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55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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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아문 / 量地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1898년 탁지부 내에 설치되었다. 1901년 전국적인 흉년으로 양전사업이 중단되었고 양지아문은 1902년 지계아문에 통합되었다. 관원으로 총재 3인, 부총재관 2인, 기사원 3인, 서기 6인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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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청 / 糧餉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훈련도감 소속의 재정 관서. 1593년(선조 26) 훈련도감의 발족과 함께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에서 소용되는 의복·무기·비품 등의 물품을 조달하고, 급료 등의 재정을 관리, 운영하였다. 관제로는 도제조 1원, 제조 3인, 낭청(종사관) 1인의 관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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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고 / 養賢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물품 공급을 담당한 기관. 1392년(태조 1) 양현고에 2인의 판관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가 태종 때에 판관제도를 폐지하고 사·승·녹사 각 1인씩을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에 따르면 대폭 줄여 학전 400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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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공원 / 御供院 [역사/근대사]
구한말 왕실의 토지개간, 종식, 천택, 강해 및 국왕에게 진상하는 사무 등을 관리하던 관청. 1904년 궁내부에 설치되었고, 경, 서무과장 각 1명, 위원 2명, 주사 3명 등을 두었다. 그러나 즉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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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청 / 御營廳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중앙에 설치된 오군영 중 왕을 호위하던 군영. 1623년의 인조반정으로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고 국제적으로 후금과의 관계가 위급해진 가운데 설치. 어영군은 당시 수도 방어의 책임을 맡고 있던 훈련도감과 더불어 중앙군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재정의 어려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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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사 / 語學司 [역사/근대사]
1880년 12월 번역에 관한 업무를 위해 통리기무아문 내에 설치한 관서. 개항 이후 신문화의 수용에 대비하여 여러 나라의 문자와 언어를 해석, 번역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설립 당시 어학당상에는 민치상과 이재긍이 임명되었다. 정1품 아문으로 전선사와 겸직이었다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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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 / 鹽倉 [경제·산업/경제]
세염의 보관 창고. 염분이 있는 곳을 염소라 하고, 염소로부터 거두어지는 세염을 이곳에 보관하였다. 염소의 염간은 염창을 단위로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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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창 / 榮山倉 [경제·산업/경제]
조선 전기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동에 설치되었던 조창. 나주에는 고려시대부터 조창이 설치되어 세곡을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여기에는 적재량이 500∼600석인 조선 53척으로 나주·순천·강진·광산·진도·낙안·광양·화순·남평·동복·흥양·무안·능성·영암·보성·장흥·해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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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사 / 營繕司 [역사/근대사]
1895년 왕실의 토목영선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 궁내부 내 왕실 관계의 각종 건축 및 수리 등 토목 역사를 담당하기 위해서 설치된 기관이다. 관원으로는 주임관인 장 1인, 판임관인 주사 2인을 두었다가 곧 1인을 증원하였고, 또 5인을 증원하여 모두 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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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작서 / 營作署 [정치·법제/법제·행정]
토관의 종6품직아문. 직임은 영조(營造)·유시·탄거(炭炬)·혁유·포진(鋪陳) 등 사(事)를 관장한다. 종래의 영작원(營作院)·영선사(營繕司) 등이 개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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