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웅상농청장원놀이 / 熊上農廳壯元놀이 [생활/민속]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논매기놀이. ‘농청’은 과거 농민들이 만든 자치단체이며, ‘장원’은 양반들의 장원급제에서 따온 말로, 농청장원놀이는 품평회를 열어 한해농사를 가장 잘 지은 이에게 장원을 주는 데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 놀이는 ‘망시논매기놀이
-
웅어수산 / 雄魚水山 [지리/자연지리]
평안북도 강계군 용림면, 희천군 신풍면과 평안남도 영원군 소백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2,019m. 묘향산맥을 이루는 산으로 동북쪽에 대남백산(大南白山), 서남쪽에 낭림산(狼林山, 2,014m) 등이 솟아 있다. 산릉은 동북∼서남방향으로 달리고 산세는 몹시 험준하다.
-
웅연서원 / 熊淵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 있었던 서원. 1795년(정조 19)에 인천채씨 4현을 모신 웅연세덕사로 창건되어 채귀하(蔡貴河), 채수(蔡壽, 1449∼1515), 채소권(蔡紹權, 1480∼1548), 채득소(蔡得泝)를 제향하던 서원이다. 1798년(정조 22)에 서
-
웅주 / 雄州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1108년(예종 3) 윤관(尹瓘)이 여진을 몰아낸 다음 화관령(火串嶺) 아래에 성을 쌓고 영해군웅주방어사(寧海郡雄州防禦使)를 설치하였다. 그 뒤 1109년에 성을 철거하고 그 지역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는데, 공민왕 때에 다시 여진을 쫓고
-
웅천 / 熊川 [지리/자연지리]
경상도에 있던 현(縣). 오늘날 진해시 웅천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조선 세종 때 국방상 요새지로 중시되어 첨절제사를 파견한 바 있으며, <경국대전> 병전 유방조에는 3여(旅)가 배치된 것으로 나타난다.
-
원 / 院 [정치·법제/법제·행정]
공적인 임무를 띠고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여관. 조선시대에 1,310개소의 원이 설치되었다. 원이 설치된 해당 지역에는 원우를 짓고 서울 지역은 5부, 지방은 수령이 부근의 주민 가운데 승려·향리·관리를, 대로는 5호,
-
원 / 圓 [경제·산업/경제]
1910년 이후 1953년 통화개혁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화폐 단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화폐 단위는 종래의 ‘圜(환, 원이라고도 불림)’에서 ‘圓(원)’으로 바뀌었다. 이 화폐 단위는 광복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되었지만, 남북전쟁 이후 인플레이션이 급진적으로 진행되어
-
원각경구결 / 圓覺經口訣 [언어/언어/문자]
1465년(세조 11)에 불경 『원각경』의 본문과 당나라 종밀(宗密)의 소초(疏鈔)에 한글로써 구결을 단 책. 구결의 내용은 세조가 달았다는 『원각경언해』의 구결과 같은데, 언해 곧 번역이 없음이 다르다. 간기가 없으나 을유자(乙酉字)로 인쇄된 책이므로, 『원각경』을
-
원각경언해 / 圓覺經諺解 [언론·출판/출판]
1465년(세조 11)에 ≪원각경≫에 한글로 구결을 달고 번역한 책. 간경도감에서 간행하였다. 10책. 상1이 1·2, 상2가 1·2·3, 하1·2·3이 각각 1·2로 분권되어 있다. 당나라 종밀의 ≪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鈔)≫에 세조가 토를 달고, 신미, 효령대군,
-
원강서원 / 圓岡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에 있었던 서원. 1799년(정조 2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엄흥도(嚴興道)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상절사(象節祠)·여수당(如水堂)·현모재(賢慕齋)·영수재(永樹齋)·고사(庫舍) 등이
-
원경순 / 元景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1∼1765). 만춘 증손, 할아버지는 몽정, 아버지는 명직, 어머니는 이여의 딸이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간·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외삼촌이다.
-
원경하 / 元景夏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8∼1761). 1721년(경종 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장원하였다. 이후 이조참판·판돈령부사 등을 지냈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영조 때 탕평에 공이 있었다. 저서로《창하집》이 있다.
-
원계서원 / 遠溪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계전리에 있는 서원. 1927년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송응현(宋應賢)과 그의 아들 송걸(宋傑)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지금의 건물은 1972년에 중건된 것이다. 현재 매년 2월 하정일(下丁日)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
원고유제홀기 / 園告由祭笏記 [정치·법제]
원에서 설행하는 고유제의 진행 순서를 적은 홀기. 일제강점기 이왕직에서 작성하였다.
-
원교집선 / 圓嶠集選 [언론·출판]
저자 이광사(1705-1777). 필사본 3책(결질). 필사본 3책으로 통상 10권 4책으로 전해지는 이본과 비교했을때 초권 1책(동국악부)과 '원교집선권제팔'에서 '원교집선권제십에 해당되는 원문이 빠진 영본이다. <원교집선>은 이광사의 시문을 수습한 것이다.
-
원구단 / 圓丘壇 [종교·철학/민간신앙]
조선시대 제단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를 드리는 둥근 단으로 된 제천단(祭天壇)이며 사적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
원급준경영경묘대빈묘완왕묘고유제진설도 / 園及濬慶永慶墓大嬪墓完王墓告由祭陳設圖 [정치·법제]
원, 준경묘, 영경묘, 대빈묘, 완왕묘에서 고유제를 지낼 때 제물을 제상에 배열하는 진설도. 판심에 이왕직이 찍힌 용지로 보아 기존에 있던 진설도를 이왕직에서 정리하여 재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
원납전 / 願納錢 [경제·산업/경제]
구한말 대원군이 경복궁 중수를 위해 받아들인 기부금. 1865년 대원군은 경복궁 중수 계획을 수립하고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계각층에 자진해서 돈을 기부하게 하여, 원납하는 자에게 벼슬을 주었다. 그러나 징수실적은 부진하였는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막대한 노동력을
-
원놀음 / 員─ [생활/민속]
관원들의 행차의식과 관아의 권력행사 및 재판과정 등을 모의한 놀이. 로 음력 정월 초순이나 대보름에 행하여졌다. 함경남도·강원도·경상도·충청도 등에 분포되어 있다. 놀이의 내용은 비슷하나 함경남도 북청의 관원놀음을 비롯한 안동시 풍산면 수동의 진법별신(陣法別神)놀이,
-
원두표 / 元斗杓 [종교·철학/유학]
1593(선조 26)∼1664(현종 5). 조선 후기의 문신. 송수 증손, 할아버지는 호, 아버지는 유남이다. 박지계의 문인이다. 나주목사,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강화부유수,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
원릉친제제문초 / 元陵親祭祭文草 [역사/조선시대사]
1807년(순조 7) 3월 12일, 순조가 원릉(元陵)에 친히 거둥하여 제사를 지낼 때 썼던 제문. 친제의 날짜는 ≪순조실록≫과 ≪승정원일기≫ 해당일의 기사에 근거하여 추정하였다. 이 제문은 순조가 직접 지었으며, 세 글자를 썼다가 말소하고 바꾼 것으로 보아 초고로
-
원만리 / 元萬里 [종교·철학/유학]
1624(인조 2)∼1672(현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 호 증손, 할아버지는 유남, 아버지는 두표, 어머니는 최동식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의성현령 두추에게 입양되었다.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음보로 형조좌랑이 되었다. 병조참의, 병
-
원방각사 / 圓方角社 [예술·체육/영화]
1930년 박정현이 설립한 영화제작사. 제작작품은 <아리랑, 그후 이야기>, <철인도> 등이 있다.
-
원본비지고문진보 / 原本備旨古文眞寶 [문학]
총집류(總集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1책이며, 판종은 신연활자본(新沿活字本)이다. 규격은 22.1×20.8cm이고, 반곽은 17.2×11.3cm이다. 판심제는 원본비지고문진보(原本備旨古文眞寶)이다. 지송욱(池松旭)이 편집한 것으로, 권수는 12권
-
원불교 / 圓佛敎 [종교·철학/원불교]
1916년 박중빈(朴重彬)이 창시한 종교. 원불교는 그 연원을 불법에 두고 있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이다. 그러나 외면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는 신앙 대상의 상징이 다르며, 불교와의 역사적 교섭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교단의 운영방식과 제도면에서도
-
원산공업지구 / 元山工業地區 [경제·산업/산업]
북한의 행정구역상 강원도 원산지역에 있는 공업지대. 원산시를 중심으로 문천군·천내군에 걸쳐 있으며, 북한의 8대공업지구의 하나이다. 평양∼원산간 고속도로와 평원선(평양∼고원), 원라본선(원산∼나진) 등 육상교통이 편리하고, 영흥만의 해안선을 끼고 함흥공업지구와 연결되어
-
원산금강산고속도로 / 元山金剛山高速道路 [지리/인문지리]
원산과 금강산을 잇는 고속도로. 원산지역과 금강산을 동일관광권으로 묶어 관광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개통되었다. 1987년 4월에 착공하여 1989년 6월에 완공된 2차선 시멘트도로이다. 이 고속도로는 기존 도로의 폭을 7m에서 12m로 확장하고 직선화하였다.
-
원산도 / 元山島 [지리/자연지리]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에 있는 섬. 동경 126°23′, 북위 36°23′에 위치하며, 안면도에서 남쪽으로 1.7㎞ 지점에 있다. 면적은 10.28㎢이고, 해안선 길이는 28.5㎞이다. 보령시 신흥동에서 원산도를 연결하는 해저터널(6,927m)이 2012년에
-
원산도패총 / 元山島貝塚 [역사/선사시대사]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의 원산도에 있는 삼국시대 전기(또는 원삼국시대)의 조개더미. 원산도는 보령군 관내 49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그 주위는 29㎞에 달하며 높이 50∼100m에 이르는 구릉이 섬의 동서로 뻗어 있고, 서해안은 암석해안을 이루나 나머지 지역은
-
원산시 / 元山市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남부의 영흥만에 위치한 항구도시. 마식령산맥의 지맥들이 영흥만 쪽으로 점차 낮아지면서 구릉성 산지를 이루어 시루봉[甑峰]·장덕산(長德山)·여왕봉(女王峰) 등의 낮은 산지와 적전천(赤田川)이 있으며, 남쪽은 산기천(山岐川)을 건너 안변평야(安邊平野)로 이어진다.
-
원산역 / 元山驛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원산시 석우동에 있는 경원선의 기차역. 1914년 9월 16일 경원선의 완전 개통으로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13년 8월 21일부터 1914년 5월 31일까지 여객승강인원수를 보면 원산∼고산간은 평균 102명이, 원산∼석왕사간은 평균 54명이 이용하
-
원산총파업 / 元山總罷業 [사회/사회구조]
1929년 1월 13일부터 4월 6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전개된 원산노동연합회 산하 전 노동조합원 2,200여 명의 총파업. 일제강점기 한국노동운동사상 최대규모의 파업으로,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공파업에서 비롯된다. 영국인이 경영하는 문평리 라이징 선 석유
-
원산항 / 元山港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원산시에 있는 항구. 영흥만의 남서쪽에 있다.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에 의하여 1880(고종 17)에 강제 개항되었다. 통상적인 견지에서라기보다는 러시아와 영국의 군사력에 대비하여 일본에 의하여 개항되었다. 1879년 6월 일본의 외무대신은 원산진이 무
-
원삼 / 圓衫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때 부녀자들이 입던 예복(禮服). 원삼이란 앞깃이 둥근 데에서 온 명칭으로 옆이 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릎을 덮어 내리는 긴 길이에 앞길은 짧고 뒷길은 길다. 앞여밈은 합임(合袵:섶이 없이 서로 맞대어진 형태)이고, 양 옆길이 절개되어 있다. 원삼은 조선
-
원삼국시대 / 原三國時代 [역사/선사시대사]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 원삼국시대(Proto-Three Kingdoms Period)는 초기철기시대 이후∼삼국시대 이전의 시대로서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이 시대는 서기전 100년
-
원세개 / 袁世凱, [정치·법제/외교]
1859-1916. 조선 주재 청국 총리교섭통상대신.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 원세개가 두각을 나타낸 사건은 1882년 조선에서 발생한 임오군란이었다. 1884년 일부 청군의 철수를 틈타 조선의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키자 원세개는 청군을 출동시켰다. 그리하여 일본군을 패퇴
-
원소도감 / 園所都監 [정치·법제]
왕가의 묘소 조성을 위해 임시로 마련된 관서. 왕세자나 세자빈 및 왕의 친척 등의 묘소 조성을 위해 임시로 마련되었으며, 원소 조성의 과정을 기록한 <원소도감의궤>를 편찬하였다.
-
원소호석배립장계 / 園所虎石排立狀啓 [정치·법제]
1753년(영조 29) 9월 26일. 홍봉한(洪鳳漢)이 영조에게 어느 원소에 호석을 배진하고 배립하는 일에 대하여 진행 상황을 보고한 장계. 이 문서내용은 신시경에 호석을 배진하고 배치 장소를 측량, 결정하였으며, 내일 공역을 한다는 치계이다. 승정원을 거쳐서 국왕에게
-
원손관례교서 / 元孫冠禮敎書 [정치·법제]
1761년(영조 37) 원손 성과 왕손 인, 진에게 내리는 관례 교서. 이 교서는 절첩장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승정원일기》에 왕세손의 관례 교서를 작성한 기사가 1761년(영조 37)에 실려 있다. 이 교서도 당시에 제작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문서는 작위
-
원수부 / 元帥府 [역사/근대사]
대한제국 때 설치되었던 황제 직속의 최고 군통수기관.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대한국국제를 반포해 자강의 의지와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1899년 군통수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원수부를 설치하였다. 황제가 대원수로서 모든 군기를 총괄하고 육해군을 통령하였고,
-
원숙강증시문서 / 元叔康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증규장각제학 원숙강(元叔康)에게 '정민(貞愍)'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청백자수왈정 재국봉간왈민'이라 적어 정민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
원숙강특증문서 / 元叔康特贈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5일. 교리를 지낸 고 원숙강(元叔康)을 정2품 자헌대부 규장각제학에 특증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4일 전의 문서이다.《순종실록》의 기사에는 원숙강을 정2품 규장각제학에 추증하라는 순종의 명이 있다.
-
원순모음화 / 圓脣母音化 [언어/언어/문자]
양순음(兩脣音) ‘ㅂ, ㅃ, ㅍ, ㅁ’ 다음에서 비원순모음(非圓脣母音) ‘○(·)’가 원순모음 ‘ㅜ(ㅗ)’로 바뀐 음운현상. 중세국어의 ‘믈[水], 블[火], 플[草], [角]’ 등이 근대국어, 특히 17세기 말엽 이후로 ‘물, 불, 풀, (뿔)’ 등으로 원순음화를
-
원시 / 院試 [정치·법제/법제·행정]
한성부와 경기에 거주하는 자를 대상으로 한 무과 초시. 훈련원이 주관하였다. 본래 원시는 병조와 훈련원이 공동으로 시취하였으나 세종 9년(1427)부터 문과의 관시의 예에 따라 훈련원이 단독으로 시취하게 되었다. 선발인원은 태종 2년에 50원(경기에서는 별도로 40인
-
원양국 / 爰襄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 수록된 여러 삼한 소국 이름의 표기는 당시의 중국 상고음에 따랐을 것인데, 그 음은 대체로 우리의 한자음에 가깝다. ‘원양국’의 ‘원(爰)’은 중국 고음이 ‘ji○○n’이고
-
원옹집 / 園翁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승 시문집. 2권 1책. 목판본. 오도일에 의하여 수집, 그의 문집과 함께 오도일의 아들이 1728년(영조 4) 간행하였고, 그 뒤 1796년(정조 20) 저자의 증손 재항이 중간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 도서에 있다. 권두에 윤동수 서문과
-
원유관 / 遠遊冠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때 왕과 왕세자가 조현복인 강사포에 쓰던 관 원유관·강사포로 대를 이루는 조복이다. 제복인 면류관·구장복, 상복인 익선관·곤룡포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국왕의 예복으로 계속 준용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고종이 입고 찍은 사진도 있다. ≪세종실록≫ 예지에 관
-
원유남 / 元裕男 [종교·철학/유학]
1561(명종 16)∼1631(인조 9). 조선 중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송수, 아버지는 호, 어머니는 김광후의 딸이다.1583년(선조 16) 무과에, 1586년 무과중시에 각각 급제하였다. 창성부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
원윤 / 元胤 [예술·체육/체육]
조선전기 승마와 격구 지도교관을 역임한 장수.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7년(1425) 3월에 총제(摠制) 문효종(文孝宗)·현귀명(玄貴命)·원윤과 훈련관 제조(訓鍊觀提調)에게 명하여 군사에게 격구(擊毬)를 가르치게 하고, 이어 격구의 장(杖) 30개를 훈련관(訓鍊觀
-
원율 / 原栗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담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율지현(栗支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율원(栗原)으로 고쳐 추성군(秋成郡)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 원율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나주의 속현으로 삼았다. 공양왕 때에는 담양감무가 겸임하였고,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