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조선한문학사 / 朝鮮漢文學史 [문학/한문학]
1931년 국문학자 김태준의 한국한문학사에 관한 학술서. 한문학사의 시대를 상대·고려·이조로 크게 나누었고, 각 시대를 중국문학의 영향, 문장가·학제·문풍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으며, 시 등을 예문으로 넣었다. 시·문 등 정통적인 한문학을 중심으로 다루었으며 한문소설은
-
조선혁명당 / 朝鮮革命黨 [역사/근대사]
1930년대 만주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 조선혁명당은 그 산하에 조선혁명군을 두어 총사령관에 이진탁, 부사령관에 양세봉, 참모장에 이웅을 임명하고 활동하였다. 1931년 9월의 만주사변 이후 만주를 벗어나 국내로 남하하여 1932년 11월에는 대일전선통일동맹
-
조선환여승람 / 朝鮮寰輿勝覽 [언론·출판/출판]
사부(史部) - 지리류(地理類) 이병정(李秉廷)편, 안병태(安秉台) 교, 목판본, 불분권 1책(51장). 이병정이 우리나라의 지리총설과 충남 여천군지를 편집하여 만든 인문지리지이다. 내용은 서, 지리총설, 충남지리총설로 되어 있다. 발은 목판본, 여천군은 목활자본으로
-
조성교 / 趙性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8∼1876). 예조판서·전라도관찰사·사헌부대사헌 등을 지냈다. 전라도관찰사 때 극심한 수재가 나자 납세 기일을 늦추는 등의 백성 구휼과 부족한 병조의 번포를 돈으로 대납하게 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었다.
-
조성도감 / 造成都監 [예술·체육/건축]
고려시대에 토목·영선사업을 관장하였던 관부. 조성도감에서 관장한 영선사업은 궁궐건축은 물론 연복사 등 사찰과 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조성도감에서는 단순히 토목·영선만을 담당하였던 것이 아니라, 이에 필요한 목재·석재 등 재료의 징수와 요역을 징발하였으며 이에 불
-
조성복 / 趙聖復 [종교·철학/유학]
1681(숙종 7)∼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박 증손, 할아버지는 현소, 아버지는 시채, 어머니는 최득일의 딸이다. 1702년(숙종 2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정언을 지냈다. 신임사화 때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
조성환 / 曺成煥 [역사/근대사]
1875-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청사(晴簑). 1906년 안창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군무부차장에 임명되었다. 1936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
-
조세걸 / 趙世傑 [종교·철학/유학]
1648년(인조 26)∼1722년(경종 2). 조선 후기 유학자·효자. 증조는 조인, 조부는 조정익이다. 부친 조유와 모친 이정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파평윤씨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하였다.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가 폐출되자
-
조세창 / 漕稅倉 [경제·산업/산업]
조운할 전세를 보관하는 창고. 초기의 조창은 아래 세주에 명기되었다. 그 가운데 황해도의 금곡포창과 조읍포창 등은 경기우도 수운판관이 겸하는 벽란도승의 관장 아래 수참선으로 전운되었다. 금곡포창은 배천군의 동쪽 20리에 소재하며, 배천·해주·연안·풍천·강령·옹진·장연
-
조소앙 / 趙素昻 [역사/근대사]
1887-195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 임시정부 외무총장·의정원의장을 지냈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했으며, 해방 후 비상국민회의의장으로 임시정부의 정통성 고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1948년 남북협상차 평양에 다녀왔고, 제2대국회의원이 되었으나, 6·25 때
-
조속 / 趙涑 [종교·철학/유학]
1595(선조 28)∼1668(현종 9). 조선 후기의 서화가. 수륜 아들, 지운의 아버지, 박태상의 장인이다. 덕산현감, 장령, 진선, 상의원정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창강일기>가 있으며 광주의 수곡서원, 과천의 호계서원, 서천의 건암서원, 김제의 백석사에 제향되었
-
조손별서 / [문학/고전시가]
개화기 때 의성김씨(義城金氏)가 지은 가사. 318구. 작자는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국무령이었던 이상룡(李相龍)의 부인이다. 일제강점기를 맞아 광복운동에 투신한 남편 이상룡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던 의성김씨가 조국에 남아 있는 손녀에게 보낸 편지이다. 모두 318구이며,
-
조숙하 / 趙肅夏 [종교·철학/유학]
1844년(헌종 1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조재호 후손, 고조는 조관진, 증조는 조운익, 조부는 조용화이다. 부친은 조연권, 모친은 이유원의 딸이다. 생부 조연흥과 생모 박영원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정기세의 딸이다. 1866년(고종 3) 정시 문과에 병
-
조술도 / 趙述道 [종교·철학/유학]
1729년(영조 5)∼1803년(순조 3).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는 조군, 조부는 조덕린이다. 부친 조희당의 5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으로 조준도·조운도·조근도·조진도가 있다. 부인은 김주우의 딸이다. 이상정과 김낙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서로《운교문답》,《
-
조시광 / 趙是光 [종교·철학/유학]
1669년(현종 10)∼1740년(영조 16).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 조영과 모친 권확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현일·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향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김성탁·정만양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시문집《주강문집》3권
-
조식 / 曹植 [종교·철학/유학]
1501-1572. 조선 중기의 유학자. 여러 번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학문과 강학에만 힘썼다. 주자학의 입장에서 도가와 불가를 비판하였다. 노자는 인간에게 내재한 도덕을 문화적 소산으로 보는 잘못을 범했으며, 불가는 형이상학만 있고 형이하학은 없어 일용
-
조씨삼대록 / 曺氏三代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40권 40책. 한글궁체 필사본. 조씨가문의 3대에 걸친 사건을 다루고 있는 가문소설(家門小說)로 대하소설에 속한다. 이 작품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현몽쌍룡기」와 연작관계에 있다. 「현몽쌍룡기」에는 「조씨삼대록」과 연작임을 밝
-
조씨전 / 趙氏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국문 필사본. 불교적인 인과응보 및 전세·현세·내세의 횡적인 연관성과 유교의 효도를 표방한 가정사를 다룬 일종의 계모형 소설이다. 이런 유형으로 「장화홍련전」·「콩쥐팥쥐」 등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는 피학자(被虐者)가
-
조알례훈서 / 朝謁禮訓書 [정치·법제]
관례 뒤 조알례를 시행할 때 국왕이 왕세자에게 내리는 훈서. 이 문서에 실린 의식 관련 내용은《국조오례의고이》<왕세자관의>편에 실려 있다.《조선왕조실록》에는 1670년(현종 11)기사에서부터 이 글귀가 나오고 있다. 조알례의 의식적인 훈서와 대답임을 알 수 있다.
-
조야기문 / 朝野記聞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 서문중이 지은 기사본말체의 책. 30권 23책. 서문에 1626년(인조 4)까지의 국조기사년과 총기, 국조대사기, 본편에 종계변무·개역·서변정토·을해옥사와 이시애의 토평, 무오사화·윤비폐의·폐신비의·복소릉의·기묘사화·복성군옥사·을사옥사·벽서옥사·기축옥
-
조야시선 / 朝野詩選 [문학/한문학]
1916년에서 1919년 사이에 이기가 조야(朝野)의 시인 233명의 시 1,130수를 수록한 시선집.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조야의 시인 233인의 시 1,130수를 모아 엮었다. 권두에는 1922년에 정만조(鄭萬朝)가 쓴 서문이 있다. 오세창(吳世
-
조약도 / 助藥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에 있는 섬. 동경 126°57′, 북위 34°24′에 위치하며, 완도에서 동북쪽으로 15.2㎞ 지점에 있다. 면적은 23.84㎢이고, 해안선 길이는 45.0㎞이다. 남서쪽에 신지도, 동쪽에 평일도, 서쪽에 고금도가 있다. 약산면의 유일한 유인도로
-
조양 / 兆陽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보성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 때의 동로현(冬老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조양으로 고쳐 분령군(分嶺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 때 보성군에 귀속시켰다가 조선 태조 때 일시적으로 고흥현에 예속시켰으나 세종 때 다시 보성현에 편입하였다. 이 시기에 조내면
-
조양폭포 / 朝陽暴布 [지리/자연지리]
북한 강원도 금강군 단풍리(옛 고성군 외금강면 온정리)에 있는 폭포. 높이는 31m이고, 너비 3m의 2단 폭포이다. 1단의 높이는 10m이고 2단의 높이는 21m이며, 떨어진 물은 넓이 200㎡의 깊은 폭호(瀑壺), 즉 소를 만들고 있다. 구룡폭포(九龍瀑布)ㆍ비봉폭포
-
조어법 / 造語法 [언어/언어/문자]
단어의 구성 규칙. 단어의 하위단위인 형태소(形態素)들이 결합하여 단어를 구성하는 방식이 곧 조어법(word―formation)이다. 조어법을 다루는 분야를 조어론이라 하는데 굴절론(屈折論)과 함께 형태론의 한 하위류를 이룬다. 형태론은 다시 통사론(統辭論)과 함께 문
-
조어업 / 釣漁業 [경제·산업/산업]
각종 조어구(釣漁具)를 사용하는 어업의 총칭. 조어구는 일반적으로 수산동물을 미끼로 유인하여 조침(釣針)에 걸리게 하는 어구라고 할 수 있다. 조어업은 일본조어업(一本釣漁業)과 연승어업(延繩漁業)으로 나누어진다. 일본조어업에 사용되는 조구류(釣具類)는 조어구를 조작하여
-
조엄 / 趙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9∼1777). 경상도관찰사·대사헌·부제학·승지·대사간·한성부우윤, 공조·이조의 판서 등을 지냈다. 문장에 능하고 경서와 사기에 밝았다. 민생문제에 관심을 가져서 1763년 통신정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고구마의 종자를 가져와 보관·재배
-
조연창 / 趙然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0∼?). 민화의 아들이다. 1835년(헌종 1) 증광 별시 문과 병과 급제 후 대사헌·공조판서·의정부좌참찬·판의금부사·예문관제학 등을 지냈다. 1866년 상호도감에서 익종대왕옥책문의 금보전문서사관을 맡았다.
-
조영수호통상조약 / 朝英修好通商條約 [정치·법제/외교]
1883년 조선과 영국이 체결한 조약. 조선과 영국정부는 1883년 11월 26일에 새로운 조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조영 양국 정부가 1884년 5월 1일(음력 4월 7일)조선에서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정식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
조영순 / 趙榮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5∼1775). 희석 증손, 할아버지는 태채, 아버지는 겸빈, 어머니는 민계수의 딸이다. 대사성·이조참판·병초참판·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부수찬 때 왕세자에게 영의정 이천보를 매도하는 글을 올렸다가 유배, 사직 때 소론의 영수 최석항의 신원을
-
조영진 / 趙榮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3∼1775). 1761년 도승지 때 사도세자 처형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으나 다시 대사헌으로 기용, 예조참판·경기도관찰사·오위도총부도총관·지중추부사·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
조오수호통상조약 / 朝奧修好通商條約 [정치·법제/외교]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체결된 조약. 조선과 오스트리아는 1892년 5월 29일(양력 6월 23일) 양국의 전권대신 주일 대리공사 권재형과 주일 오스트리아공사 로저 디 비게레벤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체결 장소는 일본 도쿄였다.
-
조완구 / 趙琬九 [종교·철학/유학]
1880년(고종 17)∼미상. 독립운동가. 일찍이 대종교에 입교하여 1915년 5월 대종교를 포교할 목적으로 북간도 용정 일대에 가서 수많은 주민 동포를 상대로 약 3년간 선교활동에 종사하였다.
-
조용석 / 曺龍錫 [종교·철학/유학]
1705년(숙종 31)∼1774년(영조 50).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조한혁이다. 14세부터 정재 정만양·지수 정규양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경전과 사서를 익히며 과거 공부를 시작하였다. 과거에 대한 뜻을 접고 밀암 이재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에 뜻을 두
-
조용석 / 趙庸錫 [역사/근대사]
1861-192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경술국치 후 만주 통화현으로 건너가 1918년 항일민족교육기관인 배달학교를 설립했다. 통화현 만세시위 주도, 한족회 간부로 활약했다. 만주대학살 때 손자 조용주와 함께 학살당했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조용자 / 趙勇子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봉선화」·「부여회상곡」·「영봉찬무」 등에 출연한 무용가. 1924년 부산에서 출생했고, 서울로 이사한 후 배화고등여학교에서 수학하다 성악가가 되기를 꿈꿔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음악학교에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성악은 물론 무용에도 흥미를 느껴
-
조용하 / 趙鏞夏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외교관(1882∼1937). 조소앙(趙素昻)의 형으로, 대한제국 주독·주프랑스 공사관 참사관을 역임하고,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북경으로 망명해 경학사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와이에서 한국독립단·한인협회 등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
조용하임명문서 / 趙鏞夏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7월 25일. 전 시어 조용하(趙鏞夏)를 시종원 좌시어 판임관 9급에 서임하는 임명장. 시종원은 1895년(고종 32) 4월 궁내부 관제를 개정할 때 시종과 시강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1900년에 좌시어 8명, 우시어 12명으
-
조용화 / 趙容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3∼?). 재호 증손, 할아버지는 관진, 아버지는 운익, 어머니는 이득일의 딸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 문과 병과급제 후 홍문관에 등용되어 이조참판·비변사제조·형조판서·대사헌·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 경사제가의
-
조우신 / 趙又新 [종교·철학/유학]
1583∼1650(선조16∼효종1) 아버지는 상이다. 정경세·이현영의 문인이다.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합격,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정인홍·이이첨·유희분의 3적신을 참할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환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1
-
조우인 / 曺友仁 [종교·철학/유학]
1561년(명종 16)∼1625년(인조 3). 조선 중기의 문신. 계형의 증손자이다. 1588년(선조 21)에 사마시에 합격, 1605년에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1616년(광해군 8)에는 함경도경성판관을 지냈다. 1621년에는 제술관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
조운규 / 趙雲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4∼1774). 태동 증손, 할아버지는 봉빈, 아버지는 영국, 어머니는 한배하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정시문과 병과급제 후 좌참찬·교동수사·판의금부사·지성균관사·호조판서 겸 판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전라도관찰사 때 소론 윤지일당을 일
-
조운도 / 趙運道 [종교·철학/유학]
1718년(숙종 44)∼1796년(정조 20).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는 조군, 조부는 조덕린. 부친 조희당의 5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조준도와 동생 조술도·조진도·조근도가 있다. 부인은 이륜의 딸이다.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자신의 수양을 닦기 위한 공부에 전
-
조운익 / 趙雲翊 [종교·철학/유학]
1765년(영조 4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문명, 조부는 조재호이다. 부친 조관진과 모친 유성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득일의 딸이다. 1802년(순조 2) 한림소시에 참여하여, 김시근‧서유순‧홍병철 등과 함께 선발되었고, 1804년(순조 4)
-
조운흘 / 趙云仡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밀직제학, 서해도관찰사, 첨서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해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었다. 합문사인(閤門舍人)을 거쳐서 1361년형부원외랑에 올랐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남쪽으로 피난하던 왕을 호종해 1363년에
-
조웅전 / 趙雄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 필사본. 전체적 구성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조웅과 이두병의 대립, 조웅과 번왕의 대립, 조웅과 이두병의 대립순으로 전개되어 간다. 이 작품은 ‘영웅의 일생’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 비하여 특이
-
조원희 / 趙瑗熙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신편체조법』을 발간한 체육인.교육자. 생몰년 미상. 서울 출신. 우리나라 근대 체조를 학교체조로 발전시킨 체조지도자이며 이론가이다.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보병 참위(參尉)에 임관되어 휘문의숙(徽文義塾) 체육교사를 겸임하였고, 뒤에는 학감을 역임하였다.
-
조위 / 曺偉 [종교·철학/유학]
1454(단종 2)∼1503(연산군 9). 조선 전기의 문신. 조경수의 증손, 할아버지는 조심, 아버지는 조계문이다. 어머니는 유문의 딸이다. 1472년(성종 3) 생원·진사시에 합격, 147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예문관검열, 홍문관정자·저작·박사·수
-
조위경 / 趙緯經 [종교·철학/유학]
1698년(숙종 24)∼1780년(정조 4).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조언철이다. 경전을 익히며 학문에 매진하였다. 남을 대할 때에도 한결같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아서 사람들로부터 군자다운 모습을 지녔다는 칭송을 받았다. 박손경과 이상정·이광정 형제들과 도의로 교
-
조유수 / 趙裕壽 [종교·철학/유학]
1663(현종 4)∼1741(영조 17).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형, 아버지는 상변이다. 1688년 관학의 유생으로서 박세채의 신원을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94년 천거로 희릉참봉을 거쳐, 장흥고주부·연풍현감·옥천군수·회양부사를 지냈고, 이어 선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