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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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 / 鄭仁弘 [종교·철학/유학]
1535(중종 30)∼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학자·의병장·정치가. 희 증손, 할아버지는 언우, 아버지는 건. 조식의 수제자로서 최영경·오건·김우옹·곽재우 등과 함께 경상우도의 남명학파를 대표하였다. 1573년(선조 6) 학행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르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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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설화 / 鄭仁弘說話 [문학/구비문학]
16∼17세기 조선의 문신이자 의병장 정인홍(鄭仁弘)에 관한 인물설화. 정인홍 설화는 인간과 자연의 대결에서 인간이 우위를 점하려던 시대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영웅이 무훈을 완성하기 위해서 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용과의 전쟁, 악룡의 퇴치 등이었고 정인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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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회 / 鄭寅會 [종교·철학/대종교]
1893년(고종 30)∼1985년. 대종교 최고지도자 중의 한 사람. 1950년 교의회의 의결에 따라 교주계승방식을 전임교주의 권한에 의한 도통전수제에서 교의회의 공선으로 바꾸고 교주의 명칭을 도사교에서 총전교로 개정한 이후, 1955년 9월 제2대총전교에 취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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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당강씨 / 靜一堂姜氏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정일당유고』를 저술한 문인. 충청북도 제천출신. 아버지는 강재수(姜在洙)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권서응(權瑞應)의 딸이다. 윤광연(尹光演)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20세에 출가한 뒤 집이 가난하여 바느질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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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당유고 / 靜一堂遺稿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여류문인 정일당 강씨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36년에 간행한 시문집. 1책. 신연활자본. 권두에 윤제홍(尹濟弘)의 초간서문과 김창석(金昌碩)의 중간서문이 있고, 권말에 송치규(宋穉圭)·윤수경(尹守慶)의 초간발문과 김석곤(金晳坤)의 중간발문이 있다. 시 3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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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 鄭日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59∼?). 1887년(고종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부수찬·규장각직각·교리 등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고, 1891년 식년감시(式年監試)의 시관이 되었다. 1900년 강원도관찰사에 제수되었지만 실정으로 말미암아 면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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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임명문서 / 鄭日永任命文書 [종교·철학]
1907년(융희 1) 8월 26일. 종2품 가의대부 정일영을 궁내부 특진관, 칙임관 3등으로 서임하는 임명장. 궁내부대신 육군부장 훈일등 이윤용(李允用)이 봉칙하였다. 궁내부특진관은 조선 말기 궁내부의 관리로, 1895년(고종 32) 5월에 신설되었으며, 칙임관으로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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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전 / 鄭一銓 [종교·철학/유학]
1714년(숙종 40)∼1796년(정조 20).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중주, 형 정일옥이 있다. 이형상과 정중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3년(영조 29) 식년시 생원 2등 17위로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었다. 정희·정충필 등과 학문적인 교유를 나누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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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품 / 正一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1등급의 품계. 1392년 7월 문산계·무산계를 제정할 때 문산계의 정1품 상계는 특진보국숭록대부, 하계는 보국숭록대부로 정하였다. 그런데 ≪경국대전≫에는 특진보국숭록대부는 대광보국숭록대부로 개칭되어 수록되었다. 1443년(세종 25)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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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헌시집 / 貞一軒詩集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여류문인 정일헌 남씨의 시 57수와 제문 1편을 수록하여 1923년에 간행한 시집. 1권 1책. 1923년 그의 양자 성태영(成台永)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권두에 이건창(李建昌)의 서문과 권말에 이건승(李建昇)의 발문이 있다. 저자의 시는 많았다고 하나 동학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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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 正字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홍문관·승문원·교서관의 정9품 관직. 정원은 2인. 승문원의 정자는 1411년(태종 11) 문서응봉사를 승문원으로 개편하면서 2인을 둔 뒤 1466년(세조 12) ≪경국대전≫에 그대로 직제화하였다. 주로 외교문서의 검토·교정을 담당하였다.한편 교서관의 정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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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 鄭碏 [종교·철학/유학]
1533(중종 28)∼1603(선조36).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순붕이다. 아버지가 이기·윤원형 등에게 아부하여 세인으로부터 원흉의 한 사람으로 지목,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윤임·유관·유인숙 등을 죽인 뒤 유관의 재산을 몰수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 의술에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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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 呈才 [예술·체육/무용]
고려와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여령이나 무동이, 지방 관아에서 기녀들이 공연했던 악가무의 종합예술. 『석보상절(釋譜詳節)』(1447)에 “정재는 재주를 남에게 보이는 것이니, 놀이하여 남에게 보이는 것을 정재라 한다”라는 용례가 있다. 두 번째 뜻은 헌기(獻技), 즉 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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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로 / 丁載老 [종교·철학/유학]
1731∼1802(영조 7∼영조 7). 고조는 시옥, 증조는 도명, 조부는 희신, 부친은 지익이다. 어머니는 홍덕상의 딸이다. 생부는 지겸, 생모는 김홍렬의 딸이다. 1731년(영조 7) 4월 1일에 태어났고, 지익의 뒤를 이었다. 1756년(영조 32) 진사시에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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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무도홀기 / 呈才舞圖忽記 [예술·체육/무용]
조선후기 고종 연간에 궁중 정재의 절차를 기록한 예술서.무보. 조선시대 궁중 연향 때 공연할 정재를 위해 만든 무보로서, 정재별로 배열도와 춤 진행 절차, 반주음악과 창사(唱詞)가 수록되었다. 공간적으로 무원의 배치를 알려주는 배열도와, 시간적으로 춤의 진행을 알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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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원 / 丁載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0∼1792). 어려서부터 문학에만 힘쓰고 재물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일찍이 광주의 세과에 부방하였는데, 당시 광주유수 이종성으로부터 글의 뛰어남과 뜻의 원대함을 인정받았다. 제술이 영조에게 인정을 받고 곧바로 이조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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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집 / 定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 박태보의 시문집. 본집 9권, 별집 5권, 후집 6권, 합 20권 7책. 목판본. 본집 권1에 장귀편 등 27수의 오언고시, 한식조화자문 등 12수의 칠언고시, 유수락산요 등 28수의 오언율시, 칠언율시 등 96수, 권2에 오언절구 23수, 칠언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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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화 / 鄭在和 [종교·철학/유학]
1754년(영조 30)~1790년(정조 14). 조선 후기 부마. 정철의 후손, 증조는 정구하, 조부는 정유, 부친은 정인환이다. 부인은 청선군주이다. 1766년(영조 42년) 청선군주와 결혼하면서 흥은부위의 칭호를 받았으나, 사헌부지평 홍상성이 정재화가 사람들을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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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 正田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의 농경지 가운데 휴한 혹은 진황시키지 않고 해마다 경작하는 상경전을 지칭하는 법제적 용어. 1444년(세종 26)의 공법수세제(貢法收稅制)의 제정에 즈음한 때부터였다. 정전이야말로 국가의 전세수입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 대상이었기에 구체적인 규제가 필요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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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서원 / 靖節書院 [교육/교육]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었던 서원. 1684년(숙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유(宋愉)·박팽년(朴彭年)·송갑조(宋甲祚)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1701년(숙종 27)에 김경여(金慶餘)와 송상민(宋尙敏), 1822년(순조 22)에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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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증부신구잡가 / 訂正增補新舊雜歌 [문학/고전시가]
한인석이 유흥의 장 및 일반에 유행하던 노랫말을 수록하여 1914년에 간행한 가집. 목록에서는 제일회에 「추풍감별곡」을 싣고, 제이회에서는 「자운가」, 제삼회에서는 「춘면곡」에 이어 「진정부」·「청루원별곡」 등의 순으로 싣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이러한 제일회, 제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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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 / 鄭梯 [종교·철학/유학]
1689년(숙종 15)∼1765년(영조 41).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사제이다. 정만양과 정규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향시에는 여러 차례 합격하였으나 대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오직 학문 정진에 전념하였다. 학문적으로 교유한 인물로 정중기·정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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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두 / 鄭齊斗 [종교·철학]
1649-1736.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당시 이단시하던 양명학을 고집하여 조선 양명학의 태두가 되었다. 그는 심즉리설에 입각하여 주자학의 성즉리설을 비판했다. 저서로는 <하곡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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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 正祖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제22대 왕(1752∼1800). 재위 1777∼1800년. 1759년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요절한 효장세자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6년 즉위하자 곧 규장각을 설치하여 이로써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정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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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법 / 定租法 [경제·산업/경제]
소작 계약 때 미리 일정한 수량을 정하고 추수 후 분배하는 소작관행의 한 형태. ‘도조(賭租)’, ‘도지(賭只)’, ‘지정(支定)’이라고도 한다.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후기부터 나타났으며, 특히 궁장토(宮庄土), 역둔토(驛屯土), 묘위전(墓位田), 사전(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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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사 / 正朝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원단에 명나라나 청나라에 보내던 사절 또는 그 사신. 동지사·성절사와 더불어 삼절사의 하나이다. 이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보내던 임시사절이 아니라 정례사행이었다. 이 정례사행은 원래 별도로 엄격히 지켜지다가 1645년(인조 23)부터 피차의 편의를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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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 正祖實錄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 1776년 3월부터 1800년 6월까지 24년 4개월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56권 56책. 정식 이름은 ‘정종대왕실록’이다. 그러나 1899년 정종의 묘호를 정조로 추존했기 때문에 그 뒤부터 추존한 묘호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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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존겸 / 鄭存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94). 1750년(영조 26) 생원시에 합격, 다음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시파로서 우의정에 발탁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781년《영조실록》과 《경종수정실록》 편찬의 실록청총재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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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존중 / 鄭存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1∼1798).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음사로서 참봉이 되었다가 누천하여 1780년(정조 4) 광주목사로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중용되었다. 1791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개성부유수를 거쳐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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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 鄭悰 [종교·철학/유학]
?∼1461(세조 7).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충경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종의 딸 경혜공주와 혼인한 뒤 영양위에 봉하여지고, 단종 초기에 형조판서가 되어 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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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대왕가상시호망단 / 定宗大王加上諡號望單 [정치·법제]
조선의 제2대 국왕인 정종에게 가상할 시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1년(숙종 7) 9월 18일 빈청에서 올린 시호 망단. 이 망단에서 의정한 가상 시호는 '의문장무(懿文莊武)'네 글자이며, 이를 종전의 시호인 '온인순효(溫仁順孝)'에 덧얹어서 단망의 형태로 올리고 숙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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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대왕묘호망단 / 定宗大王廟號望單 [정치·법제]
정종에 대한 묘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1년(숙종 7) 9월 18일 빈청에서 올린 묘호 망단. 이 망단은 '정종(定宗)'이라는 한 가지 망만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식이다. 망단의 말미에는 승정원에서 '계(啓)'자 도장을 찍고 '강희 20년(1681) 9월 18일 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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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로 / 鄭宗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1738∼1816). 이상정의 문하에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주리론적인 입장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경학과 문장이 융성하여 영남 제1의 인물.” 이라는 채제공의 평으로 의금부도사에 특진되었고, 사포서별제·강령현감·함창현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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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명 / 鄭宗溟 [종교·철학/유학]
1565(명종 20)∼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위 증손, 할아버지는 유침, 아버지는 철이다. 어머니는 유강정의 딸이다. 형조참의 홍인걸의 사위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저작으로 『송강유고』의 부록에 실려 있는『백씨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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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명 / 鄭鍾鳴 [정치·법제/정치]
1895년(고종 32)∼미상. 여류 독립운동가·간호원. 전라남도 목포 출신. 1922년 4월 1일 동지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서울에서 조직, 1925년 5월에 박원희·김필애 등 20여명과 조선여성동우회를 서울에서 조직 운영하기 시작, 이들이 곧 뒷날 근우회를 조직하고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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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호 / 鄭宗鎬 [종교·철학/유학]
1875년(고종 12)∼1954년. 일제 강점기 유학자. 부친 정재설과 모친 재령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노상익의 딸이다. 중부 정재기, 결혼 후에는 노상익·노상직에게 학문을 배웠다. 파리장서 사건 때 본문을 칠곡군에 있는 장석영으로부터 받아서 대구의 윤상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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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 靜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의 송산현(松山縣)이었는데, 1033년(덕종 2)에 토성을 쌓고 정주진(靜州鎭)이라 하였다. 이곳에 주민 1,000호(戶)를 옮겨 살게 하였으며, 정주방어사를 두었다. 문종 때 정주를 포함한 5개성이 성은 크고 백성이 작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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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 貞州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개풍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1018년(현종 9) 개성현의 속현이 되었고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직할지가 되었으며 경기(京畿)지역이라고 칭하였다. 1108년(예종 3) 지승천부사(知昇天府事)로 바꾸고 1310년(충선왕 2) 지해풍군사(知海豊郡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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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 井州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정읍 지역에 있었던 지명. 처음엔 백제의 정촌현(井村縣)있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에 정읍이라 칭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고부군(古阜郡)의 속현이었으며,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고려시대의 이 지방은 전공주도(全公州道)의 관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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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군 / 定州郡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서남부 해안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는 박천군·태천군, 서쪽으로는 선천군, 남쪽으로는 황해, 북쪽으로는 구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4°57′∼ 125°27′, 북위 39°23′∼ 39°51′에 위치하며, 면적 827.71㎢, 인구 16만 4261명(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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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승전가 / 定州勝戰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두루마리 한글본.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소재로 읊은 전쟁가사이며, 작품 시기도 그때로 추정된다. 전체 122구이며, 4·4조의 정격 양반가사이다. 작품의 출처는 서울 지방이며, 작자는 내용으로 보아 16세 남짓한 한양의 양반집 출신으로 당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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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시 / 定州市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남부 해안에 있는 시. 북부는 구성시와 태천군, 동부는 운전군, 서부는 곽산군과 잇닿아 있고, 남부는 황해에 면하여 있다. 인구는 20만5748명(1996년 추정)이며, 면적은 487㎢로서 도 면적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1954년 10월과 1958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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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평야 / 定州平野 [지리/자연지리]
평안북도 중주군과 곽산군(옛 정주군) 일대에 펼쳐진 평야. 이 일대는 적유령산맥의 말단부로 점점 낮아져서 200∼300m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그 사이를 달천강(㺚川江)ㆍ사송강(泗松江)ㆍ동래강(東萊江) 등이 남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간다. 전작으로 보리ㆍ밀ㆍ조ㆍ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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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향교 / 定州鄕校 [교육/교육]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성내동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21년(광해군 13)에 소실되어 1640년(인조 18) 장의(掌議) 백이원(白彝元)이 유림들과 함께 초가를 세워 공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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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 / 鄭儁 [종교·철학/유학]
1573년(선조 6) ~1644년(인조 22) 조선 중기 문신. 정몽주 8세손, 부친은 정응선이다. 희릉참봉과 건원릉참봉을 거쳐서 1623년(인조 1) 6월에 사재감직장을 지냈고, 1625년(인조 3) 7월에 예빈시주부를 지냈으며, 이후 돈령부판관‧종친부전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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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기 / 鄭重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685∼1757). 1727년(영조 3) 생원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31년 승정원주서가 되고, 이어 결성현감으로 나가 풍속을 바로잡고 《여씨향약》에 의거하여 향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사간원정언을 거쳐 1753년 사헌부지평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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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대 / 鄭重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62). 1717년 봉상시주부 겸 부정자에 임명되어 숙종에게 동서고금의 역사를 강설, 그 실력을 크게 인정받아 정자에 승진되고, 이어 박사가 되었다. 1718년 금교도찰방으로 나가 자신의 녹봉을 털어 주민들을 진휼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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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록 / 鄭重祿 [종교·철학/유학]
1678년(숙종 4)∼1732년(영조 8). 조선 후기 유생·효자. 증조는 정호례, 조부는 정시상이다. 부친 정석명과 모친 서중후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박기봉의 딸이다. 정규양에게서 학문을 배웠는데, 경서와《사기》공부를 즐겨하였고, 《사자소학》과《가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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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락 / 鄭之洛 [종교·철학/유학]
1773년(영조 49)∼1857년(철종 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내양, 생부는 정내성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8세에 글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8세의 나이로 조부를 따라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문집으로 2권의《침천재유고》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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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 鄭知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3∼?). 생원으로서 1813년(순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차례 청환직을 역임하고, 1828년에는 진전 작헌례 때 대축으로서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듬해 대사간으로 발탁되었고, 1832년 이조참의를 거쳐 다시 대사간을 지낸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