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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정 / 醫正 [과학기술/의약학]

    고려시대 태의감의 종9품 관직. 정원은 2인. 목종 때 이미 설치되어 있었으며, 문종 때 품계와 정원이 정하여졌다. 이후 1308년(충렬왕 34)에 태의감이 사의서(司醫署)로 개칭되고 직제가 개정될 때 폐지되었으며, 그 뒤로는 설치되지 않았다.

  • 의정관 / 議政官 [역사/근대사]

    구한말 일제의 침략과정에서 임시로 설치된 관직. 일제는 군제이정소, 관제이정소, 제실제도정리국 등에 의정관을 두어 각각의 제도를 식민지 형태로 개정하였다. 군사제도와 중앙관제의 무력화, 왕실 재산의 탈취 등 군사제도와 재정, 외교분야에서 침략이 노골화되었다. 의정관제도

  • 의정대신 / 議政大臣 [역사/근대사]

    구한말 설치되었던 의정부의 수석대신. 현재의 국무총리격으로, 1896년 9월부터 1905년 2월에는 명칭이 의정이었다가 그뒤 의정대신으로 바뀌었고, 1907년 6월에 다시 총리대신으로 바뀌었다. 의정대신은 칙임관 정1품으로 각부 대신을 통솔하여 정부 각 부서의 행정전반

  • 의정부 / 議政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백관의 통솔과 서정을 총괄하던 최고의 행정기관. ≪경국대전≫이 반포된 이후 의정부의 실제 기능은 왕권의 강약과 왕의 자질 여부, 의정부대신의 자질, 의정부와 육조·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상호관계, 원상제(院相制), 비변사의 대두, 당쟁, 세도정치 등의

  • 의제고 / 義濟庫 [사회/사회구조]

    고려시대 빈민구호를 위하여 설치한 관서. 1361년(공민왕 10)에 설치되었는데, 이듬해 이와 유사한 기관으로 혜제고(惠濟庫)가 설치되어 서로 그 업무가 중복됨으로써 1391년(공양왕 3) 혜제고에 병합되었다. 관원으로는 영(종7품) 1인, 승(종8품) 1인, 녹사(

  • 의조 / 儀曹 [종교·철학/유학]

    고려 후기 예의·제향·조회·교빙·학교·과거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중앙관청. 1275년(충렬왕 1)에 원나라의 간섭으로 상서육부의 상서예부와 상서이부를 병합하여 전리사를 설치, 1298년에 이를 의조로 고치고 이부를 따로 분리하여 전조(銓曹)를 설치하였다. 의조의 관원

  • 의존명사 / 依存名詞 [언어/언어/문자]

    문장 안에서 홀로 쓰이지 못하는 비자립적 명사. 불완전명사(不完全名詞) 또는 형식명사(形式名詞)라 한다. 의존명사는 문장 안에서 단독으로 쓰일 수 없고, 반드시 관형사나 그 밖의 수식어가 선행되어야만 쓰일 수 있다. 이를테면, ㉠ “그분은 언제나 물건은 새것을 산다.”

  • 의주 / 義州 [지리/자연지리]

    지명. 고려 예종(睿宗) 때에 내원성과 포주를 귀속시켜 포주를 의주(義州)로 개칭. 공민왕(恭愍王) 15년(1366)에 의주목(義州牧)으로 삼고, 공민왕(恭愍王) 18년에는 여기에 만호부를 두었던 것이 조선왕조에 이어졌다. 의주(義州)는 ‘일국의 서문’으로 명사(明使)

  • 의주 / 宜州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천정군(泉井郡, 또는 於乙買)이었는데, 문무왕 때 신라에 예속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정천군(井泉郡)으로 바꾸어 삭주(朔州)에 예속시켰고 송산(松山)ㆍ산산(蒜山)ㆍ유거(幽居)의 3개 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

  • 의주군 / 義州郡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북서단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는 삭주군·구성군, 남쪽으로는 용천군·철산군·선천군, 북서쪽으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만주지방)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경 124°20′∼ 125°02′, 북위 39°55′∼ 40°28′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1,677

  • 의주로 / 義州路 [지리/인문지리]

    한성(漢城)에서 의주를 연결하는 조선 시대의 간선로. 조선 시대 9대 간선로 중 가장 중요한 도로의 하나로 총 연장 약 1,080리의 교통 통신로였다. 이는 역원제(驛院制)가 국지적으로 실시되던 고구려 시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실시된 고려 시대에 그 기반

  • 의주원앙새살이터 / 의주원앙새살이터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군 대화리에 있는 원앙새서식지. 북한 천연기념물 제406호. 대화리에서 압록강 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가마리비탈의 경사면 앞 강에서 원앙의 무리가 서식한다. 가마리비탈 앞에는 압록강 줄기가 갈라져 내려오면서 수구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에도 많은 원앙들이

  • 의주재비둘기서식지 / 의주재비둘기서식지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 있는 비둘기서식지. 북한 천연기념물 제95호. 의주읍에서 덕현 방향으로 약 2㎞되는 곳에 용운산이 있는데, 산의 북쪽 기슭에 비둘기번식지인 바위절벽이 있다. 비둘기가 번식하는 용운산은 높이가 80m이고 산 정상에는 관서팔경의 하나인 통군정이 있

  • 의주향교 / 義州鄕校 [교육/교육]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향교동에 있는 향교. 조선 전기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 등이 있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 의창 / 義倉 [경제·산업/경제]

    평시에 곡식을 저장해 두었다가 흉년이 들었을 때 기민을 구호하거나 궁민에게 대여해 생업에 종사하게 하던 구호 기관. 고려 태조가 흑창을 설치해 궁민에게 진대하는 법을 마련, 986년(성종 5)에 이름을 의창으로 바꾸고 지방에까지 확대하였다. 993년에는 양경 및 12

  • 의천 / 義天 [종교·철학/불교]

    1055-1101. 고려의 승려. 성은 왕씨, 이름은 후이다. 고려 문종의 아들이다. 11세 축가하여 영통사에 있었다. 15세에 우세라는 호를 얻고 승통이 되었다. 31세 송나라로 유학을 떠나 화엄사상과 천태사상을 공부하였다. 32세에 귀국하였다. 이때 3천여 권의

  • 의태법 / 擬態法 [언어/언어/문자]

    사물이나 인간의 모양이나 태도·행동 등의 양태를 묘사하여 표현하는 비유법의 하나. 의태법은 사물이나 인간의 양태에 대한 묘사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현실감을 자아낸다. 특히, 문학작품에서는 지은이의 정밀한 묘사력과 주의깊은 관찰력에 따른 훌륭한 의태법의 구사가 요구된다

  • 의태어 / 擬態語 [언어/언어/문자]

    사물이나 인간의 모양이나 태도·행동 등의 양태를 묘사한 낱말. ‘덥석, 끄떡, 갸우뚱, 후닥닥, 촐랑촐랑, 기웃기웃, 방긋방긋, 울긋불긋, 들썩들썩, 반짝반짝, 사부랑삽작, 엎치락뒤치락, 붉으락푸르락, 헐레벌떡헐레벌떡’ 등이 그 예이다. 사물에서 나는 소리나 인간이 내

  • 의학 / 醫學 [과학/의약학]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조사하여 인체의 보건, 질병이나 상해의 치료·예방 등에 관한 방법과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 조선 의학은 초기에는 고려 의학의 전통을 주로 이었으나, 새 나라의 행정이 차차로 정돈되어 감에 따라 의료제도들의 개혁, 의육 및 의과취재(醫科取才)의 혁신

  • 의항운하 / 蟻項運河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에 있는 운하. 고려 인종 때에 태안반도에 굴포를 개착할 계획을 세우고 착공하였으나 총 17리 거리에 10리를 완성, 불과 7리를 남겨두고 중지하였다. 그 뒤 조선 세조 때에도 삼남지방의 세미(稅米) 수송을 위하여 운하를 건설

  • 의화군(의친왕)정자단자 / 義和君(義親王)定字單子 [정치·법제]

    고종과 귀인장씨 사이에 태어난 고종의 제5왕자 의화군의 자를 의정하고 작성한 왕자정자 단자. 《고종실록》등에 의하면 의화군이 1892년(고종 29) 7월 20일에 관례를 행했으므로 이 단자도 이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단자의 작성 주체는 빈청 또는 승정원으로,

  • 의화군길례시명례궁거행물목 / 義和君吉禮時明禮宮擧行物目 [정치·법제]

    1893년 10월 명례궁에서 의화군 이강(李堈)의 길례를 거행할 때 소요되는 음식 등의 물품을 기록한 문서. 《고종실록》을 살펴보면 1893년 10월 29일에 이강의 가례가 거행되었다.

  • 의화단사건 / 義和團事件 [정치·법제/외교]

    19세기 말 중국 화북지역 민중이 일으킨 반제국주의운동. 의화단 사건은 협의의 의미로는 의화단운동만을 가리키나 주로 광의의 의미로 사용되어 의화단운동 및 이를 진압하기 위해 발발한 의화단운동진압전쟁을 모두 포함한 국제적인 대사건을 지칭한다.

  • 의회설립운동 / 議會設立運動 [역사/근대사]

    1898년 독립협회가 민중과 제휴하여 추진한 의회설립을 위한 일련의 운동. 1898년 3월 서재필, 윤치호 등 독립협회 지도자들간에 의회설립문제가 논의되고, 4월 3일 독립협회토론회에서 ‘의회원을 설립하는 것이 정치상에 제일 긴요함’이라는 주제로 의회의 필요성을 공식

  • 의효전재기제향수납입문 / 懿孝殿再朞祭享需納入文 [정치·법제]

    1906년 10월 30일 명주, 무명, 삼베 등을 내장사로 하여금 납입하도록 한 문서. 문서의 끝에 작은 글씨로 순명황후의 혼전인 의효전(懿孝殿)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 공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 의흥 / 義興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군위 지역의 옛 지명. 의흥(義興)은 신라 때 구산현(龜山縣) 지역이었고, 고려 때 구산현과 부계현(缶溪縣)을 병합해 의흥군이 되었다. 이후 조선 1413년(태종 13)에 의흥현(義興縣)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에 대구부 소속 의흥군(義興郡)이 되었다.

  • 의흥삼군부 / 義興三軍府 [정치·법제/국방]

    조선 초기 군령과 군정을 총괄하던 관서. 고려 말기인 1391년(공양왕 3) 종래의 오군체제를 삼군체제로 바꾸어 삼군도총제부를 두었는데, 이를 조선 초기인 1393년(태조 2) 9월에 개칭한 것이다. 이 관서가 설치되면서 태조의 친위 부대인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의

  • 의흥위 / 義興衛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초·중기에 군사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던 오위의 하나. 중위이다. 조선 건국 초부터 중앙군사조직은 여러 차례의 변화를 거쳐 1451년(문종 1)에 오사로 되는 가운데 하나가 의흥사였고, 이것이 1457년(세조 3)에 의흥위로 개편되었다. 병종별로는 처음에 갑사와

  • 의흥향교 / 義興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읍내리에 있는 향교. 조선 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이곳 유림 손돈암(孫遯巖)이 위패를 선암산(船巖山)으로 피난시켜 병화를 면하였으며, 이로써

  • 이가순 / 李家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68∼1844). 참봉으로서 1813년 증광시에 급제하여, 후에 사간원정언·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하계문집》이 있다.

  • 이가우 / 李嘉愚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3∼1852). 철보 증손, 할아버지는 학원, 아버지는 전수, 어머니는 서명민의 딸이다. 1816년(순조 16)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후에 판의금부사·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839년에는 동지정사로 청나라를 다녀왔고, 1848년에는 함경도관

  • 이가환 / 李家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42∼1801).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한 대학자로, 정약용등 천주교 신자와 학문적으로 교유하며 신자가 되었으나, 신해박해 때는 광주부윤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여 대사성·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주문모 신부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고, 천주교를 연구하

  • 이간 / 李柬 [종교·철학/유학]

    1677-1727. 조선 숙종때의 유학자. 권상하의 제자이다. 인물성동론과 미발순선설을 주장하여 동문인 한원진과 일대 논쟁을 벌였다. 이것이 유명한 호락논쟁이다. 그의 입장이 낙론이고 한원진과 그 스승인 권상하의 입장이 호론이다. 저서에 <외암집>이 있다.

  • 이감 / 李敢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 문신. 아버지는 광식, 어머니는 이세응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그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병조참판, 도승지,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 이갑조 / 李甲祚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1901∼1974.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태평동에서 살았다. 17세 때부터 노덕규(盧德奎)로부터 피리·대금·해금·장구를 배웠고,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 이강 / 李堈 [역사/근대사]

    1877-1955. 조선 말기의 왕족.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1895년 특파대사로 영국·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를 차례로 방문하였다. 적십자사총재가 되었고, 1910년 이후에는 항일독립투사들과 접촉하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여 실행에 옮기던 도

  • 이강 / 李剛 [역사/근대사]

    1878-1964. 독립운동가. 호는 오산(吾山). 평안남도 용강 출신. 1902년 미주개발회사(美洲開發會社)에서 모집한 이민에 합류, 하와이로 건너가 1년간 영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1903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안창호(安昌浩)를 만나 그의 권고로 학업을 단념

  • 이강년 / 李康埏 [정치·법제/정치]

    1858년(철종 9)∼1908년. 한말의 의병장. 1880년(고종 17) 무과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나, 갑신정변으로 낙향하였다.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관찰사 김석중과 순검 이호윤·김인담을 체포하여 효수하였다. 1908년 6월

  • 이강서원 / 伊江書院 [교육/교육]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면 이천리(梨川里)에 있었던 서원. 1639년(인조 1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서사원(徐思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 이개립 / 李介立 [종교·철학/유학]

    1546(명종 1)∼1625(인조 3). 조선 중기의 의병장. 욱의 증손, 할아버지는 선동, 아버지는 준, 어머니는 권공례의 딸이다. 김성일의 문인이다. 1591년 장현광과 함께 유일로 천거되어 참봉이 되었다. 1596년 산은현감에 임명되고, 이후 고향에 돌아와 후진양

  • 이건 / 李健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기독교인·목사(1900-?). 1931년 경성성서학원의 교수로 일제 말 폐교되기까지 인재를 양성하였고, 광복과 함께 다시 개교한 서울신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50년 8월 23일 납북되었다. <성서영해전집>, <성서인물강화> 등을 저술하였다.

  • 이건 / 李健 [종교·철학/유학]

    1614(광해군 6)∼1662(현종 3). 조선 후기의 종실. 할아버지는 선조, 아버지는 공이다. 일찍이 인성군이 반정공신 이귀의 핍박으로 역모혐의, 1628년에 대역처분을 받으면서 형 길·억 등과 더불어 역신의 자손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그 뒤 1633년(인조 1

  • 이건기 이천도호부사 해유문서 / 李建基 利川都護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45년(헌종 11) 12월 일에 후임관이 호조에 첩정을 올렸고, 동년 12월 29일에 경기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 이관, 1846년(헌종 12) 2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 이관, 동년 2월 초10일에 이조에서 이건기에게 조흘하였다. 이건기는 식

  • 이건명 / 李健命 [종교·철학/유학]

    1663(현종 4)∼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유록 증손, 할아버지는 경여, 아버지는 민서, 어머니는 원두표의 딸이다. 1686년 춘당대 문과에 을과로 급제, 서장관, 우승지, 이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시문과 소차를 모은 ≪한포재집≫

  • 이건승 / 李建昇 [문학/한문학]

    일제강점기 『해경당수초』를 저술한 유학자.양명학자. 영재(寧齋)이건창(李建昌)의 아우이며 난곡(蘭谷)이건방(李建芳)의 재종형이다. 하곡(霞谷)정제두(鄭齊斗)에서 연원하는 강화학파(江華學派)의 학맥을 이어서 양명학(陽明學)의 사상을 지녔다. 매천(梅泉)황현(黃玹)과 깊

  • 이건창 / 李建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대문장가(1852∼1898). 강위·김택영·황현 등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용모가 청수했다고 전한다. 갑오경장 이후로는 새로운 관제에 의한 각부의 협판·특진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했다. 고향인 강화에 내려가서 서울과는 발길을 끊고 지내다가 47세

  • 이건창묘 / 李建昌墓 [문학/한문학]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에 있는 이건창의 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9호. 묘는 단분(單墳)이며 특별한 장식이 없다. 전주이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1995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이건하 / 李乾夏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5∼?). 1864년(고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부교리가 되었다. 이후 형조판서·중추원부의장 등을 지냈다. 1904년 상소를 올려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확보를 저지하였다. 국권강탈 후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지위를 받았다.

  • 이건호 / 李建鎬 [역사/근대사]

    1885-195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부여군(夫餘郡) 규암면(窥岩面)이다. 전국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자 지방운동단체도 참여하였는데,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조병관(曺秉灌)·최동주(崔東柱)를 중심으로 19명이 발기하여 1907년 3월 국채보상전북

  • 이격 / 李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무신(1748∼1803). 아버지는 부만이다. 1769년(영조 45)에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도사·도총부총관 등을 역임했다. 홍국영과의 갈등으로 남양에 유배되었다. 아들 이현직이 어영대장에 오르자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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