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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관재집 / 靜觀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이단상의 시문집. 본집 16권 6책, 별집 6권 2책. 목판본. 1682년(숙종 8) 이단상의 아들 이희조에 의해 편집되어 윤지선의 주선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권1∼3에 시 240여수, 권4∼6에 교서 2편, 소 27편, 권7에 계 13편, 권

  • 정괄 / 鄭佸 [종교·철학/유학]

    1435(세종 17)∼1495(연산군 1). 조선 초기의 문신. 정부 증손, 할아버지는 정흠지, 아버지는 정창손, 어머니는 정지의 딸이다. 1465년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 병조판서, 대사헌, 이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1495년(연산

  • 정광경 / 鄭廣敬 [종교·철학/유학]

    1586(선조 19)∼1644(인조 22). 조선 후기의 문신. 복겸 증손, 할아버지는 유길, 아버지는 창연, 어머니는 한세건의 딸이다. 판서 광성의 아우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그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상의원정, 사인, 응교

  • 정광묵 / 鄭光黙 [종교·철학/유학]

    1777~1825(정조1~순조25). 아버지는 형국, 어머니는 순천김씨, 부인은 풍양조씨이다. 난 지 여덟 달만에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1814년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에 보임되어 가주서기주가 되었고, 이어 전적에 배명되어 봉상시주부가

  • 정광성 / 鄭廣成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54(효종 5). 조선 중·후기의 문신. 복겸 증손, 할아버지는 유길, 아버지는 창연, 어머니는 한세건의 딸이다. 참판 광경의 형이고, 영의정 태화의 아버지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수찬, 교리, 지평, 지돈녕부사

  • 정광적 / 鄭光績 [종교·철학/유학]

    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문신. 승근 증손, 할아버지는 기문, 아버지는 희적, 어머니는 홍정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3년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무과초시의 합격자 명단 일부를 삭제한 죄로 북방의 군역에 편입되었다.

  • 정광필 / 鄭光弼 [종교·철학/유학]

    1462(세조 8)∼1538(중종 33). 조선 전기의 문신. 구령 증손, 할아버지는 사, 아버지는 난종, 어머니는 이지지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진사에 오르고, 그 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 뒤 성균관학유·의정부사록·봉상시직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좌

  • 정교 / 鄭僑 [종교·철학/유학]

    1764∼1834(영조40∼순조34). 고조는 정요, 증조는 정지종, 조는 정태건이다.정교의 아버지 정형상은 원래 정연의 현손 정태복의 아들로서, 정요봉의 아들 정태건의 후사를 이었으며, 정요봉의 아들 정지집이 그의 본생고조부가 된다. 어머니는 풍양조씨,1764년 상주

  • 정구 / 庭球 [예술·체육/체육]

    경기장 중앙에 네트를 두고 양쪽에서 라켓으로 연식 공을 치고 받아 승패를 겨루는 운동경기. 테니스에서 파생된 것으로, 테니스가 단단한 경식 공을 사용하는 데 대하여 연식정구라고도 한다.경기장의 크기는 10.97×23.77m의 장방형이며, 네트의 높이는 1.06m이다.

  • 정구 / 鄭矩 [종교·철학/유학]

    1350(충정왕 2)∼1418(태종18).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아버지는 양생이다. 1377년(우왕 3)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 전교시부령, 의정부찬성, 호조판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하였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건원릉신도비의 제액을 썼다.

  • 정구 / 鄭逑 [종교·철학/유학]

    1543(중종 38)∼1620(광해군 12).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윤증의 종손, 할아버지는 응상, 아버지는 사중, 어머니는 이환의 딸이다. 1563년에 이황, 1566년에 조식을 찾아 뵙고 스승으로 삼았다. 1563년 향시에 합격했으나 이후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

  • 정구품 / 正九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17등급의 품계.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무산계를 제정할 때 정9품 문산계만 종사랑(從仕郎)으로 정하고, 무산계는 정해지지 않았다. 무산계는 1436년(세종 18) 처음으로 진무부위(振武副尉)를 설치했다가 ≪경국대전

  • 정국공신 / 靖國功臣 [정치·법제/정치]

    1506년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1등 병충분의협책익운정국공신에 유자광·신윤무·박영문·장정·홍경주 등 5명, 2등 병충분의익운정국공신에 운수군 효성·심순경·변수·최한홍·윤형로 등 13명, 3등 병충분의정국공신에 고수겸·심

  • 정국성 / 鄭國成 [종교·철학/유학]

    1526(중종 21)∼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의병. 극공의 증손, 할아버지는 변, 아버지는 계함, 어머니는 황근의 딸이다. 1558년(명종 13) 사마시에 합격,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에서 창의하고 일어섰으

  • 정규양 / 鄭葵陽 [종교·철학/유학]

    1667(현종 8)∼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석주, 어머니는 김방렬의 딸이다. 종조부 시연과 이현일의 문하에서 형 만양과 함께 수학하였다. 경사는 물론 성리학·예학·천문·지리·역학·정치·경제·율려·과제 등에 두루 정통하였다. 형제간의 우애를 기

  • 정규창 / 丁奎昌 [종교·철학/유학]

    1872(고종 9)-1949. 아버지는 정춘섭, 어머니는 평해신씨이다.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오직 학문을 익히고 몸을 수양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용산 이만인에게 학문의 요체를 배웠으며, 간혹 과거공부를 하였지만 좋게 여기지 않았고, 한 번 서울에 시험을 치

  • 정극인 / 丁克仁 [종교·철학/유학]

    1401(태종 1)∼1481(성종 12). 조선 전기의 문신·문인. 아버지는 곤이다. 그러나『국조방목』에는 인의 아들로 되어 있다. 사간원헌납,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불우헌집』2권 1책이 전한다. 예조판서 겸 지춘추관성균관사에 추증됐으며 태인의 무성서원

  • 정극후 / 鄭克後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58(효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습명의 후손, 아버지는 삼외이다. 일찍이 장현광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는데, 장현광은 그의 비범함에 감탄, 붕우의 예로 대하였다. 또, 그는 정구의 문인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문묘사향지>, <역년통고>, <서

  • 정기상 / 鄭璣相 [종교·철학/유학]

    1825년(순조 25)~미상. 조선 말기 문신. 정온의 봉사손, 증조는 정팔복, 조부는 정식이다. 부친은 정종필, 생부는 정기필이다. 외조부는 황희임, 생외조부는 이여민이다. 동생은 정현상‧정형상‧정규상이다. 1874년(고종 11) 증광시 문과에 병과 30위로 급제하였

  • 정기선 / 鄭基善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4∼1839). 1815년 한림소시에 선발된 뒤 함경도암행어사로 발탁되어 문란한 지방행정을 바로잡았다. 1829년 경상도관찰사로, 왜인들을 방어하는 대책을 수립하고 기민들을 구제하였다. 1833년에 예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는 대사헌이 되었다.

  • 정기세 / 鄭基世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4∼1884). 원용 아들, 범조의 아버지이다. 1862년 임술민란 때 판의금부사와 형조판서로서 이정청당상이 되었다. 고종 즉위 후 병조판서·한성부좌윤·철종실록찬집당상·제학·우찬성을 역임하였고, <대전회통> 편찬에 참여하였다.

  • 정기안 / 鄭基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5∼1767). 1752년 동지사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보덕·승지를 거쳐 대사간이 되었고, 1766년 한성부우윤·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저서로《만모유고》가 있다.

  • 정기원 / 鄭期遠 [종교·철학/유학]

    1559(명종 14)∼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 한용의 증손, 할아버지는 순복, 아버지는 상신, 어머니는 이경의 딸이다.1585년(선조 1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주서, 승정원동부승지, 우부승지,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동국문

  • 정기일 / 鄭基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7∼1842). 1828년 예방승지로 익종의 대리청정을 보필하였다. 1836년(헌종 2)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학교를 정비, 유학을 진흥시키고 풍속을 교화하였다. 1838년 형조참판이 되어 내자시제조를 겸하였다. 1842년에 대사헌으로 비변사당상

  • 정기화 / 鄭琦和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천군본기」를 저술한 문인. 고려 현종 때에 십이공도(十二公徒)의 하나였던 정배걸(鄭倍傑)의 26대손으로 청은군(淸隱君) 정진로(鄭鎭魯)의 손자이고, 첨지중추 정홍진(鄭鴻晋)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주 이씨로 이기만(李淇萬)의 딸이다. 숙부 정홍관(鄭鴻觀)에게

  • 정기회 / 鄭基會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9∼?). 1864년(고종 1)에는 참찬관으로, 민본사상과 왕위의 지고함을 강조하였다. 1874년 영의정 이유원의 추천으로 정2품에 올랐다. 1889년 영조의 묘호를 개정, 1892년 세조·인목왕후의 존호를 추상할 때에 악장문 제술을 담당하였다.

  • 정길보 / 鄭吉甫 [종교·철학/유학]

    1632~? . 조선후기의 문인. 1652년(효종 3) 진사가 되고,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75년(숙종 1) 승지로서 인사와 형상 등에 환관을 간여케 하는 왕을 간하다 파직, 허적의 상소로 다시 기용되어 북한산성 축조때 도청을 지냈다. 그

  • 정난공신 / 靖難功臣 [정치·법제/정치]

    1453년 세조가 황보 인·김종서 등과 안평대군 제거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1등은 수양대군과 정인지·한확·박종우·김효성·이사철·이계전·박중손·최항·홍달손·권람·한명회 등 12명이고, 2등은 권준·신숙주·윤사균·양정·유수·유하·봉

  • 정난공신 / 定難功臣 [정치·법제/정치]

    1507년 이과의 옥사를 처리하는 데 공이 있었던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1등은 추성보사우세정난공신으로 노영손·유순·박원종 등 5명, 2등은 추성보사정난공신으로 민효증·이계남 등 5명, 3등은 추성정난공신으로 설맹손·홍숙등 12명을 책정하였다

  • 정내성 / 鄭來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4∼1835). 1785년 전라도도사에 제수되었으나 어버이가 연로하였으므로 사양 하였다. 그 뒤 다시 장악원주부·종묘서령, 병조참판·한성부좌윤 등의 벼슬을 역임 하였다.

  • 정년제 / 停年制 [사회/사회구조]

    정규직원이 일정한 연령이나 정해진 근무기간에 달하면 직장에서 자동적으로 퇴직시키는 제도. 종업원이 장기간 근속하여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거나, 일정한 기간 동안 승진하지 못하고 동일 계급에 머물 경우 자동적으로 퇴직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년퇴직 제도에는 미리 정해진

  • 정녕 / 定寧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지역의 옛 지명. 1396년(태조 5)에 정융(定戎)ㆍ영덕(寧德)ㆍ영주(靈州)ㆍ영삭(寧朔)의 4진(四鎭)을 합하여 정녕현으로 하였다. 1445년(세종 27) 군으로 승격시켰다가 1455년(세조 1)에 다시 현으로 강등시켰으며 다음해에 의주목에 예속시켰다.

  • 정당문학 / 政堂文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초기의 관직. 조선 건국 후 1392년(태조 1) 문무관제를 고칠 때 문하부(門下府)에 1인을 두었으나, 1401년(태종 1) 7월 문하부를 의정부(議政府)로 개칭할 때 의정부문학으로 개칭되었다.

  • 정대임 / 鄭大任 [종교·철학/유학]

    1553(명종 8)∼1594(선조 27). 조선 중기의 의병장. 아버지는 용, 어머니는 김응생의 딸이다. 증조부 윤식에게 수학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시 의병을 모아 당지산에서 적을 크게 무찌르고, 의병 100여명을 이끌고 의병대장 권응수의 휘하에 들어가 중총 직책을

  • 정덕대부 / 靖德大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의빈계의 종1품 상계의 위호. 조선 전기의 광덕대부(光德大夫)가 ≪속대전≫에서 정덕대부로 개칭되었다가 뒤에 동반관계가 통합되어 숭록대부(崇祿大夫)로 되었다.

  • 정도사조탑형지기 / 淨兜寺造塔形止記 [언어/언어/문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정도사에 있었던 고려시대 오층석탑의 조탑기(造塔記). 탑을 경복궁으로 옮길 때에 탑 안에서 나온 백지묵서(白紙墨書)에 쓰여 있었다. 1031년(태평 11, 현종 22)에 쓰여진 이두문으로 11세기를 대표하는 것이다. 군백성(郡百姓) 광현(

  • 정도응 / 鄭道應 [종교·철학/유학]

    1618(광해군 10)∼1667(현종 8). 조선 후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경세, 아버지는 심. 1648년(인조 26) 좌의정 이경석이 조정에 천거하였다. 교관에 임명, 다음해에 대군의 사부가 되었다. 효종이 즉위한 뒤 학행을 포상하여 자의에 임명하였으나 사직하고 향리

  • 정도전 / 鄭道傳 [종교·철학/유학]

    1337-1398. 여말선초의 유학자. 이색에게서 배웠다. 1383년 이성계의 참모가 되었고 1388년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조선건국의 기초작업을 하였다. <조선경국전>을 지어 치국의 대요와 관제 등 모든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였다. 제1차 왕자의 난때 이방원에 의해 참수

  • 정도홍 / 鄭燾洪 [역사/근대사]

    1878년(고종 15)∼미상. 조선 말기의 의병장. 전라남도 나주(羅州) 봉황면(鳳凰面) 칠전(七田)에서 태어났다. 1908년(융희 2) 고향 마을에 창의소를 설치하고,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600여 명이 참여하여 심남일 부대와

  • 정돈섭 / 丁敦燮 [종교·철학/유학]

    1870년(고종 7) 3월 17일∼1947년 6월 14일.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증조는 정의찬, 조부는 정원교이다. 부친 정대진과 모친 이개립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박기양의 딸이다. 이병호의 문하에서 수학, 곽종석에게 나아가 주돈이의 태극통서를 공부하였다

  • 정동만 / 鄭東晩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3∼1822). 1804년(순조 4) 경릉참봉이 되었고 이후 진주목사가 되었다. 1819년 혜국랑이 되었으며, 추은의 혜택으로 통정대부에 올라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돈령부도정이 되었다.

  • 정동일 / 鄭東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6∼1820). 1816년(순조 16) 과거에 급제한 뒤 사옹원직장·사간원정언·세자시강원사서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 전라도 무장현감이 되었을 때, 지방행정을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병을 얻어 그 이듬해에 죽었다.

  • 정동제일교회 / 貞洞第一敎會 [종교·철학/개신교]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1887년 아펜젤러(H.G. Appenzeller)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근대교육과 개화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서재필이 정동교회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를 조직하였으며 노병선, 이승만, 신흥우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897년 건립된

  • 정동진 / 正東津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일대의 관광지. 정동진 일대는 계속되는 난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이다. 정동진역 부근에는 기념품 판매점·모텔·횟집 등이 줄지어 들어섰고, 건물의 불법 증·개축과 용도 변경이 곳곳에서 이루어져 본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해

  • 정동파 / 貞洞派 [정치·법제/정치]

    1894년 이전 고종의 반청 자주외교정책에 부응하여 외교관이나 유학생의 신분으로 일본, 미국에서 체류하였던 경력을 바탕으로, 서울 정동에 주재하는 각국의 외교관 및 선교사들의 후원을 받아 정계에서 세력을 황장하려 했던 친미친러파. 정동파는 세 집단으로 분류된다. 정동구

  • 정동후 / 鄭東後 [종교·철학/유학]

    1659(효종 10)∼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갑손 후손, 돈 증손, 할아버지는 재흥, 아버지는 여탁, 어머니는 기수백의 딸이다. 사릉참봉·군자감봉사를 지낸 뒤 1705년(숙종 31)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사간원정언·사헌부장령·제주목사·부호군 등

  • 정랑 / 正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육조의 정5품 관직. 정원은 1405년(태종 5) 1인씩 증원해 각 조 3인이 표준이었다. 그러나 병조와 형조에는 4인이었고, 후기에는 이조 2인, 호조 3인으로 조정되었다. 정랑은 고려 초기 각 부에 두었던 정5품 낭중을 1275년(충렬왕 1) 6부가 4사

  • 정략장군 / 定略將軍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무신 종4품 상계의 품계명. 1392년(태조 1) 7월선건국 직후 처음 관제를 정할 때 선절장군(宣節將軍)이라고 하였다가, 1466년(세조 12)에 정략장군이라 개칭하여 ≪경국대전≫에 성문화되었다.

  • 정렬부인 / 貞烈夫人 [역사/조선시대사]

    전근대사회에서 정조와 지조를 굳게 지킨 부녀자에게 내려지던 칭호. 국가에서 특이한 행실을 가진 부인에게 시호로 내린 일도 있다. 충효열(忠孝烈)은 유학을 숭상하는 동양의 근본사상이다. 고려 때까지는 여자의 정조와 절개가 그렇게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시

  • 정로 / 鄭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순절신(1751∼1811). 홍경래의 난때 적에 의하여 군아가 함락되자 난군에 합세하기를 거부하다가 피살되었다. 이때의 순절로 난이 평정된 뒤 집의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이조참판·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에 가증되었다. 가산의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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