / 崔宗協 [역사/근대사]
187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이종흡(李鐘洽)이다. 거주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이다.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복귀면·수하면·이중면 지역 주민들은 평소 땔나무를 팔고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
최중호 / 崔重鎬 [역사/근대사]
1891-1934. 독립운동가. 황해도 신천 출신. 1906년 황해도 안악에서 김구(金九)와 함께 공부하다가 뒤에 평양으로 건너가 대성학교(大成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08년 김구가 독립투쟁을 전개하다가 잡힌 뒤 그뒤를 이어 독립투쟁을 계승, 발전시켰다. 그러나 19
-
최지관 / 崔志寬 [역사/근대사]
1868-1930.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구성 출신. 3·1운동 후 만주에 건너가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에 가담, 국내 특파원에 선출되고 이해 민국독립단이 임시정부 산하인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에 통합되자 역시 국내 특파원이 되어 평안북도의 연통제(聯通制)조직의 임
-
최진동 / 崔振東 [역사/근대사]
미상-1945. 독립운동가. 일명 명록(明錄, 明祿)·희(喜). 함경북도 온성 출신.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서 중국군(中國軍)에 가입, 군사지식과 전투실력을 함양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의 3형제와 같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분투할 것을 결의하고 동지
-
최진립 / 崔震立 [종교·철학/유학]
1568(선조 1)∼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무신. 득정 증손, 할아버지는 삼빙, 아버지는 신보, 어머니는 황사종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생 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가덕참사, 경흥부사, 공조참판,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였다. 저
-
최진하 / 崔鎭河 [역사/근대사]
189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평양(平壤)이다. 1916년 미국으로 망명한 뒤 1945년 해방 때까지 미주 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서 활동하였다. 1917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무를 지냈다. 1937년부터
-
최찬 / 崔燦 [역사/근대사]
1885-1921. 독립운동가. 일명 광윤(光胤). 자는 성조(聖祚). 황해도 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해주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그해 10월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 활동하였다. 1920년 5월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
최찬식 / 崔瓚植 [문학]
현대의 소설가(1881∼1951). 관립한성중학교에서 수학, 문학에 뜻을 두어 1907년에 중국 상해에서 발행한 소설전집 《설부총서》를 번역한 뒤 신소설 창작에 착수한다. 말년에는 최익현의 실기를 집필했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다.〈추월색〉을 비롯하여〈안의 성〉·〈금강
-
최창걸 / 崔昌傑 [종교·철학/유학]
1707년(숙종 33)∼1781년(정조 5). 조부는 최후징, 아버지는 최석태, 외조부는 윤동형, 아들 최수침과 최수노가 있으며, 외손으로 성원묵이 있다. 어려서부터 옛 성현들의 학문에 전념했다. 관찰사가 천거하여 1753(영조 29)에 참봉에 제수되어 양지현감에 이
-
최창대 / 崔昌大 [종교·철학/유학]
1669(현종 10)∼1720(숙종 4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명길 증손, 석정 아들, 어머니는 이경억의 딸이다. 16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설서·부수찬을 거쳐 1698년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어 교리·이조좌랑·헌납·응교를 거쳐 1704년 사
-
최창섭 / 崔昌燮 [역사/근대사]
1893-1969. 독립운동가. 경기도 파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고향 파주군 교하면 장터에서 황인수(黃麟秀)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고, 같은해 비밀독립운동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입단, 독립투쟁에 헌신하게 되었다. 1920년 상해(
-
최창식 / 崔昌植 [역사/근대사]
1892-1957.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일찍부터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펴다가 1916년 12월에 체포,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18년 오성학교(五星學校) 교사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독립주의·주인의식을 고취하다가 문제가 되어 금고 1년형을
-
최창익 / 崔昌益 [역사/근대사]
1896-1957. 독립운동가·공산주의운동가. 함경북도 온성 출생. 창석(昌錫)·창순(昌淳)·동우(東宇) 등의 이름을 쓰기도 하였으며, 여성공산주의운동가 허정숙(許貞淑)의 남편이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정경과를 졸업하였다. 일본유학중 학우회(學友會)를 조직하고
-
최척전 / 崔陟傳 [문학/고전산문]
1621년(광해군 13) 조위한(趙緯韓)이 지은 고전소설. 1권 1책. 한문필사본. 이 작품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수록된 「홍도(紅桃)」가 조위한에 의하여 소설화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명·청간의 세력교체를 배경으로 하여, 조선·일본
-
최천익 / 崔天翼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농수고』, 『농수집』 등을 저술한 시인.여항시인. 아버지는 흥해의 아전이었던 준걸(俊傑)이다. 어려서 같은 고을의 운와(耘窩)라는 사람에게 배웠으며, 이형상(李衡祥)에게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집안 대대로 흥해의 군리(郡吏)였는데, 그만은 열심히 공부해서
-
최천호 / 崔天浩 [역사/근대사]
1900-1989. 독립운동가. 이명은 만년(萬年).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어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으로 건너가 이용규(李龍奎)·김관봉(金寬鳳)·김광진(金光振) 등의 권유로 오동진(吳東振)을 단장으로 하는 광제청년단
-
최철 / 崔鐵 [역사/근대사]
1919-미상. 광복군. 경기도 개성 출신. 광복군 일성(一成)의 동생이다. 1938년 형 일성과 함께 뤄양(洛陽)으로 건너갔다. 1940년 10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는 한편,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학원대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
-
최초법어 / 最初法語 [종교·철학/원불교]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少太山)이 1916년 5월에 9인의 제자에게 설한 최초의 법문. 법문의 내용은 당시의 사회를 관찰하여 개인과 세상이 병들어 있음을 지적하고, 그 구제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
최충 / 崔沖 [종교·철학/유학]
984-1068. 고려시대의 유학자. 1005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문종 초에 문하시중으로 있으면서 고려형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055년 9재학당이라는 최초의 사학을 창립하여 구경과 삼사를 가르쳤다. 고려 유학을 흥성시켰으며 해동공자라고 불리웠다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