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1,496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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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궁전고 / 內弓箭庫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궁중에서 소요되는 활과 화살을 제작, 보관하던 관서. 문종 때 관제를 정리하면서 관원으로 판관 2인을 두었고, 이속으로 기사(記事) 2인과 기관(記官) 2인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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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급사 / 內給事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전중성의 종6품 벼슬. 정원은 1인이었다. 전중성은 종정시(宗正寺)와 함께 종부시(宗簿寺)의 전신으로 종친의 보첩을 맡고 있던 관아였다. 문종 이후에 전중시(殿中寺)로 고쳤다가 1298년(충렬왕 24)에 충선이 선위를 받아 관제를 개혁할 때 종정시로 고쳤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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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노비 / 內奴婢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내수사 및 각 궁 소속의 노비. 왕실의 노비라는 뜻에서 궁노비라고도 하였다. 원래 본궁노비라 부르던 것을 1471년(성종 2)부터 내수사 노비라고 부르게 하였다. 이로써 일반적으로 내노비라 하면 내수사 노비를 가리킨다. 이는 궁중에서 쓰는 미곡·포목·잡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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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명부 / 內命婦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궁중에서 봉직하던 빈·귀인·소의·숙의 등 여관의 총칭. 외명부에 대칭되는 명칭이다. 조선 초기부터 ‘내관’ 또는 ‘여관’ 등으로 불리던 궁녀 조직이 성종 대에 와서 ≪경국대전≫에 ‘내명부’라 명시되고, 조선 말기까지 수정 없이 그대로 일컬어졌다. 기능은 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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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반종사 / 內班從事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내알사의 종9품 관직. 정원은 4인. 남반직의 하나이며, 1308년(충렬왕 34) 6월에 충선왕이 액정서(掖庭署)를 내알사로 고치고 그 기능을 강화하면서 전전승지(殿前承旨)를 내반종사로 고치고, 정원도 8인에서 4인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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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병조 / 內兵曹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각 궁궐내에 설치하였던 병조의 지부. 궁궐내의 시위·의장 등 군사사무를 보기 위한 병조 관리들의 출장소였다. 경복궁에는 근정문 밖에, 창덕궁에는 호위청 서쪽에, 경희궁에는 건명문(建明門) 밖 동편에 각각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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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감 / 內府監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공예품들과 보물을 관장하였던 관서. 960년(광종 11)에 보천, 뒤이어 소부감(少府監)으로 고쳤다.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집정기에 내부감으로 고쳐 판사를 혁파하고 감(監)을 올려 종3품으로 하였다. 이후 1308년 선공사(繕工司)에 병합,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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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시 / 內府寺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재화를 저장하고 공급하며, 상세를 징수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문종 때의 대부시(大府寺)가 1298년(충렬왕 24)에 외부시(外府寺)로 되고, 다시 대부시가 된 뒤, 1308년에는 내부사(內府司)로 되었으며, 뒤이어 내부시로 되었다. 1356년(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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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빙고 / 內氷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실 전용의 얼음을 관리하던 관청. 창덕궁의 요금문(曜金門) 안에 있었다. 본래 종5품 아문이었으나 영조 때 종5품 별좌(別坐)가 감원됨으로써 종6품의 별제(別提)를 최고책임자로 하는 종6품 아문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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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고 / 內史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한성에 설치되어 있던 실록보관 창고. 조선시대 내사고의 기능은 춘추관에서 겸임하였으므로 춘추관고가 곧 내사고이다. 내사고에는 실록과 <선원록>이 필수적으로 보관되는 외에 일반 시·문집류들도 상당수 보관되었다. 외사고의 경우는 조선 초기 충주·성주·전주 세 곳

정치·법제(1496)
법제·행정(14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