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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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룡 / 趙昌龍 [역사/근대사]
1899-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順川)이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입단하였다. 1920년 김진준(金鎭俊)·장필석(張弼錫)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평안남도 성천(成川)과 황해도 신계(新溪) 등지에서 국내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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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가 / 朝天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이수광(李睟光)이 지은 가사. 전후 2곡으로 되어 있다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신흠(申欽)이 『상촌집(象村集)』에서 평하기를 ‘고결하고도 유려한 가사’라고 극찬하였다. 작품의 제목으로 보아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그곳의 풍물과 감회를 보고형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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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록 / 朝天錄 [문학/고전시가]
저자 미상의 수필·가사·소설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문집. 한장(韓裝) 1책. 궁체 국문 필사본. 수록작품은 수필·가사·소설 등으로, 「됴텬녹」·「한화희등황후」·「쇼통현뎐」·「교구련뎐」·「사시풍경녹」·「됴비연합덕의뎐」 등 6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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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비석거리 / 朝天碑石─ [지리/자연지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지명.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1호. 조천은 제주에 이르는 관문이다. 이 비석거리에는 7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1. 목사채공동건휼민선정비(牧使蔡公東健憰民善政碑) : 1855년(철종 6) 8월∼1857년 6월까지 제주목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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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사 / 朝天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명나라에 보내는 조선의 사절 또는 그 사신의 총칭. 조천사란 천조(天朝)인 중국에 조근(朝覲)하는 사행이라는 뜻이다. 조천사는 해마다 정례사행과 임시사행으로 나누어 파견하였다. 정례사행으로는 네 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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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제 / 趙哲濟 [종교·철학/신종교]
1895년(고종 32)∼1958년. 태극도 창시자. 23세 때 강일순의《태극도리》를 읽고 개안영통하였다. 1918년 무극도를 창도, 증산사상을 포교하였다. 그뒤 3년 동안 120여칸의 교당을 짓고 10만의 신도를 가지는 대교단을 이루었다. 1948년에 본부를 부산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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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호 / 趙喆鎬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90∼1941). 1913년 일본육군 중앙유년학교, 사관학교를 졸업. 오산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교생을 지도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31년 김성수의 신원보증으로 입국하여 동아일보사에 근무하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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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부산전선조약 / 朝淸釜山電線條約 [역사/근대사]
1886년 3월 인천-한성-부산간의 전선가설에 관하여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6개조의 조약. 1885년 7월에 '조청전보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은 1883년에 체결한 '조일해저전선부설조약'을 내세워 의주전선이 개통된다 하더라도 이 선을 통하여 조선이 공사간의 전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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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정치·법제/외교]
1882년 8월 23일(음력) 조선과 청 사이에 체결된 수륙통상조약. 1882년 8월 천진에 도착한 어윤중은 이홍장, 마건충 등을 만났다. 조선과 청과의 통상조약 협상때에도 마건충은 청 정부 대표의 한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은 전문과 8개조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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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전선조약 / 朝淸電線條約 [역사/근대사]
1885년 7월 17일 인천-한성-의주 간의 전선 부설에 관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 전신, 전화는 근대 국가에 있어 중추신경 역할을 담당하는 근대 시설이다. 조선 정부가 인천-한성-의주-만주-봉황성에 이르는 전선을 설치해 줄 것을 국왕의 이름으로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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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의전 / 趙忠毅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 1책. 국문 필사본. 내용에 효종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저작 연대는 효종 이후가 분명하다. 이 작품은 민간에 유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서 구성면에서도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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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칙 / 詔勅 [문학/한문학]
한문문체의 하나. 대개 왕의 말을 조(詔), 황후·태자의 말을 영(令)이라고 한다. 이들이 문서로 발포하는 것을 총칭하여 조령이라 한다. 고(誥)·조(詔)·영(令)·유(諭)·새서(璽書)·교(敎) 책명(策命) 등은 명칭은 비록 다르지만 모두 조령에 속한다. 우리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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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침문 / 弔針文 [문학/고전산문]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고전수필.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쓴 제문(祭文)이다. 미망인 유씨의 작품으로 알려졌을 뿐 연대와 작자의 인적사항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작자는 사대부 가문의 청상과부인로 생각되는데, 그 문장실력과 고사(故事)에 능통한 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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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탁 / 曺倬 [종교·철학/유학]
1552(명종 7)∼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문신. 한필 증손, 할아버지는 언전, 아버지는 몽정, 어머니는 홍신의 딸이다. 1599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공조참판, 한성부좌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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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구 / 趙泰耉 [종교·철학/유학]
1660(현종 1)∼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 아버지는 사석이다. 어머니는 권후의 딸이다. 태채·태억의 종형이다. 1686년 별시문과에 종제 태채와 함께 병과로 급제, 설서·문학·승지를 거쳐, 1702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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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수 / 趙泰壽 [종교·철학/유학]
1658년(효종 9) 10월 9일∼1715년(숙종 41) 6월 24일.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기, 조부는 조희보이다. 부친 조형과 모친 이장영의 딸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심권의 딸 청송심씨이다. 44세에 처음 관직에 올라 내시교관을 시작으로, 금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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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억 / 趙泰億 [종교·철학/유학]
1675(숙종 1)∼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이다. 아버지는 가석, 어머니는 윤이명의 딸이다. 태구·태채의 종제이다. 최석정의 문인이다. 170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지평·정언 등을 지냈다. 1707년 문과중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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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채 / 趙泰采 [종교·철학/유학]
1660(현종 1)∼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 아버지는 희석이다. 어머니는 백홍일의 딸이다. 태구의 종제이며, 태억의 종형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종형 태구와 함께 병과로 급제하였다. 평안감사, 좌참찬 겸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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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택원 / 趙澤元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민속무용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친일반민족행위자. 190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대한제국 군관학교 제1기 출신으로 참령(參領)의 지위에 올라 있던 종완(鐘玩)이며, 어머니는 김금오(金琴梧)이다. 7세 때 홍원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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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포사 / 造泡寺 [예술·체육/건축]
사찰. 조포사(造泡寺)는 능(陵)이나 원(園)에 딸려서 제향에 쓰는 두부를 맡아 만드는 사찰이다. 헌릉(獻陵)의 조포사는 용인의 봉서사(鳳棲寺)이다. 예전에는 봉헌사(奉獻寺)를 조포사로 삼았으나, 사찰이 무너지고 승려가 흩어진 탓에 봉서사를 조포사로 삼게 되었다. 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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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학경 / 趙學經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시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업에 몰두한 문인이다. 검간 정의 5세손이며 조언기 아들이다. 어려서 밀암 이재 문하에서 배웠다. 깨달은 바가 있어 과거에 뜻을 접고 오로지 학문에 매진했다.《심경》‧《근사록》‧《주자서》에 공을 들였으며 문장이 날로 발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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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학래 / 趙學來 [종교·철학/유학]
1899년(고종 36)∼1964년. 조선 말기의 문인이다. 고조부는 조성헌, 증조부는 조방규, 조부는 조용진, 부는 조창제이다. 7, 8세에 부형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 근면하고 나태하지 않아 문의를 쉽게 깨우쳤다. 이후 집안의 여러 어른들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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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 趙翰逵 [종교·철학/유학]
1740∼181? (영조15∼순조?) 아버지 조영근과 어머니 청주 한씨사이에서 2남 1녀의 셋째로 태어났다. 각정산아래에서 성장하여 평생을 보냈으므로 호를 각정이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증조할아버지가 문충공 조태억이다. 16세 때에 형과 함께 미상에서 최수인․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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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함세 / 趙咸世 [종교·철학/유학]
1607년(선조 40)∼1690년(숙종 16). 조선 중기 유학자. 부친 조형도의 5남 중 막내, 형으로 조함영‧조함희, 조함장‧조함철이 있다.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 1652년(효종 3) 증광시 생원 3등 8위로 합격, 호조판서를 역임했던 김세렴의 천거로 참봉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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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 / 趙楷 [종교·철학/유학]
1639(인조 17)∼1699(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봉원, 어머니는 정시혁의 딸이다. 서인이다. 1681년(숙종 7) 천거로 공릉참봉, 경안도찰방, 예빈시직장, 의금부도사,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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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 / 趙憲 [종교·철학/유학]
1544(중종 39)∼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유학자·의병장. 황 증손, 할아버지는 세우, 아버지는 응지이다. 어머니는 차순달의 딸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좌랑, 보은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604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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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례 / 朝見禮 [정치·법제]
왕비 또는 왕세자빈이 혼례를 마친후 처음으로 부왕, 모비 등 왕실의 어른을 뵙는 의식. 국혼은 납채, 납징, 고기, 책비, 친영, 동뢰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절차인 동뢰연를 마친 후 조현례를 거행하였다. 헌종 계비인 효정왕후 홍씨의 가례를 보면 동뢰연을 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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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명 / 趙顯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0∼1752).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 분무공신 3등에 책록되고, 풍원군에 봉해졌으며, 이후 도승지·경상도관찰사·공조참판·부제학, 이조·병조·호조판서 등의 요직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영의정에 이르렀다. 영조의 탕평책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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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 / 趙珩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79(숙종5). 조선 후기의 문신. 세찬 증손, 할아버지는 기, 아버지는 희보이다. 1626년(인조 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나 파방, 163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대교를 거쳐 사국으로 옮겼다.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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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균 / 趙衡均 [교육/교육]
1873-1948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1892년(고종 29) 정주에 교회를 세우고 신문화운동을 통하여 애국사상을 고취하였고, 1904년 이승훈(李昇薰)과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설립,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또, 남녀청년단을 조직하고,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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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도 / 趙亨道 [역사/조선시대사]
1567(명종 22)∼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무신. 생육신 여 5대손이다. 아버지는 지이다. 큰아버지 우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오운의 딸이다. 1583년(선조 16) 첨지 민추에게 수학했다. 1587년 정구를 사사한 뒤 3년 간 향시에 연이어 장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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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보 / 趙衡輔 [정치·법제/법제·행정]
1659년(효종 10)∼1697년(숙종 23).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풍양이다. 홍문관전한 조종경(趙宗敬)의 후손으로, 증조는 현감 풍옥헌(風玉軒) 조수륜(趙守倫)이고, 조부는 창강 정속(鄭涑)이다. 부친 현령 매창(梅窓) 정지운(鄭之耘)과 모친 승지 정면(鄭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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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익 / 曺好益 [종교·철학/유학]
1545(인종 1)∼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치우 증손, 할아버지는 효연, 아버지는 윤신이다. 어머니는 장중우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저서로 『지산집』·『심경질의고오』·『가례고증』·『주역석해』 ·『역상추설』·『논위학지요』·『이기유석등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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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시가 / 早紅枾歌 [문학/고전시가]
1601년(선조 34)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연시조. 모두 4수. 작자의 문집인 『노계집(蘆溪集)』 권3에 실려 있고, 『청구영언』·『해동가요』 등에도 전한다. 이덕형(李德馨)이 도체찰사로서 영천에 이르렀을 때에 홍시를 보내자 그 자리에서 이 시조를 지은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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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진 홍산현감 해유문서 / 趙弘鎭 鴻山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782년(정조 6) 10월 일에 후임관이 병조에 첩정을 올렸고, 동년 10월 초9일에 공충도관찰사겸순찰사가 병조에 문서 이관, 동년 10월 일에 병조에서 호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조홍진(趙弘鎭)은 재검(載儉)의 아들로 양부는 재운(載運)이다. 17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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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정부 / 造化政府 [종교·철학/신종교]
강증산(姜甑山)이 지난 세상의 잘못들을 공정하게 바로잡늗다는 증산교의 사상. 이 사상의 배경에는 사자(死者)도 생자(生者)의 일원이 된다는 선조사상과 땅에서의 다스림이 하늘의 것이라는 정치사상이 깔려 있다. 증산교도들은 조화정부가 하는 일이 앞으로 올 인존시대(人尊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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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황 / 趙晃 [역사/근대사]
1882-1934. 항일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부터 국내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였다. 1923년 3월 황옥경부폭탄투척의거(黃鈺警部爆彈投擲義擧)에 가담하여 김시현(金始顯) 등과 더불어 붙잡혔다. 같은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 합의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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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 / 趙勳 [역사/근대사]
1886-1938. 독립운동가. 일명 덕묵(德默). 함경남도 단천 출신. 1910년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에서 이태걸(李泰杰)·김찬(金燦) 등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 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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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영 / 趙徽榮 [종교·철학/유학]
1805년(순조 5)∼1854년(철종 5).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조현상이다. 초시에는 합격, 1850년(철종 1)에 실시된 전시에서 실패한 후, 과거에 대한 뜻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고향의 문사들과 교유하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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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흘강 / 照訖講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과거제 운영에 있어서 일종의 예비 시험. 소과, 즉 생원·진사시의 경우 초시와 복시, 그리고 문과의 경우 복시 실시 전에 응시자에게 각각 과했던 예비 시험이다. 조흘의 ‘조’는 확인 또는 대조를 뜻하며, ‘흘’은 그러한 절차를 ‘마쳤다’는 뜻이다. 조흘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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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진 / 趙興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8∼1814). 홍경래 난에 의주를 지키고, 철산·용천 등 7읍을 수복하는 데 전공을 세웠으나 논공행상에 불만, 사직하였다. 양사의 건의로 병조참판에 기용되고, 이어서 한성부우윤·부총관을 역임하였으며, 사후 이조판서·대제학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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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 / 趙熙龍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화가(1789∼1866). 서화에 뛰어났던 여항문인화가로서 글씨는 추사체를, 그림은 남종문인화를 따랐으나 김정희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가 저술한 《호산외사》는 중인들에 대한 생생한 기록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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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백 / 趙熙百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진산군수, 함열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아버지는 형조참의와 동부승지를 지낸 조규년(趙奎年)이며, 어머니는 해평 윤씨(海平尹氏)로 윤정렬(尹鼎烈)의 딸이다. 31세 때인 1855년(철종 6)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에는 참봉이 되어 진산군수에 음서(蔭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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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유 / 曺喜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42∼1814).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장악원주부·병조좌랑·예조정랑 등을 지냈다. 그 뒤 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사헌부장령이 되었으며, 그해에 서산군수로 부임하였으나, 다음해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학행이 뛰어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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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필 대구도호부판관 해유문서 / 趙熙弼 大丘都護府判官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68년(고종 5) 10월 일에 후임관이 겸도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0월 22일에 행경상도관찰사겸도순찰사가 호조에 문서 이관, 1870년(고종 7) 9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 이관, 동년 9월 22일에 이조에서 조희필(趙熙弼)에게 조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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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 族譜 [사회/가족]
한 종족의 계보. 부계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기록한 책이다. 조상에 대한 존숭, 종족의 단결, 후손간의 화목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최초 족보는 1476년에 간행된 <성화보>로서 안동권씨의 족보이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1562년 <문화류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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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징 / 族徵 [경제·산업/경제]
조선 후기 삼정문란의 한 사례인 군정의 폐해. 국법으로는 생활의 곤궁으로 군역을 피하여 도피한 자가 10년이 경과해도 행방불명인 경우 면역조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규정을 무시하고 도피자의 미납분을 족징이라 하여 그 친족에게 대신 군포를 납부하게 하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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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친위 / 族親衛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중앙군으로서 호분위에 소속되었던 병종. 기원은 미상. 왕실과 혈연 관계에 있는 자들이 속해 체아직을 받으면서 일정한 복무를 마쳐 거관되도록 한 일종의 우대 기관. 왕실의 친척들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왕과 선왕의 단면 이상의 동성친, 왕후·선후의 친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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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각 / 尊經閣 [교육/교육]
1475년(성종 6) 성균관 안에 건립된 도서관 건물. 기본 장서는 사서·오경·제사와 성리학 중심의 유가 도서이고, 불교는 물론 노장 및 기타 잡류 그리고 농학 등 기술계 도서는 금지되었다. 도서의 수집 방법은 주로 ≪경국대전≫에 정해진 반서제도에 따라 교서관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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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첩 / 存齋歌帖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학자 위백규와 위세보의 시조 「농가」와 가사 「자회가」·「금당별곡」 등을 수록한 가집.첩·가곡류. 위백규의 「농가」 9장은 농부화의 추세 속에 놓인 향촌사족층인 서생(書生)이 자영농(自營農)의 자리로 이전해가는 단계를 전형적으로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위백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