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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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 書房 [정치·법제/국방]
고려 무신정권기에 설치된 숙위기관. 1227년(고종 14) 최우에 의해 설치되었다. 설치목적은 문사를 우대하는 뜻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고사에 밝고 식견이 높은 문사를 고문에 등용함으로써 정치에 활용하고자 하였다. 결국, 서방의 설치는 최씨정권의 강화책에 있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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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가 / 西方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세종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경기체가. 전체 10장. 『염불작법(念佛作法)』에 전한다. 『염불작법』에는 작자가 의상(義湘)으로 되어 있으나, 후대인이 의상의 위명(威名)을 빌려 쓴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의 형식이나 『염불작법』이 157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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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년산 / 西百年山 [지리/자연지리]
황해도 곡산군 봉명면과 평안남도 성천군 대곡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217m.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뻗고 있는 언진산맥의 주봉이다. 이 산지의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에는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南江)의 상류 물줄기가 사면을 개석하고 있으며, 이 개석된 계곡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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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 / 書法 [예술·체육/서예]
예술류(藝術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1책이며, 규격은 30.5×28.3cm이다. 영자필법(永字筆法)등을 담은 서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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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조 / 徐丙朝 [역사/근대사]
1882년(고종 19) 7월 28일∼1952년 2월 29일. 일제 강점기의 실업가‧관리‧정치가. 창씨한 이름은 대봉병조(大峰丙朝),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대구 지역의 대지주이자 유력자로, 경제인으로서 활동하였다. 1909년 대구잠업전습소(大邱蠶業傳習所) 소장,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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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서원 / 瑞峯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현산리에 있는 서원. 1590년(선조 23)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후백(李後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강진군 성전면 월곡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2년(숙종 38)에 백광훈(白光勳)과 최경창(崔慶昌)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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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장 / 瑞鳳章 [역사/근대사]
1907년 3월 칙령으로 반포된 훈장. 서봉장은 내외명부 중에서 숙덕과 훈로가 특별한 자에게 황후의 휘지로 1등에서 6등까지의 등차를 두어 수여되었다. 1등의 정장은 대수로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에 드리우고, 부장은 오른쪽 가슴에 달았다. 2등장은 왼쪽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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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산낙동강교 / 西釜山洛東江橋 [지리/인문지리]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에서 낙동강 하류를 가로질러 강서구 대저2동을 연결하는 다리. 너비 15.7m, 길이 1,640m로 1981년 준공되었다. 부마고속도로상의 이 대교는 800여 개의 고속도로 다리 가운데서 가장 길며, 서울의 노량대교가 놓이기까지는 전국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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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방언 / 西北方言 [언어/언어/문자]
평안도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 서북방언은 대방언권의 하나로, 북한의 표준어 즉 ‘문화어’의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전통적인 서북방언의 특징을 고려할 때 현재의 문화어가 서북방언 또는 그것의 하위 방언인 평양말에 기반을 두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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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영림창 / 西北營林廠 [역사/근대사]
대한제국 시기에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의 삼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청. 1907년 4월 서북영림창관제의 반포와 함께 설치되어 대한제국의 멸망 때까지 존속하였다. 영림창의 최고책임자는 칙임 또는 주임에 해당하는 창장이며, 그 밑에 사무관, 기사, 주사, 기수 등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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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철도국 / 西北鐵道局 [역사/근대사]
서울과 신의주 사이에 경의선을 부설하기 위하여 1900년 궁내부에 설치한 관서. 대한철도회사를 건립한 박기종이 1899년 7월 6일 경의선 부설권을 취득하게 되었는데, 대한제국은 1900년 6월 궁내부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였다. 이후 1902년 서울과 개성 구간의 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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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학회 / 西北學會 [역사/근대사]
1908년 서북, 관서, 해서지방 출신자들이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 국권회복운동이 더욱 어렵게 되자, 이러한 제약을 보다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통합하여 1908년 1월 조직하였다. 회원은 2,300명 정도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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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 書史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서리의 차위직. 고려 태조 때부터 있던 실무·행정 담당의 말단 이속이었으며, 국자감에 2인, 예빈성에 8인, 위위시와 사재시에 각 6인, 대복시에 4인, 대부시에 12인이 배속되었다.한편, 서사는 입사직으로 998년(목종 1) 개정전시과에 제17과로 해당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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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무가 / [문학/구비문학]
소설이나 설화와 같이 줄거리를 갖춘 서사 양식에 속하는 무가. 서사무가의 기원은 고대 무속 제전에까지 소급된다. 영고(迎鼓)·동맹(東盟)·무천(儛天) 등과 같은 고대 제천의식이나 단군제(檀君祭)·동명제(東明祭)·혁거세제(赫居世祭)와 같은 국조제(國祖祭)는 고대의 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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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민요 / [문학/구비문학]
이야기를 갖춘 민요. 서사민요는 서사시이지만 반드시 삼인칭 시점에서 전개되지 않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주인공의 심정을 직접 토로하기도 한다. 서정적인 수법이 적지 않게 사용되어, 어느 한 부분만 들으면 서정민요와 비슷하다. 서사민요는 남녀 구별이 없이 부를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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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원 / 徐思遠 [종교·철학/유학]
1550(명종 5)∼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학자. 필의 증손, 할아버지는 응기, 아버지는 흡, 큰아버지 형에게 입양되었다. 정구의 문인이다. 주자학 및 이황의 문집을 깊이 연구하고 중년 이후는 후진을 가르쳤다. 선조 때 학행으로 감역·찰방을 지내고,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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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설화 / [문학/구비문학]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승군장(僧軍將)이었던 서산대사 휴정(休靜)에 관한 설화. 휴정만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흔히 사명당(泗溟堂)유정(惟政)과 함께 지혜 또는 도술을 겨루는 이야기로 전승된다. 이 밖에도 서산대사에 얽힌 민간설화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 자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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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전 / 西山大師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활자본.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휴정은 조선 선조시의 승군장(僧軍將)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檄文)주 01)을 돌려 승병 1,500명을 규합하여 이들의 총수(總帥)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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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박첨지놀이 / 瑞山朴僉知놀이 [생활/민속]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의 고양동에서 전승되어 오는 인형극놀이 인형극은 인형 및 배경이 되는 소품 등을 제작하여 이를 조작하는 극의 형태로, 여러 마당과 거리로 구성된다. 이 놀이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발에 탈을 끼고 연행하는 발탈, 그림자 인형극인 만석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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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안면내파수도 / 瑞山安眠內波水島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승언리에 있는 자연 방파제. 충청남도 기념물 제64호. 길이 약 300m, 면적 164.600㎥이다. 이 섬은 조선 시대 중국의 상선이나 어선들이 우리 나라를 왕래할 때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정박했던 곳이다. 해안에는 조약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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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일락가 / 西山日落歌 [문학/고전시가]
1567년(명종 22)김응정(金應鼎)이 지은 시조. 1773년(영조 49)에 간행된 『해암문집(懈菴文集)』에 실려 전한다. 이 시조가 조식의 작품으로 기록되어 전승된 경우도 위의 두 가지 사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해암문집』과 「김해암가곡집서」가 발굴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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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향교 / 瑞山鄕校 [교육/교육]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향교. 1406년(태종 6)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48년(인조 26) 서문(西門) 밖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70년대에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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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달 / 徐上達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장죽심(張竹心)에게 「진주검무」를 배웠다. 1967년 1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검무」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후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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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우 / 徐相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1∼1903). 종사관으로서 미국·영국과의 수호통상조약체결 때 참여하였다. 갑신정변 직후 전권대신으로 일본과 개화파 인사의 송환을 협상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러밀약설의 진상 규명을 위해 텐진을 방문했고,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철수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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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우증시문서 / 徐相雨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고 판서 서상우(徐相雨)에게 '문헌(文憲)'이라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근학호문왈문 행선가기왈헌'이라 적어 문헌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융희 4) 7월 26일 순종은 28명에게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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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천 / 徐相天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역도연맹회장, 대한씨름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본관은 달성,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휘문의숙(徽文義塾)을 거쳐 1923년 일본 체조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휘문고등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일본 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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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집 / 瑞石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김만기의 시문집. 18권 9책. 활자본. 1701년(숙종 27) 손자 춘택에 의해 수집, 간행되었다. 권1∼4에 시 569수, 권5에 서·기·제후·제문·송·잠 28편, 권6에 전·비답·교서·별유·상량문·애책문·고제문·치제문·책문·서계 33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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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선 / 西鮮線 [지리/인문지리]
평안남도 강동군승호리역과 성천군신성천역 사이에 부설된 철도. 길이 68.4㎞. 이 철도는 서선중앙철도회사에 의해 건설된 사설철도로 본사를 경성(京城)에 두었으며, 자본금은 1만 5,000원이다. 승호리역에서 석름역까지의 29.6㎞는 1939년 7월에 개통되었으며, 석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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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구 / 徐聖耉 [종교·철학/유학]
1663(현종 4)∼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학자·서예가. 아버지는 숙이다. 1691년(숙종 1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어려서부터 대자를 써서 이름이 났고 혼자서 학문에 힘써 크게 경지에 이르렀으며, 특히 초서에 능하여 일세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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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구역 / 西城區域 [지리/인문지리]
평양직할시(平壤直轄市)의 중심부 서북쪽에 위치한 구역. 서성구역은 동쪽으로 대성구역, 남쪽으로 모란봉구역과 보통강구역, 서쪽으로 형제산구역, 북쪽으로 룡성구역과 접해 있다. 면적은 9.3㎢이고, 인구는 14만 7,138명(2008년)이다. 구역의 산업시설로는 김종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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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대훈장 / 瑞星大勳章 [역사/근대사]
1902년 9월 추가로 제정, 반포된 훈장. 훈등은 대훈위에 속하고 무등이며, 이화대훈장 위에 있어 황친 및 문무관 가운데서 이화대훈장을 받은 자가 특별한 공이 있을 때 황제의 특지로 수여하였다. 패용할 때는 정장이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에 드리우고 부장은 왼쪽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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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 / 書手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의 서리직. 고려시대에 각 관청에 소속된 이속직은 크게 서리직과 잡직 계통의 잡류로 나누고, 서리직은 입사직과 미입사직으로 구분된다. 그 중 서수는 장고 등과 함께 미입사직에 해당된다. 서수는 중서문하성에 26인, 예문관에 1인, 비서성에 15인, 어서원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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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라 / 西水羅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경흥군 노서면 서수라동에 있는 지명. 우리나라 최북단의 어항(漁港)이며 군항(軍港)이기도 하다. 조산만(造山灣)의 동쪽 끝에 있으며, 두만강 하류에 있어 러시아와 연결되는 도로가 있고, 부근에 만포(晩浦)ㆍ서번포(西藩浦) 등의 석호(潟湖)가 있다. 이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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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붕 / 徐壽朋 [정치·법제/외교]
?-1901. 중국 청말 초대 주한공사. 1875년 도원의 직함으로 미일공관 2등 참찬이 되었다. 1898년 안휘휘령지태광도를 제수받고 이어 안휘안찰사로 자리를 옮겼다. 1898년 6월 24일(음력) 청국은 안휘안찰사 서수붕을 3품경당후보로 제수하여 '주찰조선국흠차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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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어 / 敍述語 [언어/언어/문자]
문장성분(文章成分)의 하나. 한 문장의 주어로 제시된 인물이나 사물에 대하여 그 동작·상태·성질·유개념을 설명하는 말로서, 주어와 함께 문장의 두 주요성분을 이룬다.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주술관계)를 가진 구성을 주술구성(主述構成)이라 하는데, 전통문법(傳統文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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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보 / 徐承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4∼1877). 1856년(철종 7)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우도암행어사·승지를 차례로 지냈다. 1864년(고종 1) 이조참의 이후 예조참판·예문관제학·홍문관제학·이조참판·한성부판윤·형조판서에 이르는 등 내외직을 역임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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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 / 徐湜 [종교·철학/유학]
1561(명종 16)∼1644(인조22). 조선 중기의 지사. 아버지는 봉사 충립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천일·고경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병으로 물러났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향 사림들의 추천으로 다시 의병장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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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보 / 徐臣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1∼1908). 1855년(철종 6) 정시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861년 성균관대사성에 이르렀다. 1865년(고종 2) 이조참의를 거쳐 승지를 지낸 이후, 이조참판·사헌부대사헌·중추원1등의관·장례원경·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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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보승급문서 / 徐臣輔陞級文書 [정치·법제]
1908년(융희 2) 9월 9일. 정2품 정헌대부 서신보(徐臣輔)를 종1품 숭정대부에 승서하는 임명장. 당시 승급사실은《순종실록》에도 기재되어 있는데, 이 문서를 통해 실제를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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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일 / 徐神逸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신라 말 고려 초의 호족. 이천 서씨의 시조. 아들로는 광종때 내의령을 지낸 필이 있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감사해하면서 “사슴은 내 아들인데 공에게 힘입어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하리다.”라고 말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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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서원 / 西岳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서원. 1561년(명종 16) 이정(李楨)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유신(金庾信)의 위패를 모시며 창건하였고, 1563년(명종 18) 신라의 문장가 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의 위패를 추가 배향하였다. 처음은 선도산(仙桃山)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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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평 / 西安平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에서 압록강 맞은편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시대의 지명. 이 지역은 요동지역과 평양방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상의 요지였다. 만약, 이곳을 고구려가 장악하면, 낙랑군과 대방군을 고립시킬 수 있다. 그러한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이곳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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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자 / 婿養子 [사회/가족]
사위를 삼을 목적으로 입양시키는 양자. 양자와 마찬가지로 양부모와의 사이에 양친자관계(養親子關係)가 발생하지만, 서양자는 양친자관계의 발생 또는 소멸이 전적으로 혼인관계의 발생이나 소멸에 따르는 점에서 양자와 다르다. 그러나 입양의 무효나 취소 또는 파양(罷養)은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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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 / 西洋鐵 [예술·체육/건축]
안팎에 주석을 입힌 얇은 철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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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 / 西洋畵 [예술·체육/회화]
서양에서 발생하여 발달한 그림이나 서양에서 보급된 자료와 기술에 의해서 그린 그림. 우리 나라에서는 고희동(高羲東)이 처음으로 일본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돌아와, 유화 활동을 시작한 것이 서양 화법 정착의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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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얼 / 庶孼 [사회/사회구조]
첩의 자손. 봉작(封爵)의 대상은 애초부터 정처(正妻)에 제한되어 있어 첩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며, 그 위에 부인이 첩의 소생인 경우에도 봉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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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얼금고법 / 庶孽禁錮法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양반의 자손이라도 첩의 소생은 관직에 나아갈 수 없게 한 제도. 서얼에 대한 차별의 규정은 ≪경국대전≫에 다음과 같이 두 가지가 명시되어 있다. 예전(禮典) 제과조(諸科條)에 죄를 범해 영구히 임용할 수 없게 된 자, 장리(贓吏)의 아들, 재가하거나 실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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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 書筵 [정치·법제/정치]
조선시대 왕세자를 위한 교육 제도. 서연관의 자격 조건은 학문이 뛰어나고 단정한 사람이어야 하며, 비록 서연관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파직되었다. 그러나 서연관은 세자를 근시함으로써 왕이나 세자의 지우를 얻을 기회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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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관 / 書筵官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관리들의 총칭. 고려시대의 서연관에 대해서는 그 직제만 겨우 알 수 있다. 또, 고려 말에 경연이 서연으로 격하됨에 따라, 서연관도 왕의 교육을 담당하던 관리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서연관은 문과급제자 가운데서 학문과 덕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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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염순증시문서 / 徐念淳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고판서 서염순(徐念淳)에게 '문숙(文肅)'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근학호문왈문 집심결단오라숙'이라 적어 문숙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6일 순종은 57명에게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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