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전체] “수”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3,44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삼수천 / 三水川 [지리/자연지리]
함경남도(지금의 양강도) 삼수군 금수면의 관동령(館洞嶺, 1,627m)에서 발원하여 북동으로 흘러 압록강에 합류하는 하천. 길이 66.2㎞. 모래가 많아 사수, 사천이라고도 하고 중평천(仲坪川)이라고도 한다. 삼수천은 시생대 연화산암군의 화강암과 현무암으로 된 골짜기
-
삼수향교 / 三水鄕校 [교육/교육]
함경남도(현재의 양강도) 삼수군 관흥면 삼덕리에 있었던 향교. 조선 전기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처음은 갑산향교(甲山鄕校)와 함께 객관 서쪽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뒤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
-
삼현수간 / 三賢手簡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송취대(宋就大)가 송익필·성혼·이이의 서간을 모아서 엮은 서간첩. 조선 중기의 학자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사이에 왕래한 편지를 모아 후대
-
상원수 / 上元帥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무관직. 원수는 원래 상설관이 아니고 군대가 동원될 때 이를 지휘하기 위해서 동원된 통수직이었다. 그런데 고려 말 왜구가 창궐하자 전국적으로 군대를 상주시킬 필요가 있게 되자, 각지에 원수를 파견하여 거의 상설관화되었다. 각 도에 파견된 원수의 수는 정해져
-
서기수 / 徐淇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1∼1834). 1801년 급제 후 한림원기거주가 되었으나 곧 모함으로 유배되었다. 5년의 유배생활 동안 오직 독서에만 전념하였다. 풀려나자 백두산을 유람한 뒤 〈유백두산기〉를 썼다. 이후 세자시강원문학,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
서두수 / 西頭水 [지리/자연지리]
높이 1,000m가 넘는 용암대지의 고원으로서, 백두산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2m 이상이나 깔려 있다. 하천의 지류로는 마천령 산맥쪽에서 흐르는 대천박수·박천수·동계수·덕립동수·소동수 등이 합류되고 함경산맥쪽에서 형제수·동계수 등이 합류된다. 기후는 내륙의 고원지대이므로
-
서수라 / 西水羅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경흥군 노서면 서수라동에 있는 지명. 우리나라 최북단의 어항(漁港)이며 군항(軍港)이기도 하다. 조산만(造山灣)의 동쪽 끝에 있으며, 두만강 하류에 있어 러시아와 연결되는 도로가 있고, 부근에 만포(晩浦)ㆍ서번포(西藩浦) 등의 석호(潟湖)가 있다. 이 지역이
-
서수붕 / 徐壽朋 [정치·법제/외교]
?-1901. 중국 청말 초대 주한공사. 1875년 도원의 직함으로 미일공관 2등 참찬이 되었다. 1898년 안휘휘령지태광도를 제수받고 이어 안휘안찰사로 자리를 옮겼다. 1898년 6월 24일(음력) 청국은 안휘안찰사 서수붕을 3품경당후보로 제수하여 '주찰조선국흠차대
-
서호수 / 徐浩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1736∼1799). 할아버지는 종옥, 아버지는 명응이다. 어머니는 이정섭의 딸이다. 큰 아버지 명익에게 입양되었다. 1765년 식년 문과에 장원하여, 홍문관부교리·도승지·대사성·대서헌 등을 지냈다.《동국문헌비고》·《규장총목》·《국조보감》·《
-
서효수 / 徐孝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6∼1753). 1744년 춘당대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세자시강원설서·사서·지평·정언·부수찬·지제교·경연검토관·춘추관기사관·세자시강원문학·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연구에 열중하였고, 특히 주자학에 밝았다.

종교·철학(27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