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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영 / 張基永 [역사/근대사]

    1903-198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석정(石正). 상해임시정부의 시베리아기관인 한인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일본 주오대학, 미국 버틀러대학, 인디애나주립대학을 졸업하였다. 1932년 워싱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임명되었

  • 장기향교 / 長鬐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에 있는 향교. 1396년(태조 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에 중건되었다. 1725년(영조 1)에 현감 황익진(黃益鎭)이 마현동

  • 장끼전 /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장끼전」은 처음에 판소리의 한마당으로 불려지다가 뒤에 소설화된 작품이다. 현재는 불리지 않으나 이유원(李裕元)의 「관극시(觀劇詩)」와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 판소리 「장끼타령」을 듣고 읊은 내용의 글이

  • 장님놀이 / [문학/구비문학]

    무당굿놀이의 하나. 경기도 양주·안성과 인천 및 동해안 각지에서 채록되었다. 재수굿 마지막 거리인 뒷전이나 별신굿에서 주무와 반주무가 대화로 진행하는 골계 놀이이다. 장구를 치는 반주무는 앉아 있고, 장님 노릇을 하는 주무가 지팡이를 짚고 등장하면서 주무의 구연으로 놀

  • 장단 / 長湍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창작경위만이 『고려사』 권71 악지 속악조에 전하고, 그 일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에 옮겨져 있다. 태조가 민간의 풍속을 순찰하고 부족한 것

  • 장단군 / 長湍郡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서북부에 위치한 군. 동쪽은 연천군, 서쪽은 개풍군, 남쪽은 파주군, 북쪽은 황해도 금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34′∼126°53′, 북위 37°49′∼38°13′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724㎢, 인구 6만 8,293명(1937년 현재)이다. 10개

  • 장단향교 / 長湍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읍내리에 있는 향교. 1127년(인종 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고려 말에 유명무실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부흥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

  • 장당경 / 藏唐京 [지리/인문지리]

    고조선시대 단군(檀君)의 도읍지.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1 고조선조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요(堯) 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칭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

  • 장대서원 / 藏待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 있었던 서원. 1669년(현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신지제(申之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2년(현종 13) 이민성(李民筬)을 추가배향하고, 1685년(숙종 11) 인근의 사우에 모셔져

  • 장대타기 / [생활/민속]

    재인(才人, 솟대장이)이 긴 장대[長竿, 솟대] 꼭대기에 올라가서 몸짓으로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는 광대놀이. 전신주 높이 가량 되는 긴 장대를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의 재인이 타고 올라가서 장대 꼭대기의 십자형 나무 위에서 몸을 뒤집고 매달리는 등 여러 가지 재주를

  • 장덕리동물화석산지 / 장덕리동물화석산지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화대군 장덕리에 있는 화석지. 북한 천연기념물 제309호. 이 산지는 1962년에 털코끼리 화석으로는 두 번째로 발견된 곳으로 주변의 지질은 제3기의 평륙통의 사암과 이를 덮는 제4기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털코끼리 화석은 제4기층 기저의 이탄층에서 발견되었다.

  • 장덕수 / 張德秀 [역사/근대사]

    1895-194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설산(雪山). 1916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1920년 4월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초대 주필이 되었다. 1934년에는 임시정부 재무행서 뉴욕 지부 책임자로 독립운동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 장덕조 / 張德祚 [문학/현대문학]

    1914-2003. 일제 강점기 소설가·언론인. 다른 이름은 춘금여사(春琴女史)이고, 필명은 일파(一波)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자인면(慈仁面)이다. 1927년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29년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로 전학하였다. 1931년 졸

  • 장덕진 / 張德震 [역사/근대사]

    미상-1924. 항일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 출신. 붕도(鵬道)의 아들이다. 1920년 8월 하순 미국의원단 49명이 내한할 때, 광제청년단장(廣濟靑年團長) 오동진(吳東振)의 명을 받고 박태열(朴泰烈) 등과 황해도일대의 일제기관을 폭파하려 하였으나, 거사계획이 사전에

  • 장도 / 獐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장도리에 있는 섬. 동경 127°28′, 북위 34°47′에 위치하며, 벌교읍 장암리에서 동남쪽으로 6.4㎞ 지점에 있다. 면적은 2.24㎢이고, 해안선 길이는 15.9㎞이다. 순천만에 있는 유인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

  • 장도 / 長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비리에 있는 섬. 동경 125°22′, 북위 34°40′에 위치한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91.2㎞, 진도에서 서북쪽으로 69.7㎞ 지점에 있다. 섬 동쪽으로 3.2㎞ 지점에 대흑산도가 있다. 면적은 1.57㎢이고, 해안선 길이는 11.0㎞이다.

  • 장도 산지습지 / 長島山地濕地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장도리에 위치한 소택지. 흑산도에 딸린 장도는 사람이 사는 대장도와 사람이 살지 않는 소장도, 쥐머리섬, 내망덕도, 외망덕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도 산지습지는 대장도에 위치해 있으며, 그 면적(0.09㎢)은 대장도 총 면적(1.54㎢)의 약

  • 장두량 / 張斗良 [역사/근대사]

    1895-1954.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부령 출생. 1919년 3·1운동 당시 청진부(淸津府) 신암동(新岩洞)·포항동(浦項洞)에서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부령군 청암면(靑岩面) 자작동(自作洞)에 거주하고 있던 그는 월산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열람하고, 또 서울 및

  • 장두언 / 張斗彦 [역사/근대사]

    1881-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 있는 국민회(國民會)의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활약하였다. 일본군에 체포되는 과정에 저항하다가 화룡현 서동포(西洞浦)에서 피살되었다. 1991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

  • 장두현 / 張斗鉉 [경제·산업/산업]

    1874-1938년. 실업인. 서울 출신. 한말에는 주로 농상공부의 관계에서 관직을 맡아오다가 국권상실 후 실업계에 투신하였다. 조선취인소(朝鮮取引所)이사를 거쳐 1920년에 조진태(趙鎭泰) 등과 함께 민족자본형성을 위하여 천일은행(한국상업은행의 전신)을 설립하였다.

  • 장두환 / 張斗煥 [역사/근대사]

    189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7년 대한광복단에 입단하여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조달하는데 힘썼다. 이종국의 밀고로 발각되어 붙잡혔고, 복역하던 중 1921년 4월 옥사하였다.

  • 장두희 / 張斗熙 [역사/근대사]

    1883-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풍산면(豊山面)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독립만세운동에 고무되어 김정익(金正翼)·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거의(擧義)할 것을 다짐하였다. 1919년 3월 2

  • 장련 / 長連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은율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시대의 장명진(長命鎭)과 연풍장(連豊莊)이 합하여 생긴 지명이다. 고려 때에 장명진은 황주에 속하였고 연풍장은 안악에 속하였는데, 1390년(공양왕 2)에 겸감무를 두었다. 1396년(태조 5)에 장명진을 없애고 연풍에 속하게 하였

  • 장련향교 / 長連鄕校 [교육/교육]

    황해도(현재의 황해남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 있는 향교. 1414년(태종 14)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東齋)·서재(西齋)·좌우 협실(夾室)·

  • 장렬왕후가상존호망단 / 莊烈王后加上尊號望單 [정치·법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양주조씨에게 존호를 가상하기 위해 1661년(효종 12) 4월 23일 빈청에서 '공신(恭慎)'이라 의정하고 국왕의 윤허를 바라며 올린 가상존호 망단. 이 망단은 '공신' 한 가지를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태이며, 그 말미에 '계(啓)'자 도장을 찍고

  • 장렬왕후시호등망단 / 莊烈王后諡號等望單 [정치·법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가 양주조씨가 승하한 뒤 시호와 휘호, 전호, 능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8년(숙종 14) 9월 빈청에서 숙종의 계하를 바라며 올린 대행왕대비시호등 망단. 시호로 '장렬(莊烈)'을, 휘호로 '정숙온혜(貞肅溫惠)'를, 전호로 '효사(孝思)'를, 능호로

  • 장렬왕후존호망단 / 莊烈王后尊號望單 [정치·법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양조조씨에게 존호를 올리기 위해 1651년(효종 2) 6월 7일 빈청에서 '자의(慈懿)'라 의정하고 국왕의 윤허를 바라며 올린 존호 망단. 이 존호 망단은 '자의' 한 가지를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태이며, 그 말미에 '계(啓)'자 도장을 찍고 '순

  • 장령 / 掌令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사헌부의 정4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조선건국 직후 태조신반관제에 의하면 사헌부에 정4품의 시사(侍史) 2인이 있었는데, 이 시사가 뒤에 장령으로 바뀌었다. 즉, 1401년(태종 1) 관제개혁 때 시사를 장령으로 고쳐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에 성문화되

  • 장례원 / 掌隷院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공사노비 문서의 관리 및 노비소송을 관장하였던 관서. 고려 말부터 여러 차례 노비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1401년(태종 1)에는 노비변정도감을 혁파하고 형조도관을 설치, 1466년(세조 12) 변정원으로 개칭하였다. 이듬 해 8만여 명의 공노비를 관장한다는

  • 장례원주본등본급홍문관선생전사전 / 掌禮院奏本謄本及弘文館先生前私電 [정치·법제]

    1898년(광무 2) 11월 경효전의 신탑을 개수할 때 이안제(移安祭) 등의 거행을 위해 장례원에서 올린 주본을 등서한 등본과 홍문관의 관원에게 전달해주기 위해서 쓴 사전 전문. 문서내용은 길일을 추택한 내용, 고유제, 이안제, 환안제 등 각종 제사의 일시를 추택한 내

  • 장로 / 長老 [종교·철학/개신교]

    개신교 교회조직의 일종. 목사를 도와 교회치리를 담당하는 평신도를 말한다. 한국개신교에서는 장로교만이 해방 전부터 이 직제를 사용, 다른 교파들은 해방이후에 이 직제를 사용하였다.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치리회원이 되어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행정을 담당할 뿐 아니라

  • 장로교 / 長老敎 [종교·철학/개신교]

    개신교 교파의 일종. 장로들에 의한 정치를 통해 가시적인 통일성을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회정치유형은 회중제도와 감독제도의 중간에 해당한다. 칼빈주의를 모체로 하는 개혁교회의 한 지파이다.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 장로회보 / 長老會報 [언론·출판/언론·방송]

    장로회 총회사무국이 1940년 1월 24일에 국한문과 일본문을 혼용하여 9단으로 편집한 주간지. 내용으로는 권두언, 설교, 논설, 종교교육, 시국물, 공문, 교계뉴스, 전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장릉배알전교 / 長陵拜謁傳敎 [정치·법제]

    1797년(정조 21) 8월 15일. 정조가 장릉에 배알하고, 원종의 국구인 능안부원군 구사맹과 서원부부인과 관련된 후손, 능수호인, 주변 백성, 명세 등을 지시한 전교. 내용은 정조가 1734년(영조 10)에 영조와 함께 장릉을 행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근의 백성에게

  • 장만 / 張晩 [종교·철학/유학]

    1566(명종 21)∼1629(인조 7). 조선 후기의 문신. 철견의 증손, 할아버지는 계문, 아버지는 기정, 어머니는 조광침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진사 합격, 1591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승문원의 벼슬을 거쳐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 장만걸 / 張萬杰 [종교·철학/유학]

    1654년(효종 5)∼1717년(숙종 43). 조선 후기 유학자. 장말손의 후손, 부친은 장윤병이다. 장신, 장진에게 가학으로 배웠으며, 자라서는 나은 이동표·나암 이유장을 사사하였다. 주로 예학에 몰두하여《가례익해》·《의례문답》·《비요집람》를 저술하였다. 문집으로《

  • 장말손 / 張末孫 [종교·철학/유학]

    1431(세종 13)∼1486(성종 17). 조선 전기의 문신. 순효의 증손, 할아버지는 경원, 아버지는 안량, 어머니는 고승안의 딸이다.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463년 승문원박사를 거쳐 한성참군·사헌부감찰·함길도평사를 역임하였다. 1467

  • 장면 / 張勉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정치가(1899∼1966). 1917년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 1919년 서울기독교청년회관 영어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36년 동성상업학교 교장이 되었다. 1946년 정계에 입문, 1955년 신익희·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1

  • 장면부통령 저격사건 / 張勉副統領狙擊事件 [정치·법제/정치]

    1956년 9월 28일 민주당 제2차 전당대회가 열리던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장면 부통령이 저격당한 사건. 장면은 왼손에 권총 1발을 맞았을 뿐 암살은 모면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범인이 28세의 제대군인 김상붕이며, 저격동기는 <민주당이 당파싸움만 하는데 실망했고,

  • 장명 / 長命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은율지역의 옛 지명. 이곳에 진이 설치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초에 장명진이 세워지고 황주에 예속시켰다. 원종 때 현을 설치하였다가 충렬왕 때 진으로 환원시켜 서북면에 예속시켰는데, 이는 원나라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1390년(공양왕 2)에 안

  • 장백산맥 / 長白山脈 [지리/자연지리]

    중국의 만주 지방 남동부, 우리 나라와의 국경 부근에 펼쳐져 있는 산맥. 압록강(鴨綠江)·두만강(豆滿江)·송화강(松花江)의 분수령을 이룬다. 요동반도(遼東半島)에서 흑룡강(黑龍江)과 송화강의 합류 지점까지 연결되고, 길이는 약 1,300㎞로 대부분의 봉우리는 높이 2,

  • 장백전 / 張伯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한글본·목판본·활자본의 2종이 있다. 이 작품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웅소설로서, 주인공의 일대기에 의한 군담계 영웅소설의 보편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장백의 아버지가 후사가 없으므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농업에 힘쓰는 것과,

  • 장백정간 / 長白正幹 [지리/자연지리]

    우리나라 지형을 동서로 크게 갈라놓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북쪽으로 함경북도의 지형을 두만강유역과 동해안유역으로 갈라놓은 산줄기의 옛 이름.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산맥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

  • 장병도 / 長柄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 있는 섬.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83명(남 43명, 여 40명)이고, 세대수는 33세대이다. 주민 대부분이 전주이씨로 1700년경 전라북도 고창에서 입도하였다고 한다. 취락은 섬 중앙에 있는 장병마을에 집중해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 장복 / 章服 [생활/의생활]

    장문(章文)이 장식된 의복. 황제 이하 왕·문무백관이 착용하였던 제복(祭服)의 한 종류이다. 황제나 왕은 대례(大禮) 제복으로 면류관(冕旒冠)에 곤복(袞服)을 입었는데, 곤복에 장식한 문양의 수(數)에 따라 품급(品級)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우리 나라에서 장복이 처음

  • 장복겸 / 張復謙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옥경헌유고』를 저술한 문인. 할아버지는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장개세(張蓋世)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장담(張膽)이다. 54세 때인 1670년(현종 11)에는 흉년이 들어 민생이 어려워지자 조정에 「구페소(救弊疏)」를 올렸다. 상소를 통해 환상(還上) 제

  • 장복서 / 掌服署 [생활/의생활]

    고려시대 임금의 옷을 상납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 목종 때 상의국이라 하여 봉어·직장의 관직을 두었고, 문종 때 봉어는 정6품 1인, 직장은 정7품 2인으로 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장복서로 고치고 봉어를 영(令)으로 고쳤으나 직장은 그대로 두었다. 1356

  • 장복추 / 張福樞 [종교·철학/유학]

    1815년(순조 15)∼1900년(광무 4). 조선 후기 유학자. 1881년(고종 18) 천거되었고 장원서별제·경상도도사 등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평생 학문만을 탐구하였다. 교유 인물로는 이진상·정삼석·김진우·곽종석·허훈 등이 있는데, 이들과는 학파를 이루어 학문적으

  • 장봉 / 掌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궁의 종8품 궁관직. 1428년(세종 10) 동궁내관의 제도에 의하면 종8품이고 정원은 1인이었다. 장장(掌藏)과 같이 직속상관인 사칙(종6품)을 돕고, 그의 지시와 감독을 받았다. 이들의 주임무는 바느질과 길쌈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그 뒤 ≪경국대전≫에

  • 장봉도 / 長峯島 [지리/자연지리]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장봉리에 있는 섬. 고려 말 몽고군사를 피하기 위하여 강화도 주민들이 피난을 와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 기준으로 인구는 989명(남 514명, 여 475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420세대이다. 취락은 중앙 저지대에 밀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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