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55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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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창 / 新興倉 [경제·산업/경제]
고려시대 개경에 있었던 경창. 설치연대 미상. 선종 때부터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1090년(선종 7)에 지진으로 인해 한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연간에 박훤의 건의에 따라 재건, 충렬왕 때까지 존속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곡물은 물론이고 포백과 은 등의 다양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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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성총관부 / 雙城摠管府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몽고가 고려의 화주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부. 화주에 치소가 있었으며, 등주·정주·장주·예주·고주·문주·의주와 선덕진·원흥진·영인진·요덕진·정변진 등을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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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서 / 雅樂署 [예술·체육/국악]
고려 말 조선 초에 궁중음악을 관장하기 위하여 예조 아래 두었던 음악기관의 하나 본래 1391년(공양왕 3) 종묘의 악가를 익히기 위하여 고려의 음악기관으로 설치되었으나, 고려가 망함으로써 1392년(태조 1) 전악서와 함께 계승되었다. 주요업무는 종묘제향악과 같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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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도감 / 樂器都監 [예술·체육/국악]
조선시대 악기와 제복 제작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임시로 세웠던 관청. 세종 이전에 이미 두번씩 설치된 바 있으며, 1424년(세종 6)에도 악기제작을 위하여 설치되었다. 이 때 제작된 악기들은 생지·화, 우, 금, 슬, 대쟁, 아쟁, 거문고, 당비파 , 향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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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조성청 / 樂器造成廳 [예술·체육/국악]
조선 후기 악기제작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청. 1682년(숙종 8) 종묘 영녕전에 쓸 방향을 만들려고 처음 설립, 1710년 전정헌가(殿庭軒架)의 편종과 편경의 제작을 위해서 다시 설치하였다. 1744년(영조 20) 창덕궁의 화재로 타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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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 / 樂師 [예술·체육/국악]
조선시대 아악서·전악서·장악원의 악공이나 악생 중에서 우두머리 구실을 하였던 원로음악인들로서 잡직을 담당하였던 벼슬아치. ≪경국대전≫이나 ≪대전통편≫을 보면, 악사 2명은 정6품의 전악 및 종6품의 부전악이라는 잡직을 가졌는데, 이러한 잡직은 체아직으로서 장악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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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학 / 樂學 [예술·체육/국악]
조선 전기 음악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기관. 1406년(태종 6)에 음악이론을 학문적으로 다루기 위해 10학의 하나로 설립된 이후 1457년(세조 3) 관습도감과 통합되어 악학도감으로 개칭될 때까지 음악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 기능은 음악에 관한 옛 문헌들을 고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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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란창 / 安瀾倉 [경제·산업/경제]
고려시대 서해도 장연현 해위포에 설치하였던 조창. 설치시기는 1066년(문종 20)경으로 추측된다. 감독관으로서 판관이 파견되고 있다. 본래 고려에는 남도에 12개소의 조창이 있어 세곡을 운송, 보관하고 있었는데, 문종 때에 이르러 지배체제가 완성되면서 서해도방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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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정서 / 掖庭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과 왕족의 명령 전달, 알현 안내, 문방구 관리 등을 관장하던 관서. 장원서와 함께 환관전용 부서였다. 궁궐내에서 왕과 왕족의 명령 전달, 알현 안내, 문방구 관리, 궐내 각 문의 출입통제 및 문단속, 궐내의 각종 행사준비 및 시설물관리, 청소·정돈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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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역이정청 / 良役釐整廳 [정치·법제/법제·행정]
1703년 양역 쇄신을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임진왜란 이후 양인 장정들은 대부분 군포를 바치는 납포군으로 바뀌게 되었다. 숙종초부터 양역변통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마침내 1703년 9월에 이를 전담하는 기구로 양역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이후 1750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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