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필터

주제어사전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황익청 / 黃益淸 [종교·철학/유학]

    1589년(선조 22)∼1659년(효종 10).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황언주, 어머니는 안윤금의 딸이다. 1621년(광해군 13)에 향시에 장원하였으며, 1624년(인조 2)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학유에 재수되었다. 1652년에

  • 황인수 / 黃麟秀 [역사/근대사]

    1886-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교하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최창섭 등과 장날을 기하여 계속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군자금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건국표창이 추서되었다.

  • 황일호 / 黃一皓 [종교·철학/유학]

    1588(선조 21)∼1641(인조 19). 조선 중기의 문신. 황원 증손, 할아버지는 황대수, 아버지는 황척, 어머니는 강백룡의 딸이다. 큰아버지 황신에게 입양되었다. 조수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음보로 운봉현감·전주판관·임천군수 등을 역임하고, 1635년(인조 1

  • 황자총통 / 黃字銃筒 [과학/과학기술]

    1812년(순조 12)에 만들어진 화포(火砲). 보물 제886호. 정철(定鐵, 화포받침대에 고정시킬 수 있는 부분)·모병(冒柄, 자루를 끼울 수 있는 부분)·손잡이가 완벽하게 붙어 있어서 당시의 제조기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황재 / 黃梓 [종교·철학/유학]

    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 황신구 증손, 할아버지는 황흠, 아버지는 황서하, 어머니는 박태연의 딸이다. 1718년(숙종 4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강원도관찰사, 부제학, 이조참의,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저서로는 두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다

  • 황재영 / 黃在英 [종교·철학/유학]

    1835년(헌종 1)∼1883년(고종 20). 이인하의 아들이다. 1883년(고종 20)에 선공감감역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퇴하였다. 영남의 학자 가운데 실천적 학자로는 황재영만한 이가 드물었다고 한다. 저서로는《대계유고》 7권이 있다.

  • 황재옥 / 黃在玉 [역사/근대사]

    188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여주(驪州)이다. 1919년 4월 천도교 측의 지시를 받은 경성농업학교 재학생 원필희(元弼熙)가 경기도 여주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책임지고, 여주군의 각 면(面)을 돌며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운동

  • 황재운 / 黃在雲 [역사/근대사]

    1887-1939.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본래 증산면 화선리 사람으로, 일을 보러 왔다가 1919년 3월 4일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이 주동한 반석면 상사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와 원장교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하던

  • 황재현 / 黃載顯 [종교·철학/유학]

    1848년(헌종 14)∼1903년. 조선 말기의 무인. 1878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에 임명되어 관계에 진출하였다. 1881년 김홍집이《조선책략》을 들여온 것이 발단이 되어 전국이 척사상소로 비등할 때, 영남유생 이만손의 만인소에 이어 충청도 대표로 홍시중과 함께

  • 황정별급문기 / 黃珽別給文記 [사회/가족]

    조선전기 문신 황정이 아들 사웅(士雄)에게 전답과 수택유물을 상속한 문서. 별급문기는 조선시대 분재기(分財記)의 일종으로 재주(財主)가 일정한 토지나 노비 또는 조상전래의 가산이나 유품을 특정한 자녀나 친손·외손에게 지급하는 문서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 황정해 / 黃正海 [역사/근대사]

    1918-1941. 일제 강점기 항일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이다. 부친 독립운동가 황병길(黃炳吉)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누나 손에 자랐다. 연통랍자(煙筒拉子)의 한인소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대황구

  • 황제대호진칭주본 / 皇帝大號進稱奏本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7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 등 7인이 순종에게 황제의 호칭을 사용할 것을 상주한 주본. 순종은 같은 해 7월 18일에 이미 고종의 대리조서에 의해 사실상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 상주에 대해 순종은 '대조(大朝)'의 처분을 받들어 억

  • 황제탄신경축가 / 皇帝誕辰慶祝歌 [문학/현대문학]

    1896년에 지어진 창가로 고종황제의 탄신기념일을 경축한 노래. 고종황제의 탄신기념일을 경축한 노래이다.『새문안교회 85년사』(1973)에 따르면 1896년 7월 25일 당시 고종황제의 탄신기념일을 맞이하여 새문안교회에서 황제탄신경축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 행사에서 부

  • 황조가 / 黃鳥歌 [문학/고전시가]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이 지었다는 시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조에 4언 4구의 한역시(漢譯詩)와 창작동기가 전할 뿐이다. 유리왕은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골천(鶻川)사람의 딸 화희(禾姬)와 한인(漢人)의 딸 치희(雉姬)를 계실(繼室)로 얻었다. 두 여자가 사

  • 황종국 / 黃鍾國 [교육/교육]

    1891-미상. 일제 강점기 교육자·관료. 창씨 개명한 이름은 중산부웅(中山富雄)이다. 본적은 함경북도 부령군(富寧郡) 청암면(靑岩面)이다. 1908년(융희 2) 사립박명학교(私立博明學校) 교감과 1909년(융희 3) 연천(連川)사립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 황종척 / 黃鐘尺 [과학기술/과학기술]

    조선 세종 때에 사용한 도량형의 기본 단위. 황종척은 박연이 국악의 기본음을 중국 음악과 일치를 위해 만든 척도로, 국악의 기본음인 황종음을 낼 수 있는 황종률관의 길이를 결정하는데 쓰이게 되었다. 황종척을 중심으로 한 척도 체제가 적어도 성종 때까지는 유지된 것을,

  • 황종화 / 黃鍾和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진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남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하여 독립선언문과 격문 등을 배포하여 각 지방에서의 만세운동을 선동하였다. 같은해 4월 이운형(李運衡)·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및 임

  • 황주금석리유적 / 黃州金石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금석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덧널무덤[木槨墓] 유적.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로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 쇠뇌[弩機] 1점, 을자모양동기[乙字形銅器] 1쌍, 삿갓모양동기[笠頭筒形銅器] 1쌍, 삿갓모양원통[笠頭形圓筒] 1점, 양산대끝[蓋弓帽] 1점, 고삐끼우

  • 황주목사계자기 / 黃州牧使戒子記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본. 1848년에 간행된 목판본 『삼설기(三說記)』에 실린 작품 중의 하나이다. 활자본 조선서관판 『별삼설기(別三說記)』에는 ‘황주목사기’라는 표제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예언설화를 소설화한 것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기생이라 하여도 애

  • 황주민란 / 黃州民亂 [역사/근대사]

    1893년 겨울과 1894년 초 두번에 걸쳐 황해도 황주목에서 일어난 민란. 향임과 아전들의 작간과 수탈의 가중으로 발생하였는데, 1893년 겨울에 민중은 20조폐단을 들어 시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향임과 아전들의 집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였다. 당시 황주 지방에는 궁방전이

  • 황주선봉리고분 / 黃州仙峰里古墳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선봉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구덩무덤[土壙墓] 유적. 원래의 봉토는 방대형(方臺形)으로 규모는 동서 길이 11.5m, 남북 길이 14.5m, 높이 2.5m였다. 봉토의 꼭대기로부터 170㎝를 내려가 나타난 구덩의 상단 윤곽은 길이 4.1m, 너비 1.5m

  • 황주천주리고분 / 黃州天柱里古墳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천주리 한밭골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널무덤[土壙墓]유적.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로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 차축두(車軸頭) 2점, 삿갓모양동기[笠頭形銅器] 2점, 을자모양동기[乙字形銅器] 1점, 관모양동기[管形銅器] 1점, 통형동기(筒形銅器) 2점, 금동

  • 황주청룡리고분 / 黃州靑龍里古墳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청룡리 정촌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덧널무덤[木槨墳]유적. 작업시의 목격자들에 의하면 지표 아래 약 50㎝에서 부식된 길쭉길쭉한 목편들이 250×100㎝의 범위에 걸쳐 나타나고, 유물은 이것들과 섞여서 남북으로 7∼8m의 사이를 두고 두 지점에서 거의 같

  • 황주향교 / 黃州鄕校 [교육/교육]

    황해도(현재의 황해북도) 황주군 황주읍 덕월리에 있는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좌우협실(左右夾室)·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신문(神門)·홍전문(紅箭門) 등이 있었

  • 황주흑교리유적 / 黃州黑橋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흑교면 흑교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분묘 유적. 발견된 유물로는 날이 평행에 가까운 후기양식의 세형동검 1점, 동모(銅鉾) 1점, 十자형 칼자루끝장식[劍把頭飾] 1점, 전한시대의 오수전(五銖錢) 2점, 을자형관금구(乙字形管金具) 2점, 삿갓형자루끝[笠形柄

  • 황준량 / 黃俊良 [종교·철학/유학]

    1517(중종 12)∼1563(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황영손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효동, 아버지는 황치, 어머니는 황한필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4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권지성균관학유로 임명되고, 이어 성주훈도로 차출되었다. 신녕

  • 황진연 / 黃珍淵 [역사/근대사]

    1899-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명천(明川)이다. 1918년 1월 거주지를 만주(滿洲)로 옮긴 후 한의원을 운영하며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당원이 되었다. 1930년 ‘간도 5·30봉기’ 때 길림성(吉林省) 연

  • 황진이 / 黃眞伊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박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등을 지은 기녀.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황진이가 지은 한시에는 「박연(朴淵)」·「영반월(詠半月)」·「등만월대회고(登滿月

  • 황찬서 / 黃贊西 [역사/근대사]

    1873-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찬서(黃贊瑞)이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 강한 항일의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의병 활동을 선전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이후 남원(南原)에서 일본 상품의 불매운동, 세금불납, 토지 불매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 황창섭 / 黃昌燮 [역사/근대사]

    1896-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예천(醴泉)이다. 잡화상·자전거포·철공업 등에 종사하였다. 1925년 예천청년회 검사위원·예천신흥청년회 교양부담당 상무집행위원·사회주의 사상단체 오오회(五五會) 집행위원, 1927년 예천사우회

  • 황창오 / 黃昌五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생. 일찍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각오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고향인 화성군 태안면 삼정리에서 대중을 규합, 조직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계속 독립사상을 고취

  • 황천혼시무가 / 黃泉─巫歌 [문학/구비문학]

    함경남도 함흥 지역에서 전승되는 서사무가. 1926년 3월 당시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본궁리에 사는 김쌍돌이(金雙石伊)가 구송한 자료를 손진태(孫晉泰)가 채록하여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에 수록하였다. 송님동이·이동이·사마동이의 삼 형제가 7월 7일에 전지(田地

  • 황철 / 黃鐵 [예술·체육/사진]

    1864-1930. 사진가·서화가·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무명각주(無名閣主). 한성부(漢城府) 출생. 자헌대부 규장각제학 윤수(潤秀)의 둘째 아들이다. 서화가로서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사진에서 떠난 이후로, 1913년부터는

  • 황철나무 / Populus maximowiczii A.Henry [과학/식물]

    버드나무과 사시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교목. 황철나무는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큰키나무이다. 한국, 중국 동북부, 일본 혼슈 이북, 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와 평안남도 이북의 산지 하천 및 계곡부에 자생한다. 잘 자란 나무는 높이가 30m에 이른다. 학명

  • 황초립 / 黃草笠 [정치·법제/법제·행정]

    각 전ㆍ궁의 별감과 사복내외시 거달, 내취 등이 행행 할 때 쓰는 갓. 누런 빛깔의 가는 대로 만들며, 위는 좁고 아래가 넓은 원통형의 모옥과 원형의 양태로 되어 있다. 모정이 평평하다.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에서는 견마배가 청의를 입고 황초립을 썼다.

  • 황최 / 黃最 [종교·철학/유학]

    1680년(숙종 6)∼1750. 황우성의 아들이다. 1725년(영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대과는 실패하였다. 만년에 후진 양성에 전심하였는데 그 문하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았다. 저서로는 《독성재집》이 있다.

  • 황최언 / 黃最彦 [종교·철학/유학]

    1711년(숙종 37)∼미상. 조선 후기 문신. 황근중 5대손, 증조는 황석, 조부는 황응두이다. 부친 황수태와 모친 이만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우정구이다. 1735년(영조 1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등용이 늦었다. 1769년(영조 45) 필

  • 황태성 / 黃泰成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전(黃錢)이다. 본적은 함경북도 길주(吉州)이다. 1920년 1월 길주청년회 결성에 가담하고 상무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2월 함북청년연합회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7년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

  • 황태자교지 / 皇太子敎旨 [정치·법제]

    1901년(광무 5) 2월 황태자 척(坧)이 경부철도회사의 주식 1,000주를 소유할 일로 감독 민영철(閔泳喆)로 하여금 대리로 대변하게 하는 문서. 당시 고종황제는 2,000주, 황태자인 순종은 1,000주, 영친왕은 500주를 각각 매수하였다. 이 문서에는 '봉교'

  • 황태자은임명문서 / 皇太子垠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융희 1) 8월 16일. 황태자 은(垠)을 육군 보병 참위에 임명하는 문서. 순종황제의 어압과 <대원수보>가 찍혀있다. 1899년(고종 36)에는 군제개편과 함께 <대원수보>와 <원수지보>를 제작하였다. 이 문서는 1907년 8월 육군보병참위에 임명되는 내용

  • 황택후 / 黃宅厚 [종교·철학/유학]

    1687(숙종 13)∼1737(영조 13).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황상구이다. 최창대·이하곤·구택규 등의 문인이다. 금위영의 서리로 일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반란군을 토벌하는 도순무사 오명항의 막하에서 서기로 일

  • 황토현전투 / 黃土峴戰鬪 [역사/근대사]

    1894년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크게 승리한 전투. 1894년 3월 20일전라도 무장에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의 남접계 동학지도자들을 중심으로 4,000여 명의 동학농민군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태인 주산리에서 태인접주 최경선이 이끄는 300여 명의

  • 황파집 / 黃坡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김종걸의 시문집. 2권 1책. 목판본. 1808년(순조 8)을 전후하여 방손 재전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도화의 서문, 권말에 재전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시·만사 60수, 서 11편, 발 1편, 잠 2편, 명 1편, 상량문 1편, 축문 3편

  • 황포탄의거 / 黃浦灘義擧 [역사/근대사]

    1923년 의열단에서 전개한 의열사들의 항일의거. 1923년 3월 28일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가 필리핀 마닐라로부터 귀국하는 도중에 상해에 도착하였다.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항일운동단체인 의열단에서는 다나카를 사살할 것을 결정하고 치밀한 거사 계획을 세웠다. 거사

  • 황학로 / 黃鶴老 [역사/근대사]

    1912년-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해주(海州)이다. 사리원동업학교를 다니다가 학업을 중단한 후 중국 상해(上海)로 유학을 떠났다가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 회원이 되었다. 그 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서 1929년 9월 도쿄조선노동조합

  • 황학봉 / 黃學奉 [역사/근대사]

    1903-1929.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초산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에 가입, 항일투쟁하다가 동부(同府) 제4중대에서 유격대를 조직하므로 참사(參士)를 자원, 편입하였다. 대원들과 같이 봉천(奉天)일대를 근거로 군자금 모집, 일본

  • 황학수 / 黃學秀 [역사/근대사]

    1879-1953.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원(昌原). 일명 이국현(李國賢).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충청북도 제천 출신.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및 군무부 비서국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임시정부의

  • 황학정 / 黃鶴亭 [예술·체육/건축]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정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이 정자는 1898년 어명에 의하여 경희궁의 회상전 북쪽 궁장 가까이에 꾸며졌던 궁술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다. 1922년 일본사람들이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하여 경희궁을 헐 때, 현재

  • 황해 / 黃海 [예술·체육/영화]

    1922-.영화배우. 본명은 전홍구, 강원도 장전 출생. 1939년 당시 황금좌 전속악극단 성보에 입단하여 배우 및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43년 만주 천진에서 악극단 신태양에 입단하여 중국 각지를 순회공연하다가 항주에서 광복을 맞아 1946년에 귀국했다. 19

  • 황해도 / 黃海道 [지리/자연지리]

    지명. 조선 팔도의 하나. 태조 3년 6월에 서해도(西海道)가 풍해도(豊海道)로 개칭되고, 다시 태종 17년 12월에 풍해도가 황해도(黃海道)로 개칭되었다.

  • 황해도방언 / 黃海道方言 [언어/언어/문자]

    황해도에서 쓰이는 방언. 황해도는 평안도와 경기도 사이에 위치하는 까닭에 이 지역 방언은 전이방언권(轉移方言圈)의 성격을 지닌다. 도의 서북부 지역은 황해도만의 독자적인 방언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북부의 황주·수안 등은 평안도방언의 특징이, 남부의 금천·연백은 경

  • 황해도평산소놀음굿 / 黃海道平山─ [문학/구비문학]

    황해도 평산 지방에서 전승되던 굿 형식의 민속극.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 경사(慶事)굿 중 제석(帝釋)거리에 이어 행하여지며, 농경의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황해도 평산에서 1947년 월남하여 강화도에 정착한 무녀 장보배(張寶培)가 고향에서 배웠던 소놀음굿을 195

  • 황해수 / 黃海水 [역사/근대사]

    1895-194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출신지는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이다. 1919년 3월 23일 전라북도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기송(李起松)과 오병용(吳秉鎔) 등이 함께 하였다. 오수리 장터에서

  • 황헌 / 黃瓛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후기의 문신. 황처신의 아들, 황선의 동생이다. 형으로부터 학문을 배워 1747년(영조 23) 진사가 되고 1750년 제릉참봉으로 관직생활을 시작,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돈후하고 시문에 능하였으며, 후일 대제학·판돈령부사를

  • 황혁 / 黃赫 [종교·철학/유학]

    1551(명종 6)∼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황기준 증손, 할아버지는 황열, 아버지는 황정욱, 어머니는 조전의 딸이다. 기대승의 문인이다. 1580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집의·사간을 역임한 뒤 우승지가 되어 1591년 정철이 건저문제로 위리안치

  • 황현 / 黃玹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순국지사·시인·문장가(1855∼1910). 갑신정변 때 성균관 생원으로서 무능·부패한 정부에 환멸을 느끼고 낙향하여 시 짓기에 전념하였다. 1910년 국권피탈을 당하자 통분하여 절명시 4수를 남기고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결하였다. 저서로《매천야록》이 있다

  • 황형 / 黃衡 [종교·철학/유학]

    1459(세조 5)∼1520(중종 15).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황예헌, 어머니는 남인보의 딸이다. 1480년(성종 11)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도정, 의주목사, 회령부사, 함경도병마절도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 황호직 영천군수 해유문서 / 黃浩直 永川郡守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87년(고종 25) 7월 13일 후임관이 병조에 올린 첩정이다. 이 문서는 앞부분의 내용이 결락된 상태이므로 전임관에 대한 자세한 내용 파악이 어렵다. 다만, 창원황씨(昌原黃氏) 인물 가운데 1886년(고종 23) 정월에 영천군수에 임명된 고신(告身)을

  • 황효공 / 黃孝恭 [종교·철학/유학]

    1496(연산군 2)∼1553(명종 8).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황진, 어머니는 이평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문과에 병과로 급제, 1522년 승문원부정자, 1525년 성균전적, 1526년 형조좌랑을 거쳐 형조정랑·황해도사·교리·지평 등을 지내고 서장관

  • 황효헌 / 黃孝獻 [종교·철학/유학]

    1491(성종 22)∼1532(중종 27). 조선 중기의 문신. 황희의 현손, 황보신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종형, 아버지는 황관, 어머니는 강미수의 딸이다. 진사로서 1514년(중종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홍문관정자가 되어 사가독서한 뒤 홍문관직제학·동부

  • 황후적의 / 皇后翟衣 [생활/의생활]

    조선 말기에 황후가 입었던 대례복. 중요민속자료 제54호.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유물은 동궁비 적의로 지정되었으나,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 의하면 왕세자, 왕세손빈의 적의는 아청색, 황후, 황태자비의 적의는 심청색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동궁비

  • 황후청석 / 皇后靑舃 [생활/의생활]

    조선 말기에 황후의 적의(翟衣) 일습(一襲)으로 착용하였던 대례용 신. 윤황후 용(用) 심청색 12등 적의와 함께 착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청석(靑舃) 1점이다. 운두(韻頭)가 낮은 혜(鞋) 모양으로 청색 공단을 바탕 옷감으로 사용하였다. 1979년 1월 23일 중요민

  • 황희 / 黃喜 [종교·철학/유학]

    1363(공민왕 12)∼1452(문종 2). 조선 전기의 문신. 황석부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균비, 아버지는 황군서, 어머니는 김우의 딸이다. 1383년 사마시, 1385년 진사시에 각각 합격하였다. 그리고 1389년에는 문과에 급제한 뒤, 1390년(공양왕 2) 성균

  • 황희정승설화 / 黃喜政丞說話 [문학/구비문학]

    조선 초기의 재상 황희에 관한 설화. 인물전설에 속한다. 그는 내외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조선 개국 초기의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힘썼다. 이렇다할 정적(政敵)도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정치활동을 한 것이 하나의 특징이며, 특히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알려져 있다. 「

  • 횃불싸움 / [생활/민속]

    정월대보름날 저녁에 농촌에서 횃불을 가지고 벌이는 민속놀이. 전국적으로 행해졌는데, ≪동국세시기≫ 상원조(上元條)에는 다만 “충청도 풍속에 횃불쌈놀이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보름날이 되면 마을 청년들은 낮부터 식구 수대로 싸리[萩]나 짚으로 홰를 만든다. 저녁

  • 회갑노래 / 回甲─ [문학/구비문학]

    회갑을 소재로 한 민요. ① “효자충신 내 아들/효부열녀는 내 며느리/방안의 화초는 내 손자야/천하의 일색은 내 딸인가/동네 일색 내 사위인가/오십줄이 당도하야/육십세를 맞이하야/작수성가(酌水成家)로 모은 살림/아니놀고서 뭣을 할까/오늘날로 베풀어놓고/거둥거리고 놀아보

  • 회계사 / 會計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호조 소속의 한 부서. 서울과 지방의 각 관청에 비축된 미곡·포·전 등의 연도별 회계, 관리 교체 때 맡은 물건의 휴흠을 살펴 해유를 내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호조의 속사로 경외의 저적(儲積)·세계(歲計)·해유(解由) 등에 관한 일을 맡는다.

  • 회계수간 / 匯溪手簡 [언론·출판]

    편자 이가원(1917-2000). 필사본. 서첩 구성은 1책 13면이다. 표제는 '회계수간'이라고 묵서 되어 있고 '연옹첨'이란 부제를 달아 편자를 밝혔다. 편자인 이가원이 편지의 발송인인 유건우와 유건익에 대한 이력을 첫 번째와 마지막 페이지에 각각 적어 놓았다.

  • 회계원 / 會計院 [역사/근대사]

    1895년 왕실경비의 예산, 결산 등 재부를 담당하던 관청.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의 의안에 의하여 설치된 회계사를 이듬해 개칭한 기관이다. 관원으로 칙임관인 경 1인과 그 아래 판임관 1인, 주사 1인을 두고, 출납사에는 주임관의 장 1인과 주사 8인, 검사사와 금고

  • 회계학 / 會計學 [경제·산업/경제]

    회계현상에 관련된 사항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통상적으로는 회계는 기업회계로 좁게 해석된다. 따라서, 회계학이란 기업회계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보고 있다. 우리 나라 기업회계는 <송도치부법>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다. 현재 회계학 연구에서는 통계학,

  • 회고가 / 懷古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초기에 원천석(元天錫)이 지은 시조. 1수로 진본(珍本)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되어 있다. 원천석의 시조는 2수가 전하는데 그 중 1수가 회고를 읊은 것이다. “興亡(흥망)이 有數(유수)ᄒᆞ니 滿月臺(만월대)도 秋草(추초)ㅣ로다/五百年(오백년) 王業(왕업)

  • 회고가 / 懷古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초기에 이색(李穡)이 지은 시조. 1수로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가 망한 것을 회고하고 인세(人世)의 무상함을 슬퍼하여 지은 시조이다. “白雪(백설)이 ᄌᆞ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반가온 梅花(매화)ᄂᆞᆫ 어ᄂᆡ 곳에 픠엿ᄂᆞᆫ고/夕陽(석양

  • 회고가 / 懷古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초기에 길재(吉再)가 지은 시조. 1수로 진본(珍本)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고려왕조를 회고하며 지은 것은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五百年(오백년) 都邑地(도읍지)를 匹馬(필마)로 도라드니/山川(산천)은 依舊(의구)ᄒᆞ되 人

  • 회구문집 / 悔咎文集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문인 이덕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5년에 간행한 시문집. 2권 1책. 목활자본. 1955년 후손 승락(承洛) 등이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회구문집』 권두에 이기호(李麒鎬)의 서문이 있다. 권말에 유동인(柳東仁)과 후손 우연(愚淵)·우증(愚增)·규화(圭和)

  • 회덕 / 懷德 [지리/인문지리]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지역의 옛 지명. 1018년(현종 9) 공주(公州)에 예속시켰다.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었고,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대전군에 합하였으며, 1930년

  • 회덕향교 / 懷德鄕校 [교육/교육]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선조 때 중건되었고 1812년(순조 12)에 중수하였다. 1969년 교궁(校宮)의 전반적인 보수가 있었고, 행정구역의

  • 회도증상제오재자서수호전전 / 繪圖增像第五才子書水滸全傳 [문학/고전산문]

    소설류(小說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6책이며, 판종은 신연활자본(新沿活字本)이다. 규격은 19.8×13.2cm이고, 반곽은 15.6×10.7cm이다. 표제는 수상전도오재자기서(繡像全圖五才子奇書)이고, 판심제는 회도증상오재자서(繪圖增像五才子書)이다.

  • 회동관후시 / 會同館後市 [경제·산업/경제]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행하던 국제 시장. 조선은 조공사행의 파견에 따라 회동관에서 조선의 사신·수원·종인 또는 만상(灣商)들이 청나라 상인과 사무역을 행하였다.조선시대 사행 조공은 일종의 관무역 성격을 띤 것이었다. 실제 회동관후시에서 거래되는 물품으로 조

  • 회령개시 / 會寧開市 [경제·산업/경제]

    조선 후기 함경도 회령에서 청나라와 통상하던 무역시장. 1628년(인조 6) 정묘호란 이후부터 청나라의 강요에 따라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양국 관헌의 감시하에 공무역을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점차 영고탑·오라 및 봉천·북경상인까지 몰려와 밀무역이 성행하였다. 1884년

  • 회령탄전 / 環境管理公團 [경제·산업/산업]

    함경북도 회령군 일대에 걸쳐있는 탄전. 이 탄전은 보을면의 북쪽 두만강의 남안에 있는 계림탄광(鷄林炭鑛)·유선탄광(遊仙炭鑛), 벽성면의 회령천 연안에 있는 봉의탄광(鳳儀炭鑛), 황풍면의 남쪽 서의봉(西儀峰) 산록에 있는 궁심탄광(弓心炭鑛) 등으로 나뉘어 있다. 발열량은

  • 회령향교 / 會寧鄕校 [교육/교육]

    함경북도 회령군(현재의 회령시) 회령읍 일동에 있는 향교. 1445년(세종 27)경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신문(神門)·전사청(典祀廳)·제기고(祭器庫)·

  • 회명 / 晦明 [종교·철학/불교]

    현대의 승려(1866∼1952). 4세대 모친을 여의고 조모슬하에서 컸다. 사서삼경을 배우다 양주 수락산 학림암으로 출가했다. 보하의 제자가 되었고, 개운사에서 용호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후진양성과 불교포교에 힘썼다.

  • 회문시 / 回文詩 [문학/한문학]

    시를 첫머리나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어도 의미가 통하고 시법에도 어긋나지않게 지은 한시. 회문시의 시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 破閑集』에서는 중국 진(秦)나라 소백옥(蘇伯玉)의 처가 지었다는 「반중시 盤中詩」와, 두도(竇滔)의 처 소

  • 회보 / 會報 [언론·출판/언론·방송]

    동경 한인청년회의 기관지. 1933년에 국한문 혼용하여 1단으로 종서 편집하여 발행하였다. 내용으로는 권두언, 논문, 잡문, 기타, 소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회봉유고 / 晦峯遺稿 [생활]

    별집류(別集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6책이며, 판종은 신연활자본(新沿活字本)이다. 규격은 29.1×18.8cm이고, 반곽은 20.3×13.8이다. 표제와 판심제는 회봉유고(晦峯遺稿)이다. 안규용(安圭容)이 지은 것으로, 발문은 송재직(宋在直)이 지

  • 회봉유고부록 / 晦峯遺稿附錄 [생활]

    별집류(別集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1책이며, 판종은 신연활자본(新沿活字本)이다. 규격은 28.5×18.4cm이고, 반곽은 20.4×13.7이다. 표제와 판심제는 회봉유고부록(晦峯遺稿附錄)이다. 안규용(安圭容)이 지은 것으로, 발문은 甲寅孟秋(19

  • 회사 / 會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호조의 종9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1466년(세조 12) 관제개정 때 산학(算學)을 호조에 소속시키면서 종9품직으로 회사 2인을 두었다. 주된 업무로 궐내외 여러 곳의 계산을 맡아보았다. 체아직으로 1년에 양도목이며, 514일이 차면 품계를 올려받되 종

  • 회사 / 繪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도화서에 소속된 종9품 잡직. 정원은 2인이다. 도화서에는 선화(善畵)·선회(善繪)·화사(畵史) 등 다섯 자리의 체아직이 있다. 회사는 이 중 최하급관직이었다. 화원은 초기에는 20인, 후기에는 30인으로, 이들이 위의 다섯 자리의 관직에 3개월에 한 번씩

  • 회산서원 / 會山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매안리에 있었던 서원. 1766년(영조 4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양좌(朴良佐)·박이문(朴而文)·이중무(李重茂)·권양(權瀁)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9년(고

  • 회산집 / 晦山集 [종교·철학/유학]

    이춘근의 문집. 석인본, 서: 김승학(1968), 후지: 고두환(1967), 4권 2책. 저자의 아들 이원희가 주도하여 유고를 수집하고 부록까지 포함하여 4권 2책으로 1968년에 간행하였다. 문집 구성을 보면 권두에 1968년에 지은 서문이 있고, 권1은 시, 권2는

  • 회소곡 / 會蘇曲 [문학/고전시가]

    신라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노래.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그 관련 설화가 『삼국사기』 유리왕 9년조에 전한다. 왕은 육부(六部)를 정하고 이를 두 패로 가른 뒤,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붕당(朋黨)을 만들어서 7월 16일

  • 회심가 / 回心歌 [문학/고전시가]

    1896년 민용호(閔龍鎬)가 지은 항일 의병 가사. 1895년(고종 32)강릉에 창의소(倡義所) 를 설치, 1896년까지 의병의 항왜 내력을 기록한 『관동창의록(關東倡義錄)』에 게재되어 있다.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127행이다. 내용은 먼저 우리 나라가

  • 회심곡 / 回心曲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휴정(休靜)이 지은 불교가사.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116행이다. 16세기 말경에 지은 것을 1704년(숙종 30) 명간(明衎)이 엮어 1776년(영조 52) 해인사(海印寺)에서 펴낸 목판본 『보권염불문(普勸念佛文)』에 실려 전한다. 첫머리와 끝부

  • 회암서원 / 晦巖書院 [교육/교육]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었던 서원. 1709년(숙종 35) 지방유림의 공의로 주희(朱熹)·이담(李湛)·이흡(李洽)·조극선(趙克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

  • 회야댐 / 回夜─ [경제·산업/산업]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동천리에 있는 댐. 회야댐은 1986년회야강 수계의 물을 얻기 위해 건설된 높이 24.5m, 길이 424m의 석괴(石塊)댐(earth fill dam)이다. 유역 면적 127㎢, 홍수위 33.27m, 만수위 30m, 저수위 21.5m이고, 저수

  • 회역당집 / 悔易堂集 [문학/한문학]

    조선시대 문인 박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2년에 간행한 시문집. 2권 1책. 목활자본. 1732년(영조 8) 증손 세현(世鉉)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만계(李晩烓)의 서문과, 권말에 권상익(權相翊)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사(辭) 1편, 시 61수, 소(疏

  • 회연서원 / 檜淵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에 있는 서원. 1622년(광해군 1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구(鄭逑)와 이윤우(李潤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 위패를 모셨다. 1690년(숙종 16)에 ‘회연(檜淵)’이라 사액을 받아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

  • 회와시고 / 晦窩詩稿 [종교·철학/유학]

    이인엽의 시집. 불분권 1책. <古 3447-42> 필사본으로 미정고본으로 추정된다. 수정을 위해 이곳저곳에 교정 사항을 가필한 흔적이 보인다. <회와시고>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고 묘도문자가 수록된 부록 역시 부재한 채 전체가 시로만 구성된 시고로서 권말 일부가 떨어져

  • 회우집 / 悔尤集 [종교·철학/유학]

    이충국의 문집. 2권 1책. <古 3428-792> 후손 이중곤 등이 유문을 수습・정리하고 이만도 등에게 서문을 받아 1909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시 124수, 권2에는 만사 49수, 설 1편, 서 4편, 서후 1편, 축문 5편, 제문 6편이 수록되어

  • 회원서원 / 檜原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에 있었던 서원. 1634년(인조 1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구(鄭逑)와 허목(許穆)의 도덕과 학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페이지 / 9 go