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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조통상수호사은표수미 / 襄助通商修好謝恩表首尾 [정치·법제]

    조선이 1882년 미국과 체결한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청이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고종이 청 황제에게 사은한 표문의 수미. 표문은 제술관 홍우일(洪祐逸)이 지었다.

  • 양주 / 楊州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가사내용과 창작동기는 전하지 않으며, 단지 노래의 소용과 불린 장소만이 『고려사』 권71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전하고, 같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 양주는 고려시대의 한양부(漢陽府

  • 양주 / 梁州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옛 지명. 신라 때삽량(歃良)이었는데, 665년(문무왕 5) 상주(上州)와 하주(下州)를 합쳐 삽량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지명을 한자명으로 고칠 때 양주(良州)가 되었고 헌양(巚陽)을 속현으로 하였다. 940년

  • 양주동 / 梁柱東 [문학]

    1903-1977 국문학자.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되었다. 카프문학운동에 맞서 국민문학운동을 전개, 신라 향가를 연구 국어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45년 동국대 교수,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 1958년 연세대

  • 양주백수현가옥 / 楊州白壽鉉家屋 [생활/주생활]

    경기도 양주군 남면 매곡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28호. 명성황후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피난할 집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안채의 일곽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원래 사랑채와 별당채가 더 있었다고 하며 안채, 행랑채 밖에 사랑채의 터전이 남아

  • 양주봉전 /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 필사본·활자본. 양주봉과 장소저는 어려서 혼약한 사이이다. 간신 왕승상의 참소로 양주봉의 가족이 흩어져 위기에 빠지자, 장소저의 부모도 세상을 떠난다. 장소저는 왕승상 부자의 핍박을 피하여 남장을 하고서 방랑하다가 장군 서운경의 제자로

  • 양주삼 / 梁柱三 [종교·철학/개신교]

    1879-미상. 목사·사회사업가. 평안남도 용강 출신. 20세에 기독교에 입교하고 상경, 양잠전습소(養蠶專習所)에 다니던 중 미국인 선교사의 주선으로 외국유학길에 올랐다.1901년 상해(上海) 중시학원(中西學院)에 입학하여 감리교세례를 받았으며, 1905년 이 학교를

  • 양주소놀이굿 / 楊州─ [문학/구비문학]

    경기도 양주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굿 형식의 연희(演戱).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소굿·쇠굿·소놀음굿·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경사굿의 일부로 제석거리에 이어 행해진다. 「양주소놀이굿」은 단순한 농경의례나 무속에서 벗어나 무당과 원마부·곁마부 사이의 대화와

  • 양주향교 / 楊州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향교. 1401년(태종 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6·25 때 폐허화되었던 것을 1959년에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내삼문(內三門)·

  • 양준명 / 梁濬明 [역사/근대사]

    1876-1949.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1912년 데라우치(寺內正毅)조선총독암살사건 연루 혐의로 일본경찰에 잡혀 1심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19년 2월 신성중학교(新星中學校)교사 때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로 교회목사

  • 양지 / 陽智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용인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수주(水州)의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는데, 1399년(정종 1) 양지현으로 고쳐 감무를 두었고,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고 치소를 광주의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겼다. 이 때 죽주(竹州)의 고안(高安)·대곡(大谷)·목악(木岳)

  • 양지설 / 良知說 [종교·철학]

    양명학의 핵심 개념. 주희가 <대학>의 '격물치지'의 '지'를 '지식'의 개념으로 풀이한 것에 대해 왕양명은 '양지'의 개념으로 풀이했다. 그가 말하는 양지는 맹자의 '양지', '양능'을 기본으로 한다. 그는 이 두 개념을 일원적으로 파악하여 주체와 객체의 주재로 삼았

  • 양지아문 / 量地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1898년 탁지부 내에 설치되었다. 1901년 전국적인 흉년으로 양전사업이 중단되었고 양지아문은 1902년 지계아문에 통합되었다. 관원으로 총재 3인, 부총재관 2인, 기사원 3인, 서기 6인 등이 있었다.

  • 양지향교 / 陽智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향교. 1523년(중종 1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과 명륜당·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 양창을 / 梁昌乙 [역사/근대사]

    190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 정부의 국내주재(國內駐在) 대원(隊員)으로서 천마대(天摩隊)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위원(渭原)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을 담당하였고, 또

  • 양처제 / 梁處濟 [종교·철학/유학]

    1643년(인조 21) 5월 14일∼1716년(숙종 42) 12월 5일.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부는 양희, 조부는 양홍주, 아버지는 양원이다. 처부는 장선연이다. 박세채와 윤증을 사사하여 학문의 요지와 비결을 얻었다. 동몽교관으로 있으면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

  • 양천 / 陽川 [지리/인문지리]

    서울특별시 강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공암(孔巖)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수주(樹州)에 속하였고, 1310년(충선왕 2) 양천현이 되어 현령을 두었다. 조선시대

  • 양천서원 / 良川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내량리에 있는 서원. 1786년(정조 10)에 홍언박(洪彦博, 1309∼1363)과 홍위(洪瑋, 1559∼1624)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798년(정조 22)에 홍관(洪灌, ?∼1126)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 양천주 / 養天主 [종교·철학/천도교]

    사람의 몸에 한울님을 기른다는 뜻으로, 동학의 근본사상 가운데 하나. 사람의 몸에 이미 모시고 있는 바 그 한울님을 항시 끊임없이 힘써 길러야만 된다는 최시형의 주장이다. 양천주는 동학의 사상적인 극의로서의 시천주의 자각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볼 때, 이것은 시천주사상의

  • 양촌선생문집 / 陽村先生文集 [언론·출판/출판]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권근(權近) 저, 조선사편수회 편, 영인본, 조선총독부, 1937, 40권 8책. 여말선초의 양촌(陽村) 권근의 시문집이다. 경성제국대학장본 목판본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第13》으로 영인한 책이다.

  • 양촌응제시 / 陽村應制詩 [문학/한문학]

    명나라 태조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권근(權近)에게 친제하여 하사한 ‘태조고황제어제시(太祖高皇帝御製詩)’ 3수와 권근이 명 태조의 명에 의하여 지은 응제시(應製詩) 24수를 모아 간행한 책. 1책. 목판본. 보물 제1090호. 1462년(세조 8)에 간행되었다. 13

  • 양태노래 / [문학/구비문학]

    갓양태를 결으면서 부르는 민요. 이 노래는 갓양태가 이루어지던 영·호남지방에 띄엄띄엄 분포되었지만 조선조 때부터 갓양태 겯기를 주요 부업으로 일삼아오던 제주도 부녀자들에 의하여 주로 전승된다. 삼양(三陽)·화북(禾北)을 비롯한 제주시 일대와 신촌(新村)·와흘(臥屹) 등

  • 양파담원 / 暘葩談苑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임렴(任廉)이 편찬한 시화총집(詩話叢集). 8권 8책. 필사본. 1824년(순조 24)에 편집되었다. 권두에 자서(自序)가 있다. 편자는 자서에서 자신의 고조부 방(埅)이 찬(撰)한 『수촌만록(水村漫錄)』이 너무 소략하여 제가(諸家)의 것을 보태어 만들었다

  • 양팽손 / 梁彭孫 [종교·철학/유학]

    1488(성종 19)∼1545(인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사위 증손, 할아버지는 담, 아버지는 이하, 어머니는 최혼의 딸이다. , 1516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며, 또 현량과에 발탁되었다. 교리, 정언, 용담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학포유집≫ 2

  • 양평대심리유적 / 楊平大心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대심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유물포함층 유적. 팔당댐이 완공된 후 수몰되었다. 1972년팔당댐 수몰지구 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고고학과에 의해 발굴되었다. 유적지는 남한강에 있는 표고 약 30m의 얕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19

  • 양평도 / 襄平道 [지리/인문지리]

    고구려시대의 교통로. 양평도란 남도를 가르키는 말이며, 수양제가 고구려를 쳐들어 올 때 우군(右軍)이 이 길로 진군했다. 광개토왕과 비려(碑麗)의 싸움은 태자하(太子河) 상류에서 벌어졌고 이곳은 바로 두 길의 중간지점으로 양평도에서 몇 십리 밖에 안 된다. 양평도는 비

  • 양풍운전 / 楊豊雲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 목판본·필사본·활자본. 「양풍운전」은 전반부에서는 가정소설적 성격을, 후반부에서는 영웅소설적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교첩의 간교한 마음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정문제의 여러 변수를 제시하고 있다는

  • 양한나 / 梁漢拿 [역사/근대사]

    1893-1976. 독립운동가·사회사업가. 부산의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진명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비조달의 어려움으로 부산으로 돌아가 1911년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제1회졸업생이 되었다. 마산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에서 7년간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 양한묵 / 梁漢默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2-1919). 1902년 동학에 입교하고, 손병희 등과 함께 이용구로 하여금 진보회를 결성하게 했다. 1905년 귀국하여 헌정연구회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7일 김상규의 집에서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3월 1일 오후

  • 양한위 / 梁漢緯 [역사/근대사]

    1883-1949.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0년 8월 나라를 잃게 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뜻을 둔 맹보순(孟甫淳)·양기탁(梁起鐸)·이병옥(李秉玉) 등 10여명과 수시로 회합, 협의하면서 독립운동의 기본방략을 수립하고 그 기반 조성을

  • 양향청 / 糧餉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훈련도감 소속의 재정 관서. 1593년(선조 26) 훈련도감의 발족과 함께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에서 소용되는 의복·무기·비품 등의 물품을 조달하고, 급료 등의 재정을 관리, 운영하였다. 관제로는 도제조 1원, 제조 3인, 낭청(종사관) 1인의 관원을 두었다

  • 양헌수승전비 / 梁憲洙勝戰碑 [역사/근대사]

    1873년 강화군민들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침공한 프랑스군대를 격퇴한 양헌수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강암으로 건립된 비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巡撫千摠梁公憲洙勝戰碑)’라고 음각되어 있고, 비 뒷면에는 병인양요 양헌수 장군의공적이 수

  • 양현고 / 養賢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물품 공급을 담당한 기관. 1392년(태조 1) 양현고에 2인의 판관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가 태종 때에 판관제도를 폐지하고 사·승·녹사 각 1인씩을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에 따르면 대폭 줄여 학전 400결로

  • 양현문직절기 / 楊賢門直節記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24권 24책. 국문필사본. 이 작품은 중국 현종조의 인물인 장구령·한유·이임보·안녹산·고역사·안경서·이광필·곽자의 등을 등장시켜 사건을 구성해 놓았는데, 이는 「금향정기(錦香亭記)」와 같다. 작자가 사건 전개에 역사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 양현전심록 / 兩賢傳心錄 [종교·철학/유학]

    정조의 명으로 송대의 주희와 조선 숙종 때의 송시열의 문집 속에서 심법에 관한 내용을 뽑아 엮은 책. 8권 4책. 목판본. 1774년(영조 50) 정조가 동궁이었을 때 이시원 등에게 명해 편찬하도록 하였으며, 1795년에 간행되었다. 1856년(철종 7)에는 중간본이

  • 양화나루·잠두봉유적 / 楊花나루·蠶頭峰遺跡 [종교·철학/천주교]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천주교 순교 유적. 사적 제399호. 1866년에 제1차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양화나루와 잠두봉은 천주교와 관계를 맺게된다. 이 해 로즈(Roze)가 이끄는 프랑스 극동 함대가 조선 원정을 시도한 끝에 8월 18일 양화진을 거쳐 서강

  • 양화대교 / 楊花大橋 [지리/인문지리]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연결하는 다리. 양화대교는 두 차례에 걸쳐서 건설되었는데, 구교인 제2한강교는 한강 위에 가설된 세 번째 교량이다. 이후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확장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서울의 서부지방과 인천·김포공항·인천공항 등을 연결하는

  • 양화사 / 楊花詞 [문학/고전시가]

    고려 충목왕 때 한종유(韓宗愈)가 지은 가요.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노래에 대한 내력과 한역가(漢譯歌)가 『고려사』 열전(列傳) 한종유조(韓宗愈條)에 전한다. 한종유는 어릴 때부터 풍채가 뛰어나고, 한때 이름 있는 사람들과 친교하면서 술을 마시고 놀았는데, 이들을 양

  • 양화진 / 楊花津 [지리/자연지리]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지역의 한강 북안에 있었던 나루터. 조선 시대 삼진(三鎭)의 하나였던 양화진(楊花鎭)이 위치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양천(陽川)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 시대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지였으며, 삼남 지방에서 한강을 통하여

  • 양희지 / 楊熙止 [종교·철학/유학]

    1439(세종 21)∼1504(연산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미, 아버지는 맹순, 어머니는 정시교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 부수찬, 경연관, 교리, 예조좌랑, 병조좌랑, 상의원정, 직제학, 좌부승지, 대사간, 충

  • 어 / 敔 [예술·체육/국악]

    음악을 마칠 때 연주하는, 서쪽에 위치한 타악기. 나무로 만든 호랑이를 형상화하여 받침대에 올려놓고 대나무로 된 채를 가지고 호랑이 머리를 세 번치고 호랑이 등에 있는 27개의 톱니를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긁어 소리 낸다. 악기의 소리에 연유하여 갈이라고도 한다. 호

  • 어간 / 語幹 [언어/언어/문자]

    일반적으로 단어의 굴절(屈折)에 있어서 변화하지 않는 기간부(基幹部). 굴절(어미변화)의 두 유형에는 곡용과 활용이 있다. 이에 따라 이론상으로는 곡용어간과 활용어간이 있으나 실제로 곡용어간은 어간 자체가 자립형식인 체언이나 체언상당어구(體言相當語句)이므로 그냥 체언이

  • 어강서원 / 漁江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 있었던 서원. 1820년(순조 20)에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충렬공(忠烈公) 강수남(姜壽男, 1552∼1592)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처음에는 어강사(漁江祠)로 창건하였다가 어강서원(漁江書院)으로 승원하였다. 1868년(고종

  • 어골문 / 魚骨文 [예술·체육/공예]

    토기·도자기 등의 표면에 주로 표현되는 물고기의 뼈와 같은, 즉 생선의 가시 같은 무늬. 본래는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무늬 형식인데, 그것은 마치 빗살[櫛齒] 같은 시문 도구(施文道具)로 그어서 나타낸 것이

  • 어공원 / 御供院 [역사/근대사]

    구한말 왕실의 토지개간, 종식, 천택, 강해 및 국왕에게 진상하는 사무 등을 관리하던 관청. 1904년 궁내부에 설치되었고, 경, 서무과장 각 1명, 위원 2명, 주사 3명 등을 두었다. 그러나 즉시 폐지되었다.

  • 어근 / 語根 [언어/언어/문자]

    단어형성(單語形成, word-formation) 요소의 하나로서, 더 이상 분해하면 최소의 의미를 잃게 되는 최소의미 단위. 단어에서 모든 파생접사(派生接辭)와 굴절접사(屈折接辭)를 제거한 뒤에 남는 요소를 말한다. 공시적(共時的)으로는 어간(語幹)과 같이 굴절어미(屈

  • 어기 / 語基 [언어/언어/문자]

    단어형성(單語形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 중의 하나. 실질적으로 어간(語幹)을 형성하는 근본이 된다. 단어는 일반적으로 어근(語根)을 기본으로 하여 그 앞이나 뒤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 어간이 되고 다시 거기에 어미(語尾)가 붙는다. 그런데 어근은 대체로 역사적인

  • 어달산봉수대 / 於達山烽燧臺 [경제·산업/통신]

    강원도 동해시 대진동에 있는 봉수대. 봉수는 변경 지역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변경의 다른 기지에 신속히 알리려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서로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熢)로, 낮에는 연기(燧)로 신호하였다. 이 봉수의 명칭은

  • 어두자음군 / 語頭子音群 [언어/언어/문자]

    단어의 첫머리에 있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자음. 현대국어에는 이러한 자음군이 없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창제된 뒤 이 문자로 표기된 문헌들을 보면 어두 위치에 서로 다른 둘 또는 세 초성을 나란히 쓴 예들이 발견된다. 이렇게 쓰는 법을 합용병서(合用竝書)라고 하였다. 그

  • 어둥이놀이 / [문학/구비문학]

    경기도 남부 지역 도당굿 중 뒷전에서 연희되는 굿놀이. 안성·수원·인천 등지의 세습무권에서 남자 무당인 화랭이들에 의하여 굿의 맨 마지막에 굿에 따라든 잡귀를 풀어먹이는 목적으로 연행된다. 인원은 2명으로 놀이의 주역인 어둥이를 맡는 화랭이를 뒷전꾼이라고 하고 상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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