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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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군장 / 遊軍將 [정치·법제/국방]
유군의 장. 조선시대 5위는 5부·4통으로 이어지는 정군 외에 유군 오령이 조직되어 있었다. 이들은 진중에서 대기중인 유격군으로서 정군과의 비율이 7대 3 정도였다. 유군장은 진법상 항상 위장의 왼쪽에 위치하였으며, 영장들을 호령할 때 사용하는 깃술이 달린 오색소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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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귀삼 / 柳貴三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부는 유응성, 아버지는 유광문이다. 임익하의 딸과 결혼하였다. 박세채의 문인이며 윤증과 먼 인척 관계이다. 아들은 유만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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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극량 / 劉克良 [역사/조선시대사]
?∼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연안 유씨의 시조이다. 어머니는 재상 홍섬의 노비였다. 어려서부터 고학을 해 무과에 급제하였다. 당시의 신분 제도에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는 노비 출신이었으나, 홍섬의 깊은 배려로 노비 신분을 면제받았다. 전라좌수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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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강산기 / 遊金剛山記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이형윤(李炯胤)이 지은 금강산 기행문. 그의 문집인 『창주집 滄洲集』에 수록되어 있다. 「유금강산기」는 종실(宗室) 문인인 저자가 1615년(광해군 7) 7월 27일에 서울을 출발하여 금강산을 유람하고 8월 26일에 돌아와 기록한 글이다. 이형윤은 서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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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필 / 庾黔弼 [종교·철학/유학]
?~941년(태조 24). 고려 전기의 무신. 태조를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었다. 929년 견훤이 고창군(古昌郡)을 포위·공격하자 많은 장수들이 진군을 망설였다. 그러나 유금필은 홀로 결사적인 태도로 임해 저수봉(猪首峰)으로부터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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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 有璣 [종교·철학/불교]
1707년(숙종 33)∼1785년(정조 9). 승려. 9세 때 속리산에 들어가 독서를 하다가 16세에 출가하였다. 28세에 가야산 해인사의 의눌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낙암에게서 화엄학을 배워 화엄에 통달하였다. 31세에 학승들을 가르쳤으며, 15년 동안 해인사에서 후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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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창 / 兪起昌 [종교·철학/유학]
1437(세종 19)∼1514(중종 9).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해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1496년(연산군 2) 만포진첨절제사가 되고 뒤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어 병조참지에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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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환 / 兪箕煥 [정치·법제/외교]
조선 후기의 문신(?∼?). 1881년(고종 18)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을 시찰하였다. 1898년 군부대신서리로 개화세력을 탄압하였다. 1902년 7월 조선전권대신으로 한정수호통상조약 및 부속 통상장정을 조인하였다. 그 후 김옥균(金玉均)을 암살한 홍종우(洪鍾宇)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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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환시장 / 兪箕煥諡狀 [정치·법제]
조선 말기의 문신 유기환(兪箕煥)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휘해 1910년(융희 4) 8월에 민영기(閔泳綺)가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을 올린 결과 유기환이 어떤 시호를 받았는지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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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 / 兪吉濬 [역사/근대사]
1856∼1914. 조선 후기의 개화사상가·정치가. 1881년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신사유람단에 참가,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됐다. 《한성순보》 발간의 실무를 맡으나 민씨 세력의 견제로 여의치 않자 주사직을 사임한다. 갑신정변 이후 주모자와 친분관계로 가택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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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신보 / 幼年申報 [언론·출판/언론·방송]
기독교 월간잡지. 1928년에 평양노회 주일학교협의회가 창간하여 한글로 내리 편집한 소년소녀 기독교 월간잡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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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시아드경기대회 / ─競技大會 [예술·체육/체육]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에서 2년마다 세계 대학생들 간의 우호와 친선을 도모할 목적으로 개최하는 경기대회. 대학운동경기. 이 경기대회의 원래 명칭은 ‘University Olympiad’ 또는 ‘World University Games of FISU’이다.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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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 儒達山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대반동·온금동·북교동에 걸쳐 있는 산. 유달산은 목포 시민의 공원일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명소로 알려져 있어 전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이 많다. 1982년부터 유달산 공원화가 추진되어 유달공원, 난공원, 달성공원, 조각공원 등이 있다. 서쪽 사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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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노적놀이 / 유달산露積놀이 [생활/민속]
전라남도 목포시의 유달산 노적봉(露積峰)과 연관된 민속놀이.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때 전라도 유달산 노적봉에 얽힌 전승설화를 근거로 오늘날 새롭게 구성한 놀이이다. 이 놀이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이 지금의 유달산 입구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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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담년 / 柳聃年 [종교·철학/유학]
?∼1526(중종 21). 조선 중기의 무신. 증조가 관이다. 어릴 때부터 무예에 뛰어났으며, 약관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평안도병마절도사, 공조판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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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당 / 柳戇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3∼1794). 1756년 지평으로, 박세채 문묘 배향을 반대하다가 삭직당하고 이후 1780년에 이명제에게 홍국영·송덕상의 일파라는 무고를 받아 파직되었다. 1788년에 특지로 동지중추부사에 복직되고 이어 형조참판·공조참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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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관령망친정 / 踰大關嶺望親庭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지은 한시. 칠언절구로 『대동시선(大東詩選)』 권12 등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가 출가한 뒤에 친정인 강릉에 왔다가 다시 대관령을 넘어가며 어머니를 두고가는 심정을 그린 시이다. 1·2구에는 흰머리의 어머니를 임영(臨瀛)에 두고 자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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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원 / 柳大源 [종교·철학/유학]
1834년(순조 34)∼1903년. 조선 말기의 학자. 아버지는 진대, 어머니는 홍현원의 딸이다. 기정진과 임헌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당시 위정자와 집권관료층의 무능, 부패를 비판하는 한편, 스스로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그 기틀의 초석인 유교적 전통의 수호와 확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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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춘 / 柳帶春 [종교·철학/유학]
1603(선조 36)∼1691(숙종 17).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언. 성혼·이이의 문인이다. 1642년(인조 20)에 문음으로 예빈시봉사에 임명되었으나 입사하지 않았다. 그는 경서에 정통하고 문장이 능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사후에 국가에서 정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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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장 / 柳德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묵죽화가(1675∼1756).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이정의 묵죽화풍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정·신위와 함께 조선의 3대 묵죽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유작으로〈설죽〉·〈설죽도〉·〈황강노절〉과 팔폭병풍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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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전 / 劉德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필사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간에 하권이라는 표지로 미루어 분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덕과 유현, 경태의 삼대에 걸친 가족이산과 남녀이합에 무용과 출세담이 가미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요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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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 柔道 [예술·체육/체육]
2명의 경기자가 백색과 청색의 도복을 입고 메치기·굳히기 등의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여 승패를 겨루는 맨손무술경기.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와 자타공영(自他共榮)의 철학을 실현하려는 무예(武藝)로서 신체의 유연성과 근력 양성, 승부법과 정신수양에 적합한 운동이다.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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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원 / 柳道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21∼1791). 학행으로 명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1790년(정조 14) 노인직으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주석학에 밝았다. 저서로《노애집》·《퇴계선생문집고증》·《일경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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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헌 / 柳道獻 [종교·철학/유학]
1835년(헌종 1) ∼1909년(융희 3). 조선 말기 유학자. 증조는 유종춘, 조부는 유상조, 부친은 유진한. 생부 유진익과 생모 이휘승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이휘존의 딸, 둘째 부인은 황하진의 딸이다. 산림처사로 은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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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서원 / 酉洞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에 있었던 서원. 1725년(영조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유직(柳稷)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충의사(忠義祠)·상현당(尙賢堂)·신문(神門)·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청(典祀廳)·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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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수 / 柳東秀 [예술·체육/체육]
대한제국기 우리나라 야구 발전에 밑거름이 된 체육인. 개화기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1909년 1월 동경에서 설립된 재일본 한국 유학생 단체인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의 설립에 참여하였다. 윤기현(尹冀鉉)·변희준(邊熙駿) 등과 같이 대한흥학회의 운동부를 맡아 모국을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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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 柳東說 [역사/근대사]
187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참모총장 등을 지내고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였다. 광복 후 귀국, 초대 통위부장을 지냈다. 6·25 때 납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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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 / 劉東夏 [역사/근대사]
1892-1918. 독립운동가. 이명은 강로(江露). 함경남도 덕원 출신. 1909년 10월 노령 코트지로의 자택에서 아버지와 안중근(安重根)·우덕순(禹德淳)·조도선(曺道先)·김성화·탁공규(卓公奎)와 더불어 구국혁신을 맹세하는 ‘7인동맹’을 조직하였다. 1909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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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면 / 流頭麵 [생활/식생활]
유두날 만들어 먹는 밀가루 국수. 유두절식의 하나이다. 원래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과 같이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아낸 것을 오색으로 물들여, 세개를 색실로 꿰어서 몸에 차거나 문설주에 걸어서 잡귀를 예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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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둔 / 油芚 [경제·산업]
기름 먹인 두꺼운 종이. 유둔은 종이부스러기를 물에 풀어 두꺼운 종이를 만든 다음 들기름을 먹여 만든다. 유둔은 기름을 먹여 만든 두꺼운 종이로 비를 막기 위한 천막이나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까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특히 천막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둔 한 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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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 / 柳得恭 [역사/조선시대사]
1748(영조 24)∼1807(순조 7). 조선 후기의 실학자.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되고, 시문에 뛰어난 재질이 인정되어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로 들어가 활약이 컸다. 그 뒤 제천·포천·양근 등의 군수를 거쳐 말년에는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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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일 / 兪得一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12(숙종 38). 조선 후기의 문신. 정 증손, 할아버지는 여해, 아버지는 창, 어머니는 이척연의 딸이다. 박세채의 문인이다. 1677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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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정 / 柳等井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용천 지역의 옛 지명. 용천 남쪽 15리 지점에 있었다는 문헌상의 기록만 있을 뿐 변화과정은 불확실하다. 위치상으로 해안지방의 남창(南倉) 부근이 된다. 이 지역은 용호봉(龍虎峯)에서 뻗은 두 개의 산줄기가 해안 지역으로 뻗쳐 동서로 감싸고 있었다. 해안지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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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록전 / 柳綠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활자본. 조선 인조 때의 문관 정몽세(鄭夢世)와 유록(柳綠)의 변화무쌍한 사랑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진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의 혼란상을 잘 그려내 사건전개에 유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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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릉알릉예홀기 / 裕陵謁陵禮笏記 [정치·법제]
일제에 의해 격하된 왕족, 종척 등이 1927년 4월 12일 순종과 비 순명효황후 민씨를 합장한 유릉에 가서 참배하는 의식 절차를 적은 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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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 柳林 [역사/근대사]
1894-196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인. 호는 단주(旦洲). 3·1운동 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 의정 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지냈다. 광복 후 임시정부 비상국민회의 부의장·독립노동당 당수·대한국민의회 의장 등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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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가 / 儒林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초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악장(樂章). 전체는 6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의 끝에는 “아궁챠락(我窮且樂)아 궁챠궁챠락(窮且窮且樂)아 욕호긔풍호무우(浴乎沂風乎舞雩) 영이귀(詠而歸)호리라 아궁챠락(我窮且樂)아 궁챠궁챠락(窮且窮且樂)아.” 하는 엽(葉)이 공통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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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 維摩經 [종교·철학/불교]
대승불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 구마라습과 지겸, 현장 등이 한역하였다. 그 가운데 구마라습이 번역한 <유마힐소설경>이 만히 읽혀지고 있다. 이 경은 공 사상에 바탕을 두고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대화가 중심적인 내용으로 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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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주 / 兪萬柱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그의 자세한 행적과 가족관계는 미상이며, 1882년(고종 19)에 진사과에 장원급제하여 그 해에 학행을 인정받아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다. 김학진·김윤식·남정철·심기택·윤수오 등과 폭넓은 교유를 하였다. 저서로는『백거시초』4권 4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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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견 / 柳命堅 [종교·철학/유학]
1628(인조 6)∼1707(숙종 33). 조선 후기의 문신. 격 증손, 할아버지는 시행, 아버지는 영, 어머니는 이윤신의 딸이다. 1672년(현종 1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01년 장희재 등과 인현왕후를 살해하려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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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조선국육신묘비명 / 有明朝鮮國六臣墓碑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사육신의 묘비명. 노량진의 묘역에는 육신 가운데 5기의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박, 유, 이, 성이라는 성씨로 세워져 있다. 이밖에 성삼문(成三問)의 부친인 성승(成勝)의 묘소가 있다. 하위지(河緯地)의 묘소는 영남 선산(善山)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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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천 / 柳命天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705(숙종 31). 조선 후기의 문신. 격 증손, 할아버지는 시행, 아버지는 영, 어머니는 이윤신의 딸이다. 관찰사 석에게 입양되었다. 1672년(현종 13)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75년(숙종 1) 이조좌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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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현 / 柳命賢 [종교·철학/유학]
1643(인조 21)∼1703(인조 29). 조선 후기의 문신. 격 증손, 할아버지는 시행, 아버지는 영, 어머니는 이윤신의 딸이다. 1673년(현종 14) 진사로서 정시문과에 장원하고 1675년(숙종 1)에는 부수찬이 되었고, 사인·부제학을 거쳐, 1678년 전라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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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홍 / 兪命弘 [종교·철학/유학]
1655(효종 6)∼1729(영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대의 증손, 할아버지는 희증, 아버지는 석, 어머니는 이계의 딸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간, 경기감사, 한성판윤,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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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 / 柳夢寅 [종교·철학/유학]
1559(명종 14)∼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설화 문학가. 의 증손, 할아버지는 충관, 아버지는 주부, 어머니는 민의의 딸이다. 성혼과 신호에게서 수학했으나 경박하다는 책망을 받고 쫓겨나 성혼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1589년 증광 문과에 장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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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사실 / 柳文事實 [문학/한문학]
고려 전기 문인 최유청(崔惟淸, 1095~1174)이 유종원(柳宗元)의 문장과 행적을 편찬한 책. 『유문사실(柳文事實)』은 최유청이 왕명을 받들어 당(唐)나라 문인 유종원(773~819)의 문장 및 행적을 편찬한 책으로 짐작된다. 현전하지 않아 서지와 내용을 자세히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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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성전 / 柳文星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 필사본·활자본. 이 소설의 특징은, 여자 주인공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만 있고 남자 주인공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점, 결연담(結緣譚)에서 남자의 아버지가 낭자에게 옥지환을 주는 점,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朱元璋)이 우리나라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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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통 / 柳文通 [종교·철학/유학]
1438(세종 20)∼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 광보 증손, 할아버지는 의, 아버지는 종식, 어머니는 권우의 딸이다. 가학을 이어받았다. 1460년(세조 6) 별시문과에 을과 3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제수되었으며, 예산현감, 이조정랑, 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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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주의 / 唯美主義 [문학/현대문학]
예술은 비심미적(非審美的) 기준에 의하여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예사조. 한국에서 유미주의는 김동인과 김영랑, 서정주 등에서 극히 단편적으로 드러나지만, ‘미’ 그 자체가 시나 소설의 본질적 측면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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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탄 / 流民歎 [문학/한문학]
조선 전기에 어무적(魚無迹)이 지은 한시. 『속동문선』 및 『국조시산(國朝詩刪)』에 전한다. 어무적의 출신에 대해서는 얼자(孽子), 혹은 관노(官奴) 등의 상반된 기록이 있다. 『함종어씨세보(咸從魚氏世譜)』 등의 기록에 의하면, 어무적의 어머니는 관비였고 아버지는 사족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