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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섭 / 高裕燮 [예술·체육/회화]
항일기의 미술사학자(1905∼1944). 호는 우현(又玄). 경성제국대학 미학연구실의 조수로 근무하면서 고대 미술품 조사와 연구에 힘썼다.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우리 미술사 연구에 주력했다. 주요 논문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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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어 / 固有語 [언어/언어/문자]
국어에 본디부터 있던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 외래어나 한자어에 상대되며, 순 우리말이라고도 부르는 단어들로서, 다른 나라 말에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우리의 것인 단어들이다. 우리가 고유어라고 생각하기 쉬운 부처[佛]·자[尺]·요[褥]·살[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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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전 / 告由奠 [역사/조선시대사]
국장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을때 음식을 준비하여 올리면서 그 사실을 아뢰는 의식. 고유는 중요한 일이나 사건을 윗사람 또는 신에게 아뢰는 것을 말한다. 반면 전(奠)이란 음식을 올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대개 상례에서 초종(初終)부터 반우(虞祭) 이전까지 망자에게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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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제 / 告由祭 [역사/조선시대사]
국가와 사회 및 가정에 큰 일이 있을 때 관련 신령에게 그 사유를 고하는 제사. 고유제는 어떤 일에 대한 사유를 신령에게 고하는 제사이다. 국가나 왕실, 사회, 가정에서 일상으로 행하던 의례의 하나로서, 장소와 절차는 사유와 숭배 대상에 따라 달랐다. 『국조오례의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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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제홀기 / 告由祭笏記 [정치·법제]
궁(宮)에서 고유제를 설행할 때 진행 순서를 적은 홀기. 배면에 '계축(癸丑) 10월 11일 진시(辰時)'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1913년 10월 11일에 고유제가 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왕직에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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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철 / 高留哲 [역사/근대사]
1903-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북청(北淸)이다. 1925년 4월 18일에 조직된 사회주의 운동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한 후 북청의 평산(平山)야체이카 소속으로 활동하던 중, 1930년 2월 북청 경찰의 대검거로 13명 청년이 일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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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율사 / 考律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율령의 조사와 형옥의 사찰에 관한 사무를 맡은 형조 소속의 관서. 1405년(태종 5)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육조의 직계제를 마련, 형조에는 장금사·장례사·고율사의 삼사를 두었다. 고율사는 그 죄에 상당하는 법률의 타당한 적용여부와 형옥이 제대로 판결되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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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삼 / 高殷三 [역사/근대사]
1892-1947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출신지는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온평리(溫平里)이다. 조부는 정의현감(旌義縣監)과 고창현감(高敞縣監)을 지낸 고계정(高啓正)이다. 서울에서 학자로 있다가 6·25동란 때 납북된 고권삼(高權三)이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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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고 / 皐隱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전기 문신·학자 안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72년에 간행한 시문집. 3권 1책. 목활자본. 1772년(영조 48) 후손 병희(炳喜)가 편집, 간행한 것을 방후손(傍後孫) 만곤(晩坤)이 중간하였다. 권두에 장승택(張升澤)의 서문과 권말에 이중구(李中久)·만곤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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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 / [사회/촌락]
전통시대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과 그를 보좌하는 토박이 향리들의 통치거점. 오늘날에는 고을이라는 말을 거의 들어볼 수도 없고, 고을과 마을이 혼동되어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고을은 마을보다 큰 단위로 토착사회와 중앙권력이 만나는 향촌사회의 중심지 또는 그 관할구역을 말하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