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55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사직서 / 社稷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사직단과 그 토담의 청소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 1426년(세종 8) 사직서로 개칭하고 승(종7품) 1인, 녹사(종9품) 2인을 두었다. 1451년(문종 1) 실안제조(實案提調)와 제조 각각 1인씩을 설치하였다. 1466년(세조 12) 승 대신에 영
-
사창서 / 司倉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창고를 간수하고 전곡을 출납하는 일을 관장하였던 관서. 1434년(세종 16) 사창서로 개편된 것이다. 설치지역은 함흥부·평양부·영변대도호부, 경성대도호부·의주목·회령·경원·종성·온성·부령·경흥·강계 등이었다. 함흥사창서에는 감부(勘簿)·관사(管事)·섭사(攝
-
사축서 / 司畜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잡축을 기르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 고려시대 전구서를 계승, 조선 건국 후 예빈시에 합쳐져 분예빈시(分禮賓寺)라 하다가, 1406년(태종 6) 분예빈시와 사련소(司臠所)를 합속, 사축소(司畜所)라 칭하고 별좌 3인, 별감 6인을 두었다. 146
-
사평순위부 / 司平巡衛府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충렬왕 때 방도금란을 담당하던 관서. 순군만호부가 1369년(공민왕 18) 6월에 사평순위부로 고쳐졌다. 관직으로 제조 1인, 판사 3인, 참상관 4인, 순위관 6인, 평사관 5인을 설치하였다. 고려는 이 해 5월 북원의 연호인 지정을 혁파하고, 동년 6월에 또
-
사포서 / 司圃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실 소유의 원포와 채소재배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조선 궁궐의 밭과 채소경영을 관장. 관원으로는 제조 1인, 사포 1인, 별제 2인, 별검 2인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뒤에 사포와 별검은 없애고 별제도 1인을 감하였다. 1704년(숙종 30)
-
사헌부 / 司憲府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말기 및 조선시대 언론 활동, 풍속 교정,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 등을 관장하던 관청. 공민왕 때 사헌부로 개칭되었다. 조선은 고려 말의 사헌부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법제화된 직무를 살펴보면, 정치의 시비에 대한 언론 활동, 백관에 대한
-
산릉도감 / 山陵都監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침을 조성을 관장하였던 임시 관서. 1419년(세종 1) 정종의 국상 때부터 산릉도감으로 호칭. 산릉도감은 왕이나 왕비의 사망 직후 조직되어 장례가 끝나고 능침과 그 부대시설이 완성될 때까지 약 5∼6개월간 존속하였다. 여기서는 산릉 일대의 토
-
산실청 / 産室廳 [과학기술/의약학]
조선시대 왕자나 왕손들이 태어날 때 궁중 내에 설치하였던 임시 관서. 1603년(선조 36) 3월 중전산실청(中殿産室廳)을 설치하고 의관 3원을 입직시켰다. 뒤에 산실청은 호산청(護産廳)으로 명칭이 개칭된 것으로 여겨진다. 1688년(숙종 14) 12월 왕자가 탄생함
-
산정도감 / 刪定都監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문종 때 율령 책정을 목적으로 설치된 관서. 소속 관원으로는 갑과권무(甲科權務)의 판관(判官) 4인, 이속(吏屬)으로서 기사(記事) 6인, 기관(記官) 1인, 산사(算士) 1인을 두었다. 1391년(공양왕 3) 혁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
산택사 / 山澤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산림·교량·땔감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한 공조 소속의 관서.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어 산림·소택(늪이나 못)·나루터·교량·궁궐의 정원·식목·목탄·목재·석재·선박·차량·필묵·수철·칠기 등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정치·법제(355)
관청(5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